동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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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제
同治帝
清 佚名 《清穆宗同治皇帝朝服像》.jpg
청나라 청나라제10대 황제
본명 애신각라재순(愛新覺羅載淳)
재위 1861년 ~ 1875년
출생일 1856년 4월 27일
출생지 청나라 청나라 베이징
사망일 1875년 1월 12일 (18세)
사망지 청나라 청나라 베이징
황후 효철의황후
부황 함풍제
모후 효흠현황후
이전 황제 함풍제
다음 황제 광서제

동치제(同治帝, 1856년 4월 27일 ~ 1875년 1월 12일)은 중국 청 왕조의 제10대 황제(재위 1861년 ~ 1875년)이다. 는 재순(載淳), 묘호는 목종(穆宗)이며, 시호는 계천개운수중거정보대정공성지성효신민공관명숙의황제(繼天開運受中居正保大定功聖智誠孝信敏恭寬明肅毅皇帝)이다. 동치(同治)는 그의 연호이다.

1861년부터 1875년까지 재위하였는데 1861년 5세로 즉위하여 같은 해에 친척 종실들인 애신각라숙순(愛新覺羅肅順)과 애신각라재원(愛新覺羅載垣)과 애신각라단화(愛新覺羅端華)가 차례로 섭정하였으며 뒤이어 숙부 공친왕(恭親王)이 1861년부터 1863년까지 섭정하였고 1863년부터 1870년까지 적모(嫡母) 동태후(東太后)가 섭정하였으며 1870년부터 1873년까지 생모 서태후(西太后)가 섭정하였고 그 후 1873년부터 1875년 붕어할 때까지 친정을 하였다.

생애 [편집]

재위 전 부황(父皇)인 함풍제 시대에 발생한 제2차 아편전쟁의 결과로 청국영국, 프랑스, 러시아 사이에서 체결된 베이징 조약으로 인하여 청국의 대외 위신이 크게 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연해주사할린, 홍콩 등을 열강들에게 탈취당하게 되었다.

공친왕과 서태후 [편집]

즉위 후, 동태후(東太后)와 서태후(西太后)가 같이 섭정을 하면서, 이러한 분위기에 호응하여, 중체서용(中體西用)의 정신이 함양된 양무(洋務)운동이 시작되었다. 두 태후인 동태후와 서태후가 섭정하는 동시에 숙부인 공친왕마저 정치 일선에 나서서 정국에 혼란이 가중되었고, 정권을 계속 유지하는 생모 서태후와 친정을 하고 싶은 동치제 간의 알력이 생겼다. 이 과정에서 20세의 젊은 나이에 천연두로 사망하였다.

가족 관계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