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찾기
도르곤
Dorgon, the Prince Rui (17th century).jpg
황후 경효충공의황후
부친 천명제
모친 효열무황후
묘호 성종(成宗)
시호 무덕수원광업정공안민입정성경의황제
(懋德修遠廣業定功安民立政誠敬義皇帝)[1]

예친왕(睿親王, 1612년 11월 17일 ~ 1650년 12월 31일)은 아이신기오로 도르곤[2](중국어: 多爾袞 duō ěr gǔn[*] 둬얼군; 만주어: Dorgon.png)으로 청나라 초기의 황족이자 섭정(1643년 - 1650년)이며 군인이다. 병자호란 등에 참전하여 조선 정벌에 기여하였고, 백기단(白旗團, 청나라 팔기군의 일부)의 초대 수령이며, 청나라 최초의 섭정이었다.

도르곤은 누르하치의 14남이자 홍타이지의 이복 동생으로 예친왕(睿親王)의 직위에 있었다. 홍타이지 사후 황부섭정왕으로 봉해져 순치제섭정이 되었고, 청나라가 건국된 때부터 지도력을 발휘했다. 사후 황제로 추숭되었다. 추존된 묘호는 성종(成宗)이고 시호는 무덕수원광업정공안민입정성경의황제(懋德修遠廣業定功安民立政誠敬義皇帝)이다.

목차

생애 [편집]

출생과 군인 활동 [편집]

도르곤의 어머니는 누르하치의 4번째 왕비였고 오랍나랍 씨 출신의 황후로, 누르하치는 1616년 자신을 중국의 황제로 선포했으나 명실상부한 황제가 되지 못하고 1626년에 죽었다. 그의 생모는 누르하치가 죽을 때에는 순사를 명령받았다. 누르하치의 장남이자 이복 형인 홍타이지가 태종으로 즉위하자 도르곤은 황자(皇子)의 칭호인 호소이 베일레를 수여받았다.

1626년 예친왕(睿親王)에 봉해졌다.[3] 1628년에 시작된 차하르 몽골족과의 전쟁에 출정하였으며 홍타이지 치하에서 몽골차하르를 토벌하는 것으로 공적을 올려서 실력자가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에 출정하여 평안도황해도, 함경도 지역을 약탈, 방화하게 하였으며 조선을 정벌하는 데 기여하였다. 1637년 홍타이지를 수행하여 인조의 항복을 받아내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조선인 포로와 인삼, 금 등의 공물과 공녀 수백여 명을 사로잡아 베이징으로 귀환하였다. 1638년부터 39년까지 홍타이지명나라를 정복하러 출정나갔을 때 그는 팔기군(八旗軍) 부대 중 한 부대의 지휘관으로 만리장성을 진격하여 함락, 허베이 성(河北省)과 산둥 성(山東省)의 40개 군현을 공략하는데 참전했다.

1643년 홍타이지가 갑자기 사망하자 그는 즉위를 꾀했지만, 귀족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순치제의 섭정 [편집]

순치제는 부황의 갑작스런 붕어로 제후회의에서 황제로 선출되었는데 그때 순치제의 나이 6세였다. 제후 회의는 순치제의 나이가 어려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없었기에 도르곤과 누르하치의 동생인 슈르하치의 6남 정친왕 지르하랑(濟爾哈朗)을 각각 좌우 섭정왕으로 삼아 정무를 대리케 하였다. 득히 순치제가 즉위하게 된 것은 숙부인 도르곤이 강력하게 추천한 덕분이었다.

1643년 어린 순치제가 즉위하자 도르곤은 황숙부섭정왕(皇叔父攝政王)의 지위로 전권을 장악하였다.[3] 또한 팔기군의 예하 부대인 백기단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군권을 장악하는데에도 성공한다. 이후 순치제의 생모인 효장문황후 박이제길특씨가 도르곤과 혼인하여 황제의 계부가 됨으로써 황부섭정왕으로 칭호가 개정되었다.

베이징 입성과 사망 [편집]

도르곤은 1644년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죽고 명이 멸망하자, 그는 베이징 원정대를 편성한다. 1644년 4월 이자성(李自成)의 반란군이 베이징을 장악하자 도르곤은 한족 출신 고문관의 충고에 따라 원정대를 거느리고 베이징으로 쳐들어갔다. 이때 투항한 명나라의 장수 오삼계의 도움으로 산해관을 넘어 함께 이자성을 공격, 어부지리로 중국 대륙을 거의 통일하였고, 명의 수도 베이징에 들어가 자신들이 명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황조라고 선포하였다. 도르곤은 이자성을 체포하라 명령하였고, 이듬해인 1645년 이자성은 쫓기는 도중 살해당한다.

구 명나라 귀족과 황족의 토지 몰수와 변발령 시행 등과 같은 만주 풍습을 강압적으로 도입하였으나 명나라의 구 관료들을 다시 등용하고 명나라의 통치 제도 일부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과거 제도를 수용, 새로운 관리들을 등용했다. 당시 베이징을 방문한 독일인 예수회 선교사였던 아담 샬 폰 벨을 면담한 뒤 천문 관측 시설인 흠천감(欽天監)을 설립하고, 흠천감정과 대포제조 고문으로서 그를 후원하였다.

도르곤은 1650년 12월 31일에 사냥 나갔다가 만리장성 근처에 있는 카라호툰에서 갑자기 급서했다.

사후 [편집]

그가 죽자 순치제는 그를 추숭하여 묘호를 성종(成宗) 의황제(義皇帝)로 추숭하였다.[3] 그러나 그가 지휘하던 백기단 내에서 혼란이 일어났고 이 혼란은 군부로 확대된다. 그 후 청나라 정치권의 내부 변화로 이전에 도르곤의 정적들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순치제에게 그가 역모를 획책했다며 처벌을 상주한다.

그 뒤 그가 생전에 용포를 비밀리에 입수한 것이 알려지면서 반역을 획책했다는 비판이 빗발쳤고 1651년 3월 순치제는 도르곤을 제위 침탈의 뜻을 품었던 반역자로 선언하는 칙령을 반포한다. 곧 도르곤에게 올려진 모든 묘호와 시호를 추탈하고 서인(庶人)으로 삼아 부관참시하였다. 도르곤은 건륭제몽골타타르, 조선 정벌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복권되었으며 방치되었던 그의 무덤이 다시 복원되었으나 황제로 복권되지는 못하고 예충친왕(睿忠親王)의 시호를 받았으며, 태묘에 배향되었다.

가계 [편집]

부인 & 자녀들 [편집]

도르곤은 공식적으로 정부인 6명과 첩 4명을 두었다. 친아들은 없고 측복진 이씨가 낳은 무남독녀 동아(1638~?)가 있을 뿐이다.[4] 도르곤의 정실 부인 중 한 명이었던 효장문황후는 도르곤이 역적으로서 폐해진 후나 건륭제 때 황실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가계에서 빼버린 것으로 보인다.[5] 오이고예는 정식 첩이 아니며 작위를 받지 못했다.[6]

  • 정복진(正福晉) 경효충공정궁원비 박이제길특씨(敬孝忠恭正宮元妃 博爾濟吉特氏 1611~1649), 시호는 경효충공의황후(敬孝忠恭義皇后), 순치제의 생모인 효장문황후의 사촌언니이다.
  • 계복진(繼福晉) 동가씨(佟佳氏) : 상서 몽아도(蒙阿圖)의 딸
  • 계복진(繼福晉) 박이제길특씨(博爾濟吉特氏) : 이름 찰이망(紮爾莽) / 찰로특부 태길 근두이(紮魯特部 台吉 根杜爾)의 딸
  • 계복진(繼福晉) 박이제길특씨(博爾濟吉特氏) : 과이심 태길 납포희서(拉布希西)의 딸
  • 계복진(繼福晉) 박이제길특씨(博爾濟吉特氏) : 과이심 태길 색낙포(索諾布)의 딸, 원래 호격(순치제의 이복형)의 적복진이었다
  • 계복진(繼福晉) 전주이씨(李愛淑[7], 1635~1662) : 조선 종실 금림군 이개윤(錦林君 李愷胤)의 딸, 의순공주(義順公主)
  • 측복진(側福晉) 공제특씨(公齊特氏) : 찰합이 태길 포연도(布延圖)의 딸
  • 측복진(側福晉) 박이제길특씨(博爾濟吉特氏) : 태길 두사갈이탁농(杜思噶爾卓農)의 딸
  • 측복진(側福晉) 제이막특씨(濟爾莫特氏) : 방도무(幇圖武)의 딸
  • 측복진(側福晉) 전주이씨(李氏) : 조선 여인, 이세서(李世緖)의 딸.[8] 도르곤의 무남독녀인 동아(東莪: 1638~?)[9]의 생모
  • 오이고예(吳爾庫霓) : 과이심친왕 오극선(吳克善)의 노비, 도르곤 사후 순장됨

기타 [편집]

아들이 없어 친동생인 예친왕(豫親王) 도도(多鐸)의 다섯번째 서자 다이박(多爾博)을 양자로 삼았다. 도르곤 사후 다이박이 예친왕(睿親王)직을 계승하였으나 곧 순치제에 의해 작위를 박탈당한다. 그 뒤 다이박의 후손들은 건륭제 43년에 가서야 도르곤과 다이박이 복권되면서 예친왕직을 세습하게 된다.

정비 경효충공정궁원비 박이제길특씨(敬孝忠恭正宮元妃 博爾濟吉特氏)는 홍타이지의 계후 효장문황후의 여동생이며 누르하치의 계비 효단문황후의 조카딸이다.

동생 도도의 후궁 계복진과이심박이제길특씨(繼福晋科爾沁博尔济吉特氏)는 효장문황후, 경효충정궁원비 자매의 친정 조카딸이자 다시 효단문황후의 질손녀가 된다. 도르곤의 양자가 된 다이박은 계복진과이심박이제길특씨의 소생이었다.[10]

기타 [편집]

주석 [편집]

  1. 추존황제이다.
  2. 도르곤이란 말은 만주어로 곰(熊)이라는 뜻이라 한다.
  3. [明亡清興六十年]攝政王多爾袞爭皇位案
  4. 中文百科在线
  5. 중국사열전 后妃/샹관핑/달과소
  6. 친왕의 비첩(婢妾)에게 내리는 작위는 서복진(庶福晉)이다.
  7. 중국위키
  8. 중국 백과사전에는 이세서가 종실로 기록되어 있다.
  9. http://baike.baidu.com/view/2035161.htm
  10. 부계로는 조카가 되면서 동시에 처가로는 이질손뻘이 된다.

같이 보기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