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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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는 브리튼 섬의 남부 저지대로 면적은 섬 전체의 반 가량인 130,410 제곱킬로미터 정도이다. [[스코틀랜드]]는 북부 고지대로 78,789 제곱킬로미터 정도이며, 서부 고지대인 [[웨일즈]]는 20,758 제곱킬로미터, [[북아일랜드]]는 14,160 제곱킬로미터 정도이다.
[[잉글랜드]]는 브리튼 섬의 남부 저지대로 면적은 섬 전체의 반 가량인 130,410 제곱킬로미터 정도이다. [[스코틀랜드]]는 북부 고지대로 78,789 제곱킬로미터 정도이며, 서부 고지대인 [[웨일즈]]는 20,758 제곱킬로미터, [[북아일랜드]]는 14,160 제곱킬로미터 정도이다.

=== 지형 ===
=== 지형 ===
지형적으로는 동남부의 [[저지]]와 북서부의 고지로 크게 나뉜다. 이 둘의 경계는 동부 해안 중앙부의 티스 강 하구와 남부 해안의 라임만을 연결하는 선이다. 고지라고 해도 대부분은 고도 1,000m 이하의 낮은 산맥 및 구릉으로서 영국의 최고봉 벤네비스 산도 1,343m에 지나지 않는다. 고지는 지형과 지질이 다른 다음과 같은 [[지괴]](地塊)로 나뉜다. 스코틀랜드 고지와 북아일랜드는 주로 [[캄브리아기|캄브리아계]]의 가장 오랜 [[변성암]]으로 되어 있으며, 스코틀랜드 남부 산지, 캄브리아 산지(호수 지방) 및 [[웨일스]]는 주로 [[고생대]] [[실루리아기|실루리아계]]의 변성암으로 되어 있다. 페나인 산맥과 스코틀랜드 중앙 지구대는 고생대의 [[석탄기|석탄계]]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삼첩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에 석탄층이 있어 영국의 탄전(炭田)을 형성한다. 웨일스 남부와 데번 코른월 지괴는 고생대 [[데본기|데본계]]로 되어 있다.한편 저지는 잉글랜드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해발 300m 이하의 낮은 구릉과 평야로 되어 있다. 구릉은 [[백악기|백악계]]와 제3계의 느리게 주름잡힌 새 지층으로 이뤄져 각지에 [[케스타]] 지형이 보인다. 영국은 제4기 [[홍적세]]에 유럽 대륙에서 뻗친 대륙 빙하에 덮여 있었으므로 산지에는 빙식(氷蝕) 지형이 많으며, 황토에 뒤덮인 황무지와 습지가 많다. 더구나 북쪽의 스코틀랜드 제도에는 [[피오르드]] 해안이 발달해 있다.템스 강(전체길이 350㎞)을 비롯하여 이 나라의 하천은 모두 짧으며 또 산지도 낮으므로 하천의 [[충적]](沖積)작용은 크지 않다. 그래서 템스 강 하구부, 브리스틀 해협, 포스만 등처럼 묻혀 버린 [[삼각강]]이 많으며, 해안선은 굴곡이 많고 하천의 경사가 완만하므로 향항과 [[가항하천]](可航河川)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형적으로는 동남부의 [[저지]]와 북서부의 고지로 크게 나뉜다. 이 둘의 경계는 동부 해안 중앙부의 티스 강 하구와 남부 해안의 라임만을 연결하는 선이다. 고지라고 해도 대부분은 고도 1,000m 이하의 낮은 산맥 및 구릉으로서 영국의 최고봉 벤네비스 산도 1,343m에 지나지 않는다. 고지는 지형과 지질이 다른 다음과 같은 [[지괴]](地塊)로 나뉜다. 스코틀랜드 고지와 북아일랜드는 주로 [[캄브리아기|캄브리아계]]의 가장 오랜 [[변성암]]으로 되어 있으며, 스코틀랜드 남부 산지, 캄브리아 산지(호수 지방) 및 [[웨일스]]는 주로 [[고생대]] [[실루리아기|실루리아계]]의 변성암으로 되어 있다. 페나인 산맥과 스코틀랜드 중앙 지구대는 고생대의 [[석탄기|석탄계]]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삼첩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에 석탄층이 있어 영국의 탄전(炭田)을 형성한다. 웨일스 남부와 데번 코른월 지괴는 고생대 [[데본기|데본계]]로 되어 있다.한편 저지는 잉글랜드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해발 300m 이하의 낮은 구릉과 평야로 되어 있다. 구릉은 [[백악기|백악계]]와 제3계의 느리게 주름잡힌 새 지층으로 이뤄져 각지에 [[케스타]] 지형이 보인다. 영국은 제4기 [[홍적세]]에 유럽 대륙에서 뻗친 대륙 빙하에 덮여 있었으므로 산지에는 빙식(氷蝕) 지형이 많으며, 황토에 뒤덮인 황무지와 습지가 많다. 더구나 북쪽의 스코틀랜드 제도에는 [[피오르드]] 해안이 발달해 있다.템스 강(전체길이 350㎞)을 비롯하여 이 나라의 하천은 모두 짧으며 또 산지도 낮으므로 하천의 [[충적]](沖積)작용은 크지 않다. 그래서 템스 강 하구부, 브리스틀 해협, 포스만 등처럼 묻혀 버린 [[삼각강]]이 많으며, 해안선은 굴곡이 많고 하천의 경사가 완만하므로 향항과 [[가항하천]](可航河川)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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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미 관계 ===
=== 영미 관계 ===

영국과 미국의 관계는 대략 400년 정도 소급된다. 1607년 영국은 "[[제임스타운 식민지|제임스타운]]"이라고 명명된 북미 대륙 최초의 상주 식민지를 세우기 시작하였고, 오늘날 영국과 [[미국]]은 가까운 군사적 동맹체이다. 양국은 문화적으로 유사할 뿐만 아니라 군사적 연구와 정보 기구를 공유한다. 영국은 [[미국]]으로부터 [[토마호크 미사일]]이나 [[트라이던트 미사일]]과 같은 무기를 구입했고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해리어(Harrier)와 같은 장비를 구매했다. 또한 영국에 대규모 군대를 주둔하고 있다. 최근 영국의 총리와 [[미국]]의 대통령은 매우 친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령 [[토니 블레어]]와 [[빌 클린턴]] 및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 간의 관계, 1980년대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 등의 관계가 그러하다. 현재 영국의 정책은 [[미국]]과의 관계는 영국의 "가장 중요한 2자간 관계"임을 표명한다.<ref> {{뉴스 인용 |url= http://www.ft.com/cms/s/f845cfdc-3bd8-11dc-8002-0000779fd2ac.html |제목= UK - Ties that bind: Bush, Brown and a different relationship |출판사=Financial times |작성일자= 2007-07-27|확인일자= 2009-07-11}} </ref>
영국과 미국의 관계는 대략 400년 정도 소급된다. 1607년 영국은 "[[제임스타운 식민지|제임스타운]]"이라고 명명된 북미 대륙 최초의 상주 식민지를 세우기 시작하였고, 오늘날 영국과 [[미국]]은 가까운 군사적 동맹체이다. 양국은 문화적으로 유사할 뿐만 아니라 군사적 연구와 정보 기구를 공유한다. 영국은 [[미국]]으로부터 [[토마호크 미사일]]이나 [[트라이던트 미사일]]과 같은 무기를 구입했고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해리어(Harrier)와 같은 장비를 구매했다. 또한 영국에 대규모 군대를 주둔하고 있다. 최근 영국의 총리와 [[미국]]의 대통령은 매우 친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령 [[토니 블레어]]와 [[빌 클린턴]] 및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 간의 관계, 1980년대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 등의 관계가 그러하다. 현재 영국의 정책은 [[미국]]과의 관계는 영국의 "가장 중요한 2자간 관계"임을 표명한다.<ref> {{뉴스 인용 |url= http://www.ft.com/cms/s/f845cfdc-3bd8-11dc-8002-0000779fd2ac.html |제목= UK - Ties that bind: Bush, Brown and a different relationship |출판사=Financial times |작성일자= 2007-07-27|확인일자= 2009-07-11}}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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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
== 교육 ==

{{본문|영국의 교육}}
{{본문|영국의 교육}}
[[옥스퍼드 대학교]]나 [[케임브리지 대학교]] 등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의무교육은 초, 중, 고 11년이다. 영국의 어린이들은 만 5세부터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옥스퍼드 대학교]]나 [[케임브리지 대학교]] 등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의무교육은 초, 중, 고 11년이다. 영국의 어린이들은 만 5세부터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 경제 ==
== 경제 ==
이 나라는 다른 여러 나라에 앞서서 산업혁명을 성취하여 오랫동안 세계 경제에 군림해 왔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유럽 대륙과 북아메리카의 공업이 급속도로 발달하여 1차대전 이후 세계 경제에 있어서의 지위는 차차 저하했다. 해외 투자로부터의 수입으로 경제의 안정을 꾀했으나 2차대전에 의해 큰 타격을 받고 재편성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비롯한 계획경제의 도입으로 국제수지를 개선하고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여 복지 국가의 실현을 꾀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경제 체제이다. 그러나 높은 고용수준을 유지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국제 수지의 악화, 대내적으로는 코스트 인플레이션에 의한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영국은 1961년부터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을 신청했으나 프랑스의 거부로 실현을 보지 못하다가 1971년 6월 마침내 수출입정책 및 파운드화(貨) 문제에 매듭을 짓고 영·불 양국간에 최종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1973년 1월부터 정식 가입(경과기간 5년을 계산하면 실질적인 가입은 1978년부터가 됨)하게 되었다.
이 나라는 다른 여러 나라에 앞서서 산업혁명을 성취하여 오랫동안 세계 경제에 군림해 왔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유럽 대륙과 북아메리카의 공업이 급속도로 발달하여 1차대전 이후 세계 경제에 있어서의 지위는 차차 저하했다. 해외 투자로부터의 수입으로 경제의 안정을 꾀했으나 2차대전에 의해 큰 타격을 받고 재편성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비롯한 계획경제의 도입으로 국제수지를 개선하고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여 복지 국가의 실현을 꾀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경제 체제이다. 그러나 높은 고용수준을 유지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국제 수지의 악화, 대내적으로는 코스트 인플레이션에 의한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영국은 1961년부터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을 신청했으나 프랑스의 거부로 실현을 보지 못하다가 1971년 6월 마침내 수출입정책 및 파운드화(貨) 문제에 매듭을 짓고 영·불 양국간에 최종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1973년 1월부터 정식 가입(경과기간 5년을 계산하면 실질적인 가입은 1978년부터가 됨)하게 되었다.

=== 농·수산업 ===
=== 농·수산업 ===
19세기 중반까지는 농산물의 자급자족을 했으나 신대륙에서 수입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축산과 원예 작물에 중점을 두게 되어 식량의 절반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확량(收穫量)으로서는 감자·사탕무·귀리 등이 많으나 금액으로는 축산물이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비율이 높은 지방은 동부의 앵글리아·켄트·링컨셔 등으로서, 잉글랜드 중앙부와 북부, 웨일스, 스코틀랜드에서는 목초지의 비율이 크다.수산업은 북해와 아이리시해(海)를 중심으로 한 근해 어업과 아일랜드, 그린란드, 노르웨이 북해안 등지의 원양어업으로 나뉜다. 1995년의 어획고는 242만 2,000 t에 달하고 있으며, 스코틀랜드에서는 주요 산업의 하나로 되어 어업 종사자는 2만 2,000명이며, 이 밖에 계절적으로 약 6,000명이 종사하고 있다.
19세기 중반까지는 농산물의 자급자족을 했으나 신대륙에서 수입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축산과 원예 작물에 중점을 두게 되어 식량의 절반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확량(收穫量)으로서는 감자·사탕무·귀리 등이 많으나 금액으로는 축산물이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비율이 높은 지방은 동부의 앵글리아·켄트·링컨셔 등으로서, 잉글랜드 중앙부와 북부, 웨일스, 스코틀랜드에서는 목초지의 비율이 크다.수산업은 북해와 아이리시해(海)를 중심으로 한 근해 어업과 아일랜드, 그린란드, 노르웨이 북해안 등지의 원양어업으로 나뉜다. 1995년의 어획고는 242만 2,000 t에 달하고 있으며, 스코틀랜드에서는 주요 산업의 하나로 되어 어업 종사자는 2만 2,000명이며, 이 밖에 계절적으로 약 6,000명이 종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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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
== 국가 ==
{{본문|영국의 국가}}
{{본문|영국의 국가}}

영국의 국가는 《[[영국의 국가|하느님 여왕을 지켜주소서]]》이다. 이외에 비 공식 국가로 《[[룰 브리타니아]]》 등이 있다.
영국의 국가는 《[[영국의 국가|하느님 여왕을 지켜주소서]]》이다. 이외에 비 공식 국가로 《[[룰 브리타니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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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 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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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9일 (수) 20:45 판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국기

국장 (왕실 문장)
표어프랑스어: Dieu et mon droit
영어: God and my right[1]
표어 설명신과 나의 권리
국가하느님, 국왕 폐하를 지켜 주소서
수도런던 북위 51° 30′ 26″ 서경 0° 07′ 39″ / 북위 51.507222° 서경 0.1275°  / 51.507222; -0.1275
영국(영국)
정치
정치체제단일 국가, 양원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국왕찰스 3세
총리
상원 의장
하원 의장
리시 수낵
존 맥폴
린지 호일
입법부영국 의회
상원귀족원
하원서민원
집권여당보수당
역사
설립 
 • 1707년 연합법1707년 5월 1일
 • 아일랜드 왕국 합병1801년 1월 1일5
 • 아일랜드 자유국 독립1922년 12월 5일
지리
면적242,495 km2 (78 위)
내수면 비율1.51%
시간대GMT (UTC+0)
DSTBST (UTC+1)
인문
공용어영어4
지역어웨일스어
데모님영국인
인구
2020년 어림67,886,004명 (21위)
인구 밀도255.6명/km2 (51위)
경제
GDP(PPP)2020년 어림값
 • 전체$2조 9,790억 (9위)
 • 일인당$44,288 (26위)
GDP(명목)2020년 어림값
HDI0.932 (13위, 2019년 조사)
통화파운드 (£) (GBP)
종교
종교기독교[주 1] 34.2%
무종교 50.2%
이슬람교 5.5%
힌두교 1.7%
기타 2.5%
불명 0.6%
기타
ISO 3166-1826, GB, GBR
도메인.uk6
국제 전화+44
1일부 지방에서 쓰이는 언어로는 다음과 같다:
  • 스코트어: Unitit Kinrick o Great Breetain an Northren Ireland
  • 웨일스어: Teyrnas Unedig Prydain Fawr a Gogledd Iwerddon
  • 스코틀랜드 게일어: An Rìoghachd Aonaichte na Breatainn Mhòr agus Eirinn a Tuath
  • 아일랜드어: Ríocht Aontaithe na Breataine Móire agus Tuaisceart na hÉireann
  • 콘월어: An Rywvaneth Unys a Vreten Veur hag Iwerdhon Glédh
  • 얼스터 스코트어: Claught Kängrick o Docht Brätain an Norlin Airlann

2 스코틀랜드에서는 스코틀랜드의 문장을, 웨일스에서는 웨일스의 문장을 사용한다.
3 공식적인 국가는 아니다.
4 2005년웨일스에서는 웨일스어, 스코틀랜드에서는 스코틀랜드 게일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5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라는 이름이 정해졌다. 이 이름은 1927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6

ISO 3166-1 alpha-2 약자는 'GB'이지만 특별한 목적에서만 사용된다.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영어: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조선말: 대브리텐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줄여서 연합 왕국(United Kingdom) 혹은 영국(英國, 잉글랜드에서 유래)은 유럽 서북 해안의 섬나라로, 북해, 영국 해협, 아일랜드 해대서양에 둘러싸여 있다. 이외에 영국의 군주 밑에 해외 영토가 있으나, 영국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그레이트브리튼 섬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아일랜드 섬 북쪽의 북아일랜드로 이루어져 있다. 아일랜드 섬의 아일랜드 공화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국명

정식명칭은 "그레이트 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며, '대영 연합왕국'이라고도 한다. 북대서양북해 사이에 위치하며, 프랑스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국토는 그레이트 브리튼 섬아일랜드 섬의 1/6을 차지하는 북아일랜드 및 그 주위에 분포되어 있는 몇 개의 속도군(屬島群)과 해외령을 포함한다. 맨섬채널 제도는 왕실속령으로서 영국 정부의 국방 및 외교 관할을 받는다.

역사

잉글랜드 왕국스코틀랜드 왕국은 따로 나뉜 주권자와 독립한 나라로서 그들 자신의 군주와 정치적인 구조를 가지며 9세기부터 존재해 왔다. 일단 웨일스 공국1284년런들랜 법(Statute of Rhuddlan)에 따라 잉글랜드 왕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603년부터 왕국연합(Union of the Crowns)이라는 동군연합 상태였던 잉글랜드(웨일스를 포함한)는 1707년 연합법(Acts of Union 1707)에서 스코틀랜드와 합병하였다. 이로써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형태로 정치적 연합이 이루어졌다.[2][3]

1800년 연합법(Act of Union 1800)은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에 아일랜드 왕국을 병합시켰다. 당시 아일랜드는 리머릭 조약(Treaty of Limerick)에 따라 1541년부터 1691년까지 점차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아 가던 상태였다.[4] 그에 따라 1801년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이 성립하였다.[5] 1922년 아일랜드 공화국 독립은 2년 전에 아일랜드 섬의 분할에 따른 결과이며, 얼스터 지방(province)의 9개 (county) 가운데 6개 주가, 1927년에 현재 이름으로 바뀐 영국령으로 남겨졌다.[6][7]

영국은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정보 및 유력한 문학연극의 전통을 가진 계몽시대의 중요한 국가였다. 그 다음 세기 내내 영국은 문학, 예술과학에 획기적으로 공헌한 의회 민주주의와 같은 서양 사상의 발전에서 주역이 되었다.[8] 초기 대영 제국의 부는 다른 강국처럼 역시 1750년 이후에 있었던 노예무역의 산업화를 포함한 식민 착취에 의해 그 일부는 생성되었다. 18세기 영국의 노예 매매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던 영국 함대가 아프리카 노예를 아메리카 대륙으로 보내는 악명 높은 삼각무역의 일부였다. 그러나 19세기 초에 영국은 노예무역법을 만들어, 영원히 노예 무역을 금지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되었다.

산업혁명나폴레옹 전쟁에서 나폴레옹을 격파한 뒤에, 19세기 영국은 세계의 주요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대영 제국이 전성기일 때 영국의 영토는 지구의 약 4분의 1(1/4)까지 커졌었고, 인구도 세계 인구의 약 4분의 1(1/4)이었다. 이는 역사에서 가장 큰 인구와 영토였다. 당시 대영 제국은 그 영토가 지구 널리 퍼져있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일컬어졌다. 1910년대 후반에는 이라크까지 점령하였다.

19세기 내내 영국은 다당제의 출현과 투표권의 확장을 통해 부분적으로 의회 민주주의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과학예술의 발달은 18세기에 이루어진 아이작 뉴턴 등의 업적을 계승하거나 부분적으로 더 오래된 문학의 전통에 영향을 받았다.

영국은 탁월한 강대국으로 남았고, 1921년에는 제1차 세계 대전 뒤에 국제 연맹 위임 통치령이 되었던 독일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식민지를 획득하여 최대로 넓어졌다.

전쟁에서 벗어난 뒤에 세계 최초로 거대한 국제 방송망인 BBC가 생겨났다. 영국의 노동 운동은 19세기 후반부터 확장해 왔고, 1924년제1차 노동당 내각이 집권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영국은, 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도를 포함한 영국 연방과 연합하여, 그리고 나중에는 연합국과 연합하여 나치 독일과 싸웠다. 전시 지도자 윈스턴 처칠과 그의 후임 클레먼트 애틀리(Clement Attlee)는 3대 강국의 한 축으로 전후 세계를 계획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영국에 재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경제적으로 비싼 전시 대부금, 미국과 캐나다에서 1945년에 빌려준 대부금이 전후에 미국의 마셜 플랜 원조와 합쳐져서 영국은 복구되기 시작하였다.

유명한 영국 공군스피트파이어. 영국 공군은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이겼고,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서유럽에서의 독일의 우세를 종료시켰다.

1945년에 영국은 세계 최초이면서 가장 광범위한 의료 제도를 포함한 복지 국가의 출현을 알렸고, 정부 정책의 변화는 영국 연방 도처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민족 국가로서의 영국을 만들 수 있게 하였다. 전후 영국의 정치적 역할의 한계가 1956년 수에즈 사태에서 보여졌지만, 영어의 국제적 통용과 1960년대에 영국의 대중 문화의 외국으로의 전파는, 영문학이나 영국 문화가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 있음을 의미했다. 1970년대의 국제 경제의 하향세와 산업 쟁의의 시대에 뒤이어 1980년대는 북해 유전의 수익과 경제발전이 있었다. 마거릿 대처 수상의 지도력은 전후 정치적, 경제적 합의의 전환을 이끌었다. [9] 이러한 경향이 1990년대 중반부터 토니 블레어의 지도 아래 계속되었다.

영국은 1973년 이후로 유럽 경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었고, 1992년에는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서명하여 12국으로 이루어진 유럽 연합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 오늘날 노동당 내각의 태도는 EU와의 통합으로,[10] 보수당은 몇몇 권리와 자격의 반환으로[11] 그리고 자유민주당은 현재 정책의 지지쪽으로 기우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리

영국의 지형도

브리튼 제도와 아일랜드 섬의 북동부에 자리잡은 북아일랜드로 이뤄진 섬나라이다. 서쪽으로 대서양이, 동쪽으로는 북해가 자리잡고 있으며 남쪽의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두고 프랑스와 인접해 있다. 남북으로는 북위 49도에서 52도(세틀랜드 섬은 62도)에 이르며 동서로는 동경 2도에서 서경 8도사이에 놓여 있다.

잉글랜드는 브리튼 섬의 남부 저지대로 면적은 섬 전체의 반 가량인 130,410 제곱킬로미터 정도이다. 스코틀랜드는 북부 고지대로 78,789 제곱킬로미터 정도이며, 서부 고지대인 웨일즈는 20,758 제곱킬로미터, 북아일랜드는 14,160 제곱킬로미터 정도이다.

지형

지형적으로는 동남부의 저지와 북서부의 고지로 크게 나뉜다. 이 둘의 경계는 동부 해안 중앙부의 티스 강 하구와 남부 해안의 라임만을 연결하는 선이다. 고지라고 해도 대부분은 고도 1,000m 이하의 낮은 산맥 및 구릉으로서 영국의 최고봉 벤네비스 산도 1,343m에 지나지 않는다. 고지는 지형과 지질이 다른 다음과 같은 지괴(地塊)로 나뉜다. 스코틀랜드 고지와 북아일랜드는 주로 캄브리아계의 가장 오랜 변성암으로 되어 있으며, 스코틀랜드 남부 산지, 캄브리아 산지(호수 지방) 및 웨일스는 주로 고생대 실루리아계의 변성암으로 되어 있다. 페나인 산맥과 스코틀랜드 중앙 지구대는 고생대의 석탄계중생대 삼첩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에 석탄층이 있어 영국의 탄전(炭田)을 형성한다. 웨일스 남부와 데번 코른월 지괴는 고생대 데본계로 되어 있다.한편 저지는 잉글랜드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해발 300m 이하의 낮은 구릉과 평야로 되어 있다. 구릉은 백악계와 제3계의 느리게 주름잡힌 새 지층으로 이뤄져 각지에 케스타 지형이 보인다. 영국은 제4기 홍적세에 유럽 대륙에서 뻗친 대륙 빙하에 덮여 있었으므로 산지에는 빙식(氷蝕) 지형이 많으며, 황토에 뒤덮인 황무지와 습지가 많다. 더구나 북쪽의 스코틀랜드 제도에는 피오르드 해안이 발달해 있다.템스 강(전체길이 350㎞)을 비롯하여 이 나라의 하천은 모두 짧으며 또 산지도 낮으므로 하천의 충적(沖積)작용은 크지 않다. 그래서 템스 강 하구부, 브리스틀 해협, 포스만 등처럼 묻혀 버린 삼각강이 많으며, 해안선은 굴곡이 많고 하천의 경사가 완만하므로 향항과 가항하천(可航河川)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기후

중위도 대륙 서해안의 해양성 기후로서 멕시코 만류(灣流)와 편서풍 때문에 위도에 비해서는 따뜻하다(1월의 기온 6∼3 °C). 그러나 겨울에는 간혹 섭씨 영하 10도까지 기온이 떨어지기도 하며 여름에는 섭씨 35도까지 오르기도 한다. 비는 서해안에는 많으나 동해안에는 적다. 또 습기가 많기 때문에 안개가 많으며 런던에서는 스모그가 1년에 90일간 생겨서 ‘안개의 도시’라고도 불린다.연평균 강수량은 서부와 북부의 산간 지방에서는 1600㎜ 이상이지만 중부와 동부 지역에서는 800㎜ 미만이다. 비는 연중 고루 내리는 편이지만 평균적으로 3월부터 6월가지가 비가 가장 적고 9월부터 1월까지가 가장 많은 시기이다.

행정 구역

영국의 행정 구역은 꽤 복잡하다. 우선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구성 국가들로 나뉜다. 각 구성 국가마다 자체적인 행정 구역 체제가 나뉜다.

  • 잉글랜드의 행정 구역: 잉글랜드는 9개의 지역(region)으로 나뉘어 있다. 각 지역은 다시 48개의 주(county)로 나뉜다.
  •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는 32개 주(council area)로 나뉜다.
  • 웨일스: 웨일스는 22개 주(unitary authority)로 나뉜다.
  • 북아일랜드: 북아일랜드는 26개 주(district)로 나뉜다.

그 밖에 해외 영토(overseas territory)들과 왕실령(crown dependency)들이 존재하나, 이 지역들은 형식적으로는 영국 영토로 간주되지 않는다.

정치

근대 의회민주주의의 발상지이며 오래간 모범적인 양당 정치를 구현해온 나라로서 오늘날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정치체제인 의원내각제를 발전시킨 나라이다. 정치체제는 입헌군주제로,‘군주는 군림하여도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의해, 군주의 권한 행사는 내각의 조언에 의하여 행해지고 있다. 성문(成文)화된 헌법은 없으며, 정치의 기본은 전통·관례·약간의 기본법(대헌장, 인권선언, 의회법 등)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다. 지방자치는 19세기 후반에 확립되었으나 북아일랜드는 독자적인 의회와 행정부를 가지고 있으며 스코틀랜드 성(省)의 관할 밑에 놓여 있다. 의회는 상원(The House of Lords)과 하원(The House of Commons)의 양원제로 되어 있고 선거에 의해 선출되며, 상원은 약 1,190명의 의원으로, 하원은 651명의 의원으로 각각 구성되어 있다. 상원은 최근까지 '귀족들을 위한 의회'였으나 1997년 토니 블레어 총리 집권 이후 이탈리아와 같이 직능 대표 단체로 만들기 위해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특징으로선 2대 정당제를 들 수 있다. 과거에는 보수당과 자유당이 양당 체제를 이루었으나, 1차 대전 이후 자유당이 몰락하고 대신 노동당이 등장하여 새로운 양당체제가 성립되었으며 근래에 들어 노동당에 실망한 국민들이 지지하는 개혁자유주의(중도좌파)정당인 자유민주당이 제3당으로서 크게 성장하고 있고, 극우정당인 BNP(British National Party) 등이 등장했으나 기본적인 양당체제의 틀은 아직 유지 되고 있다. 2010년 현재 국가수반은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이고, 총리는 데이빗 캐머런이다.

주요 정당

2010년 5월의 영국 국회의원(하원) 총선거에서 10석 이상 확보한 정당을 순서대로 정렬했다.

기타 정당으로, 2007년 5월 스코틀랜드 지방(의회)선거에서 여당(37.3%, 47석/129석)이 된 스코틀랜드 국민당(1.5%, 6석. 중도좌파)등이 있다.

영국은 의원 내각제, 즉 의회가 곧 내각이 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선거제도는 대한민국이 2000년까지 취해오던 소선거구제 아래에서, 각 선거구마다 마음에 드는 후보 1명만을 뽑는 'First-past-the-post'방식이다. 보통 4년마다 열리는 선거에서 의석수의 과반 이상을 확보한 당이 집권당이 되며, 이들이 내각(Cabinet)을 구성한다. 야당은 예비 내각(Shadow Cabinet)을 구성하여 집권시 어떤 정책을 실시할 것인가를 국민이 미리 알 수 있어 정치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보장하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은 총선 이 후 총리로 임명되었다.

군주제

영국의 군주제(君主制)는 적어도 1,100년 전에 시작되었다. 현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829년 잉글랜드를 통일한 에그버트 왕의 직계 후손이다. 군주제의 역할은 수세기를 내려오면서 변화되었다. 초기 군주들은 절대 권력을 행사했지만 이는 의회와 사법부의 발달로 축소되었다. 왕과 의회의 권력 투쟁으로 1689년 제한된 입헌 군주제가 확립되었다. 근대적 정치 제도의 확립과 함께 19세기 말에는 정치면에서 군주의 능동적 역할이 최소화되었다. 오늘날의 군주로서 현재 왕은 국가의 중립적 수반의 역할을 한다. 법적으로 왕은 행정부와 사법부의 수반, 전군 최고 사령관, 영국 국교의 수장이다. 그러나 정치적 결정은 각료들이 내린다. 영국은 왕의 이름하에 왕국 정부가 통치하는 국가이다. 왕은 상징적 중요성을 지닌 정부의 몇가지 역할을 아직 수행하고 있다. 왕은 의회를 소집, 해산하며 법안을 재가한다. 또 총리와 각료들을 포함한 주요 관리들을 공식적으로 임명한다. 왕의 임무 수행 불가능시를 대비하여 섭정을 임명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섭정은 왕의 영국의 왕세자 격인 프린스 오브 웨일스prince of wales가 되며 그 다음 순위는 왕위 계승 서열에 따르지만 18세 이상이어야 한다. 왕이 부분적으로 임무 수행이 불가능해지거나 해외 여행으로 부재 중인 경우에는 왕의 어떤 임무를 임시 섭정들(국왕의 배우자-현재는 여왕의 남편인 에딘버러 공-, 그 다음 왕위 계승 서열이 되는 4명의 성인(成人)들, 국왕의 모후)에게 위임할 수 있다. 그러나 임시 섭정들은 의회를 해산시키거나 작위를 수여할 수 없다. 군주제의 한가지 특징은 공식적인 면과 비공식적인 면이 결합된다는 점이다. 전통적 의식은 아직도 중요한 일부이다. 왕실의 결혼식과 장례식은 국가 행사이다. 6월에 공식적으로 열리는 여왕 탄신 기념식 때 여왕 근위병의 열병식인 군기 분열식이 행해진다. 외국의 국왕이나 국가 원수가 영국을 방문하면 공식 연회가 베풀어지며 작위훈장 수여식은 버킹엄궁과 스코틀랜드 홀리루드 하우스 궁에서 열린다. 군주제는 TV를 통해 또는 국민들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 더 친근해졌으며 왕족들이 일반인들을 만나기 위해 거리를 걷는 것도 왕실의 중요한 특징이다. 매년 여왕과 왕가의 구성원들은 영국 곳곳을 방문한다. 그들은 또한 많은 자선 단체들의 사업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예를 들면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소기업과 도시 빈민가의 자영업을 장려하기 위해 설립된 프린시스 트러스트(Prince's Trust)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여왕은 에딘버러 공과 함께 외국 정부를 공식 방문하며 영연방 국가들을 순시하기도 한다. 왕가의 다른 구성원들도 외국을 방문하며 이때 여왕을 대신하여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 54개 영연방 회원국 모두는 영국 여왕을 영연방의 수반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그 회원국들 중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자메이카, 바하마, 바베이도스 등 다수 국가들의 여왕이기도 하다. 여왕은 2년마다 열리는 영연방 정부 수반 회의에 참석하며 각국의 국가 수반으로 총리와 사적인 대화를 갖는다.

외교

영국은 UN 안보리의 상임 이사국이며, G8나토, EU의 회원국이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다른 유럽 나라들과 우호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영국은 1973년 유럽 경제 공동체 회원국이 되었다. 영국과 미국은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에 있다. 미국유럽 외 영국은 영국 연방, 아일랜드 그 밖에 영어 사용 국가들과 친밀한 관계에 있다. 영국의 세계적인 존재와 영향력은 무역관계와 군사력때문에 더 증폭되는데, 전 세계에 80여개의 군사 기지와 기타 파견군을 유지하고 있다.

중세 이후로, 프랑스와 영국은 유럽대륙의 주도권 및 식민지 쟁탈을 놓고 서로 적대국인 경우가 많았으나 때로는 동맹을 맺기도 하였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프랑스가 앙탕트 코르디알(프랑스어: entente cordiale) 정책을 펴면서, 러일 전쟁 이후 프랑스 및 러시아와 동맹(삼국 협상)을 맺게 된다.

영미 관계

영국과 미국의 관계는 대략 400년 정도 소급된다. 1607년 영국은 "제임스타운"이라고 명명된 북미 대륙 최초의 상주 식민지를 세우기 시작하였고, 오늘날 영국과 미국은 가까운 군사적 동맹체이다. 양국은 문화적으로 유사할 뿐만 아니라 군사적 연구와 정보 기구를 공유한다. 영국은 미국으로부터 토마호크 미사일이나 트라이던트 미사일과 같은 무기를 구입했고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해리어(Harrier)와 같은 장비를 구매했다. 또한 영국에 대규모 군대를 주둔하고 있다. 최근 영국의 총리와 미국의 대통령은 매우 친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령 토니 블레어빌 클린턴 및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 간의 관계, 1980년대 마거릿 대처로널드 레이건 등의 관계가 그러하다. 현재 영국의 정책은 미국과의 관계는 영국의 "가장 중요한 2자간 관계"임을 표명한다.[12]

한영 관계

1845년 영국 해군이 거문도에 상륙한 것이 영국인의 첫 방한(訪韓)이었으나 1885년 , 러시아남하정책에 의해 이 지역에 대한 영국의 영향력 약화를 우려한 나머지 거문도조선과의 일절 협의도 없이 불법 점령하고 조선의 강력한 항의로 철수했다가 20세기 일본조선을 점진적으로 지배하게 되자 영국은 한국에서 밀려났다.

광복 이전까지 아무런 통교도 하지 않던 양국은 1949년 한영 수교합의가 이루어지고 영국이 한국전쟁UN 소속으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가장 큰 규모의 군대를 파견함으로써 다시 맺어지게 되었다.

영중 관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중화민국연합국측에서 같이 싸웠으며, 국교가 수립되었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자 1950년 중화민국과 단교,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였다.

민족

흔히 이베리아 인으로 지칭되는 대서양 연안 구석기 인들이 최초로 영국에 정착한 제민족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 이후 대륙으로부터 선진 기술을 지닌 켈트족이 정착하며 선주민과의 혼혈이 이뤄졌고 브리튼 섬의 켈트화가 진행되었다. 로마제국의 브리튼 정복 이후 소수의 로마인들이 건너왔다.

로마의 행정과 군사 체계가 붕괴되기 시작한 5~6세기 경부터 라인 강 하류, 플랑드르, 유틀란드 반도에서 게르만 민족의 일파(一派)인 앵글 족, 색슨 족, 유트 족 등이 브리튼 섬을 침략했다. 초기 이들 민족은 선주민과의 혼혈을 엄격히 금지했던 것 같으나 결과적으로 혼혈이 진행되어 오늘날 영국인이 형성되었다. 앵글로색슨 족이 선주민을 거의 대체했다는 주장이 오래 동안 믿어져 왔지만 근래 분자생물학적, 유전학적 연구에 따르면, 앵글로색슨 이주민의 숫자가 선주민을 대체할 정도로 많지 않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근래에는 구 영국 식민지였던 남아시아카리브 해 출신 이민자들이 영국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언어

영어가 쓰이고 있다. 그 외에 웨일즈어, 스코틀랜드어, 스코틀랜드 게일어가 소수에 의해 쓰이고 있다.

종교

종교를 가진 국민의 대다수가 기독교도이다. 종교별 분포도는 다음과 같다.

관련문서

문화

스포츠

영국인들에게 인기있는 스포츠는 축구, 럭비, 크리켓, 골프 등이다.

축구

영국은 "축구 종가"라는 별칭 그대로 축구의 발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영국은 월드컵 예선이나 본선, 국가대표 경기, 청소년대표 경기 때에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로 나눠 출전한다.

주요 행사

법정 휴일
일자 이름
1월 1일 설날
1월 2일 설날 (스코틀랜드만)
3월 17일 St Patrick's Day (북아일랜드만)
부활절 직후 일요일 가까이의 금요일 성 금요일
부활절 직후 일요일 직후의 월요일 부활절 직후 월요일 (성 월요일, 스코틀랜드를 제외한다)
5월 첫째 월요일 May Day
5월 마지막 주 월요일 Spring Bank Holiday
7월 12일 Battle of the Boyne - Orangemen's Day (북아일랜드만)
8월 첫째 월요일 Summer Bank Holiday (스코틀랜드만)
8월 마지막 주 월요일 Summer Bank Holiday (스코틀랜드를 제외한다)
11월 30일 St Andrew's Day (스코틀랜드만)
12월 25일 크리스마스
12월 26일 또는 27일(1) 복싱 데이

관광 명소

영국의 관광명소 목록

런던탑(London Tower)

중세기의 성으로서 시티의 동쪽, 템스강의 북쪽에 있다. 노르만 왕조에서 19세기까지는 군사상의 성이며 동시에 국사범(國事犯)의 감옥으로서 고문소(拷問所)이기도 했다. 그밖에 요새, 왕궁, 보석관, 무기고, 동물원, 감옥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지금은 무기와 보물 등 광대한 수집처로 유명하다.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전성기의 그리스 문화와 고대 이집트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1759년에 세워졌으며, 1823년부터 50년까지 약 30여 년에 걸쳐서 83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방으로 건축되었다.대영박물관은 4층건물로 주요한 전시물은 주로 1, 2층에 전시되어 있다. 3대 인기전시물은 미이라, 엘진 대리석, 5천년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로제타 스톤이며, 앗시리아 라마스 상, 람세스 2세, 파르테논 신전, 네레이트 제전, 아메노피스 3세, 목각의 관 등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고딕건축사원으로 국회의사당의 서쪽, 파알라멘트 광장 남쪽에 위치해 있다. 웨스트 민스터는 약 250여년에 걸쳐 1503년에 완성되었으며, 42명의 왕과 여왕의 대관식을 가진 곳으로 3천 여구의 시체가 묻혀 있다. 사원 입구에는 처칠의 묘, 무명용사의 기념무덤이 있는데 음악가의 묘소, 정치가의 묘소, 중심부, 성가대석, 엘리자베스 1세의 묘, 헨리 7세의 예배당, 에드워드 예배당, 시인의 장, 스코틀랜드 여왕 메어리의 묘, 회중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

트라팔가 광장의 서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1873년 버킹엄 공의 사저로 세워졌으며 영국 국왕의 공식적인 궁전이다. 궁전 내부는 공개되지 않고 있으며, 대규모의 왕실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을 구경할 수 있다. 유명한 왕실 근위병 교대식이 격일로 행해지며, 또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여름휴가기간인 8월초부터 약 2달동안에는 특별히 버킹엄 궁전을 개방하고 있다.

세인트 폴 성당(St. Paul's Cathedral)

웨스트민스터 성당에 견줄 만한 대사원. 현재의 건물은 런던의 큰 화재 뒤에 크리스토퍼 렌의 설계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르네상스 식의 훌륭한 건축물이다. 1710년에 완공되었으며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런던 사교의 사원이다. 정면이 위치해 있는 2개의 탑은 종루로 쓰이고 있으며, 왼쪽 탑에는 12개의 차임벨, 오른쪽 시계탑에는 영국연방에서 가장 큰 종이 있다. 세인트 폴 사원 내부에는 넬슨, 웰링턴을 비롯하여 위인과 화가의 묘가 있다. 성당 본 건물의 수랑, 본당 회중석, 위스퍼링 갤러리, 돔과 골든 갤러리 등은 매우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며, 꼭대기에 위치해 있는 골든 갤러리에서는 아름다운 런던 시내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윈저 성(Windsor Castle)

템스강변에 구축된 성채로 중앙의 대원탑(大圓塔)이 중심이 되어 마치 좌우로 날개를 편 것 같은 형태이다. 좌익(左翼)의 구성은 정원으로 둘러싼 정청(政廳)과 주거지역이 중심이고 우익(右翼)은 대표적인 왕실 예배당의 하나로 손꼽히는 성 조지의 채플(15세기)과 이를 둘러싼 성벽·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각 시대의 유서깊은 갖가지 유구(遺構)가 건축가들의 개성과 세월의 흐름이 어우러져 녹음으로 둘러싸인 성 전체에 독특한 통일·조화를 준다. 귀중한 사료(史料)와 방대한 미술품의 콜렉션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왕립도서관에 소장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초대형 데생이 유명하다.

그리니치(Greenwich)

유네스코 지정의 세계문화유산. 템스강 만곡부(灣曲部)의 남안에 있으며 해군대학과 천문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런던의 확대로 관측이 곤란하게 되었으므로 천문대는 1958년에 서섹스의 허스트먼수로 옮겼다.

이스트엔드(East End)·웨스트엔드(West End)

이스트엔드는 빈민가, 웨스트엔드는 고급 주택가로서 알려져 있으나 현재 고급 주택은 교외로 옮긴 뒤 하숙·여관이 늘었으며, 빈민가는 대전 후의 재개발과 사회보장에 의하여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스트랫퍼드 언 에이번(Stratford-on-Avon)

시의 중앙에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집이 있으며, 셰익스피어 기념극장에서는 왕립 셰익스피어극단에 의한 공연이 4∼10월에 베풀어진다.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

영국의 영웅 넬슨제독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1841년에 완성된 광장이다. 실물의 3배 크기인 560㎝의 넬슨 제독의 동상과 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영국의 국가동물인 라이온상, 분수 등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영국다운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다. 라이온 동상은 대승을 기념하는 뜻으로 노획한 프랑스의 대포를 녹여서 만든 것으로 4면의 철판부조에는 트라팔가 해전, 나일강 해전, 덴마크·러시아·에스파냐 연합함대와의 전투기록이 담겨져 있다.

국회의사당(Parliament)과 빅벤(Big Ben)

템즈 강가에 있으며 전통있는 영국의회정치의 전당이다. 이곳은 원래 궁전이었는데, 현재 건물은 대화제 이후 재건된 것이다. 고딕 양식으로 1천개 이상의 방을 갖추고 있다. 그 유명한 빅벤은 높이 95m로 아직도 손으로 태엽을 감는 전문적인 시간지기가 있다. 꼭대기 조그만 방에 불이 켜져 있으며, ‘의회중’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야경이 특히 아름답다.

하이드 파크(Hyde Park)

런던에서 가장 큰 공원으로 면적은 약 160만㎡. 아름다운 연못과 주위의 수목들의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아름다운 휴식처이다. 빅토리아 여왕을 위해 버킹검 궁전으로 가는 정문으로 만들어 놓은 마블아치 근처에는 스피커즈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 주말에는 사상과 인종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펼치는 자유로운 연설이 이루어지고 있다. 서펜타인 연못에서는 보트놀이와 수영을 즐길 수 있으며, 여름에는 야외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타워 브리지(Tower Bridge)

템즈강 하류에 위치해 있는 빅토리아식 다리로 8년에 걸친 공사 끝에 1894년에 완공되었다. 중앙이 개폐식으로 되어 있어 큰 배가 통과할 때에는 90초에 걸쳐 무게 1,000t의 다리가 수압을 이용해 열린다.타워 브리지는 크고 작은 고딕풍의 뾰족탑이 있어 마치 동화속에 나오는 중세의 성을 연상시킨다. 한편 타워브리지를 걸어서 건너면 바로 런던탑을 볼 수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 킹스 칼리지와 성당(King's College, Cambridge, and Church)

1441년에 헨리 6세에 의해 창설된 케임브리지 대학의 소속 칼리지로 킬스 퍼레이드 거리에 있는데, 오른편으로 유명한 King's College Chapel이 있다. 워드워드의 시에 나오는 화려한 성당 안 장식이 볼 만하며 16세기 때의 작품인 스테인드글라스도 인상적이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딕의 꽃’으로 칭송되는 예배당이다.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 Cambridge)

케임브리지 대학 내에서 최대 규모의 칼리지이다. 16세기에 헨리 8세가 세웠는데, 뉴턴의 역학이 정립된 곳이기도 하다. 베이컨, 테니슨, 러셀, 바이런 등의 문인이 이곳 출신이며, 현재의 찰스 황태자도 이 학교를 나왔다. 중앙정원에 있는 분수는 바이런이 나체로 목욕한 곳으로 유명하며 이 대학 내에 있는 렌 도서관(Wren Library)에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책을 보관하고 있으며 뉴턴의 노트도 전시하고 있다.

셰익스피어 생가(Shakespeare Birth Place)

헨리 거리(Henry St.)에 오래된 민가가 남아 있는데 셰익스피어가 청년시절을 보낸 곳이다. 부유한 상인의 집안답게 외관은 물론 내부도 잘 보존되어 있으며, 그의 유품 및 책과 당시의 생활용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워윅 성(Warwich Castle)

스트랫퍼드 언 에이번 북동쪽에 있는 워윅성은 절벽에 세워진 성이다. 잉글랜드에서 가장 기품있는 중세의 성으로 두 개의 치솟은 탑이 일품인데 한 개는 1356년에 세워진 147feet 높이의 시저탑(Caesar's Tower)이고 다른 하나는 1380년에 세워진 128feet 높이의 사내아이의 탑(Guy's Tower)이다. 이 성을 지켰던 가장 강력했던 한 사람이 바로 15세기의 워윅경(Earl of Warwick)경으로 성의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성 내부에는 밀랍인형을 제작하여 재현해 놓았고 루벤스, 반 다이크의 명화와 각종 갑옷과 검들을 진열해 놓았으며, 특히 고문기구와 감옥은 중세 암흑시대를 엿볼 수 있다.

앨버트 독(Albert Dock)

영국의 가장 유명한 옛유적물이며 영국북서지역에서 세 번씩이나 최고의 대형관광명소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주변에는 비틀즈 스토리(the Beatles Story), 머지사이드 해양 박물관(Merseyside Maritime Museum), 리버풀 생활 박물관(Museum of Liverpool life), 그리고 데이트 갤러리(Tate Gallery) 등과 같은 세계적인 명소와 함께 있다.

요빅 바이킹 센터(Jorvik Viking Center)

요빅 바이킹 센터는 캐슬케이트 거리(Castlecate St.)에 세워진 바이킹 마을로, 바이킹 최후의 거주지를 비롯해서 그들의 생활과 풍습을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전기자동차를 타고 있으면 알아서 그 차가 전시장안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예전 바이킹이 살던 대로 전시장안을 꾸며서 그들의 생활상을 볼 수도 있고 바이킹 배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생활에서 쓰이던 상당한 수준의 공업제품과 자물쇠, 유리제품들 등 꽤 정밀하고 독특한 아이디어의 제품들을 볼 수 있다.

카에르필리 성(Caerpilly Castle)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요새라고 한다. Civil War 때 대부분 파괴되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거의 원래 모습으로 복구되었다. 도랑과 잔디에 둘러싸여 있는 매우 아름다운 성으로 전쟁때의 타격 때문이라고 생각되는, 무너져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탑이 유명하다.

카디프 성(Cardiff Castle)

원래 로마인에 의해 성이 구축된 후 12∼14세기 때 노르만인들이 성을 공고히 했다. 그러다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내부를 장식, 화려한 인테리어로 유명하게 되었다. 블랙타워에 들어가면 로마인과 노르만인이 건축한 성벽 자취를 찾을 수 있다.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

12세기 건축된 위풍당당한 성으로 에딘버러의 랜드마크가 되는 곳이다. 잿빛의 우중충한 벽돌로 높이 쌓여진 이 곳은 한 때 난공불락의 요새로 유명했던 곳이며, 현재에도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다. 성 내부에는 스코틀랜드 왕가의 보물들을 전시해 놓은 전시관과 성 마가렛 예배당이 있다.

홀리루드하우스 궁(Palace of Hoyroodhouse)

12세기에 지어진 성으로 중세시대에 조약돌로 포장한 로얄마일 길을 따라가면 다다르는 곳이다. 1566년 스코틀랜드의 영왕이었던 메리여왕이 아들 제임스 6세를 낳은 곳이고, 여왕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구성하는 역사적 사건들이 발생한 곳이다. 여왕의 스코틀랜드 공식 거주지이기도 하다.

스터링 캐슬(Stirling Castle)

비극의 스코틀랜드 여왕이었던 메리여왕이 대관식을 거행했던 성으로 지나간 유적을 볼 수 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주무대였던 곳으로 스털링은 ‘항쟁의 땅’이라는 뜻이다. 1314년 잉글랜드와 전쟁의 승리로 독립을 쟁취하고 스코틀랜드 중앙부의 중심도시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르네상스 건축물 중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교육

옥스퍼드 대학교케임브리지 대학교 등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의무교육은 초, 중, 고 11년이다. 영국의 어린이들은 만 5세부터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경제

이 나라는 다른 여러 나라에 앞서서 산업혁명을 성취하여 오랫동안 세계 경제에 군림해 왔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유럽 대륙과 북아메리카의 공업이 급속도로 발달하여 1차대전 이후 세계 경제에 있어서의 지위는 차차 저하했다. 해외 투자로부터의 수입으로 경제의 안정을 꾀했으나 2차대전에 의해 큰 타격을 받고 재편성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비롯한 계획경제의 도입으로 국제수지를 개선하고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여 복지 국가의 실현을 꾀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경제 체제이다. 그러나 높은 고용수준을 유지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국제 수지의 악화, 대내적으로는 코스트 인플레이션에 의한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영국은 1961년부터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을 신청했으나 프랑스의 거부로 실현을 보지 못하다가 1971년 6월 마침내 수출입정책 및 파운드화(貨) 문제에 매듭을 짓고 영·불 양국간에 최종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1973년 1월부터 정식 가입(경과기간 5년을 계산하면 실질적인 가입은 1978년부터가 됨)하게 되었다.

농·수산업

19세기 중반까지는 농산물의 자급자족을 했으나 신대륙에서 수입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축산과 원예 작물에 중점을 두게 되어 식량의 절반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확량(收穫量)으로서는 감자·사탕무·귀리 등이 많으나 금액으로는 축산물이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비율이 높은 지방은 동부의 앵글리아·켄트·링컨셔 등으로서, 잉글랜드 중앙부와 북부, 웨일스, 스코틀랜드에서는 목초지의 비율이 크다.수산업은 북해와 아이리시해(海)를 중심으로 한 근해 어업과 아일랜드, 그린란드, 노르웨이 북해안 등지의 원양어업으로 나뉜다. 1995년의 어획고는 242만 2,000 t에 달하고 있으며, 스코틀랜드에서는 주요 산업의 하나로 되어 어업 종사자는 2만 2,000명이며, 이 밖에 계절적으로 약 6,000명이 종사하고 있다.

공업

2차대전 후 기계공업과 화학공업이 발전하여 전통을 지닌 목면공업이 저하했다. 1955년에 철광생산은 449만 t, 선철 1,213만 t, 조강 2,150만 t 등이다. 대표적인 공업지역인 런던의 남동부지역은 기계(機械)·금속·보석·고무공업이 발달되어 있다. 랭커셔 지역은 면업 대신에 기계공업이 발달하였고, 요크셔 지역은 현재도 양모공업의 중심지이다. 남웨일스, 잉글랜드 북동, 스코틀랜드 중앙 지역은 철강·금속·조선 등이 발달했다. 석탄업이나 전력사업, 가스사업 등 에너지관리는 국유화되어 있다.석유는 1990년 정제량이 6억7,900만 배럴이었다. 1967년 발견된 북해유전은 1975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을 개시하였는데, 매장량은 약 30억t 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천연가스의 매장량도 무시할 수 없어 자원이 부족한 영국의 에너지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무역

국내 자원은 결핍되었으나 생활수준이 높으므로 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종래 영연방 국가와의 교역이 많았으나, 1973년 EC 가입 후 유럽 국가와의 무역 비중이 높아졌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영국은 미국 다음 가는 수출국이었으나 전쟁 후 서독 등의 부상으로 영국이 세계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줄어들어 EU 국가 내에서도 독일·프랑스·네덜란드·이탈리아에 이어 5위에 머무르게 되었다. 2009년에는 수출액이 세계 9위로까지 추락하였고, 계속해서 영국의 수출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저하되고 있다. 주요 수출품목은 기계·자동차·항공기이다. 수입액은 수출액을 훨씬 초과하여 무역적자가 계속되고 있으며, 금액에서 식료와 원료가 70%를 차지하고 밀·설탕·옥수수·육류·석유·알루미늄·목재·양모·면화 등이 중요한 수입품목이다.

파운드화

파운드는 달러에 지연과 만성적인 국제 수지의 결손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현재 1파운드는 100펜스이다.

세금

영국의 고소득자 소득세율은 약 50%다. 년간 2억원 이상 소득자부터 적용된다

교통

해운국으로서의 지위는 대전 전에 비하면 크게 후퇴했으나 보유 선박은 3,292만 t(1976)으로서 세계 제3위를 차지하며 세계 해운 시장의 일대 중심지로 되어 있다. 런던을 비롯하여 사우댐프턴·리버풀·맨체스터·글래스고 등이 대표적인 항구이며, 템스강 하구, 클라이드 강구, 맨체스터 운하에는 10만 t급 탱커를 넣는 터미널이 완성되어 있다. 철도의 총연장은 약 2만㎞로서 세계 제2의 밀도(密度)이다. 1947년 이후 국유화했으나, 철도 발상지인 만큼 낡은 시설이 많은 데다가 자동차의 보급으로 큰 결손이 누적되고 있다. 이 때문에 1975년에 노선은 축소를 포함한 합리화 계획이 세워졌다. 도로 연장은 약 36만 6,000㎞로서 거의 포장이 되어 있다. 간선도로는 운수성(運輸省) 직할로 운영되며, 그 밖의 것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고 있다. 항공은 세계를 뒤덮는 대규모의 BOAC, 영국국내와 유럽 대륙을 잇는 BE가 있다. 우편물의 항공수송 서비스도 발달되어 있다. 한편 다년간 국내외의 주목을 받아왔던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유러터널(영국해협터널)은 1994년 5월 개통되었다.

군사

헌법에 의하여 1960년부터 모병제를 실시하였다. 2차 대전 후부터 1960년까지 평시 징병제가 시행된 적이 있었는데, 영국인들은 이를 'National Service'로 부르고 있다. 이 나라는 예로부터 해군 국가로 알려져 있다. 공군인 Royal Air Force와 해군인 Royal Navy가 잘 알려져 있다.

근대국가의 출현과 동시에 징병제를 도입한 유럽 대륙과 다르게 영국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서야 징병제를 도입하였다. 트라팔가 해전 당시 영국 해군은 모집군이었지만 프랑스군은 징집병으로 구성되었었다. 이와 같은 경험 때문에 영국의 부속령 국가 및 옛 식민지 상당수는 징병제를 실시한 적이 없거나 그 경험이 상대적으로 일천한 편이다. 최근 '범죄자를 이라크로 보내자(send criminals to Iraq)' 등 일부에서 징병제 부활을 논의하고는 있지만(가끔은 유희적으로) 범죄자 등에 대한 훈육차원에서 논의될 뿐이며, 이 징병제 관련 논의가 진지하게 정치적으로 문제제기된 바는 없다.

국가

영국의 국가는 《하느님 여왕을 지켜주소서》이다. 이외에 비 공식 국가로 《룰 브리타니아》 등이 있다.

주석

  1. “The Royal Coat of Arms”. 《The Royal Family》. 2016년 1월 15일. 2018년 11월 19일에 확인함. 
  2. “The Treaty (or Act) of Union, 1707”. 2006년 5월 15일에 확인함. 
  3. 합병령(합동법)과 달리 연방법(Act of Union, 1840년)은 캐나다의 어퍼 캐나다(서부)와 로어 캐나다(동부)를 통합하는 법률이다.
  4. 리머릭 조약은 1691년에 체결된 것이 아니라, 1691년에 끝났다.
  5. “The Act of Union”. 2006년 5월 15일에 확인함. 
  6. “The Anglo-Irish Treaty, 1921년 12월 6일”. 2006년 5월 15일에 확인함. 
  7. 이 시기에 대브리튼 또는 브리튼은 영국을 구성하는 국가(구성 국가) 4개 가운데 3개, 즉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및 웨일스를 공동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연합왕국 또는 영국은 네 번째 국가인 북아일랜드를 포함한다.
  8. Ferguson, Niall. 《Empire: The Rise and Demise of the British World Order》. Basic Books. ISBN 0-465-02328-2.  필요 이상의 변수가 사용됨: |저자=|성= (도움말)
  9. 지지자는 그녀가 경제 부흥을 이루었다고 하고, 비판자는 그녀 때문에 사회불균형이 더 커졌다고 말한다.
  10. “Modest progress but always on back foot”. 2006년 5월 16일에 확인함. 
  11. “European Constitution: bad for Britain, bad for Europe”. 2006년 5월 23일에 확인함. 
  12. “UK - Ties that bind: Bush, Brown and a different relationship”. Financial times. 2009년 7월 11일에 확인함.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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