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가보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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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약칭 보훈부, MPVA
설립일 2023년 6월 5일
설립 근거 정부조직법」 §26①9
전신 국가보훈처
소재지 세종특별자치시 도움4로 9
직원 수 337명[1]
예산 세입: 2074억 7400만 원[2]
세출: 6조 1885억 5200만 원[3]
장관 강정애
차관 이희완
상급기관 국무총리
산하기관 #조직
웹사이트 http://www.mpva.go.kr/
국가보훈부 청사

국가보훈부(國家報勳部)는 국가유공자 및 그 유족에 대한 보훈, 제대군인의 보상·보호, 보훈선양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대한민국의 중앙행정기관이다. 장관은 국무위원으로, 차관은 정무직공무원으로 보한다.

소관 사무[편집]

  •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에 대한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사무
  • 5·18민주유공자·특수임무유공자에 대한 예우에 관한 사무
  • 보훈보상대상자·고엽제후유의증환자·제대군인에 대한 지원에 관한 사무
  • 그 밖에 법령으로 정하는 보훈에 관한 사무

역사[편집]

보훈부의 역사적 뿌리는 정부 수립 당시 발족한 사회부다. 후생국에 시설과를 두어 국민후생시설에 관한 사항을 분장토록 했으며 1949년 10월 후생국을 사회국으로 개편한 뒤 군사원호과를 설치해 상병 군인과 유가족의 보호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게 했다. 이후 시설과는 1950년 4월 사회국 후생과에 통합되었다. 곧이어 일어난 6.25 전쟁은 한국 사회가 상이군경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했고 1951년 7월 기존의 군사원호과가 원호국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4] 또한 상이군경에 대한 연금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면서[5] 1953년 2월 원호국에 연금과를 설치했다.

5·16 군사 정변을 통해 집권한 박정희는 1961년 7월 보건사회부 원호국 연금과·보도과·원호과, 보건사회부 의정국 시설과, 국방부에서 원호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통합하여 군사원호청을 설치하는 「군사원호청설치법」을 제정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상이군경에 대한 보호 제도의 법제화에도 나서 상이군경과 유가족에 대한 공무원 가산점 제도 도입이나 원호 대상자에 대한 지원 확대 등에도 나섰다.[6] 군사원호청은 1962년 4월 「원호처설치법」에 의해 원호처로 다시 개편되었다.

1984년 기구 명칭 변경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원호의 개념은 도와주며 보살피는 것인데 국가에 공이 있는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다는 피동적인 의미에서 탈피해 국가에 대한 공로를 보상한다는 뜻인 보훈으로 바꿀 것이라는 얘기였다.[7] 이후 1985년 1월 물질적 지원이 중심이었던 유공자에 대한 보상을 정신적 예우도 포함하도록 하기 위해 원호처를 국가보훈처로 개편했다.

보훈처로 개편된 이후에는 보훈부로의 승격 문제가 자주 언급됐다. 차관급 기구로 출발한 군사원호청은 이후 장관급으로 격상됐다가 차관급으로 격하되기를 수없이 반복하여 조직이 불안정했기 때문이었다. 1992년 4월 국방부 산하 단체인 대한민국재향군인회가 보훈처로 이관될 때 보훈부 승격 문제가 검토되었으며[8] 2003년 6월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유공자단체로부터 보훈처를 보훈부로 승격시켜달라고 건의받았을 때도 "승격시키겠다"라고 답했다.[9] 정세균 새천년민주당 정책위의장도 안주섭 보훈처장을 만나 보훈부 승격 방안을 추진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10] 이명박 정부 때도 보훈부 승격 얘기는 꾸준히 나왔다. 2010년 4월 정운찬 국무총리는 "많은 나라에서 보훈처는 우리 식으로 하면 부(部)적 성격을 띠고 있다"라며 보훈부 승격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11] 대한민국 국회입법조사처도 보훈선양 정책의 활성화를 위해 보훈처의 위상과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보훈부로 승격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12]

하지만 보훈부 승격은 꾸준히 끝을 맺지 못했다. 2017년 대선 때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보훈부 승격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낙선했다. 이후 2022년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10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종합적·체계적 보훈 정책을 추진하고 국가보훈 체계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보훈부 승격을 추진하기로 했다.[13]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여성가족부를 해체하는 안이 포함되어 있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후 여야는 여가부 해체는 추후 논의하기로 합의한 뒤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2023년 6월 정식으로 보훈처가 보훈부로 승격됐다.

연혁[편집]

  • 1948년 7월 17일: 사회부 후생국에 시설과 설치.[14]
  • 1949년 10월 5일: 후생국을 사회국으로 개편하고, 하부조직으로 군사원호과 설치.[15]
  • 1950년 4월 1일: 시설과를 폐지.[16]
  • 1951년 7월 13일: 군사원호과를 원호국으로 확대·개편하고 하부조직으로 군사원호과, 경찰원호과 및 보도과를 설치.[17]
  • 1953년 2월 18일: 군사원호과와 경찰원호과를 원호과로 통합하고, 원호국에 연금과를 설치.[18]
  • 1955년 2월 17일: 보건사회부의 하부조직으로 소속 변경.[19]
  • 1957년 9월 9일: 보건사회부 의정국에 시설과 설치.[20]
  • 1961년 7월 5일: 보건사회부 사회국 원호과, 보도과, 연금과 및 의정국 시설과를 통합하여 군사원호청 설치.[21]
  • 1962년 5월 12일: 원호처로 개편.[22]
  • 1985년 1월 1일: 국가보훈처로 개편.[23]
  • 2023년 6월 5일: 국가보훈부로 개편.[24]

조직[편집]

실·국 정책관·심의관실 담당관실·과
장관 산하 하부조직
대변인실 홍보담당관실ㆍ디지털소통팀[내용 1]
장관정책보좌관실[내용 2]
차관 산하 하부조직
기획조정실 기획재정담당관ㆍ혁신행정담당관ㆍ규제개혁법무담당관ㆍ정보화담당관[내용 3]
보훈단체협력관 보훈단체협력담당관ㆍ보훈단체수익사업관리팀[내용 4]
감사담당관실[내용 3]ㆍ운영지원과
보훈정책실 보훈정책관 보훈정책총괄과ㆍ국제협력과 ㆍ보훈제도과
보훈문화정책관 보훈문화정책과ㆍ보훈문화콘텐츠과ㆍ기념사업과ㆍ현충시설정책과ㆍ현충시설관리과
보훈예우정책관 예우정책과ㆍ국립묘지정책과ㆍ보훈기록관리과ㆍ공훈심사과
보상정책국 보상정책과ㆍ등록관리과ㆍ심사기준과
복지증진국 복지정책과ㆍ복지서비스과 ㆍ 생활안전과
보훈의료심의관 보훈의료정책과ㆍ보훈의료혁신과
제대군인국[내용 3] 제대군인정책과ㆍ제대군인일자리과ㆍ제대군인지원과

소속기관[편집]

소속 위원회[편집]

행정위원회[편집]

위원회명 주관부처 설치근거 비고
보훈심사위원회 국가보훈부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82조

자문위원회[편집]

위원회명 주관부처 설치근거 비고
국가보훈위원회 국가보훈부 국가보훈기본법 제11조
국립묘지안장대상심의위원회 국가보훈부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10조
순국선열·애국지사사업기금 및 보훈기금운용심의회 국가보훈부 보훈기금법 제10조

정원[편집]

국가보훈처에 두는 공무원의 정원은 다음과 같다.[1]

총계 337명
정무직 계 2명
장관 1명
차관 1명
별정직 계 2명
고위공무원단 1명
3급 상당 이하 5급 상당 이상 1명
일반직 계 333명
고위공무원단 11명
3급 이하 5급 이상 131명
6급 이하 189명
전문경력관 2명

재정[편집]

총수입·총지출 기준 2023년 재정 규모는 다음과 같다.[2][3]

사건·사고 및 논란[편집]

안현태 국립묘지 안장 논란[편집]

2011년 8월 5일 국가보훈처 국립묘지 안장대상 심의위원회는 전 경호실장 안현태를 국립묘지에 안장하겠다고 의결했다.

안현태는 1996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으나 이듬해 집행면제되고 1998년 복권되었다. 보훈처는 안현태가 1964년 베트남에 파병돼 국위를 선양했고 1968년 1·21 사태 당시 청와대 침투 무장공비를 사살해 화랑무공훈장 수훈, 전역 후 대통령경호실장을 역임하는 등 국가안보에 기여한 점 등을 고려하였다고 발표했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금고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거나 국립묘지 영예성을 훼손한 경우에 안장 비대상으로 심의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국립묘지에 안장하겠다고 의결한 것이다.

6일 오전 '5공 비리' 인사인 안현태의 유해가 국립대전현충원에 기습적으로 안장되었다. 5공 인사의 국립묘지 안장은 12·12 군사 반란과 관련해 「군형법」 상 반란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복역한 유학성 이후 두 번째다.[25][26]

대선 개입 논란[편집]

제18대 대선을 앞두고 보훈처가 방문객들에게 우편향된 안보 교육을 실시한 것이 드러나 비판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대선에 개입할 목적이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해당 교육에서 상영된 DVD에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고 진보 세력을 종북 세력으로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또한 5·16 군사 쿠데타을 미화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27] 보훈처의 안보 교육에 사용된 DVD에 대해 보훈처는 제작하지 않았다고 밝혀 국가정보원이 여론 조작 사건과 관계하여 만들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내용주[편집]

  1. 2024년 9월 30일까지 존속하는 한시조직.
  2. 2명을 두며 1명은 고위공무원단 나등급에 속하는 별정직공무원으로, 나머지 1명은 3급 또는 4급 상당 별정직공무원으로 보한다.
  3. 개방형 직위.
  4. 2024년 6월 30일까지 존속하는 한시조직.

참조주[편집]

  1. 「국가보훈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별표 2
  2. 기획재정부. “열린재정 > 재정연구분석 > 재정분석통계 > 예산편성현황(총수입)”. 《열린재정》. 2023년 1월 27일에 확인함. 
  3. 기획재정부. “열린재정 > 재정연구분석 > 재정분석통계 > 세목 예산편성현황(총지출)”. 《열린재정》. 2023년 1월 27일에 확인함. 
  4. “援護事業萬全 社會部援護課昇格”. 《동아일보》. 1951년 7월 16일. 2023년 6월 4일에 확인함. 
  5. “아직도解決못된傷痍軍人援護 年金制法令化하라”. 《경향신문》. 1952년 1월 8일. 2023년 6월 4일에 확인함. 
  6. “軍事援護制度를改善”. 《조선일보》. 1961년 7월 6일. 2023년 6월 4일에 확인함. 
  7. “기구이름 改稱검토 援護處를「報勲處」로”. 《동아일보》. 1984년 5월 29일. 2023년 6월 4일에 확인함. 
  8. “향군업무 보훈처 이관 보훈部로 승격도 검토”. 《조선일보》. 1992년 4월 28일. 2023년 6월 4일에 확인함. 
  9. 김정훈 (2003년 6월 25일). “盧 "보훈처 장관급 부처로 승격". 《동아일보》. 2023년 6월 4일에 확인함. 
  10. 김광호 (2003년 8월 6일). “보훈처를 보훈부로…당정, 장관급부처 승격추진”. 《경향신문》. 2023년 6월 4일에 확인함. 
  11. 안용수 (2010년 4월 18일). “당정, 국가보훈처 `부(部)'로 승격 검토”. 《연합뉴스》 (서울). 2023년 6월 4일에 확인함. 
  12. 민지형 (2010년 6월 8일). “입법조사처 "국가보훈처 '국가보훈부'로 승격 검토해야". 《뉴시스》 (서울). 2023년 6월 4일에 확인함. 
  13. 권용범 (2022년 10월 6일). “정부, '보훈부 승격' 조직개편안 확정…60여 년 만에 성사될까?”. 《MBN》. 2023년 6월 4일에 확인함. 
  14. 대통령령 제25호
  15. 대통령령 제188호
  16. 대통령령 제311호
  17. 대통령령 제512호
  18. 대통령령 제757호
  19. 대통령령 제1004호
  20. 대통령령 제1304호
  21. 법률 제647호
  22. 법률 제1052호
  23. 법률 제3734호
  24. 법률 제19228호
  25. 김귀근 (2011년 8월 5일). “5共 경호실장 안현태 국립묘지 안장 의결 (종합)”. 《연합뉴스》. 2011년 8월 5일에 확인함. 
  26. 엄수아 (2011년 8월 7일). “안현태 유해, 군사작전하듯 국립묘지에 기습 안장”. 《뷰스앤뉴스》. 2011년 8월 8일에 확인함. 
  27. 서상현 (2013년 10월 29일). “국가보훈처로 불똥 튄 '선거 개입' 논란”. 《매일신문》. 2013년 10월 30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