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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文在寅, [[1953년]] [[1월 24일]] ~ )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ref>{{뉴스 인용|제목=문재인 민정수석 내정자 農心 꿰뚫는 '20년 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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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7일 (월) 03:23 판

문재인
파일:Moon0001.jpg
출생1953년 1월 24일(1953-01-24)(71세)
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제군 거제면
성별남성 위키데이터에서 편집하기
거주지대한민국 경상남도 양산시 매곡동
본관남평
학력경희대학교 법학 학사
경력법무법인 부산 대표변호사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제29대 대통령비서실장
제2대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민주통합당 제18대 대선 후보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부모아버지 문용형, 어머니 강한옥
배우자김정숙
자녀슬하 1남 1녀
군복무육군병장 만기전역
종교천주교
의원 선수1
의원 대수19
정당더불어민주당
지역구부산 사상구
당내 직책상임고문
웹사이트http://www.moonjaein.com/
서명

문재인(文在寅, 1953년 1월 24일 ~ )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치인이다.[1]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이끌며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하다가 서대문 구치소에 투옥되었고 대학에서 제적 당했다. 출소 후에는 바로 군에 강제징집 되었다. 제대 후에 다시 전두환 군부독재에 항거하다가 청량리 구치소에 투옥되었고, 옥중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극적으로 풀려나왔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판사 임용이 거부되고 나서, 고향 부산으로 내려가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변호사로 활동했다.

2003년참여 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역임하였다. 2004년, 자리에서 물러나 히말라야로 트랙킹을 떠났고, 히말라야 체류 중 노무현탄핵 소추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의 간사를 맡았다.[2]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였고, 같은 해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등과 겨루어 전국 순회경선 13회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 제18대 대선 후보로 확정되어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2015년 2월 8일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에 선출되었고, 2016년 1월까지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20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지만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들을 위해 지원 유세를 다녔다. 2016년 11월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하였다.[3]

생애

유년 시절

문재인은 1953년 1월 24일경상남도 거제군 거제면 명진리 694-1번지에서 아버지 문용형과 어머니 강한옥 사이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문용형은 함경남도 흥남남평 문씨 집성촌인 솔안마을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흥남시청에서 농업과장으로 근무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12월 23일흥남 철수 작전 무렵에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가족과 함께 몸을 싣고 남쪽으로 겨우 피난해 내려왔다.[4] 아버지는 거제에 정착한 후 공무원 경력을 제시하며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노무자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으나, 수입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계란 행상을 해야만 했다. 문재인의 가족은 거제도에서 제대로 살 수 있는 거처가 없었기 때문에 문재인이 태어날 때에도 셋방을 살던 주인집에 임산부가 있다는 이유로, 산모가 진통 중에 이웃 집에 옮겨가 출산을 해야할 정도로 곤궁한 생활을 했으며, 이에 문재인의 생가는 실제 그가 살던 집이 아니었다. 결국 문재인의 부모는 자녀들의 교육을 생각해 부산으로 이사했으며, 문재인의 서류상의 본적은 부산 영선동으로 되어 있다. 문재인은 남항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가난 때문에 학교 바로 위의 '신선성당'에서 양동이를 들고 줄을 서서 정기적으로 배급을 타먹어야 했다. 배급을 받으러 온 문재인에게 수녀들이 귀엽다며 자주 사탕과 과일을 쥐어주었기 때문에 문재인에게는 수녀들의 모습이 천사의 모습으로 보일 정도로 감화가 되어 그는 천주교에 입교하고 세례를 받았다.

학창 시절

1965년에 남항국민학교를 졸업한 문재인은 당시 명문이던 경남중학교에 입학했고,[5] 1968년에 졸업한 후에는 당시 명문고라 불리던 경남고등학교에 입학했다.[6] 고교 시절 초기에는 학내에서 '문과에 문재인, 이과에 승효상'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말기에는 극도로 가난한 자신의 처지에 낙망, 술·담배에도 손을 대며 방황을 하다 결국 대학 입시에 실패하였다.[7] 문재인은 졸업 후 1971년 종로학원 진입 시험에서도 일등을 하며 학원비를 면제받고 재수를 시작했다.[8] 한편 문재인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북한에서 내려온 경희대학교의 설립자 겸 총장이었던 조영식박사가 문재인에게 '4년 전액 장학금'을 약속하며 경희대 입학을 권유하였고, 문재인은 그 권유를 받아들여 재수 후, 1972년 경희대학교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하였다,[9]

문재인은 경희대학교 법대 시절 운동권으로서 총학생회장이던 강삼재를 대신하여 당시 총학생회 총무부장로서 집회를 주도하다가 1975년 4월 11일 집회 때 구속되어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었고, 그 해 6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출소 후 강제로 군에 징집되어 1975년 8월육군에 입대하였고 대한민국 39향토보병사단 훈련소를 거쳐 특수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 특전여단 제3대대에서 복무했다. 군대 복무 중 당시 특전사 사령관 정병주와 여단장 전두환으로부터 두 차례의 최우수 특전사 표창을 수상했다.[10] 전역 후 1980년경희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후 전두환 정권에 항거하다가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청량리구치소에 수감 중, 경희대학교조영식 총장의 신원보증 아래 제22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한 후에 극적으로 석방될 수 있었다.

사회 생활

1980년 5월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가 내려지면서 실시된 예비 검속으로 체포되어, 사법시험 합격 통지서는 청량리구치소에서 받았다. 이후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동기였던 박원순, 고승덕, 조영래 등 걸출한 인재들 사이에서도 일등을 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사법연수원 시험성적이 차석[11]이었고 연수원 내 최고상인 법무부장관상도 수상했지만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성적이 차석으로 밀리고[11] 원하던 판사는 물론 아무런 임용도 되지 않았다. 당시 사법연수원에서 12등이었던 고승덕이 판사로, 상위권이 아니었던 박원순도 검사로 임용되었기 때문에 불합리한 처사였다.

이후 문재인은 김앤장 등 대형 로펌의 영입 제의를 거절하고 부산으로 내려가 변호사 노무현을 만나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오랜 인권변호사 생활을 했으며, 부산광역시에서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등의 활동을 하였다. 법무법인 부산에서 노무현과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30년 가까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최측근으로 활동했다.[12] 노무현이 정계에 입문하여 청문회 스타가 된 뒤에도 부산변호사협회 인권 위원장을 지내면서 인권 변호사로 일했으며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동의대학교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을 변론했다. 그는 1996년 8월 발생한 페스카마호 사건에서 조선족 선원들의 변호를 맡았다.[13] 한겨레신문 설립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문재인은 무료로 변론하게 되면 자칫 사건 당사자와 가족들이 재판을 경시하는 풍조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무료 변론은 하지 않았는데, 경상대학교 교수들이 《한국사회의 이해》라는 저서를 강의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자 5년 간 변론을 맡아 항소심에서 승소했을 때 고작 1백만∼2백만원대의 수수료를 받기도 했다.[출처 필요]

1988년에는 김영삼으로부터 노무현, 김광일과 함께 국회의원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문재인은 3명 중 유일하게 정치입문을 거절했으며[14] , 정계입문을 결심한 노무현김광일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참여정부 시절

변호사 활동을 하며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기도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특히 2002년 대한민국 제3회 지방 선거를 앞두고,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이 몇 차례 부산광역시장 출마를 권유했음에도 '나는 참모용'이라며 '더 나은 사람이 출마해야 한다'고 고사했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문재인은 '변호사 업무에 복귀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참여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지냈으나, 녹내장과 고혈압 등 건강 악화로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그러나 민정 수석을 그만두고 네팔 산행 도중[15] 연락이 두절된 상황에서 영자 신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을 꾸렸으며[16],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청와대 안에서 이정호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이호철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등과 함께 PK인맥을 대표했는데, '왕수석'으로 불리며 한나라당으로 부터 '왕수석인 문재인 수석의 월권과 청와대의 시스템 경시로 인해 국정 원칙이 파괴됐다'는 비난을 받으며 2인자로 주목받기도 했다.[17] 비서실장 시절 이해찬 국무총리가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인사들과 내기 골프를 쳤다는 소식을 듣고 고심하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해임을 촉구하기도 했으며[18],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모든 직원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유명했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상황을 명확하게 정리해내는 업무 스타일을 보였다.[19] 또한 참여정부 들어 검사장으로 승진한 17명 중 문재인과 이호철 비서관의 경남고등학교 동문은 한 명도 없었는데, 두 사람은 아예 동창회에 얼굴을 비추지도 않았고, 고등학교 동창인 고위 공직자가 문재인의 방에 들렀다가 얼굴도 못 본 채 쫓겨난 적도 있으며, 또한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단 한차례의 식사나 환담 자리도 갖지 않았다고 한다.[20]

2006년 11월 6일 국정자문회의 의원 138명을 보궐할 때 국정자문위원으로 추가 보선되었으며[21],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문재인에 대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라고 평가했다.[22]

정치 활동

노무현재단 이사장 시절 봉하마을 봉화산에서 문재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장례 절차와 관련한 모든 일을 도맡았으며, 이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 특수전사령부 출신, 사법연수원 차석 졸업 등 이력으로 인하여 대선에서 야권 후보들 중 지지율이 높은데, 2011년 8월 언론사 여론 조사에서 '당신이 원하는 국회의원' 부문에서 지지율 1위를 차지했고[23], 2012년 4월 11일 대한민국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통합당의 대선 예비주자의 한 사람으로 거론되다가 6월초, 출마를 결정하게 된다.

2012년 대통령 선거

2012 대선 출마 공식 선언과 민주통합당 후보 선출

2012년 6월 17일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보통사람이 중심 된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라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24]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다", 캠프명은 "담쟁이 캠프"로 정해졌다. 이후, 8월 25일부터 9월 16일까지 열린 국민참여경선에서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과 겨루어 전국 순회경선 13회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의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2012년 11월 18일 2기 지도부 총사퇴에 의해 민주통합당의 대표권한 대행이 되었다.

대선 과정과 단일화 문제 및 논란

유력 대권후보로 떠오른 안철수와 단일화를 추진하였지만,[25] 단일화 과정을 둘러싼 문제로 11월 23일 안철수가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였다.[26][27] 진보정의당심상정 대선 후보도 후보 등록을 앞두고 문재인 지지를 선언하며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또, 상도동계김현철, 김덕룡, 문정수의 지지를 받았으며, 대선후보급인 문국현, 박찬종의 지지를 받았다. 또, 보수인사로 알려졌던 윤여준의 찬조연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28] 그밖에 김영삼의 측근으로 김대중 비자금 사건을 폭로한 것으로 유명한 강삼재는 그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다.

한편 문재인은 12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와 함께 토론에 참석했다. 문재인 후보 측은 국가정보원에서 자신을 비방하는 여론조작을 벌인다고 12월 11일 공개하였다. 문재인 후보측은 그런 활동을 벌인 직원중 한명을 지목했다. 3차 TV 토론이 끝난 12월 16일 오후 11시 서울지방경찰청은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는데, 이러한 경찰의 발표는 뒤에 허위로 밝혀졌다.

문재인의 대선공약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6`15 공동선언, 10`4 공동선언에 기초해 대북 포용 정책을 계승`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TV토론회 등에서 "대북정책을 남북 간 화해를 열어 새 비전과 성장동력을 찾는 측면에서 생각해야 한다. 기존 남북합의서, 6`15 공동선언 등을 이행하고, 개성공단과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 등을 재개하겠다"고 피력했다. 문 후보는 남북관계 개선, 평화체제 구축, 북핵 문제를 함께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동시 행동' 원칙에 따라 비핵화 진전과 함께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의지다. '선북핵문제 해결, 남북교류 재개'를 주장하고 있는 박근혜 후보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29] 문 후보는 "새누리당과 박 후보처럼 전제조건을 달면 안 된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전제조건을 다는 동안 북핵 문제가 더욱 악화한 만큼 남북 관계의 발전과 북핵 해결을 병행해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문 후보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전면에 내세워 남북문제 해결에 속도는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봉쇄 정책인 5`24 조치를 조건 없이 해제하고 남북경협을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한반도 인프라개발기구'(KIDO)를 세워 북한 내 산업기반 시설을 대폭 확충하겠다는 뜻도 밝혔다.[30] 금강산 관광 재개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금강산 관광객 신변 안전 문제와 관련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약속한 내용을 공식 사과로 받아들이고,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후보는 신속한 남북관계 회복을 위해 다소 파격적인 제안까지 내놨다. 그는 "미국이나 중국 정상과도 충분히 조율해야겠지만 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곧바로 북쪽에 특사를 보내 제 취임식부터 초청하고 가능하다면 임기 첫해에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31] 문 후보는 외교정책과 관련,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관련국가들과 한반도 문제를 함께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문 후보는 한`중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균형 외교'를 추구하고 있고 일본과 관련해선 과거사 문제를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문 후보는 한`미 FTA와 관련해 독소조항은 반드시 재협상한다는 생각이다. 'FTA 무역이득공유제'를 검토해 농민들을 보호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문 후보의 공약은 간단하게 "친중, 친북, 반미, 반일"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32]

대통령 선거 탈락

2012년 12월 19일 선거에서 탈락 후보 사상 최다이자,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의 후보들 중 두 번째로 많은 14,692,632표(48.0%)를 득표했지만 새누리당박근혜 후보에게 약 100만표 차이로 패배하였다. 다음날 문재인은 패배를 승복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저의 역부족이었습니다. 정권교체와 새정치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습니다. 모든 것은 다 저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지지해주신 국민들께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선거를 도왔던 캠프관계자들과 당원 동지들 그리고 전국의 자원봉사자들에게도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패배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의 실패이지 새정치를 바라는 모든 분들의 실패가 아닙니다. 박근혜 후보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박근혜 당선인께서 국민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나라를 잘 이끌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국민들께서도 이제 박 당선인을 많이 성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 문재인의 패배승복 대국민 기자회견 전문[33]

18대 대선 이후와 당대표 출마

파일:Sim Sangjung and Moon Jaein in 2015.jpg
2015년 7월 정의당 대표 심상정과 문재인

2013년 4월 9일 발표된 민주통합당의 대선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패배의 주원인은 캐릭터 정립 실패로 국민들에게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는 판단이다. 또한, 설문조사 결과 당내에서 4번째로[34] 패배의 책임이 크다고 평가되었다.[35]

문재인 후보는 본인의 이미지와 캐릭터를 명확하게 정립하지 못했다. 따라서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문재인 후보가 얻은 득표의 45%가 안철수 지지자로부터 왔다. 이는 문 후보가 안 후보와 그 지지자들에게 상당한 빚을 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문재인 후보보다 박근혜 후보가 능력이 훨씬 더 우월하다는 판단이 박근혜 후보 선택의 쪽으로 이동.

— 민주통합당 대선평가보고서[36]

그러나, 오랫동안 칩거하던 기존의 대선 패배 후보들과는 달리 빠르게 정계에 복귀하며 패배책임을 지고 물러나 있어야하지 않냐는 논란이 일었다.[37]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기 추도식을 기점으로, 온·오프라인을 통해 현안에 대한 입장도 자주 밝히며 대선 재도전의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38][39]

2014년 12월 29일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당권 도전을 선언했다.[40] 그는 당 대표가 되면 2016년에 치러질 차기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하였으며, 출마 선언 이후 약 5개월 만에 박원순 현 서울 시장을 제치고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탈환하였다.[41] 다음은 그의 당 대표 출마 선언문이다.

변화와 단결로 ‘이기는 정당’을 만들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당원 동지 여러분. 저는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경선에 출마합니다. 피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고민했습니다. 당의 갈등과 분열도 걱정했습니다. 깊이 숙고했습니다. 피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당을 살리기 위해 몸을 던질 것을 결심했습니다. 저 문재인이 나서서 당의 변화와 단결을 이루어내겠습니다. 더 이상 패배하지 않는, 이기는 정당을 만들겠습니다. 저 개인을 위해서는 계산하지 않겠습니다. 저의 정치적 미래를 염두에 두지 않겠습니다. 계산하지 않는 정치가 항상 옳았다고 저는 느낍니다. 오로지 ‘변화’와 ‘단결’로 ‘이기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일념뿐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을 다하겠습니다. 우리 당을 살리는 데 제 정치인생을 걸겠습니다. 당을 살려내는 데 끝내 실패한다면 정치인 문재인의 시대적 역할은 거기가 끝 이라는 각오로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사랑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 새정치민주연합은 창당이래 가장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실정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당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일 년 내에 전혀 다른 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새로운 당으로 바뀌지 않으면 총선 승리는 불가능합니다. 정권교체의 희망도 멀어질 것입니다. 당의 존립도 장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은 극도의 비상 상황입니다. 당의 변화를 위해 모든 힘을 모을 때입니다. 리더의 역할을 분리할 때도, 임기를 나눌 때도 아닙니다. 서로를 지역으로 나누고 계파로 구분하면서 대립하고 다툴 때가 아닙니다. 국민들이 차가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유린되고 국정이 난맥상을 보여도 우리 당은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끄럽고 송구스런 현실입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누구나 위기를 말하지만 당을 살리려는 절치부심이 없고, 실천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더 이상 이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당의 기본을 세우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저 문재인이 당원 동지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우리 당을 완전히 바꾸어 놓겠습니다. ‘지는 정당’에서 ‘이기는 정당’으로 환골탈태하겠습니다. 승리는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드는 것입니다. 승리의 동력은 바로 우리 내부에 있습니다. 변화와 단결이 그 핵심입니다. 저 문재인이 하겠습니다. 총선 전까지 당을 완전히 바꾸겠습니다. 당을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신제품으로 만들겠습니다. 기득권을 버리겠습니다. 지역주의를 뛰어넘겠습니다. 저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변화하고 혁신하겠습니다. 대표가 되면 저는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선당후사의 자세로 변화와 혁신에만 전념하고, 기필코 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겠습니다. ‘정치정당’을 명실상부한 ‘정책정당’ ‘경제정당’으로 바꾸겠습니다. 시민은 정당의 존립 근거입니다. 시민의 삶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합니다. 복지만이 아니라 경제성장에도 유능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 성장정책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성장방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소득주도성장’에 바탕을 둔 대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겠습니다. 극심한 소득불평등을 개선하는 대안이 될 것입니다. 민주정책연구원의 역할과 위상도 강화하겠습니다. 국민경제정책을 수립하는 최고의 싱크탱크로 만들겠습니다. 민생과 경제를 위한 일이라면 정부여당과도 협력하겠습니다. 정권교체에만 목표를 두지 않고 정권교체 이후를 준비하겠습니다. ‘여의도 정당’을 국민 속의 ‘생활정당’으로 바꾸겠습니다. 튼튼한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지기반 확장이 중요합니다. 더 많은 당원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와 함께 시민의 참여를 넓혀야 합니다. 당원과 시민이 네트워크 속에서 함께 해야 합니다. 네트워크 정당, 플랫폼 정당, 스마트폰 정당을 만들겠습니다. 당원이 당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만들겠습니다. 우리당을 시민의 직접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통로로 만들겠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삶을 책임지고 있는 자치단체장들의 당내 권한과 역할도 크게 높이겠습니다. 우리당을 지역주민들의 삶과 함께하는 풀뿌리 정당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자치단체의 뛰어난 성과가 우리당의 업적이 돼야 합니다. 서로 소통하고 함께 참여하는 천만당원시대를 열겠습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저 문재인은 네 가지를 약속합니다.

첫째, 가장 강력한 당대표가 되겠습니다. 정부여당에게도, 당 혁신에서도 대담하고 당당한 리더십을 발휘하겠습니다.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당대표직을 수행하겠습니다. 유린되고 있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겠습니다. 당의 승리를 위해 저부터 변화에 앞장서겠습니다. 사사로운 욕심은 모두 버리겠습니다. 오로지 국민과 당원 동지들만 보고 일하겠습니다.

둘째, 계파논란을 완전히 없애겠습니다. 이른바 ‘친노’가 정치계파로 존재한다면 해체할 사람은 저 뿐입니다. 친노-비노 논란을 끝낼 수 있는 사람도 저밖에 없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김근태 의장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과 가치만 남기겠습니다.

셋째, 당대표 또는 계파의 공천은 결코 없습니다. 공천제도를 선거전에 미리 투명하게 만들겠습니다. 대표의 손에서 공천권을 내려놓고 공천제도와 룰이 공천하도록 만들겠습니다. 우리가 깨끗한 공직선거를 만들어냈듯이 역사상 가장 깨끗하고 공정한 공천혁명을 당원 동지들과 함께 이루어내겠습니다.

넷째, 권한은 나누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우리 정당의 역사에서 분권의 사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반면 책임 있게 추진해야 할 과제는 오히려 전가한 경우가 많습니다. 당의 변화와 혁신을 위한 권한은 강력히 행사하겠습니다. 공천권 같이 대표가 사사롭게 행사해오던 권한들은 내려놓겠습니다. 그리고 중앙당의 집중된 권한과 재정을 시도당으로 분산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권한의 책임은 저 문재인이 지겠습니다. 강력한 리더십은 많은 권한들을 가져야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움켜쥐고 있던 권한들을 손에서 놓고 제도화할 때 생긴다고 믿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새정치민주연합의 뿌리는 깊고 튼튼합니다. 정통야당의 맥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위기에 처할 때면 민주주의도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위기를 헤쳐왔습니다. 탄압 속에서 언제나 국민들과 함께 했던 우리 당원동지들의 단결된 힘 덕분이었습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민주주의 시대도 열었습니다. 민주정부 10년이었습니다. 경제와 민주주의가 함께 성장한 황금시대의 개막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부터 우리는 기득권에 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변화와 비전을 국민들에게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국민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자세를 낮추는 겸손이 부족했습니다. 국민 속으로 들어가려는 열정이 부족했습니다. 국민들은 우리에게 보낸 신뢰를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멈칫했던 지난 7년 동안 민주주의는 크게 후퇴했습니다. 인권과 자유가 크게 억압받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후퇴는 경제를 침체하게 만들었습니다. 사회도 활력을 잃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이 국민들은 무기력하고 무능한 정부를 보면서 좌절과 절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분노를 넘어 희망을 담을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새정치민주연합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입니다. 저는 국민들과 당원 동지 여러분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만큼 책임도 특별합니다. 제가 보답 못했던 사랑을 제가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으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여기서 저의 정치생명을 걸겠습니다. 이제 변화와 단결로 가는 길로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이 길은 ‘이기는 정당’으로 가는 길입니다. 정권교체로 가는 길입니다. 경제와 민주주의가 함께 성장하는 황금시대를 다시 여는 길입니다. 저 문재인이 앞장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 12. 29.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후보 문재인

— 문재인의 당권 출마 대국민 기자회견 전문[42]

부정부패 논란

다운계약서 작성에 따른 세금 탈루 의혹

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시절인 2003년에 4층짜리 상가 건물을 팔면서 당시 기준시가 3억5천만원 짜리 상가를 2억6,200만원으로 약 9,000만원가량 낮게 다운계약서를 썼다.[43] 2012년 문재인 후보 선대위 우상호 공보단장은 부민동 상가는 당시 법원·검찰청 이전에 따라 일대 부동산 가격이 폭락해 공시지가보다 1억 가까이 낮은 2억 3천여만 원에 손절매한 것이라고 해명했다.[44]

문재인은 2004년 5월에도 서울 종로구 평창동 빌라를 2억9800만 원에 매입하고도 관계 당국에는 1억6000만 원에 구입한 것처럼 신고하여 탈세하였다.[45] 2012년 문재인 측에서는 “다운계약서는 매도자의 요구에 따라 작성됐던 게 일반적”이라며 “문재인은 매수자의 입장이었고, 법적으로 다운계약서 작성이 금지된 2006년 이전의 일이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수많은 공직자 청문회에서 다운계약서는 항상 문제가 되었고 관행이라 해명해도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비난을 해 왔었기 때문에 이중 잣대 논란이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측은 "청문회에서 낙마한 사람들의 다운 계약서는 투기와 복합적으로 엮여 있는데 문 후보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 [46]

문재인 아들 채용 특혜 논란

한나라당 정진섭 의원은 2007년 4월 24일 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이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의 아들 문준용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했다고 주장했다.[47] 고용정보원은 '문재인 아들의 경우 외부 수상경력과 외국어 실력(TOEFL 250점) 등이 높게 평가됐다'며 특혜 의혹을 부인했고,[47] 문재인 측은 '동영상을 특정하지 않고 전산 부문으로 세부 공고를 한 부분이 오히려 특혜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관련 의혹을 일축했다.[48] 그러나 당시 집권여당 측에서도 의혹이 제기되었다. 열린우리당 조성래 의원은 보통의 경우 추가 공고를 통해 적절한 배수의 응모자를 받아 인력을 뽑는 것이 원칙이지만, 당시 PT 및 동영상 분야엔 단 한 명밖에 응모하지 않았고,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사람을 채용한 것은 특혜채용의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하였다.[49]

18대 대선 쟁점 부상

2012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해당 의혹이 다시 불거졌다. 새누리당 의원들과 일부 언론에서는 문재인의 아들이 한국고용정보원에 취업할 때 문재인과 당시 기관장은 절친한 사이였던 점, 해당분야에 문재인 아들 한 명만 응시해 합격한 점, 일반인은 알기 힘들게 채용 공고를 낸 점, 기한 내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고 양 귀에 귀걸이를 하는 부적절한 용모에도 합격한 점 등의 부정취업 의혹을 제기하면서 문재인 후보에 해명을 요구하였다.[49][50] 민주당은 문준용이 건국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여러차례 LG를 위시한 기업 공모전 수상경력을 갖고 있다며 해당 의혹을 반박했다.[51]

2007년 문재인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재직할 당시 환노위 국회 상임위원회국정감사, 노동부 특별감사와 고용정보원의 공식 입장을 통해 특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지는 않았다는 것이 민주당의 주장이다. 민주당의 홍영표 의원은 "채용 시 미비사항이 발견될 경우 추후 제출받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반박했고, 김경협 의원은 "절차에 미진함이 있어 담당자가 징계를 받고 끝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2012년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채용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나 특혜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히 규정할 수 없다"면서 "특혜 채용이라고 할만한 확실한 증거가 발견되면 추가로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52] [53] [54] [55] [56]

문재인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재직할 때 노동비서관으로 근무한 인연이 있는 권재철 당시 고용정보원장은 문재인 아들 채용 과정에 실수가 있었다고 2012년 10월 23일 JTBC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시인했다.[57] 권재철 당시 고용정보원장은 2007년 환노위 국회 상임위원회, 국정감사, 노동부 특별감사에서 부인했던 사실을 2012년 10월 23일 JTBC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사실로 인정한 것이다. [58] 권재철 전 원장은 자신이 직접 승인을 해줘서 단축이 된 게 맞다고 시인하였고 한 명만 지원을 했음에도 급하게 마감을 하고 끝냈다고 시인하였다.[59]

삼성 특검 수사 제지 논란

2005년 삼성그룹과 정치권·검찰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 의혹이 폭로된 삼성 X파일 사건에 대해,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민정수석이 특검 수사를 반대해 특검이 성사되지 못 했다는 주장이 그 때 사건을 폭로했던 이상호 기자에 의해 제기되어 논란이 일었다.[60] 이상호는 2017년 1월 17일자 고발뉴스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쪽이 오히려 특검을 요구했을 때 아직 시기상조라며 검찰조사를 지켜보자고 한 분이 바로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이라면서, "당시에 특검을 시기상조라고 막았던 문재인 현재 우리 후보께서 어떠한 생각을 지금 갖고 계시는지"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하였다.[60]

고급 의자 논란

논란이 된 임스 라운지 체어

2012년 11월 27일부터 TV를 통해 방송된 60초짜리 대선 후보 광고에 나오는 문재인 후보의 자택광고에 나오는 가죽의자가 "임스 라운지 체어(Eames Lounge Chair)"로 밝혀져 논란이 시작되었다. 문재인후보의 배우자인 김정숙씨가 트위터에서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전시됐던 소파를 아는 분이 땡처리로 싸게 샀고 나중에 그걸 제가 50만 원에 산 중고"라고 해명했다.[61] 임스 라운지 체어 정품 가격은 대한민국 내에서 700만원 정도이며, 중국산 모조품은 50~100만원에 구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62][63]

이인규 수사관과의 충돌

문재인은 2011년 6월 14일 발간한 자신의 자서전 《운명》에서 대한민국의 전 대통령인 노무현에 대한 검찰 수사 당시 수사관이었던 이인규에 대하여 "검찰은 박연차 회장의 말이 진실이라고 뒷받침할 증거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또한 이인규의 태도가 "건방졌다"고 평가하면서, 당시 대검 중수부의 수사가 매우 불순하고 비열했다고 비판했다.[64]

이런 문재인의 주장에 대해 이인규는 수사 태도에 대하여서 "당시 노 대통령을 처음 뵈었을 때도 내가 상석에 앉거나 태도를 건방지게 해서 조금이라도 언짢게 느낄 만한 상황은 전혀 없었다. 조사 전에 한 10분에서 15분 정도 함께 있으면서 차를 마셨는데 여러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다들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노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마쳤을 무렵에는 내가 직접 중수부 특별조사실로 올라가서 '수고하셨습니다'는 말을 하고는 20분 정도 선 채로 있었다. 그때 노 대통령은 앉아 계셨고 나는 예를 차리려고 최대한 노력했다"라고 밝혔고, 문재인의 증거 주장에 대하여 "그날 조사 당일 오후 5시께 미국의 핀센이라는 기관에서 노 대통령의 딸 정연씨가 미국에서 주택을 구입한 것으로 의심할 수 있는 일종의 단서가 우리 수사팀에 도착했었다. 정연씨가 얼마짜리 주택을 구입했는지 금액을 특정할 수는 없고, 구입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내용도 아니었다. 다만 수사의 단서로 쓸 수 있는 자료였다"라고 밝혔으며, 노무현박연차와의 대질을 하려는 발상 자체가 무례하다는 문재인에 주장에 대하여서는 "두 사람의 말이 틀리니까 어느 쪽이 진실인가 밝히기 위해서는 당연한 절차 아니냐.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한 것이다"라고 언론에 밝혔다.[65]

이인규는 문재인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검찰이 박 전 회장과 대통령 간 통화 기록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며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식으로 주장한 것에 대해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은 처음부터 대통령이 달라고 해서 (돈을) 줬다"라고 진술, "박 전 회장은 2007년 6월 말 100만달러를 전달하기 전에 청와대 만찬에 초대돼 돈을 요구받았고, (돈을 준 후) 대통령에게 전화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은 만찬에 혼자 초대받아 노 전 대통령 부부와 세 사람이 식사를 했을 때 권양숙 여사가 노 전 대통령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아이들(노건호씨와 노정연씨) 집이라도 사줘야 하는데…'라는 식의 얘기를 꺼냈고, 이 얘기를 들은 자신이 직원 130명을 동원해 환전한 100만달러를 측근을 시켜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은 또 돈을 전달한 뒤 노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받았고, 고맙다는 취지로 받아들였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박 전 회장과 정승영 사장의 청와대 출입 기록, 달러 환전 기록 등을 확보했으나, 박 전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통화 기록은 보존기간(1년) 경과로 이미 폐기돼 확보할 수 없었다."라고 밝혔다.[66]

이 말을 들은 문재인은, 이인규가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의 미국 뉴저지 주택 구입 사실을 언급한 데 대해 "이미 다 나온 내용을 들어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며 "문제는 노 전 대통령이 알았느냐 여부인데, 알았다는 것을 입증할 증거가 없으니 (검찰이) 말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즉각 재반박했다.[67] 또한 문재인은 이인규가 노 전 대통령 소환 조사 당시 "예우를 다했다. 공손하게 잘 모셨다"고 말한 데 대해 "겸손이 뭔지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겸손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비판했다.[67]

대북관 논란

이석기 특별사면 논란

문재인이 민정수석으로 청와대에 있었던 시절 공안사범이었던 이석기가 특별한 이유 없이 두 차례 사면을 받았던 사실이 논란이 되었다. 이석기는 민혁당 사건으로 2002년 구속되어 2003년 반국가단체 구성 등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판결문에 의하면, 이석기는 1980년대 초반 한국외국어대 용인 캠퍼스 중국어과 재학생 시절 "김일성은 절세의 애국자" "주체사상은 영원 불멸의 등불" 등의 발언으로 후배들의 사상교육을 주도했으며, 1989년 민혁당의 전신인 반제청년동맹과 1992년 민혁당 설립에 참여하면서 김일성주의를 지도이념으로 한 계급투쟁을 강조하였다.[68]

그러나 이석기는 2003년 노무현 정부의 광복절 특사로 곧바로 가석방되었다.[69] 이석기는 2003년 광복절 특사 대상자 15만여명 중 유일한 공안사범이었다.[69] 이어 2005년에 또 한번 광복절 특사로 특별복권 되어 공무담임권 및 피선거권의 제한이 풀리면서 국회의원 후보 등 선출직에 나설 수 있게 됐다.[69]

이석기 사건 파장과 정치권 공방

파일:2013년 9월 5일 구속되는 이석기.jpg
2013년 9월 5일 내란 음모 혐의로 구속되는 이석기

이후 2013년에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된 이석기가 또다시 내란 음모를 기도한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구속된 이석기 사건이 일어나자, 노무현 정부 시절 특별사면이 재조명되며 파장이 일었다. 특별사면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 민정수석이 특별사면 대상자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법무부가 이를 진행하는데,[69][70][71] 이석기의 두 번의 사면이 이루어졌을 때 실무자는 모두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69][70]

새누리당 측은 노무현 정부 당시 법무부가 형 복역률 50% 미만자에 사면을 실시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극력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특별가석방을 계속 요구해 이석기의 가석방이 이뤄졌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사실상 종북좌파,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이석기 탄생의 숙주 역할을 했다고 비난하였다.[72][73] 뿐만 아니라, 문재인이 국회의원 신분이었던 이석기의 체포에 필요한 절차인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에 기권한 7명 중 1명으로 밝혀져, 과거 이석기 특별사면 의혹과 맞물려 이에 대한 비판 여론도 쏟아졌다.[74]

이러한 논란에 대해 문재인의 측근 노영민 민주당 의원은 "전혀 사실도 아니고, 근거도 없는 무책임한 정치공세에 불과하다" “사면은 법무부장관이 명단을 작성해 국무회의에서 승인된다. 이 과정에서 민정수석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한나라당에서는 어떻게 운영했는지 모르겠으나 참여정부에서는 그렇게 했다."고 반박하였다.[75][76][77] 또한 박범계 의원은 "2003년 사면·복권 당시 주무 비서관이 나였다. 가석방은 민정수석이 아닌 법무부 내 가석방 심사위원회가 한다."고 반박했다. 박범계 의원은 "2003년 가석방과 관련해 문재인 의원이 법무부의 누구와 어떤 이야기 나눴는지 아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 있거든 나와 얘기해보자. 당시 문재인 의원은 가석방과 사면·복권 단 한차례도 간섭하거나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권성동 의원은 본인의 질의 시간을 이용해 박범계 의원의 발언을 다시 재반박했다. 권성동 의원은“2003부터 2012년까지 총 8만5223명의 가석방이 이뤄졌는데, 이 가운데 복역률 80% 미만은 6.7%에 대해만 가석방이 이뤄졌고, 복역률 50% 미만은 이석기 단 1명에 대해서만 가석방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권성동 의원은 “어느 누가 50%도 복역하지 않은 이석기 반국가사범의 가석방에 동의했겠느냐. 절대권력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민정수석의 지시가 없었으면 법무부는 움직일 수가 없는 구조다”면서 “자신 있으면 문재인과 가석방에 관여한 법무부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채택해 명백히 시시비리를 가리자“고 덧붙였다.

전해철 의원은 본인의 질의 시간을 이용해 권성동 의원의 발언을 다시 재반박했다. "권 의원도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재직했고, 청와대 시스템을 잘 알 것"이라면서 "가석방은 대통령이 큰 원칙과 기준을 정하면 법무부가 받고 심사위가 의결해서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실시한다. 그 과정에 민정수석이 관여할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고, 이해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새누리당 측은) 문 의원,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를 지낸 분을 한 번도 아니고 두세 번을 근거 없이 얘기했다"면서 "급기에 장관을 만나 특별가석방을 하라고 하라 했다가 나중엔 담당 실·국장을 밖에서 만나서 가석방하라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려면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감사원 국감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언급한 건 이 전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는 감사원 사무총장의 발언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여기에 '그럼 우린 문재인을 부르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증인으로 신청하라는 건 맞지 않다. 까닭 없는 공세는 정말 그만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78]

이후에도 2015년 새누리당 대표였던 김무성국가 내란을 기도했던 이석기가 사면된 것에 대하여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이 국민 앞에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재차 요구하였다.[79]

민정수석과 특별사면

민정수석이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는 일부 주장과 달리, 참여정부를 포함한 역대 정부에서 특별사면 대상 선정은 법무부와 함께 민정수석이 항상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69]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사면에는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 내정자와 법무부가 논의하여 사면의 폭을 결정하였고,[80] 2003년 4월 문재인 민정수석의 공안·노동사범 사면약속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하였다.[81] 2003년 이석기가 석방된 광복절 특사 때 문재인은 "장기복역자나 행형성적 우수자 등의 선별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모범수들은 특별히 숫자에 제한을 두지 않고 사면할 것"이라고 말해, 법무부 기준을 충족시키면 민정수석실에서 사면 폭을 넓게 적용할 것을 밝혔다.[70] 2003년 말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문재인 민정수석에게 김대중 정권 시절 대북송금 사건 관련자에 대해 사면 검토를 지시했고, 어떤 방법으로든 사면을 성사시키도록 독려하였다.[82] 2005년 김대중의 두 아들 김홍업, 김홍걸이 광복절 특사로 풀려날 때도 문재인은 "전임 대통령이 국가에 한 공헌 정도와 이미 고령이라는 것 등을 종합해, 인간적인 측면에서라도 사면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83] 이후에도 참여정부는 물론이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민정수석이 항상 사면을 주도해 와, 민정수석의 특별사면 대상 선정에 대한 논란이 늘 존재해 왔다.[71][84][85]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 방안 논란

2012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남북간 국가 연합 또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다음 정부에서 반드시 실현시키겠다는 문재인의 구상이 논란이 되었다.[86] 문재인은 2012년 8월 김대중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도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 땅에 자유와 민주, 복지와 통일의 길을 앞장서 열어주신 분"이라며 "김 전 대통령께서 꿈꾸셨던 국가연합 또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 정도는 다음 정부 때 정권교체를 통해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말했다.[87]

남북의 국가 연합은 대한민국이 1991년 발표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이래로 추진하는 통일 방안이고,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1973년부터 주장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안을 느슨한 형태로 개정하여 추진하는 통일 방안으로, 6·15 남북 공동선언에서 김대중과 김정일 두 정상 간 이 둘의 공통성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연합은 유럽 연합과 같은 복수의 국가 체제이고, 연방은 미국과 같은 1국가 체제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고려연방제는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라는 논리에 따라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등을 선결 조건으로 통일하는 것을 추구해 왔다.[88]

대표적인 보수 인사인 조갑제월간조선 대표는 문재인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구상을 반헌법적인 구상이라고 지적하였고,[89]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조갑제의 말을 인용해 문재인을 종북주의자로 규정하여 비판하였다.[90]

한총련 합법화 논란

문재인은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미군 훈련장 난입 사건에 대해 한총련의 합법화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재인은 한총련의 합법화에 대해 "대학생들의 대표조직이 이적 단체라고 해서 거기에 가입하면 이적단체 가입으로 처벌받는 것은 하루빨리 해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국민이 충분히 인정할 만큼 한총련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그동안 지적해왔다"며 "부분적으로 수배 해제등 정부가 성의를 다하면서 변화를 유도하고 촉구해 왔던 것인데 한총련은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 조금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문재인은 합법화의 의미에 대해 "법원이 일단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며 검찰이 더이상 이적단체 가입 등으로 기소하는 일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91]

김정일 조문 논란

파일:김정일과 악수하는 권양숙.jpg
김정일 생전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악수하는 김정일과 권양숙

2011년 12월 1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이 사망한 후, 노무현재단에서 문재인과 권양숙을 비롯한 김정일 조문단을 파견하기로 추진한 것이 논란을 빚었다.[92] 김정일 사망 직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었던 문재인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 정동영·이종석·이재정 전 통일부장관, 고영구·김만복 전 국정원장, 윤광웅 전 국방장관 등 참여정부 외교·안보 각료 출신들과 긴급 간담회를 가진 후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93][94] 그러나 당시 천안함 사건연평도 포격이 발생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라, 보수 단체 및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같은 결정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커다란 반발이 일었다.[95]

정부 여당은 국민정서를 고려해 정부와 국회 차원의 조문은 하지 않기로 하고, 민간 차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유족의 조문만 허용하기로 결정하였다.[96] 이에 노무현재단 측은 즉각 반발하였고, 김대중 측 인사인 박지원도 남북정상회담에 참가했던 권양숙의 조문은 허용하여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끝내 방북이 성사되지는 못 하였다.[96][97]

평창 올림픽 남북 공동 진행 주장 논란

2012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문재인이 비무장지대지뢰를 제거하고 철조망을 헐어서 평창 동계 올림픽크로스 컨트리 경기장을 강원도 고성 지역에 남북이 공동으로 건설하는 것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98][99] 문재인의 이같은 제안에 새누리당은 평화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올림픽을 국제정치와 남북문제의 종속변수로 전락시켜버리는 위험성이 있다며 즉각 반발하였다.[100]

문재인은 2015년 1월에도 평창 올림픽 남북 분산 개최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여 논란을 빚었다.[101] 2017년 1월에는 북한의 금강산 호텔이나 마식령 스키장 등을 숙소나 훈련시설로 활용하고 금강산에서 동시 전야제를 하면 세계적인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라며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였다.[102]

대북 경제 제재 조치 해제 주장 논란

5.24 조치 해제 주장 논란

광복 70주년을 맞아, 천안함을 폭침시킨 배후로 지목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제재 조치인 5.24 조치를 해제하자는 문재인의 주장이 논란이 되었다.[103] 이는 2015년 8월 4일 북조선의 DMZ 지뢰 도발 사건 직후 이뤄진 발언으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러한 문재인의 주장이 부적절하다고 일축하였다.[104] 황교안 국무총리 역시 문재인의 이같은 제안에 북한의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해제가 가능하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105] 한편 5.24 조치 해제 제안은 햇볕정책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라는 문재인의 자평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직계인 동교동계 인사들 역시 햇볕정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북과의 대화와 협력은 중요하지만 지뢰 도발 사건 직후 어떻게 그런 제안을 할 수 있냐며 달가워하지 않았다.[106] 이런 논란에 대해 한국갤럽이 대한민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북측의 태도 변화 없이는 5.24 조치를 해제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69%로 대다수를 차지했다.[107]

개성공단 재가동 주장 논란

개성공업지구

또한 북조선의 4차 핵 실험에 대응하는 제재 조치로 박근혜 정부가 2016년 2월 개성공단을 폐쇄시키자, 문재인이 이에 대해 강하게 비판적 입장을 고수하는 것 역시 지속적인 논란이 되었다. 문재인은 개성공단 폐쇄 직후, 트위터에서 개성공단 폐쇄결정은 박근혜 정부 최악의 잘못이고 개성공단 폐쇄를 제재수단으로 사용해선 안된다며 폐쇄 철회를 요구하였다.[108] 이에 여당인 새누리당은 대체 어느 나라 의원이냐며 문재인을 비롯한 운동권 세력의 국론분열 발언은 북한 김정은 정권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라고 규정하면서 문재인의 주장을 맹비난했다.[109] 이 문제와 관련하여 2016년 2월 15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문재인과 한민구 국방부장관 사이에서 격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110]

이후에도 문재인은 개성공단 폐쇄를 멍청한 짓이라고 맹비난하며,[111] 대통령 당선 시 개성공단을 즉각 재개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112] 문재인은 “개성공단 폐쇄도 최순실 작품”이며 “북한에 시장경제를 전파하고 북한에 자본주의체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고 북한 주민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고, 그리고 유사시에는 북한이 중국에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에 손을 내밀게 대한민국에 의존하게 하여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북한에 급변사태가 생긴다 해도 북한이 중국에 손을 내밀지 않겠나. 그러면 또다시 친중 정권이 생기는 것”이라며 “잘못하면 동북삼성 아니라 동북사성 되는 거다. 이렇게 멍청한 짓이 어디있나”라고 박근혜 정권을 비난했다.[113]

이에 유엔과 국제사회의 전방위적인 대북 제재에 대한 국제 공조의 일환으로 결정된 개성공단 폐쇄를 철회하는 것은 스스로 국제 공조를 허무는 것이란 비판의 목소리가 일었다.[114] 새누리당 탈당파가 모인 중도 보수 정당인 가칭 개혁보수신당유승민 의원 역시 만약에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안보가 걱정이라며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115] 한편,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북조선 고위인사인 태영호영국 주재 북조선 대사관 공사는 이같은 개성공단 폐쇄 논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민국 내 정치 문제와는 선을 그으면서도, 만약 한국이 개성공단을 폐쇄하지 않았다면 다른 나라들이 대북 제재를 따라 왔을 지 의문이라며 사실상 개성공단 폐쇄의 당위성에 힘을 실어주었다.[116]

이에 대해 문재인은 "개성공단은 유엔 결의안 대북 제재 속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박근혜인지 최순실인지 어떤 나라에서도 언급하지 않은 개성공단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과잉조치를 취했다고 비판했다.[117] 또한 "북한에 대해 더욱 강력한 제재와 압박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논박했다.[118]

나아가, 문재인은 “정권교체를 이루면 당초 계획대로 개성공단을 2단계 250만 평을 넘어 3단계 2000만 평까지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119]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에는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되어있고 유엔 안보리 국제법에 따르면 북한에 경제적 이득을 줄수 있는 공단을 건설하는 것은 유엔 안보리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있다. 문재인이 개성공단을 확장하겠다는 발언은 결국 유엔 안보리 국제법을 위배하고 대한민국 헌법을 위배하겠다는 발언으로 볼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120] [121]

유엔 대북 인권결의안 기권 과정 논란

송민순 자서전 폭로 파문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던 송민순이 2016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2007년 12월 18일 제62차 유엔 총회 대북 인권결의안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투표 방침을 당사자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에 사전 문의 후 결정하도록 주장했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었다.[122] 송민순은 2007년 11월 18일 관계 장관 회의에서 북측의 의견을 확인해보자고 정한 후 북측에 의사를 물었고, 20일에 북측의 반대 의사를 확인하고 기권 입장을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123]

한편, 정부 외교·안보 수뇌부 간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자, 문재인이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의 제안을 수용해 북한의 의견을 사전에 물어보자고 회의를 정리했다는 이야기도 제기되었다.[124] 반면에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자신이 그런 제안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에 대한 기억은 엇갈렸다.[124] 설사 문재인이 회고록 내용대로 발언했더라도 '기권 결정은 16일 회의에서 최종 결정됐던 것'이라는 다른 회의 참석자 주장을 감안하면 이는 '사전 협의'가 아닌 '통보'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는 의견도 있었다.[124] 또한 송민순의 주장을 입증할 추가 자료를 찾기 어렵다는 문제도 제기되었다.[124]

미국 측 기록

그러나 당시 주한 미국 대사였던 알렉산더 버시바우유엔 대북 인권결의안 표결 이틀 전인 2007년 11월 19일 조중표 외교부 1차관을 찾아와 "한국이 찬성 투표해 줄 것"을 마지막으로 요청했지만 명확한 답을 듣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송민순도 회고록에 이 내용을 똑같이 쓴 것으로 알려져 관련 파문은 가시지 않았다.[123] 기밀문서 폭로 사이트인 위키리크스에 의하면, 주한 미국 대사관 정무참사관과 만난 대한민국 외교부 담당자가 기권하기로 한 최종 결정은 표결하기 두 시간 전에야 이뤄졌다고 밝혀, 표결 직전까지 미국에 대북 인권결의안 기권 결정이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으며,[125] 미국 측은 표결 직전까지 우방국과 결정 내용을 공유하지 못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고 알려졌다.[123]

즉, 문재인 측의 주장대로 16일에 기권 결정 후 18일에 북측에 통보를 했든, 송민순의 회고록대로 18일에 북측에 의사를 묻고 20일에 답변을 받은 후 기권을 결정했든, 미국 측에는 정보 공유를 하지 않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긴밀히 협의하고 있었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었다.[123]

문재인의 항변

이러한 논란들에 대해 문재인은 당시 회의는 안보실장이 주재하는 회의였고, 비서실장은 단지 참관하는 역할이었을 뿐 결정을 내릴 입장이 아니라고 반론하였다. 해당 논란은 송민순 전장관의 주관적인 착오에서 비롯된 일이라 일축하였다.[126] 당시 배석자였던 김장수 전 국방장관,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김만복 전 국정원장,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의 기억과 기록이 이와 다르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127]

또한 문재인은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우리가 새누리당처럼 북한과 내통해 우리 군에 총질해 달라는 반역죄라도 지었나. 10년 전 일에 대한 한 사람의 주관적인 회고록을 가지고 한 건 잡았다는 듯이 구시대적 색깔론을 들이대며 혹세무민하는 행태, 부끄럽지도 않나"고 일갈했다.[128] 또한 종북 논란에 대하여 "특전사 출신인 저보고 종북이라는 사람들, 병역기피하고 방산비리 저지르는 자들이 진짜 종북"이라 맞대응했다.[129][130]

방북 우선 발언 논란

중앙일보에서 진행한 도올 김용옥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당선 시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모두 갈 수 있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먼저 방문하겠다는 문재인의 발언이 논란이 되었다.[112] 인터뷰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경우, 미국과 북한 중 어디를 먼저 가겠느냐는 질문에 문 전 대표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주저 없이 말한다. 나는 북한을 먼저 가겠다. [131] [132]

정치권의 반발

대통령 당선 후 전통적인 우방국인 미국보다 군사적 대치 중인 북한을 먼저 방문하겠다는 문재인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태도라고 크게 반발하였다. 새누리당은 끔찍한 발언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강력하게 비난하였고,[133] 김종필 전 국무총리 역시 2017년 1월 29일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기가 막히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인가."라며 문재인의 안보관을 거세게 비판하였다.[134]

문재인과 같은 당 이재명 성남 시장도 문재인을 겨냥해 우리나라 안보의 가장 중요한 주춧돌이 한미동맹인데 당연히 고민할 것 없이 미국부터 가야 한다며 우회적으로 해당 발언을 비판하였다.[135]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한미동맹을 포기해서는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없기에 먼저 미국을 가서 대북정책을 논의하는 것이 옳다고 언급하며, 문재인의 입을 탄핵해야 할 때라면서 비난 수위를 높였다.[136]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전 대표가 차기 한국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주한 미군 철수 가능성이 크다고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FP)가 전망했다. FP는 2016년 12월 27일(현지시간) ‘트럼프의 아시아를 통한 중심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트럼프가 한국 보호 비용 부담액의 증액을 요구할 것이고, 문재인은 미군이 떠나도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포린 폴리시 전문지는 “친미 정당 출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가 진행되고 있고, 그의 뒤를 이을 선두주자는 좌파 문재인이다”면서 “이 주자는 반미 성향이 강하고, 북한과 대결보다는 화해를 모색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137][138][139][140]

문재인의 입장 견지

문재인은 대한민국 대통령은 무조건 미국 먼저 가야한다는 고정관념을 이제 극복해야 한다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오랜 동맹국인 미국과 협의 후에 북한을 먼저 가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또한 감시정찰정보역량과 정밀타격능력을 키우는 등 자주국방력을 강화하여 전시 작전통제권을 조기 환수하겠다는 입장도 견지했다.[141][142]

2015년 3월 중국공산당의 초청에서 문재인은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 주둔이 필요하다"며 주한 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143] 그러나 2017년 2월 미국의 하원 외교위원회는 한국의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의 친북 반미 성향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144] 북한과의 경제 협력을 지지하는 문재인은 자칫 미국과 유엔 안보리의 북한 경제 제재 동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145] 게다가 사드 배치에 대한 문재인의 입장이 오락가락한 점도 지적했다. [146]

발언 논란

부산 정권 발언 논란

문재인은 2006년 부산 지역 기자들과 만나 "참여 정부를 부산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 것 이해 안돼",[147], "대통령도 부산 출신인데 부산 시민들이 왜 부산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 된다", "한 지역에서 한 정당이 지방선거를 독점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대통령의 의지" 라고 한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 대변인은 지역 감정 조장 발언이라면서 선거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야 된다고 주장했고, 민주당 대변인은 노무현 정부가 국민과 호남인을 대상으로 사기극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147]

혁명 발언 논란

문재인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경우 그 다음에는 혁명 밖에 없다고 발언하였다.[112][148] 2016년 12월 조선일보는 조기 대선 정국에서 최대 수혜자라는 평가를 받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로 어떤 말을 쓰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심층 분석하는 연속 기획을 준비했다. 전국을 누비며 시민과 만나는 문 전 대표는 시민혁명, 촛불혁명을 강조했다. "촛불 혁명, 시민 혁명, 혁명, 혁명, 혁명, 혁명"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혁명'을 입에 달고 다닌다. 총 발언 시간은 8시간이고 '혁명'은 총 97번 나왔다.[149]

새누리당은 헌법을 무시하는 초헌법적인 발언이라며,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가 본인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혁명 운운하는 문재인은 국가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며 강하게 비난하였다.[148][150]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역시 지극히 위험한 발언이라고 지적하며, 광장의 분노와 불안에서 혼란과 불안으로 이어지면 안 된다며 문재인의 발언을 비판하였다.[148][151] 정세균 국회의장도 문재인의 혁명 발언을 과하다고 비판하였다.[152] 정세균은 독립적 헌법 기관인 헌재와 대한민국 국민의 품격에 걸맞은 대우와 언행을 정치지도자가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2류나 3류로 인식되는 정치인 행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였다.[152]

이에 대해 문재인은 "헌재가 촛불 민심 및 국민 뜻과 다르게 결정을 내려서 제도적 해결의 길이 막혀버린다면 국민이 저항권을 행사하는 그야말로 혁명의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는 객관적 상황을 말한 것"이라고 했다. 또한 문재인은 "'촛불혁명''시민혁명' 등 모든 사람이 혁명을 말하고 있는데 마치 문재인이 말하니 불온한 것처럼 하고 '비헌법적'이라고 하는 건 편파적 보도"라 역설했다.[153]

국정원 해체 발언 논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댓글공작, 정치개입 등으로 논란이 된 국가정보원을 개혁하겠다고 나섰다. 국내 정보수집 및 수사기능 폐지를 주장해 일각에서는 사실상 해체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문재인 전 대표는 "국정원의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보기관으로 쇄신하겠다"며 "국정원을 해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하겠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간첩조작, 종북몰이 등 범죄에 연루되고 가담한 조직과 인력은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의 국내 정보수집 업무를 전면 폐지하겠다"며 "간첩조작 등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국내 정보활동의 빌미가 되어왔던 국정원의 수사기능을 없애겠다"고 했다. [154] 추가로 대공수사권은 특별히 국가경찰 산하에 안보수사국을 신설하겠다고 주장했다. [155]

군복무 1년으로 단축 발언 논란

문재인은 (장기적으로) 군복무 기간을 1년까지 단축하고 직업군인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국방계획에 따라 18개월까지 단축해가려 하였으나 이명박 정부 이후 멈춰버렸다는 것이다.[156][157] 문재인의 이 발언에 대햐여 청년 표를 잡으려는 선심성 공약이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군복무기간이 12개월로 단축 되었을 경우 북한의 침략으로 부터 방어할 수 있는 전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일어났다. [158] 이에 대해 문재인 측은 장기적으로 최대 1년까지 단축할 수 있으며, 1년 6개월로 단축하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해명했다. [159]

연설 및 간담회

유세스타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유세스타일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거칠고 투박하다." 이다. 정치인이란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능숙한 달변가도 아니고 유세 현장에선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기보다는 오히려 뒤로 갈수록 약해지는 말투에, 어디서 반응해야 할지 사람들을 아리송하게 만든다. 문재인의 연설이나 토론 등이 화제에 오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눌한' 말투를 많이 떠올린다. 이에 더해 문재인의 유세는 강약이 없고 높낮이가 없는 편이다. 연설문이 있으면 그대로 쭉 읽는 편이다. 문재인은 유세 연설에서 '그렇지 않습니까?'라거나 '문재인에게 맡겨주시겠습니까?'라며 동의를 얻는 말을 많이 하지만 높낮이가 없어 호소력이 약한 편이다. 손바닥 크기의 연설문 몇 장을 손에 잡아 연단 위로 올라서서 그것을 읽는 문재인의 강약 없는 연설에 대중들은 어떻게 호응해야 할지 잘 모르는 분위기이다. 문재인은 대선 출마 당사자가 아니라 '대변인' 같은 느낌이다..[160]

한중 갈등 문제 관련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1월 12일, 최근 중국한반도 사드배치를 핑계로 온갖 경제적 보복 조치로 우리를 압박하고 미국의 해상 X-밴드 레이더일본의 조기 경보 레이더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에 관련해 "중국이 외교 갈등을 통상 문제로 확대해서 외교와 무관한 경제·통상 분야의 보복을 하는 것은 대국답지 못하다" 라고 강력하게 말하며 공개적으로 중국을 비판하기도 했다. 일본 교토와 아오모리현에 배치된 2개의 X-밴드 레이더한반도를 넘어 중국 내륙을 들여다 볼 수 있는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해서만 온갖 보복 조치로 우리를 압박하고 있는 중국을 문재인 전 대표가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또한, 중국한반도 사드 배치의 반대 논리로 자국의 군사적 움직임이 노출될 수 있다고 우리를 경제적으로 압박하면서도 정작 중국헤이룽장성푸젠성 등지에 탐지거리 5,500km의 전략경보레이더를 설치해 한반도일본은 물론 태평양까지 샅샅이 들여다 보고 있다. [161] 문재인은 대담집 출판기념간담회에서 “사드는 배치하기로 이미 한미 간에 합의가 되었다” 면서 “한미간 이미 합의가 이루어진 것을 쉽게 취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62] [163] [164] [165] 문재인의 대선 캠프로 합류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은 사드 문제와 관련해 "첫째, 중국의 경제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다, 둘째, 기존 한미 합의는 존중한다는 두 가지를 선언해야 한다"고 밝혔다. [166] [167] [168] [169]

학력

경력

저서

단독 저서
  • 《문재인의 운명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한 30년 동지 문재인, 두사람의 운명 같은 동행)》. 가교. 2011년 6월 15일. ISBN 978-89-7777-188-8.
  • 《사람이 먼저다 (문재인의 힘)》. 퍼플카우. 2012년 8월 6일. ISBN 978-89-97838-02-8.
  • 《문재인이 드립니다 (꿈을 놓아버린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포토에세이)》. 리더스북. 2012년 8월 8일. ISBN 978-89-01-14936-3.
  • 《1219 끝이 시작이다》. 바다출판사. 2013년 12월 10일. ISBN 978-89-5561-690-3.
  • 《대한민국이 묻는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 21세기북스. 2017년 1월 20일. ISBN 978-89-509-6884-7.
공저
  •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 오마이북. 2010년 5월 13일. ISBN 978-89-964305-0-6
  • 《그 남자 문재인 (함께 만드는 세상)》. 리얼텍스트. 2012년 9월 17일. ISBN 978-89-964898-2-5.
  •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무소불위의 권력 검찰의 본질을 비판하다)》. 오월의봄. 2011년 11월 23일. ISBN 978-89-966875-2-8.
  • 《만화 문재인》. 마이디팟. 2012년 10월 3일. ISBN 978-89-6733-174-0.

관련 서적

  • 휴먼스토리. 《문재인 스타일 (안철수와 박원순의 아름다운 합의를 이끌어 낸 문재인식 리더십)》. 미르북스. 2011년 10월 17일. ISBN 978-89-97213-03-0.
  • 황상민. 《정치심리극장》. 리더스북. 2012년 9월 24일. ISBN 978-89-01-15081-9.
  • 조기숙. 《문재인이 이긴다》. 리얼텍스트. 2012년 11월 20일. ISBN 978-89-964896-3-4.
  • 함민복, 김민정. 《문재인 스토리 (그 남자, 문재인에 대해 알고 싶은 56가지 이야기)》. 모악. 2017년 2월 15일. ISBN 979-11-88071-00-5.

역대 선거 결과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제19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사상구) 19대 민주통합당 파일:민50.png 55.05% 65,336표 1위 사상구 국회의원 당선
제18대 대선 대통령 18대 민주통합당 파일:민10.png파일:민03.png 48.02% 14,692,632표 2위 낙선

가족 관계

문재인을 연기한 배우들

예능

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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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태명 기자 (2004년 3월 22일). “康법무 '탄핵 변론' 논의 파문 ‥ 문재인 前수석 만나”. 한국경제. 2015년 1월 24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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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1년 선후배’ 김무성-문재인, 경남중 동창회서 나란히,한겨례
  6. [뉴 파워엘리트 50인 서병수 새누리당 사무총장, 문재인·김무성과 경남고 동문… 심상정과도 ‘친분’],이투데이
  7. 서상현 기자 (2012년 9월 16일). “문재인, 1등 하면서도 별명이 문제아 두 번째 경남고 대통령 동기들 들썩”. 중앙SUNDAY. 2012년 9월 16일에 확인함. 
  8. 손병호 기자 (2012년 9월 20일). “문재인과 감나무”. 국민일보. 2012년 9월 20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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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문재인 고문 대선 출마 선언...경선 열기 고조 YTN 2012년 6월 17일
  25. 야권 단일화 협상 개시 "국민 참여 단일화" vs. "박근혜 이기는 단일화" YTN 2012년 11월 13일
  26. 안철수 후보 전격 사퇴한 이유는? 조선일보 2012년 11월 23일
  27. 안철수 후보 사퇴 배경은?‥단일화 의견차 좁히지 못해 MBC 2012년 11월 24일
  28. 이혜미, 윤여준, 文 찬조연설, "반대 진영도 설득하는 사람", 헤럴드경제, 2012년 12월 12일
  29.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5423&yy=2012
  30.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5423&yy=2012
  31.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5423&yy=2012
  32.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5423&yy=2012
  33. 문재인 "국민들께 죄송…통합·상생 정치 당부" SBS 2012년 12월 20일
  34. 1위는 한명숙, 2위는 이해찬, 3위는 박지원 순이다.
  35. 김지영, "친노, 살아있네!" 대선평가 '문재인 책임' 삭제, 데일리안, 2013년 5월 20일
  36. 손병호·우성규·백민정, '캐릭터 부재 문재인, 미숙한 사퇴 안철수' 민주당 대선평가보고서, 쿠키뉴스, 2013년 4월 9일
  37. 박석원, 문재인측 '너무 빠른 정치 복귀 아니냐' 당안팎 지적에…, 한국일보, 2013년 1월 3일
  38. 하어형, '3대비전' 가다듬는 문재인…정치복귀 수순, 한겨레, 2013년 5월 23일
  39. 전창훈, "5년 뒤엔 바꾸자"는 문재인, 대선 재도전?, 부산일보, 2013년 5월 20일
  40. 문재인, 당대표 출마 선언 "정치인생 걸겠다"…사실상 '총선 지면 정계은퇴' 중앙일보, 2014년 12월 30일
  41. 문재인 당대표 출마 선언, 대선후보 지지율 5개월만 1위 탈환! 헤럴드경제, 2014년 12월 30일
  42. "이기는 정당 만들 것" 문재인 당대표 출마선언 머니투데이 2014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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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문재인, "다운계약서 일반적 관행"‥이중 잣대 논란”. 《MBC》. 2012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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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 “노무현재단 `방북 조문' 사실상 무산”. 《연합뉴스》. 2011년 12월 20일. 
  94. “노무현 재단, 김정일 조문단 파견 결정”. 《오마이뉴스》. 2011년 12월 20일. 
  95. “[김정일 사망]“조문, 인도주의적 차원서 접근해야”… “종북좌파 주장에 경악 금할수 없다””. 《동아일보》. 2011년 12월 20일. 
  96. “北 조문 놓고 '남남갈등' 조짐…야권 "민간 조문단 구성해야". 《매일신문》. 2011년 12월 21일. 
  97. “박지원 "정부, 권양숙 여사 조문도 허용해야". 《이데일리》. 2011년 12월 21일. 
  98. 문재인 (2012년 12월 1일). “문재인 후보, 강원도 공약실천 결의 특별의총 모두발언”. 
  99. “[대선 강원공약 쟁점] 2. 동계올림픽 경기장 논란”. 《강원도민일보》. 2012년 12월 14일. 
  100. 김원덕 (2012년 12월 10일).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방해할 작정인가[논평]”. 《새누리당》. 
  101. “문재인 ‘평창올림픽 남북 분산 개최’ 언급.. 논란 재점화되나”. 《아시아투데이》. 2015년 1월 8일. 
  102. “文 "평창올림픽에 北 참가시켜 남북관계 물꼬 터야"(종합)”. 《연합뉴스》. 2017년 1월 25일. 
  103. “文 '한반도 新경제지도구상' 선언 "5.24조치 해제해야". 《MBC 뉴스데스크》. 2015년 8월 16일. 
  104. ““5·24 해제 제안 부적절” vs “전승절 행사 참석해야””. 《KBS 뉴스》. 2015년 8월 17일. 
  105. “황교안 "5·24 조치 해제, 북한 조치 선행돼야". 《YTN》. 2015년 8월 19일. 
  106. “DJ계 “문재인 제안, 햇볕정책 계승 아니다””. 《채널A 뉴스》. 2015년 8월 18일. 
  107. “국민 69% "북한 변화 없이 5.24 조치 해제 필요 없어". 《국민일보》. 2015년 8월 21일. 
  108. “문재인 "개성공단 폐쇄 결정은 박근혜 정부 최악". 《중앙일보》. 2016년 2월 12일. 
  109. “文 “전쟁이라도 하자는 건가” vs 與 “이적행위…어느나라 정치인?” 맹비난”. 《동아일보》. 2016년 2월 15일. 
  110. “문재인-한민구, 개성공단 폐쇄 놓고 '불꽃 설전'(종합)”. 《연합뉴스》. 2016년 2월 15일. 
  111. “문재인 "개성공단 폐쇄만큼 멍청한 짓이 어디있나?". 《뉴시스》. 2016년 11월 26일. 
  112. “[도올이 묻고 문재인이 답하다] “사드는 차기 정권 넘기고, 개성공단 즉각 재개해야””. 《중앙일보》. 2016년 12월 16일. 
  113. “문재인 “개성공단 폐쇄도 최순실 작품””. 《중앙일보》. 2016년 11월 26일. 2017년 2월 2일에 확인함. 
  114. “대선走者 안보관 정밀 검증해야 한다”. 《문화일보》. 2016년 12월 20일. 
  115. “유승민 " 문재인이 대통령되면 안보 걱정". 《SBS 뉴스》. 2016년 12월 27일. 
  116. “태영호는 왜 이 시점에 '공개활동' 나섰을까?”. 《프레시안》. 2016년 12월 27일. 
  117.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인터뷰 전문”. 2017년 2월 4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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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고리

전임
김한길·안철수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제2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2015년 2월 8일 ~ 2016년 1월 26일
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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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이병완
제29대 대통령비서실장
2007년 3월 12일 ~ 2008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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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우익
(대통령실장)
전임
장제원
제19대 국회의원(부산 사상구)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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