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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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鄭東泳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출생 1953년 7월 27일(1953-07-27) (65세)
대한민국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거주지 대한민국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본관 동래
학력 웨일스대학교 대학원 저널리즘학 석사
경력 MBC 기자
MBC 앵커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
새정치국민회의 당무위원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특별보좌역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 청년위원장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
한국인터넷정보학회 회장
제2대 열린우리당 의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
제31대 통일부 장관
제6대 열린우리당 의장
제17대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민주당 상임고문
민주당 최고위원
국회 남북평화특별위원회 위원장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민주당 상임고문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국민모임 인재영입위원장
국회 미래일자리 특별위원회 위원장
국민의당 국가대개혁위원회 위원장
국민의당 선거대책위원회 위원
민주평화당 당대표
배우자 민혜경
자녀 슬하 2남
종교 천주교(세례명: 다윗)
소속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15·16·18·20
정당 민주평화당
지역구 전북 전주시 병
당내 직책 당대표(2018.8.5~2020.8.4)
웹사이트 http://www.cdy21.com

정동영(鄭東泳, 1953년 7월 27일 ~ )은 대한민국의 언론인이었고, 정치인이다.

1978년 문화방송에 입사한 후 MBC 뉴스데스크의 앵커를 지냈다.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였고, 열린우리당 의장, 통일부 장관을 지냈으며, 4선 국회의원이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18년 민주평화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생애[편집]

1953년 7월 27일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정진철과 이영옥의 자녀 4명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1] 아버지 정진철은 20세 때 전남 순창군 구림면 금융조합 서기로 5년간 재직하고, 26세에 순창군 구림면장을 1년간 재직했다.[2]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었는데 훗날 중학생 시절 아버지를 가장 존경했다고 밝혔다.[3]

전주초등학교, 전주북중학교, 전주고등학교[4]를 거쳐 서울대학교에 재수로 입학해 국사학과를 전공했다.[5][6] 학창 시절 반(反)유신독재 투쟁을 벌이다 수감되었고,[7] 졸업후 1978년 문화방송에 입사해 언론인으로 변신했다. 17년간 정치부 기자, 로스앤젤리스 특파원 등을 지냈으며, 1990년대 중반에는 MBC 뉴스데스크 앵커로 활동했다.[8]

정계 입문[편집]

1996년 대학 친구이자 총리, 교육부 장관 등을 지낸 이해찬 의원의 권유를 받아[9]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고, 이후 제15대 총선에서 전주시 덕진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 전국 최다득표로 당선되어 15대 국회에 입성하며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10]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총재 특보·청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11]

2000년 '40대 기수론'을 내걸고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으로 당선되었다.[12] 이를 바탕으로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도전해 끝까지 완주했으나 노무현에게 밀려 패했다.[13]

2003년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고, 이후 동반 탈당파들이 만든 열린우리당에 참여했으며 원내대표를 지냈다.[14]

여당의 돌풍[편집]

2004년 3월 초 17대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선거중립의무 위반의 논란이 일었으며, 이에 한나라당은 민주당, 자민련 등과 연합하여 강력하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추진하였다. 이에 열린우리당은 강력하게 반발했으나, 3월 12일 국회는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롱령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이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수행은 정지되고 당시 고건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헌정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사태는 국민들의 반감과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전국적으로 탄핵을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확산되었다. 이 무렵 정동영은 비례대표 22번으로 출마하였다.

그러나 4월 1일 젊은 층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한 취지로 "어르신들은 투표를 안하고 집에서 쉬셔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그분들은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할 분들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젊은이들은 앞으로의 미래가 걸려있기 때문에 투표를 꼭 해야 합니다"라는 발언이 집중적으로 언론에 보도되었고, 이것이 노인 폄하 발언이라는 논란이 일었다.[15] 이 무렵부터 탄핵의 영향으로 상승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박근혜 대표가 취임한 한나라당이 역풍을 엎고 돌풍을 일으키면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결국 이를 무마하기 위해 비례대표직을 사퇴한다. 이후 열린우리당은 단독으로 152석이라는 과반 의석을 얻었으나, 기대에는 훨씬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이후 통일부 장관으로 재직하다가 2006년열린우리당 당 의장에 취임하여 지방선거를 지휘하였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갈수록 추락했고, 결국 지방선거에서 참패한다.

2007년 대통령 선거[편집]

2007년 1월 당시 범여권의 유력 후보로 꼽히던 고건 전 총리가 불출마를 선언했고,[16] 열린우리당에서 개편된 대통합민주신당은 곧바로 경선에 진입한다. 본인을 비롯하여 유시민, 손학규, 한명숙, 이해찬이 출마했으나, 유시민은 첫판부터 사퇴한다. 당초 손학규가 유리한 것으로 보였으나 이 과정에서 박스떼기 논란 및 국민통합추진본부의 차량 동원 의혹이 발생하였고, [17] 결국 경선은 정동영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이에 위협을 받은 친노는 한명숙이 이해찬을 지지하며 사퇴하는 등 최대한 단일대오를 구축하려 했으나, 조직력 면에서 다소 유리했으며 반노 이미지를 강조한 정동영은 극적으로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18]

그러나 당시 참여정부의 실정 등으로 사실상 여당(노무현의 탈당으로 법적으로 여당은 없었음)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의 지지율은 매우 처참했고, 정동영 본인의 지지율 또한 20%에도 달하지 못하는 등 그야말로 위기 상태였다.[19][20] 심지어 이회창이 출마하기 전 또한의 여론조사 또한 이회창보다 낮게 나오기도 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50%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달리며 당선 가능성이 유력해 보였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상대로 네거티브 전략을 펼치기도 했으나, 큰 효과는 없었으며, 또다른 범여권의 주자인 이인제문국현, 권영길 등과의 단일화를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비록 막판에 호남 및 범여권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며 이회창이 갖고 있던 2위 자리를 탈환하기도 했고[21] 개표 초반 이명박을 누르고 앞서는 등 '역전'을 기대하기도 했으나, 결국 26.1%를 득표하여 중도정당(제1당) 역사상 최저 득표율을 기록함과 동시에 이명박에게 큰 표차로 패해 낙선했다.

대선 이후[편집]

대선 패배 이후 한동안 자숙했으며, 바로 이듬해에 치러진 제18대 총선에서는 당의 요청으로 서울 동작구에서 출마하였으나 정몽준에게 패하여 낙선하였다.

2009년 4월 29일 재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0년 2월 10일 민주당에 복당했다.[22]

2015년 1월 11일에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하여 국민모임에 참여했으나.[23] 정의당과의 통합신당에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2016년 2월 18일에는 국민의당 합류를 선언하였다.[24]

20대 총선에서 전북 전주시 병 선거구(구 전주 덕진)에 출마해 현역인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전주권 최다표차로 누르고 4선에 성공하였다.[25]

2018년 2월 5일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에 반대해 국민의당을 탈당하였고, 2월 6일 창당된 민주평화당의 구성원으로 참여하였다.

2018년 8월 5일 민주평화당 대표에 당선되었다. 정동영 대표의 임기는 2020년 8월 4일까지이다. 정 신임대표는 68.57%를 득표해 41.43%를 득표한 유성엽 후보, 29.97%를 득표한 최경환 후보 등을 제쳤다.[26] 대표 당선 이후, "정의당보다 더 정의롭게 가겠다"고 하면서 '희망버스'로 상징되는 한진중공업쌍용차 해직자 분향소, 전교조 위원장의 단식 농성장 등을 방문하는 등 좌클릭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민평당은 중도개혁을 표방했기 때문에 당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27]

학력[편집]

경력[편집]

통일부 장관 재직 시절 미 국무 장관인 콘돌리자 라이스와의 회견 모습

의혹 및 논란[편집]

1997년 안기부 기획 입북 발언[편집]

1997년 오익제 천도교 교령의 월북사건이 터지자[29] 당시 정치권은 "오익제 천도교 교령이 새정치국민회의 상임 고문을 지낸 경력이 있다"며 당시 집권당인 신한국당에서 국민회의에 오익제 월북에 대한 해명을 촉구했다. 신한국당의 공세에 당시 국민회의의 정동영 대변인은 "정보기관이 밀파했을 가능성이 높고 기획입북의 가능성이 있다"며 역공세를 취했다.[30] 그러자 당시 국가안전기획부가 즉각 반박하여 국민회의당사에 안기부 요원을 파견하여, "정동영 의원을 안기부에 대한 명예훼손혐의로 조사한다"며 국민회의를 압박했다.[31] 국가안전기획부는 정동영 의원을 "국가기관인 안기부에 대한 명예훼손혐의로 형사고발한다"며 국민회의를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져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32] [33] 안기부가 국민회의 정동영 의원에 대해 "정동영 의원이 논평에서 언급한 제보자를 조사하겠다"며 수사에 나서자[34] 정동영의원은 "자신의 기획입북 주장이 오해의 소지를 사게 됐다"며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다.[35] 그러나 안기부는 기획입북 발언의 잘못을 시인까지 한 정동영 의원에 대해 "8월 27일 10시까지 안기부 청사로 나오라"며 소환을 요구하여 과거 군사정권식의 야당탄압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는 소환에 불응하였으나[36] 안기부는 소환에 불응하는 국민회의와 정동영에 대해 "강제구인의 조치가 있을 것"이라며 과거 군사정권수준의 횡포를 보여주었다.[37] 안기부는 정동영에게 2차 소환장을 보내 "정동영 의원이 소환에 불응할 경우 정식 구인하겠다"며 위협하자 [38] 정동영은 결국 9월 8일 참고인 자격으로 한 조사에서 기획입북이나 밀파 의혹 등은 제보자의 말을 설명하면서 기획입북 주장은 무의식적으로 한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고 진술했으며, 안기부 직원들의 명예를 훼손한 데 대해 사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기부는 국민회의측이 납득할 만한 사과와 해명을 하지 않을 경우 법적인 조치를 밟아 가겠다고 국민회의를 위협했다.[39] 이렇게 김영삼말기까지 대선에까지 개입하여 야당의원을 탄압하며 횡포를 부리던 안기부는 1998년 국가정보원으로 개칭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노인 폄하 논란[편집]

2004년 3월 26일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노컷뉴스-국민일보-iTV의 대학생 총선기자단 VJ팀(동영상팀)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총선에서)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해도 괜찮다. 그 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된다"는 발언으로 노인폄하 논란이 일었다.[40]

한국기자협회노컷뉴스-국민일보-iTV 총선기자단의 '정동영 노인 폄하 발언' 보도 등 총선관련 기획을 <제 17대 총선보도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미래는 20대, 30대들의 무대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면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해도 괜찮아요. 꼭 그 분들이 미래를 결정해놓을 필요는 없단 말이에요. 그분들은 어쩌면 이제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되고 20대, 30대는 지금 뭔가 결정하면 미래를 결정하는데 자기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잖아요.[41]

—  2004년 3월 26일 노컷뉴스-국민일보 인터뷰 중 정동영 발언-

이 발언이 알려지면서 야권 및 시민 단체등으로부터 노인 폄하라며 비판을 받게 되었고 대한노인회는 정동영의 정계은퇴를 요구하며 항의집회를 열기도 했다. 민주당 김재두 부대변인은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망언을 개탄한다" 고 비판했고 한나라당 한선교 대변인은 "정 의장 발언은 60~70대를 반대세력으로 선전하며 20~30대 결집을 유도한 의도적 발언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42][43] 전국노년유권자연맹 전수철 총재는“정 의장의 노인 비하 발언으로 전국 400만 노인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당시 열린우리당 박영선 대변인은 "60, 70대를 거론한 부분은 어린 학생기자들에게 미래의 주역임을 강조하다 나온 얘기로 답변의 본뜻이 아니었다"며, "정치적 관심이 높은데도 정작 투표는 잘 안하는 20, 30대에게 투표토록 독려한 게 진의였다"고 해명하였다. 또한 당시 직접 취재한 기자는 "발언이 확대보도 되고 있다"며, "우리의 모든 프로그램 전체(총 8분 내외)를 모두 보지 않은 채 그 부분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언론태도에 더욱 당황스럽다"며 "우리는 기존의 매체와는 다른 보도 형태를 보여주고자 시도하였고 우리의 순수한 동기가 조금 왜곡되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며 취재 후기를 밝혔다.[44] 그러나 파문은 가라앉지 않았고 결국 정동영은 비례대표 후보를 사퇴하며 17대 총선에서 낙선하였다.

무소속 고향 출마[편집]

2009년 4월 6일 민주당이 정동영의 전주 덕진 공천을 배제키로 최종 확정했다.[45] 그러나 이에 반발하고 국회의원 재선거에 나서겠다며 탈당했다. 이 때문에 지도부의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의도를 무효시켰다는 의견과 공천 배제 자체에 대한 실망함을 느끼는 의견 등 한동안 논란이 되었다. 한편“잠시 민주당의 옷을 벗지만 다시 함께할 것”이라며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복당할 뜻을 밝히기도 하였다.[46][47]

개성공업지구 방북 불허[편집]

"남북 관계의 숨구멍인 개성공단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 한다"를 말한 정동영의 발언에 불구하고 통일부는 그의 개성공업지구 방문을 불허하였다.[48]

폭행 피해[편집]

2011년 8월 15일 정동영은 반값등록금 시위에 참석을 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50대로 추정되는 여성에게 머리카락을 잡히며 "김대중 노무현 앞잡이, 빨갱이"라는 말을 들었다.[49]

주장[편집]

대통합민주신당 성격[편집]

2007년 5월 20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대통합민주신당을 지역주의로 규정한 것에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통합신당을 지역주의로의 회귀라거나, 호남과 충청의 연합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본질에 대한 분명한 왜곡"이라며 주장했다. 그는 "영남의 지역주의가 나쁘듯이 호남의 지역주의도 똑같이 나쁘다는 평면적인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라며 "호남의 그것은 영남의 패권적 지역주의와 차별에 반대하는 저항적이며 개혁적이고 파생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권에 대한 영남의 지지율을 올리는 것이 지역주의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접근은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굴복이며 대연정은 이 같은 시각과 인식의 산물"이라며 "대통령의 시도는 실제로도 성공하지도 못했고 지역 패권주의는 싸워야 할 대상이지 화해하거나 손잡을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열린우리당을 포함한 비한나라당 세력이 지금 통합신당을 만들려는 것은, 평화와 개혁을 지향하며 수구에 반대하는 제반 세력을 복원하려는 작업"이라며 "그것을 두고 지역연합이라든가 지역주의 부활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개혁세력의 결집을 막는 일"이라고 덧붙였다.[50]

가족[편집]

  • 아버지 : 정진철(1921년 ~ 1971년) 일제시대 전라도 순창군 면장, 전라북도 도의원
  • 어머니 : 이형옥(1918년 ~ 2005년)
  • 아내 : 민혜경(1956년 ~ )
  • 자녀 : 슬하 2남

수상[편집]

역대 선거 결과[편집]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총선 15대 국회의원 전북 전주시 덕진구 국민회의 97,858 표
89.91%
1위 국회의원당선.png 초선
총선 16대 국회의원 전북 전주시 덕진구 새천년 98,746 표
88.24%
1위 국회의원당선.png 재선
총선 17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우리당 8,128,606 표
38.26%
비례대표 22번 사퇴
대선 17대 대통령 대한민국 민주신당 6,174,681 표
26.14%
2위 낙선
총선 18대 국회의원 서울 동작구 을 민주당 36,251 표
41.50%
2위 낙선
4·29 재보궐 18대 국회의원 전북 전주시 덕진구 무소속 57,423 표
72.27%
1위 국회의원당선.png 3선
총선 19대 국회의원 서울 강남구 을 민주당 48,419 표
39.26%
2위 낙선
4·29 재보궐 19대 국회의원 서울 관악구 을 무소속 15,569 표
20.15%
3위 낙선
총선 20대 국회의원 전북 전주시 병 국민 61,662 표
47.72%
1위 국회의원당선.png 4선

저서[편집]

  • 《개나리아저씨》(1999년)
  • 《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2007년)
  • 《중산층 나라를 만들겠습니다》(2007년)
  • 《트위터는 막걸리다》(2010년) [51]
  • 《10년 후 통일》(2013년)

각주[편집]

  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0247690
  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9&aid=0000070702
  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1992557
  4.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0247690
  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0247690
  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0247690
  7.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0424940
  8.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0424940
  9.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0424940
  1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4&aid=0000130599
  1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0424940
  1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0424940
  1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8&aid=0000424940
  14.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0247690
  15. 이성규 기자 (2004년 4월 1일). "60∼70대 투표하지 않고 쉬어도 된다". 2009년 9월 22일에 확인함. 
  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19&aid=0000054946
  17. 이 당시 국민통합추진본부장이 이재명이었다. 이 국민통합추진본부의 많은 인원이 '정통들'(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재명은 대표를 하고 있었으며, 이 중 미키루크로 알려진 이상호씨도 있었다.[1][2]
  18.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12&aid=0000077716
  19.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2&aid=0000036674
  2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2&aid=0000250852
  2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19&aid=0000046578
  22. 홍상희 기자 (2010년 2월 10일). “정동영 복당...민주당 당권경쟁 본격화”. YTN. 2010년 2월 10일에 확인함. 
  2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8&aid=0003158025&viewType=pc
  24. 정동영 국민의당 입당, 무소속 뒤집고 安 손잡아… "민생정치 구현하겠다" 2016-02-19 <조선일보>
  25. <선택 4.13> '돌아온 탕자' 정동영, 전주성 금의환향
  26. “[속보] 민주평화당 새 대표에 정동영 선출”. 《중앙일보》. 2018년 8월 5일. 
  27. '좌클릭' 정동영에 엇갈린 시선...민주당도 고민”. 
  28. 2009년 4월 29일 재선거에서 당선하였다.
  29. 전 천도교 교령 오익제씨 월북,북한 도착 성명 1997. 8. 16 mbc뉴스데스크
  30. 오익제 씨 월북을 둘러싼 여야 공방 갈수록 치열 1997.8.19 mbc뉴스데스크
  31. 안기부, 오익제 입북 의혹 제기한 국민회의에 수사 협조 요청 1997.8.21 mbc뉴스데스크
  32. 정동영대변인 명예훼손 검토 1997. 8. 23 동아일보
  33. 안기부, 오익제 기획입북설 제기 정동영의원 명예훼손으로 고발 1997.8.22 mbc 뉴스데스크
  34. 기획입북설'吳風(오풍)의 눈'으로 안기부,국민회의에 수사협조요청 안팎 1997. 8. 22 경향신문
  35. 기획 입북, 그런 뜻이 아니고 "물러선 정동영" 1997. 8. 23 동아일보
  36. 국민회의'鄭(정)대변인 출두'거부 1997. 8. 27 경향신문
  37. 국민회의-안기부 갈등 증폭 1997. 8. 30 경향신문
  38. 「吳益濟(오익제)씨 입북」北(북)서 유인 1997. 8. 29 동아일보
  39. 안기부,국민회의의 오익제 기획입북설은 꾸민 말 1997. 9. 11 mbc뉴스데스크
  40. ″60∼70대 투표 안해도 된다″ 鄭의장,본보 총선기자단 인터뷰 발언 파문 국민일보 2004-04-01
  41. 정동영 발언 동영상
  42. 정동영 60, 70대 유권자 폄하발언 논란 :: 네이버 뉴스
  43. <한.민 `노인 폄하' 공세계속> :: 네이버 뉴스
  44. 류정민 기자 (2004년 4월 2일). ““정동영 발언, 확대보도 당황스러워””. 미디어오늘. 2010년 5월 6일에 확인함. 
  45. 민주당, '정동영 고향공천 배제' 확정
  46. 정동영씨 무소속 출마 실망스럽다
  47. 정동영 배제? 민주, 전주덕진 전략공천키로
  48. 통일부, 정동영 개성공단방북 불허통보 2010-12-27 연합뉴스
  49. 정동영, 보수단체 회원에 머리칼 잡혀 2011-08-15 중앙일보
  50. 정동영 " 盧, 지역주의 인식에 문제 있다"
  51. 저자 이름은 트위터 아이디인 @coreacdy로 표기되어있다.

외부 링크[편집]

전임
정세현
제31대 통일부 장관
2004년 7월 1일 ~ 2006년 2월 9일
후임
이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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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탄
제15대 국회의원(전북 전주시 덕진구)
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
후 임
정동영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전 임
정동영
제16대 국회의원(전북 전주시 덕진구)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새천년민주당무소속열린우리당
후 임
채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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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전 임
김세웅
제18대 국회의원(전북 전주시 덕진구)
2009년 4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무소속민주당민주통합당
후 임
김성주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전 임
(완산구 갑)김윤덕
(완산구 을)이상직
(덕진구)
김성주
제20대 국회의원(전북 전주시 병)
2016년 5월 30일 ~ 2020년 5월 29일
국민의당무소속민주평화당
(전주시 갑)김광수
(전주시 을)정운천
후 임
(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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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김원기
제2대 열린우리당 의장
2004년 1월 11일 ~ 2004년 5월 17일
후임
신기남
전임
유재건(비상집행위원장)
제6대 열린우리당 의장
2006년 2월 18일 ~ 2006년 6월 9일
후임
김근태
전임
조배숙
제2대 민주평화당 대표
2018년 8월 5일 ~
후임
(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