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인노첸시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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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노첸시오 3세
Innozenz3.jpg
본명 로타리오 데이 콘티 디 세니
임기 시작 1198년 1월 8일
임기 종료 1216년 7월 16일
전임 첼레스티노 3세
후임 호노리오 3세
탄생 1161년
이탈리아 아나니
선종 1216년 7월 16일
이탈리아 페루자

교황 인노첸시오 3세(라틴어: Innocentius PP. III, 이탈리아어: Papa Innocenzo III)는 제176대 교황(재위: 1198년 1월 8일 ~ 1216년 7월 16일)이다. 세속명은 로타리오 데이 콘티 디 세니(이탈리아어: Lothario dei Conti di Segni)이다. 교황권의 전성기를 이룩하여 “교황은 태양, 황제는 ”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어 중세 시대의 교황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교황으로 손꼽힌다.

생애[편집]

이탈리아의 아나니에서 출생하였으며 교황 클레멘스 3세의 조카이다. 일찍이 그는 볼로냐파리에서 유명한 교수들 밑에서 최우수 공부하여 최우수 신학자와 법률가의 명성을 얻었다. 삼촌인 교황에 의해 부제 추기경이 되어 교황청에 근무하면서 신학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교황 첼레스티노 3세가 서거하자 교황 선거에서 만장 일치로 37세의 나이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인노첸시오 3세는 능력 있는 사람들을 대거 고위 성직자로 임명하여 교황청의 행정부를 재구성하였다. 이는 실제로 교황령 안에서 교황의 권위를 재정립하는 예비 단계였다. 이는 그의 단호한 행정 능력의 결과였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6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권력 다툼으로 혼란에 빠져 이탈리아 안에서 신성로마제국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독일인들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반감이 작용하여 인노첸시오 3세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교황청의 세력을 넓혀 가며 교황령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인노첸시오 3세는 교황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잘 알고 있었으며 단호하면서도 유연하였고 특히 언변과 문장력에 뛰어났다. 그 당시 인노첸시오 3세를 당할 사람은 없었다. 그는 강론에서 교황 자신은 하느님보다 못하지만 인간보다는 높다고 천명하였다. 그리고 그 말대로 인노첸시오 3세는 교황직을 엄격한 신권 정체적 입장에서 행사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영적인 권력과 세속적인 권력 모두를 장악하였다. 세속적인 책무란 모든 권력이 교황을 통하여 군주들에게 위임되므로 모든 군주들은 마치 태양의 빛을 받는 것처럼 교황에게 예속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정치 문제에 관여함으로써 교황직을 서유럽을 완전히 장악하는 권위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왕들은 자신들의 왕위를 유지하기 위해 교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자신의 왕국을 바치고 그것을 다시 봉토로 받아 다스리는 형식을 취하였다. 또한 교황청에게 매년 조공을 바쳤다.

인노첸시오는 많은 법령들을 반포하였다. 6천 통의 서한을 보내고 교회법 학자들을 장려하였다. 그리고 추기경 회의를 정지적으로 주관하고 추기경들에게 많은 권한을 주어 교황과의 알력이 일어나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를 열어 교회의 광범위한 조직과 제도를 쇄신하였다.

1204년 인노첸시오 3세는 제4차 십자군을 제창하고, 1209년에는 제5차 십자군을 제창하였다. 프랑스 남부를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 운동인 알비파가 일어나 인노첸시오 3세는 자신의 재위기간 중 많은 부분을 알비파를 탄압하는 데 보냈다. 그는 로마 가톨릭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교황청의 특사를 살해한 알비파를 로마 가톨릭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이들을 응징하기 위해 십자군을 편성하였다. 로마 가톨릭과 알비파의 싸움은 크게 확대되어 14년 간의 치열한 전쟁 끝에 1240년에 이르러서야 평정되었다. 인노첸시오는 최초로 공인된 탁발 수도회인 도미니코회프란체스코회를 공식 인가하였다.

바깥 고리[편집]

전 임
첼레스티노 3세
제176대 교황
1198년 1월 8일 ~ 1216년 7월 16일
후 임
호노리오 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