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포르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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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모소
PopeFormosusBW.jpg
임기 시작 891년 9월 19일
임기 종료 896년 4월 4일
전임 스테파노 5세
후임 보니파시오 6세
탄생 816년
이탈리아 오스티아
선종 896년 4월 4일
이탈리아 로마

교황 포르모소(라틴어: Formosus, 이탈리아어: Papa Formoso)는 제111대 교황(재위: 891년 9월 19일 - 896년 4월 4일)이다.

포르모소는 로마 태생으로 유능한 인물이었다. 학문과 뛰어난 수덕 생활로 인해 그는 864년 포르토 교구의 주교가 되어 교황 니콜라오 1세교황 하드리아노 2세 그리고 교황 요한 8세에 의해 프랑크 왕국독일의 교황 사절로 파견되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고 불가리아에 파견되어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여 보리스 왕이 불가리아 교구의 대주교 사목권을 그에게 주려고 하자 교황 요한 8세가 이를 거부한 적도 있었다. 그는 869년 로마의 지방 공의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어 포티우스를 단죄하였다. 요한 8세가 정치적인 음모와 경쟁자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를 강등시키고 파문하자 878년 평신도 집회에 참가하여 포르토 교구에 복귀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4년 후 교황 마리노 1세는 프랑크 왕국에 귀양 가 있던 그를 로마로 불러 포르토 교구에 복귀시켰다. 그러자 그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 891년 교황이 되었다.

포르모소는 잉글랜드 왕국독일 북부의 선교 활동을 지속시키고 파리외드에 대항하여 단순왕 샤를을 지지하였다. 비잔티움 제국에 대해서는 요한 8세의 유화 정책을 펴 나갔다. 이탈리아에서는 982년 스폴레토의 귀도 3세를 강요하여 황제 대관식을 거행하고 그의 아들 스폴레토의 람베르트를 공동 황제가 되게 했다.

이들로부터 로마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포르모소는 케른텐의 아르눌프를 만나 896년 그를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만들었다. 그 후 황제가 반신불구가 되어 거동이 불편해지자 람베르트가 로마에서 과거에 누리던 권위를 회복하게 되었다. 포르모소는 896년에 선종하였다.

897년 람베르트는 지방 공의회를 열게 하여 포르모소의 교황직이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9개월 전에 장사 지낸 포르모소의 시신을 무덤에서 끌어내어 회의장에서 모욕적인 재판을 한 후 사형을 언도하고 오른손의 손가락과 몸을 자른 후 테베레 강에 던져 버렸다. 이 시체 공의회는 이탈리아를 둘로 분열시켰다. 한 쪽은 포르모소가 집전한 서품의 유효성을 주장하고 다른 쪽은 부인하였다. 그 영향은 오래 지속되었다. 교황 요한 9세는 포르모소 교황을 복귀시켰으나 교황 세르지오 3세는 시체와 같은 그 공의회의 결정을 부활시키고 포르모소의 지지자들이 쓴 옹호글들을 단죄하였다. 이때부터 이른바 교황직의 암흑기가 시작되어 1049년까지 지속되었다.

전 임
스테파노 5세
제111대 교황
891년 9월 19일 - 896년 4월 4일
후 임
보니파시오 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