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인노첸시오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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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노첸시오 4세
Innocent IV - Council of Lyon - 002r detail.jpg
본명 시니발도 데 피에스키
임기 시작 1243년 6월 25일
임기 종료 1254년 12월 7일
전임 첼레스티노 4세
후임 알렉산데르 4세
탄생 1195년
이탈리아 마나롤라
선종 1254년 12월 7일
이탈리아 나폴리

교황 인노첸시오 4세(라틴어: Innocentius PP. IV, 이탈리아어: Papa Innocenzo IV)는 제180대 교황(재위: 1243년 6월 25일 ~ 1254년 12월 7일)이다. 세속명은 시니발도 데 피에스키(이탈리아어: Sinibaldo de Fieschi)이다.

1200년 이탈리아제노바에서 라바냐의 백작 후고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교황 하드리아노 5세와 여러 추기경들을 배출한 힘 있는 가문 출신이었다.

일찍이 볼로냐에서 교회법과 로마법을 공부한 후 파르마에서 의전 사제 역할을 하던 중 1226년 교황청의 관리와 1227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추기경이 되었다. 전임 교황 첼레스티노 4세의 선정 후 교황좌가 18개월간 공석이었을 때 시니발도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파문 중에 있던 황제는 교황 선거에 압력을 넣어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조정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교황 재위는 대부분 신성로마제국 황제와의 갈등 속에 보냈다. 재위 초창기에는 프리드리히 황제와 사이가 좋았으나 롬바르디아 지역을 놓고 좋은 관계는 깨지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교황은 황제가 자기를 체포하려는 시도를 알아채고 이탈리아를 떠나 리움에 정착하여 1251년까지 거기에 머물렀다. 교황은 프랑스의 루이 9세에스파냐잉글랜드 왕국의 주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교황은 1245년 6월 리옹에서 공의회를 소집하여 긴급한 문제들과 신성로마제국의 압력에 대한 대처 방법을 논의하였다. 공의회에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은 프리드리히 황제는 공의회가 열리기 전에 화해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만다. 이 공의회로 인해 황제에 대한 여러가지 죄목(위증, 이단, 첫 번째 파문을 지키지 않은 것)을 고발하였다. 교황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자들을 권고하여 황제가 퇴위될 경우 새로운 황제를 뽑게 하였다. 그리하여 하인리히 라스페가 뽑혔으나 그는 프리드리히 황제를 당해낼 수 없었다. 황제는 교황을 체포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십자군에 진력하다가 1248년에 죽어 강력한 신성로마제국의 꿈은 사라지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이 갈등은 교황의 승리로 끝나 롬바르디아시칠리아를 지배하려는 호헨슈타우펜 가문의 꿈은 좌절되었다.

인노첸시오 4세는 제국에 대한 승리를 공고히 하는 데 진력하였다. 첫 단계로서 프리드리히 황제의 후임자인 네델란드의 빌렘을 인정했기때문에 프리드리히의 아들 콘라트 4세가 제국의 영토를 차지하지 못하게 하였다. 두 번째 단계는 시칠리아를 제국에 넘겨주지 않고 그 영토를 교황의 통치하에 두는 것이었다.

그는 전 교회의 과세 대상의 능력을 이용하여 교황청의 재정을 충당하게 하였고 이탈리아의 많은 성직자들이 특히 잉글랜드 왕국에서 성직 서임을 받게 하였다. 그러자 링컨의 주교 로버트 그로스테스트가 지나친 성직 서임에 항의하여 잉글랜드 왕국에서는 과세 방법이 다소 완화되었다.

황제와 겪은 큰 갈등으로 인해 인노첸시오 4세의 다른 활동들, 특히 십자군 원정과 선교 사업은 약화되었다. 리옹 공의회에서 타타르족의 공격을 받은 동유럽을 돕기 위해 새 십자군 창설을 요구하였고 동방 정교회와의 분열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협상을 벌였다. 교황은 누미디아에티오피아에 수도사들을 파견하였다.

교회법 학자로서 그는 교황직의 문제들과 연관된 칙서를 남겼다. 내용은 영적인 권력과 세속적인 권력의 관계와 비(非)그리스도인 통치자가 그리스도인들을 통치하는 권력과 법의 본성에 대한 것이다.

재위 중 제7차 십자군 원정(1248년-1254년)이 있었다. 원래 이 원정은 프랑스의 루이 9세의 서원에서 이루어졌다. 1249년 6월 7일 다미에타 성을 함락시켰으나 작전 실패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전 임
첼레스티노 4세
제180대 교황
1243년 6월 25일 ~ 1254년 12월 7일
후 임
알렉산데르 4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