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첼레스티노 5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첼레스티노 5세
Celestin 5 statue.jpg
본명 피에트로 델 모로네
임기 시작 1294년 7월 5일
임기 종료 1294년 12월 13일
전임 니콜라오 4세
후임 보니파시오 8세
탄생 1215년
이탈리아 이세르니아
선종 1296년 5월 19일
이탈리아 페렌티노

교황 첼레스티노 5세(라틴어: Papa Caelestinus V, 이탈리아어: Papa Celestino V)는 제192대 교황(재위: 1294년 7월 5일 - 1294년 12월 13일)이다. 세속명은 피에트로 델 모로네(이탈리아어: Pietro da Morrone)이다.

생애[편집]

1215년 이탈리아의 이세르니아에서 태어났고 파이폴리에 있던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였으나 조용한 삶을 좋아하여 몬테팔레노, 몬테모로네, 몬테마옐라에서 은수 생활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주었고 첼레스티노회를 조직하였다.

1292년 4월 4일 전임 교황 니콜라오 4세가 선종한 후 오르시니 가문콜론나 가문이 각각 교황 후보자를 내었으나 서로 양보하지 않았다. 약 2년 이상 질질 끌던 중 나폴리의 카를로 2세의 영향을 받은 추기경들은 영향력이 없는 피에트로 델 모로네 은수자를 교황으로 선출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1294년 8월 27일에 주교로 수품받고 이틀 후에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교황은 샤를 2세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행정력은 거의 없었다. 샤를 2세의 영향으로 추기경 12명(프랑스인 7명, 이탈리아인 5명)을 임명하였다. 샤를의 아들 툴루즈의 루이는 리옹의 대주교가 되었다. 교황은 너무 단순하여 발표한 칙서나 여러 호의(favor)들은 문제가 많았다. 그리하여 후임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전임 교황이 베푼 여러 가지 특전과 칙서를 로마로 보내게 하여 재심사하기까지 하였다.

교황은 자신의 무능을 깨닫고는 교황이 사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헌장을 발표하고 3일 후에 자유로이 사임하였다. 보니파시오 8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의 동시대 학자들은 교황 사임의 유효성과 타당성에 대하여 공공연히 토론하였다. 그 후 첼레스티노 5세는 보니파시오 8세에 의해 몬테푸모네 성에 거주하게 되어 외부인과의 접촉이 차단되었다.

전 임
니콜라오 4세
제192대 교황
1294년 7월 5일 - 1294년 12월 13일
후 임
보니파시오 8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