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호노리오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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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노리오 4세
PopeOnorioIV.jpg
본명 자코모 사벨리
임기 시작 1285년 4월 2일
임기 종료 1287년 4월 3일
전임 마르티노 4세
후임 니콜라오 4세
탄생 1210년
이탈리아 로마
선종 1282년 4월 3일
이탈리아 로마

교황 호노리오 4세(라틴어: Papa Honorius IV, 이탈리아어: Onorio PP. IV)는 제190대 교황(재위: 1285년 4월 2일 - 1287년 4월 3일)이다. 세속명은 자코모 사벨리(이탈리아어: Giacomo Savelli)이다. 주로 시칠리아의 문제 해결과 교황청과 아라곤 사이에 평화를 수립하는 데 진력하였다.

생애[편집]

1210년 로마 귀족 가문 중의 하나인 사벨리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교황 호노리오 3세를 비롯하여 저명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교황이 되기 전의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파리에서 수학한 후 1261년 교황 우르바노 4세에 의해 추기경이 되어 시칠리아 문제에 개입하여 교황청 대변인으로 일하였다. 1265년 추기경 위원회의 위원이 되었고 1276년에는 앙주의 샤를합스부르크 왕가 사이에 평화 수립 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관절염으로 인해 불구자였다) 교황 마르티노 4세가 선종한 지 1주일 만에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친(親)앙주 정책을 강력히 밀고 나간 전임 교황과는 다른 정책을 펴리라는 기대가 있었으므로 교황으로 선출되었는데 출신 가문과 앙주 왕가 사이에 맺은 오랜 영향으로 인해 전임 교황 마르티노 4세와 같은 정책을 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282년 앙주 샤를프랑스 주둔 군대가 팔레르모에서 저녁 기도 때에 학살된 사건이 일어났다. (이른바 "시칠리아 만종 사건")

그리하여 시칠리아는 교황의 뜻을 반대하고 아라곤 왕국의 수중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교황은 시칠리아에서 교황의 종주권을 회복하고 앙주 왕국의 회복을 추구하였다. 이 정책은 그 때까지 시칠리아를 지원해 온 아라곤의 페드로 3세와 문제가 되었다. 프랑스의 필리프 3세는 교황의 요청을 받아들여 피레네 산맥을 넘어 아라곤을 침공하여 아라곤인들이 시칠리아를 떠나게 하였다. 그러나 두 왕들의 서거로 이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또한 앙주의 샤를1285년 1월 6일에 사망하고 그의 아들 살레르노의 샤를은 아라곤에서 볼모로 붙잡혔으므로 풀려 나기 위해 앙주 왕가시칠리아를 포기한다는 문서에 서명을 하였다. 교황은 이 협상이 시칠리아에 대한 교황청의 개입을 포기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교황의 선종으로 인해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교황은 시칠리아르 포기할 뜻은 없었으나 프랑스인들이 시칠리아인들을 박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종식시키려고 노력하였으며 1285년 9월 17일 시칠리아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두 칙서를 발표하였다. 교황에 의해 파리 대학교에 동방 언어 학원이 설립되었다.

전 임
마르티노 4세
제190대 교황
1285년 4월 2일 - 1287년 4월 3일
후 임
니콜라오 4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