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호노리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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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노리오 2세
Pope honorius ii.jpg
본명 람베르토 스칸나베키
임기 시작 1124년 12월 15일
임기 종료 1130년 2월 13일
전임 갈리스토 2세
후임 인노첸시오 2세
탄생 1036년
이탈리아 파냐노
선종 1130년 2월 13일
이탈리아 로마

교황 호노리오 2세(라틴어: Honorius PP. II, 이탈리아어: Papa Onorio II)는 제163대 교황(재위: 1124년 12월 15일 - 1130년 2월 13일)이다. 세속명은 람베르토 스칸나베키(이탈리아어: Lamberto Scannabecchi)이다.

생애[편집]

이탈리아의 이몰라 근처 파냐노에서 출생하였으며 출생 연도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방면에 박식하여 교황 우르바노 2세교황청의 일을 보게 되었고 1117년 교황 파스칼 2세에 의해 추기경이 되었다. 교황청 사절로서 그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은 전암 교황 갈리스토 2세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5세를 만나 보름스의 정교 협정을 성사시킨 일이다. 전임 교황의 선종 후 차기 교황 선출을 놓고 로마의 두 귀족 가문인 피에를레오니 가문과 프란지파니 가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문제가 심각해졌다. 첫 번 째 콘클라베1124년 12월 15일 프란지파니 가문의 지지 하에 람베르토를 선출하여 호노리오 2세로 명명하였으나 반대파 피에를레오니 가문의 지지로 테오발도 부카페치 추기경을 선출하였다. 그러나 람베르토가 추기경들의 지지를 더 많이 받았으므로 테오발도는 지지자들을 잃고 스스로 물러났다. 그러자 12월 12일 호노리오 2세도 사임하여 추기경들로부터 재신임을 받았다.

1125년 하인리히 5세가 서거하자 호노리오 2세는 로타르 3세를 지지하였다. 호엔슈타우펜프리드리히 공작이 로타르 3세를 반대하여 스스로 황제로 선포하자 호노리오 2세는 그를 파문함으로써 로타르 3세를 지지하는 입장을 확실히 하였다. 호노리오 2세는 교황령 안에서 반대파 귀족들을 평정하였다. 그리고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교회 개혁 정책을 펴 나갔다.

1128년에 성지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설립된 성전 기사단을 인가하였다.

호노리오 2세의 임종 순간에 일찍이 교황 선출 당시에 문제를 일으킨 두 가문이 모여 차기 교황 선출을 놓고 실랑이를 벌였다.

전 임
갈리스토 2세
제163대 교황
1124년 12월 15일 - 1130년 2월 13일
후 임
인노첸시오 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