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에우제니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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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제니오 3세
B Eugen III.jpg
본명 베르나르도 데이 파가넬리
임기 시작 1145년 2월 15일
임기 종료 1153년 7월 8일
전임 루치오 2세
후임 아나스타시오 4세
탄생 미상
이탈리아 피사
선종 1153년 7월 8일
이탈리아 티볼리

교황 에우제니오 3세(라틴어: Eugenius PP. III, 이탈리아어: Papa Eugenio III)는 제167대 교황(재위: 1145년 2월 15일 - 1153년 7월 8일)이다. 세속명은 베르나르도 데이 파가넬리(이탈리아어: Bernardo dei Paganelli)이다.

생애[편집]

이탈리아의 피사 태생이며 파가넬리 디 몬테마뇨 가문 출신인 듯하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의 열렬한 추종자이며 클레르보의 시스테르시안 수사이자 성 빈첸시오와 아나스타시오 수도원의 아바스로 있던 중 전임 교황 루치오 2세가 선종한 바로 그 날 교황으로 선출되어 베르나르도와 수도원의 가족들은 놀라고 당황하였다고 한다.

1145년 12월 로마는 에우제니오 3세가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고 성탄절을 지낼 수 있게 하였다. 귀족 계급은 폐지되고 원로원만 남아 있었다. 브레시아의 아르놀드가 로마에서 반란을 일으켜 에우제니오 3세는 1146년 1월 로마를 떠나 북쪽으로 피신하였다. 1147년 에우제니오 3세는 피사피렌체를 경유하여 1148년 6월에야 로마에 귀환하였다.

1145년 12월 1일 첫 번째 십자군 모집 칙서 《Bulla cruciata》에서 에우제니오 3세는 십자군을 모집하기로 결정하고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에게 그 모집을 위한 설교를 맡겼다. 그러나 1147년에 실시된 제2차 십자군 원정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영국에서 정치적·종교적 문제가 일어났다. 에우제니오 3세는 요크의 대주교 윌리엄을 파직시키고 캔터베리 대주교 테오볼드를 지지하였으며 대주교의 제안을 받아들여 스티븐 을 배척하지 않았다. 에우제니오 3세는 니콜라스 브레이크스피어추기경으로 임명하여 스칸디나비아교황청 사절로 파견하였다.

에우제니오 3세는 파리 시에서 지방 공의회를 열고 랭스에서 중요한 공의회를 열어 성 베르나르도의 영향을 받아 질베르 드 라 포레의 제안을 수정하여 하달하였다. 1139년 라테란 공의회의 개혁 규정들이 이곳에서 재차 발표되었다. 비테르보에서 에우제니오 3세는 동방 정교회의 성직자들의 대표를 받아들이고 그들과 토론하였다.

1872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복자로 시복되었다.

전 임
루치오 2세
제167대 교황
1145년 2월 15일 - 1153년 7월 8일
후 임
아나스타시오 4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