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2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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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22세
John22.jpg
본명 자크 뒤즈
임기 시작 1316년 8월 7일
임기 종료 1334년 12월 4일
전임 클레멘스 5세
후임 베네딕토 12세
탄생 1245년
프랑스 카오르
선종 1334년 12월 4일
프랑스 아비뇽

교황 요한 22세(라틴어: Ioannes PP. XXII, 이탈리아어: Papa Giovanni XXII)는 제196대 교황(재위: 1316년 8월 7일 - 1334년 12월 4일)이다. 세속명은 자크 뒤즈(프랑스어: Jacques Duèse)이다.

생애[편집]

1245년경 프랑스의 카오르에서 태어나 파리오를레앙에서 신학과 법학을 공부한 후 카오르와 툴루즈에서 교회법과 시민법을 가르쳤다. 1309년 나폴리 왕국의 재상이 된 후 1312년에는 추기경이 되었다. 전임 교황의 선종 후 2년 3개월간 교황좌가 공석이었을 때 리옹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재위 중 프란체스코 수도회와 공의회 우위설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청빈 문제가 교회 안에서 복잡하게 꼬이고 있었다. 요한 22세는 즉위하자마자 극단적으로 청빈 실천을 주장하는 프란체스코 회원들을 반대하는 칙서 셋을 발표하여 25명을 종교 재판에 회부하여 4명을 화형시키는 극단적 조치를 취하였다. 또한 칙서 둘을 발표하여 복음적 청빈에 대한 그들의 이론을 반대하였다. 이어서 나온 두 칙서도 같은 내용을 다루었다. 이런 일이 있자 베르가모의 보나그라티아오컴의 윌리엄의 지지를 받던 수도회 총장 체제나의 미켈레는 아비뇽에서 이탈리아로 피신하여 교황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교황을 공의회에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지도적인 노수도사 카잘레의 우베르티노1329년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요한 22세는 교회 조직의 재정비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교황청을 확대시키는 동시에 부분적으로 재정비하고 아비뇽에 거처를 공고히 하였다. 그가 교황에 피선되었을 당시에는 교황청의 재정이 문제가 많았으나 선종 당시에는 재정이 탄탄하였다.

요한 22세 이후 아비뇽에 거처한 교황들은 프랑스의 앞잡이라는 누명을 쓰게 되었고 족벌주의를 남발했다는 오명을 남겼다. 또한 역대 '요한' 을 선택한 교황들은 이처럼 암살당하거나 병사하는 등 대부분 짦은 기간을 지낸 탓에 1958년 요한 23세가 선출되기까지 약 7세기동안 '요한' 이름을 선택한 교황은 없었다.

전 임
클레멘스 5세
제196대 교황
1316년 8월 7일 - 1334년 12월 4일
후 임
베네딕토 1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