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바오로 2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바오로 2세
Pietrobarbo.jpg
본명 피에트로 바르보
임기 시작 1464년 8월 30일
임기 종료 1471년 7월 26일
전임 비오 2세
후임 식스토 4세
탄생 1417년 2월 23일
이탈리아 베네치아
선종 1471년 7월 26일
이탈리아 로마

교황 바오로 2세(라틴어: Paulus PP. II, 이탈리아어: Papa Paolo II)는 제211대 교황(재위: 1464년 8월 30일 - 1471년 7월 26일)이다. 세속명은 피에트로 바르보(이탈리아어: Pietro Barbo)이다.

생애[편집]

1417년 2월 23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교황 에우제니오 4세의 조카로 태어났다. 청년기를 피렌체에서 보낸 그는 볼로냐부제, 체르비아와 비첸차의 주교가 된 후 23세에 추기경이 되었다. 교황 니콜라오 5세교황 갈리스토 3세 치하에서 교황청에서 많은 일들을 하였고 1456년캄파니아와 해변 지역의 총독에 임명되었다.

전임 교황 비오 2세의 후임자를 선출하기 위한 전날 밤에 추기경들의 협약이 있었는데, 그것은 추기경단 수를 24명으로 고정시키고 교회를 쇄신하며 교황 재위 중 3년 안으로 공의회를 열고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피에트로는 첫 번째 투표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나 선출되기 전의 협약을 발표하는 칙서는 내지 않았다.

바오로 2세는 권위를 내세우는 것을 좋아하여 세속의 군주처럼 교황직을 수행해 나갔다. 그는 문예 부흥을 일으켰으나 엄격히 말해 인문주의자는 아니었다. 예를 들면, 바오로 2세는 1468년 이교도적인 태도를 보인 폼포니우스 레투스가 창설한 로마 학술원을 해체시켰다. 그러나 바오로 2세는 주위에 수많은 학자들을 두고 있었고 1465년 수비아코에 이탈리아 최초로 인쇄소를 세우게 하였다. 권위와 허영을 다소 좋아한 바오로 2세의 취향은 유명한 베네치아 궁전에서 드러났다. 이 별궁은 1455년에 시작하여 1466년에 완공되었는데 이후 바오로 2세의 주요 거처가 되었다.

재위 중 바오로 2세는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벌였다. 1464년 전쟁 기금을 모금하여 1466년 알바니아 출신 스칸데르베그 장군에게 전달하였다. 교황청의 이익을 위하여 오스만 제국과의 알루미늄 거래를 금지시켰다. 1470년 7월 베그로폰트 요새가 오스만군에게 함락되었다.

바오로 2세는 체히와 연계하여 제오르지오 포데브라드와 후스파 이단을 반대하고 프라티첼리 이단의 근절을 위해서도 노력하였다. 바오로 2세의 선동으로 헝가리 마티아스 코르비누스가 포데브라드 왕에게 전쟁을 선포하였다. 바오로 2세는 포데브라드의 퇴위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포데브라드는 프랑스의 왕 루이 11세의 지원을 받아 굳건하였다. 두 왕은 공의회의 소집을 요구하였다. 바오로 2세는 루이 11세와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하여 루이와 그 후계자들에게 '가장 그리스도인다운 왕'이라는 칭호를 수여하였다.

바오로 2세는 1470년 8월 19일 칙서를 발표하여 25년마다 성년을 개최하기로 하고 첫 번째 성년을 그 해에 개최하도록 지시하였다. 1471년 페라라에서 공의회를 열기로 하고 동방 정교회와 화해를 시도하였다. 페르시아 제국의 황태자 우좀하산과 협상을 하여 오스만 제국을 견제하려고 하였다.

전 임
비오 2세
제211대 교황
1464년 8월 30일 - 1471년 7월 26일
후 임
식스토 4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