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시의 클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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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클라라

아시시의 클라라(이탈리아어: Santa Chiara, 1194년 7월 16일 - 1253년 8월 11일)는 로마 가톨릭수녀이자 클라라 수녀회의 창설자이다. 로마 가톨릭의 성인. 축일은 8월 11일. 클라라라는 이름은 ‘밝다’는 뜻의 라틴어 클라룸(clarum)에서 유래하였다. 상징물은 성체안치대와 백합·십자가·책·등불 또는 행진에 사용하는 제등이며, 수를 놓은 사람·청소부·도금장이·맹인·다림질을 하는 사람·텔레비전 시청자의 수호 성녀이다. 수녀원장의 지팡이를 들고 프란체스코회 수녀복 차림을 한 젊은 여인으로 그려진다.

행적[편집]

이탈리아 아시시의 귀족 가문 오프레두초의 클라라(Chiara Offreduccio)는 1212년 열여덟 살 때 성지주일 밤에 사람들이 모두들 잠든 사이에 부모의 곁을 떠나 가출하였다. 성 프란체스코의 모범에 크게 감명을 받은 클라라는 그를 따라 모든 세속적인 재산을 버리고 수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바스티아의 베네딕토 수도원의 산탄젤로 디 판초 성당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클라라와 그녀의 친구들은 프란치스코가 마련해준 산 다미아노 성당 근처의 작은 수녀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클라라는 1215년 가난한 자매들의 모임의 새로운 공동체를 지도하는 수녀원장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클라라는 언제나 자신을 그리스도와 가난한 자매들의 여종 내지는 시녀라고 불렀다. 이 수녀회의 극빈한 생활에 동참한 여인들 중에는 클라라의 어머니와 여동생도 있었다. 이들은 프란치스코가 자신의 생활양식과 비슷한 신앙적 권고로 작성하여 준 생활양식에 따라 일체의 물건이나 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자선품에 의존하며 살았다. 클라라는 프란치스코 수도규칙과 우고리노 회칙을 기초로 새로운 수녀회의 규율을 정했으며 1228년 이 규율에 대한 인준을 요청하였으나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승인을 거절하였다. 1240년에 클라라는 아씨시를 침공한 사라센인들을 쫓아내는 기적을 행하였다.

클라라는 1243년에 다시 자신이 작성한 회칙의 인준을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게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으며 그녀가 죽은 해인 1253년 8월 9일에서야 겨우 교황 인노첸시오 6세의 재가를 받았다. 그토록 원하던 교황 칙서를 첨부한 자신이 만든 수도회칙을 받은 클라라는 크게 기뻐하였으며, 그로부터 하루가 지난 8월 10일 세상을 떠나였다. 클라라는 임종 직전에 여러 동정녀 순교자들을 보았다고 하며, 그녀가 본 성녀들은 대략 드래곤을 가진 성녀 마르가리타와 물동이를 든 성녀 마르타, 탑을 든 성녀 바르바라, 바퀴를 든 성녀 카타리나, 꽃을 든 성녀 도로테아였다고 한다.

그녀가 숨을 거둔 지 2년이 흐른 후, 1255년 성인품에 올랐다. 1850년에 클라라의 무덤을 열어 보았더니 시신이 부패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여 성 클라라 성당의 지하무덤으로 옮겨 안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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