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니아의 마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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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르타

마르타(아람어: מַרְתָּא, ? - ?)또는 마르다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던 여인들 가운데 하나로 라자로(나사로)가 오빠이며,마리아 막달레나(막달라 마리아)가 동생이다. 기독교성녀로, 축일은 7월 29일이며, 성공회에서는 여동생인 마리아와 함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는다. 아람어로 ‘부인’ 또는 ‘여주인’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성화에서 그녀는 흔히 그릇과 성수기를 들고 있는 여인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림에서 마르타의 특성은 주로 예수를 환대하는 루가 복음서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화가들은 외경에 전하는 전설을 바탕으로 마르타를 그리기를 더 선호했다.

이름의 번역[편집]

한글개역판, 표준새번역,개역개정판은 마르다, 공동번역성서에서는 마르타라고 번역되어 있다. 영문성서 NIV에서는 Martha로 번역되었다.

복음서에서의 묘사[편집]

마르타는 복음서에서 총 세 번 나온다.

요한복음서에서의 묘사[편집]

첫 번째는 요한 복음서의 보도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빠 라자로를 되살리기 위해 베다니아(베다니)를 방문했을 때 마르타는 공개적으로 예수그리스도로 고백하였다.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라고 물으셨다. 마르타는 “예,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요한 11:25-27)

요한은 마르타가 예수께서 예수 수난일(성 금요일)을 엿새 앞두시고, 베다니아에 가셨을 때 식탁 봉사를 하고 있었다고(요한복음서 12:2) 설명한다. 이에 대해 성서학자들은 “봉사하다”라는 뜻의 헬라어 디아코네인(Diakonein)과 부제를 뜻하는 헬라어 디아코노스(Diakonos)가 같은 말뿌리(語根)을 갖고 있다는 점을 들어, 요한이 마르타를 부제나 이에 버금가는 성직자로 묘사했다고 추정한다.[1] 어쨌든 이때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르드 향유 한 근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드렸다. 그러자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요한 12:3) 이를 보고 앞으로 예수를 배신할 가리옷 사람 유다(이스카리옷 유다)는 “이 향유를 팔았더라면 삼백 데나리온은 받았을 것이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었을 터인데 이게 무슨 짓인가?”라고 불평한다.(요한 12:4-5) 그런데 그의 말은 진심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를 걱정해서 그런게 아니었다. 그의 속마음은 “저 향유를 팔았더라면 삼백 데나리온은 받았을 것이고, 그 돈의 일부를 횡령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탐욕스러운 마음이었다.[2] 그래서 요한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맡아가지고 거기 들어 있는 것을 늘 꺼내 쓰곤 했던 도둑이라고 설명한다.(요한 12:6) 유다의 위선적인 불평을 들은 예수께서는 “이것은 내 장례일을 위하여 하는 일이니 이 여자 일에 참견하지 마라.”라는 말씀으로 마리아의 행동을 편들어 주셨다.(요한 12:7) 요한 복음사가가 이러한 일화를 요한복음서에서 언급한 이유는 마르타의 자매 마리아 막달레나(막달라 마리아)의 헌신과 유다의 탐욕을 대비시켜, 마리아를 참된 제자로 묘사하기 위해서이다.[3]

루가복음서에서의 묘사[편집]

두 번째는 루가 복음서의 보도이다. 예수가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를 방문했을 때 마르타는 시중드는 봉사를 하였고,마리아는 예수의 말씀을 들었다. 그러자 마르타는 예수에게 마리아가 같이 일하도록 명령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루가 10:41-42)라고 말씀하셨다.

이 기사에 대해 교부시대의 기독교인들은 행동하는 신앙생활보다는 묵상하는 신앙생활이 더 유익하다는 뜻으로 해석했으나, 현대교회에서는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재해석되기도 한다.

하나는 마르타는 번거롭고 힘든 노력봉사로 예수를 섬길 정도로 신앙이 깊은 여인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묵묵히 하는 신자들은 대부분 믿음이 깊은 신자들이기 때문이다.단지 마르타가 자신과 다른 형태의 신앙생활을 하는 마리아를 용납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께서 마리아가 좋은 선택을 했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4]

두 번째는 마리아와 마르타 이야기를 하느님(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본보기로 보는 해석이다. 일부 성서학자들은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 이야기앞에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루가 10:30-35)가 있다는 점을 들어, 루가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이웃사랑의 본보기로, 마리아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본보기로 보았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루가가 마리아 이야기를 통해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게 중요함을 말하려고 했다는 것이 문맥상 맞는 해석이라고 반론하는 성서학자들도 있다.[5]

세 번째는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 이야기를 남녀평등을 위한 이야기로 해석하는 것이다. 다른 랍비들과는 달리 예수께서는 마리아가 하느님 말씀을 배우는 일을 “마리아는 좋은 선택을 했다”라는 말씀으로 인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여성인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와도 친하게 지내셨듯이 교회도 남녀평등을 실천해야 한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마르타가 섬기는 일(헬라어로 디아코니아)을 실천했음을 보지 못한 해석이라고 반론하는 성서학자들도 있다.[6]

네 번째는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를 예수를 받아들이는 이야기로 보는 해석이다. “‘마르타’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예수를 모셔 들였다.”(루가 10:38)라는 문장에서 모셔들였다로 해석된 Hypedexato는 Dechomai(받아들이다)라는 동사의 합성어라는 점에 근거하여, 마리아와 마르타가 예수를 받아들이는 믿음의 행동을 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는 예수의 말씀을 배우고, 마르타는 예수를 자기 집으로 모시고 시중드는 방법의 차이를 보였을 뿐, 두 여인 모두 예수를 받아들인 믿음의 여인이라는 점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다.[7]

마르타와 관련된 교회 전승[편집]

마르타의 생애에 관한 다른 이야기들은 훨씬 후대의 것으로 외경에 전해지는 것이다. 중세의 한 전설에 따르면, 마르타는 막달레나, 라자로와 함께 복음서를 프랑스프로방스 지방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마르타는 성수를 뿌릴 때 쓰는 성수기를 이용하여 타라스크의 숲을 오염시킨 드래곤을 퇴치하였다고 한다.

주석[편집]

  1. 《주요 주제를 통해서 본 복음서들의 신학》-요한복음서의 여성관/김득중 저/한들출판사, 490~491쪽.
  2. 《우리가 아는 것들 성경에는 없다.》-애국자 유다는 없다./오경준 지음/홍성사.
  3. 《주요 주제를 통해서 본 복음서들의 신학》-요한복음서의 여성관/김득중 저/한들출판사, 497~498쪽.
  4.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아 한다.》-크리스천과 선택/이재철 지음/홍성사, 184~185쪽.
  5. 《주요 주제를 통해서 본 복음서들의 신학》-누가복음서의 여성관/김득중 저/한들출판사, 441~442쪽.
  6. 《주요 주제를 통해서 본 복음서들의 신학》-누가복음서의 여성관/김득중 저/한들출판사, 446~447쪽.
  7. 《주요 주제를 통해서 본 복음서들의 신학》-누가복음서의 여성관/김득중 저/한들출판사, 448~4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