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랑크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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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3년 베르됭 조약 이후 3개로 나뉜 프랑크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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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랑크 왕국(프랑스어: Francie occidentale, 독일어: Westfrankenreich)은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세 부분으로 나뉜 카롤링거 왕가프랑크 왕국 중에서 서쪽에 위치한 왕국을 말한다. 베르됭 조약의 결과로 카롤루스 대제의 손자인 카를 대머리왕;카를 2세(772? - 811)이 차지한 영토이다.

키롤루스 대제에 의해 강대해진 프랑크 왕국은 이후, 그의 손자들간에 벌어진 전쟁(840-843)에 의해 결국 3개로 나뉜다. 카를 2세는 프랑크 왕국의 상속자이자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 직책은 카롤루스 대제가 처음 받은 것으로 로타르 1세에게 이어진 것이다.)였던 로타르 1세를 저지하기 위해 이복형이었던 루트비히 독일왕과 손을 잡았다.

카롤루스 대제가 세운 프랑크족의 왕국인 프랑크 왕국은 이후 한 세대인 루트비히 경건왕까지만 유지되었다. 그 당시 프랑크 왕국의 영지는 대부분의 이탈리아 북쪽 (롬바르디아 주), 브르타뉴 반도를 제외한 프랑스지역, 저지대 국가, 스위스, 그리고 현대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대부분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고, 이후 전쟁의 결과로 동프랑크 왕국, 중프랑크 왕국, 서프랑크 왕국으로 나뉘었다. 서프랑크 왕국은 이후 카페 왕조와의 분쟁도 겪긴 했지만 성장을 하면서 중세 프랑스, 그리고 현재의 프랑스로 발전하는 초석을 닦았다.

대체로 오늘날 프랑스의 영토와 일치한다. 아키텐, 브르타뉴, 부르고뉴, 카탈루냐, 플랑드르, 가스코뉴, 일드프랑스, 툴루즈에 이르는 지역이다.

카롤링거 왕가 이후 이 지역은 곧 카페 왕가, 발루아 왕가, 부르봉 왕가등의 권력투쟁의 각축장이 되었고 987년 위그 카페가 이를 통일하고 카페 왕조를 세웠을 때부터는 서 프랑크 왕국 대신 프랑스로 불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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