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롤링거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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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링거 왕조의 가계도
카롤링거 왕조
피핀 가문
카롤링거 가문
베르됭 조약(843)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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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링거 왕조(Carolingian dynasty) 또는 카롤링 왕조(Carolings)는 프랑크족 카롤링 가문이 세운 왕조이다. 카롤링 가문은 아우스트라시아 출신으로 프랑크 왕국의 전 왕조인 메로빙거 왕조에 종사하는 궁재이었으나, 점차 실권을 잡아 프랑크 왕국의 2번째 왕조를 열었다. 덧붙여 "카롤링"은 성씨가 아니라 "카를의"라는 의미이다. 당시 프랑크족에게는 성씨가 없었다.[출처 필요]

751년에서 987년까지 프랑크 왕국이나 그것이 갈라진 동 프랑크 왕국·서 프랑크 왕국·중 프랑크 왕국의 왕을 배출했다. 987년, 서프랑크 왕국의 왕가가 단절되면서 소멸했다.

카롤링거 왕조의 군주들[편집]

카롤링거 왕조의 시조. 메로빙거 왕조 프랑크 왕국의 분국(아우스트라시아)에서 재상으로 종사했다.
대 피핀의 외손자. 687년의 텔토리전투에서 프랑크 왕국의 실권을 잡음.
중 피핀의 아들[1]
중 피핀의 서자. 재상으로서 프랑크 왕국을 통일한다. 732년, 투르 푸아티에 전투에서 우마이야 왕조를 격퇴함.
칼 마르텔의 아들. 메로빙거 왕조의 왕을 폐하고 프랑크 왕에 즉위. 교황 스테파노 2세라벤나 등을 기증.(피핀의 기증)
800년에 교황에 의해 대관. 서로마 제국의 부흥. 카롤링거 왕조 르네상스 시대의 개막.
피핀 3세의 차남
샤를마뉴의 아들, 네우스트리아의 왕
817년에 3명의 아들에게 왕국을 분할, 상속시키는 법률을 만들어 사후 프랑크 왕국은 분열한다.

주석[편집]

  1. <메로빙거 세계>(한 뿌리에서 나온 프랑스와 독일/패트릭 J. 기어리/이종경/지식의풍경)[쪽 번호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