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핀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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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핀 3세
카롤링거 왕가
피핀 가문
카롤링거 가문
베르됭 조약(843) 이후

피핀 3세 또는 단신왕 피핀 (714년768년 9월 24일)은 프랑크 왕국궁재로 였고 751년부터 프랑크 왕이었다. 그의 통치 때부터 통일 프랑크 왕국의 카롤링거 왕조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 카를 마르텔의 아들이자 샤를마뉴의 아버지이다.

목차

[편집] 생애

[편집] 권력에 오르다

메로빙거 왕조의 군주들은 유약하고 힘이 없었기에 프랑크 왕국의 실권은 궁재에게 넘어가 있었다. 강력한 궁재 였던 카를 마르텔741년 죽고 그의 권력은 두 아들 카를로만과 피핀에게 넘겨주었는데 큰 형인 카를로만은 아우스트라시아·알레마니아·튀링겐의 궁재의 직위를, 동생 피핀에게는 네우스트리아·부르고뉴·프로방스를 넘겨 주었다.

747년 신실한 신앙인이었던 형 카를로만은 자신의 모든 지위를 머리고 수도원으로 은퇴해버렸기 때문에 프랑크 왕국의 모든 실권은 사실상 피핀에게 돌아왔다. 당시 프랑크의 왕힐데리히 3세 였는데 피핀은 궁재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제위를 노렸다.

[편집] 카롤링거 왕조 개창

750년 피핀은 교황 자카리아에게 자신을 왕으로 인할 것을 요청했고 교황은 이를 허가했다. 결국 힐데리히 3세는 폐위당해 수도원으로 보내지고, 피핀은 751년 11월 수아송에서 대주교와 성직자들에 의해 왕으로 축성받았다. 이로서 메로빙거 왕조는 종말을 고했고 피핀에 의해 새로운 카롤링거 왕조가 세워졌다.

한편 피핀과 카를로만이 궁재가 되자 카를 마르텔의 아들이자 배다른 형제인 그리포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753년 결국 진압되었다.

[편집] 교황과의 관계

교황 자카리아가 죽고 교황이 된 스테파노 2세아이스툴프왕이 이끄는 롬바르드군이 공격해오자 비잔티움 제국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비잔티움 쪽에서 아무런 응답이 없게 되자 프랑크 왕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754년 그는 파리로 직접 와서 피핀을 만나서 도움을 청했으며 피핀을 ‘로마인의 수호자’(patricius Romanorum)로 임명했다. 이에 피핀은 교황을 도와줄 것을 약속했고 교황은 생 드니 수도원에 머물면서 피핀과 그의 아들 카를을 왕과 그 후계자로 각각 축성하였다.

피핀과 그의 아내 베르트라다의 무덤

피핀은 교황과 함께 이탈리아로 진군하여 이이스툴프와 싸웠으며 롬바르드군을 물리치고 교황에게 교회의 모든 재산과 라벤나와 펜타폴리스의 영지를 확인하고 되찾아 줄 것을 약속하였다. 756년에도 다시 한번 이탈리아로 원정하여 교황과 교회를 위해 롬바르드와 싸웠다. 이 때 피핀이 교황과 약속한 것을 가리켜 소위 피핀의 기증이라고 부르며 이후 역사에 등장하는 교황령의 기원이 되었다.

759년 그는 사라센을 몰아내었고 이후 계속 영토 곳곳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해야 했다. 그는 아키텐을 영구히 자신의 영토로 편입했고 마지막으로 작센을 정복하려고 준비하였다. 그는 작센 원정을 준비하던 중 768년 생 드니에서 건강이 악화되어 죽었다. 그의 뒤를 이어 아들 카를이 왕위를 이었다.

[편집] 가족관계


전 임
힐데리히 3세
프랑크 왕
751년 - 768년
후 임
 카를
카를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