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의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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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프랑크족이 세운 프랑크 왕국의 군주의 목록을 다룬다.

프랑크족은 원래 군사적 성격의 명칭인 둑스(dux)와 작은 왕(小王)을 뜻하는 레굴리(reguli)가 지배하였다. 509년잘리어 왕가메로빙거 왕가가 여러 작은 부족과 소왕을 통합하면서 비로소 규모있는 집단이 되었고 카롤링거 왕조가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인 “프랑크의 왕”의 칭호를 쓰게 되었다.

나중에 카롤링거 왕조는 동 프랑크 왕국, 서 프랑크 왕국, 중 프랑크 왕국으로 나뉘면서 “프랑크의 왕”(rex Francorum )의 칭호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초기의 군주들[편집]

잘리어 프랑크족의 주요군주

507년 리푸아리아 프랑크족도 클로비스를 왕으로 받아들인다.


쾰른 족의 주요 군주

캉브레 족의 군주

메로빙거왕조의 프랑크 왕[편집]

전체 프랑크

클로비스 1세는 로마 제국의 영토 뿐만 아니라 서고트족의 남부 프랑스 영토를 병합하여 갈리아 전체를 통합하였으며 작은 프랑크 소왕국을 하나로 통합했다. 그는 파리에 중심을 두고 수아송, 랭스, 메츠, 오를레앙에 각각 주요 거점을 두었다. 그의 사후 왕국은 네 명의 아들에 의해 각 거점별로 나누어 지게 된다.

수아송

파리

오를레앙

랭스

클로타르 1세는 형제들의 죽음 이후 모든 프랑크 왕국을 계승 받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가 죽가 다시 프랑크 왕국은 그의 4명의 아들들에 의해 쪼개진다.그리고 그 이전(539년)에 알레마니아 왕국이 성립, 744년에 궁재령으로 넘어갔다(영어위키에서 발췌).(메로빙거 알레만왕참조)

한편 영지를 분할받지 못한 클로타르의 서자 군도발트584년 아키텐을 차지하고 스스로 아키텐이 된다.

수아송 (후에 네우스트리아)

파리

오를레앙 (후에 부르고뉴)

랭스메츠 (아우스트라시아)

아키텐

수아송의 왕 클로타르 2세아우스트라시아의 브룬힐다와 그녀의 손자를 꺾고 왕국을 통합한다. 그러나 623년 왕국의 국경강화를 위해 아들에게 아우스트라시아를 넘기고 왕에 앉힌다. 그의 아들은 629년에 아키텐의 왕이 되고 계승자인 다고베르트 1세는 634년에 아우스트라시아의 왕이 된다.

네우스트리아와 부르고뉴

아키텐

아우스트라시아

679년, 토이데리히 3세는 다시 한번 모든 프랑크의 소왕국을 통일한다. 이 때부터 잠시 내전기간을 제외하고 프랑크는 1개의 통일 왕조로 간주된다.

카롤링거 왕조[편집]

궁재[편집]

원래 카롤링거 왕조메로빙거 왕조궁재였다. 687년, 헤르스탈의 피핀은 "프랑크의 공작과 백작"(dux et princeps Francorum)의 지위를 얻고 사실장 전권을 행사하였다. 연대기 사가들은 이때부터를 사실상의 피핀의 재위기간으로 본다.

  • 피핀 1세 (아우스트라시아: 623–629 및 639–640)
  • 그리모알트 1세 (아우스트라시아: 643–656; 662년 죽음)
  • 피핀 2세 (아우스트라시아: 680–714, 네우스트리아 및 부르고뉴: 687–695)
  • 드로고 (부르고뉴: 695–708)
  • 그리모알트 2세 (네우스트리아: 695–714, 부르고뉴: 708–714)
  • 테우도알트 (아우스트라시아, 네우스트리아, 및 부르고뉴: 714–716)
  • 카를 마르텔 (아우스트라시아: 715–741, 네우스트리아 및 부르고뉴: 718–741)
  • 카를로만 (아우스트라시아: 741–747)
  • 피핀 3세 (네우스트리아 와 부르고뉴: 741–751, 아우스트라시아: 747–751)

751년, 피핀 3세는 프랑크의 왕이 되었고 궁재의 직위는 없어졌다. 카롤링거 왕조가 메로빙거 왕조를 대체하게 된다.

프랑크의 왕[편집]


베르덩 조약 이후[편집]

경건왕 루트비히는 생전에 자신의 영토를 여러 부분으로 분할했다. 838년의 마지막 분할에서 그는 아키텐을 포함한 서쪽을 대머리 카를에게, 이탈리아를 포함한 동쪽을 로타르에게, 나머지를 루트비히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840년 아버지 루트비히가 죽자 아들들은 내전에 돌입하여 3년 동안 내전이 벌어졌고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프랑크 왕국은 최종 분할되었다. 로타르는 황제의 직위와 로타링기아, 이탈리아를 유지하고 카를은 서프랑크 왕국아키텐을 차지했다. 독일왕 루트비히는 나머지 동 프랑크 왕국 전체를 받았다. 이 세부분으로 나뉜 프랑크 왕국이 각각 오늘날의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의 모태가 된다.

서 프랑크 왕국 (후에 프랑스)

중 프랑크 왕국

동 프랑크 왕국 (후에 독일)

이 다음으로 프랑스는 카페 왕조가 다스린다.
자세한 것은 프랑스의 군주항목을 볼 것.

855년 로타르가 죽자 그의 왕국은 아들들에게 분할 된다.

루트비히 2세 사후 중프랑크 왕국은 분해되고, 이탈리아로타링기아, 프로방스, 부르군트 등으로 분리되었다. 이탈리아는 서프랑크의 샤를 대머리왕에게 넘어갔다가 동프랑크의 카를만, 카를 3세, 아르눌프를 거쳐서 제후들이 난립하였다.
자세한 것은 이탈리아의 군주를 볼 것.

로타링기아870년 메르센 조약으로 동프랑크와 서프랑크에 분할되었다가 루트비히 3세, 아르눌프, 츠벤티볼트, 샤를 단순왕을 거쳐서 925년 독일의 속국으로 편입되었다. 프로방스부르군트는 875년 서프랑크에 편입되었으나 프랑크의 루이 2세 사후 제후들이 난립하였다.

루트비히는 그의 영토를 아들들에게 나주어 주었는데 최종적으로 882년 서자인 막내아들에게 모두 돌아감

  • 카를만 (876년-880년), 바이에른 상속, 877년부터는 이탈리아왕.
  • 루트비히 3세 (876년-882년), 작센, 프랑코니아, 튀링겐을 받음, 879년에 형 카를만에게 바이에른도 상속받음
  • 카를 비만왕 (876년-887년), 알레마니아 상속, 879년 카를만에게 이탈리아왕을 882년 루트비히에게 동 프랑크를 받음 881년 황제가 됨

카를 3세의 퇴위후, 동프랑크는 조카에게 상속되었다.

루트비히 유아왕은 마지막 카롤링거 가문의 동 프랑크 왕이었다. 그는 콘라트 1세에게 상속되었다가 그 다음 작센의 오토 왕조에게 넘어간다.
자세한 것은 독일의 군주를 볼 것.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