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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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드

외드 (프랑스어:Eudes, 독일어:Odo, 860년 경 – 898년 1월 1일)는 파리백작이자 느스트리의 백작, 888년부터 죽을 때까지는 서 프랑크 왕국이었다. 느스트리 백작 로베르 포르와 프랑크왕 루트비히 1세 경건왕의 딸 아델라이드의 아들이다.

생애[편집]

외드는 네우스트리아앙주백작로베르 4세 강철공의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루이 경건왕의 딸 아델라이드로, 모계로는 카롤링거 왕조의 후손이었다. 로베르 1세는 그의 형제였다. 또한 외드의 서녀 중 한명은 동프랑크의 왕 아르눌프의 후궁이 되었다.

할아버지인 보름스의 로베르대머리왕 카를의 휘하에서 공을 세운 인물이었다.

외드는 파리의 백작으로 노르만족의 침임에 맞서 무공을 세웠다. 887년 비만왕 샤를이 폐위되자 외드는 서프랑크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888년 몽포콩과 다른 여러 곳에서 노르만과 싸워 승리했지만 그의 지위를 확고하게 하지 못했고 비만왕 샤를의 반대를 받았고 후에는 랭스 대주교 풀크와 몇몇 강력한 귀족의 지원을 받은 단순왕 샤를 3세의 도전을 받았다. 한편 왕이 된 뒤 그는 적자가 없었으므로 파리 백작위는 사위인 로베르 1세에게 주었다.

외드는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고 지원을 받기 위해 동 프랑크 왕국케른텐의 아르눌프에게 배상금을 바치기도 했지만 894년 아르눌프는 샤를의 편에 섰다.죽기 전 3년간 그는 샤를과 싸웠으나 결국 샤를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893년 아르눌프는 그와 샤를을 보름스로 소환했지만 샤를은 보름스에 가기를 거부했다. 895년 3월에도 아르눌프는 다시 샤를과 외드를 보름스로 소환했는에, 이때에도 샤를은 역시 거절했다. 분노한 아르눌프는 이 일을 계기로 외드를 지지한다. 외드는 898년 죽었다.

가족 관계[편집]

기타[편집]

서프랑크 왕국노르만 족이 침입했을 때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외드와 로베르 등 소수의 귀족만이 바이킹 족을 대항하여 축출했다. 이 일로 귀족들의 신망을 얻게 되었다.

관련 항목[편집]

전 임
카를 3세
서프랑크의 왕
888년 - 898년
후 임
샤를 3세
전 임
강철공 로베르 4세
파리 백작
866년 - 888년
후 임
로베르 5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