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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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왕(無爲王) 루이 5세

루이 5세 (967년~987년 5월 27일), 일명 무위왕(無爲王) 루이(프랑스어: Louis le Fainéant) 는 카롤링거 왕조 출신 군주로, 986년부터 서프랑크의 왕이었다. 로테르 2세의 아들로 카롤링거 왕조의 마지막 프랑스 왕이었다.

979년 아버지 로테르가 살아 있을 때 왕위에 올랐으며 986년 아버지 로테르 2세가 죽자 단독 통치자가 되었다. 공동 국왕으로는 8년이지만, 단독 재위 기간이 1년으로 짧았고 실권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중세의 역사가들로부터 무위왕(qui nihil fecit)의 칭호 즉, 아무것도 안 한 사람 이란 별칭을 받았다. 따라서 무위왕 루이로 부른다.

생애[편집]

초기 활동[편집]

루이는 로테르 2세이탈리아의 왕 로타리오 3세의 딸인 엠마의 아들로 태어났다. 친동생으로 랭스 백작 외드가 있었고, 이복 동생인 랭스 대성당대주교를 지낸 아르눌프가 있었다.

아버지 로테르가 살아 있을 때인 979년 6월부터 왕위에 올랐지만 실권이 없는 왕이었다. 969년 아키텐 백작 미망인인 아키텐윌렘 3세의 딸 아키텐의 아들라이데와 결혼하여 아키텐의 왕이 되었다. 두사람의 결혼은 원만하지 못했고 자녀도 없었으며 급기아 아들라이데는 2년 후에 아를로 도망가 버렸다. 경박했고 아내를 멀리해 결국 그녀가 도망가버리자 귀족들 사이에서 평판이 나빠졌다. 루이는 980년 앙주의 백작 풀크 3세의 딸 아들라이데와 결혼하였지만 앙주의 아들라이데와도 4년만인 984년에 이혼하고 만다.

치세기간[편집]

루이는 실질적으로 986년 아버지가 죽은 다음 실질적인 왕이 되어 혼자서 나라를 다스렸는데 아버지 때부터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오토 1세의 가문과 카페 가문의 위협을 받았다. 986년 아버지가 죽은 뒤부터는 혼자서 나라를 다스렸는데 어머니 엠마와 랭스 대주교 아달베롱은 독일 황제이자 6촌인 오토 3세와 친교를 맺으라고 충고했으나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해 어머니 엠마도 사망했다. 랭스의 대주교 아달베롱은 오토가문과 루이를 화해하려 노력했지만 루이는 듣지 않았고 오히려 아달베롱은 반역 혐의로 감옥에 가두고 재판을 하려고 했다.

987년 5월 루이는 아달베롱의 반역죄를 추궁하려는 재판을 하려는 중에 말에서 떨어져 낙마 사고로 죽었다. 친동생인 랭스 백작 외드는 그보다 앞서 986년에 먼저 사망했다.

사후[편집]

루이 자신에게는 적법한 후계가 없었고 카롤링거 왕조의 후손중에는 하 로렌로타링기아의 공작 샤를, 루이의 서제인 아르눌프가 있었으나 아달베롱과 제르베르등 성직자와 귀족들은 강력한 귀족이자 군사력을 가진 카페 왕조위그 카페프랑스의 왕으로 선출하였다.

그의 삼촌으로 카롤링거 왕조의 마지막 혈손인 샤를은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위그 카페에게 왕위가 넘어갔다. 이로써 카롤링거 왕조는 막을 내렸고 카페 왕조가 프랑스의 왕위를 잇게 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관련 항목[편집]

전 임
로테르
서프랑크의 왕
986년 - 987년
후 임
위그 카페
전 임
윌렘 3세
아키텐의 왕
979년 - 987년
후 임
위그 카페
전 임
로테르
카롤링거 왕조의 수장
986년 - 987년
후 임
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