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3세 (신성 로마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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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3세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재위 901년 ~ 905년
별명 맹인왕
이전 황제 아르눌프
다음 황제 프리울리 후작 베렝가르

루트비히 3세 또는 루티비히 맹인왕(880년경 – 928년 6월 28일)은 프로방스의 왕 (887년부터), 이탈리아 왕 (900년부터), 901년부터 905년까지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다. 신성로마제국의 루트비히 2세의 딸 이밍가르트의 와 프로방스의 보소의 아들이다.

생애[편집]

887년 아버지가 죽자 그는 프로방스의 왕이 되었는데 나이가 어려 권력이 불안하였다. 어머니 이밍가르트는 아들과 함께 황제 카를 3세에게 의탁하여 도움을 요청하였고 카를은 그를 양자로 삼고 왕으로 인정해 보호해 주었다. 그러나 888년 카를이 죽자 이듬해 다시 카를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케른텐의 아르눌프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아르눌프는 890년 루트비히를 아를, 프로방스 그리고 부르고뉴의 왕으로 인정해고 보호해 주었고 894년 루트비히는 아르눌프의 가신이 되었다.

루트비히는 치세 동안 내내 사라센의 침입에 맞서 싸워야 했다. 900년 그는 이탈리아의 제후들의 요청으로 황제 루트비히 2세의 손자의 자격으로 이탈리아로 가게 되었는데 당시 이탈리아는 마자르족의 침입으로 무능한 베렝가리오 1세의 통치 아래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루트비히는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격했고 베렝가리오의 군대를 무찌르고 900년 롬바르드족의 옛 수도인 파비아에서 10월 12일 이탈리아 왕에 올랐다. 그는 계속하여 로마로 진군하여 교황 베네딕토 4세에 의해 이듬해 2월에는 신성로마제국황제의 대관식도 치렀다. 그러나 902년 그는 베렝가리오에게 패하여 영원히 이탈리아를 떠나는 서약을 하고 프로방스로 물러났다.

905년 그는 다시한번 이탈리아를 침공하는데 이번에도 바이에른 군대의 도움을 받은 베렝가리오의 군대에게 패하였고 붙잡혀 베로나의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7월 12일 그는 서약을 깬 죄목으로 눈이 뽑히는 형벌을 받았고 (그래서 그의 별명이 맹인왕이 되었다.) 이탈리아와 황제의 지위를 포기해야 했다. 이것이 카롤링거 왕조가 마지막으로 이탈리아를 지배하려고 시도한 것이었고 실패로 끝났다.

프로방스의 당시 수도인 으로 돌아온 루트비히는 그후로도 몇 년간 프로방스를 통치했지만 사실상 실권은 아를의 백작인 위그에게 있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장님으로 살았다.

가계[편집]


전 임
보소
프로방스의 왕
890년 - 928년
후 임
위그
전 임
보소
부르군드의 왕
888년 - 928년
후 임
위그
전 임
베렝가리오 1세
이탈리아 왕
900년 - 905년
후 임
베렝가리오 1세
전 임
아르눌프
신성로마제국 황제
901년 - 905년
후 임
베렝가리오 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