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봉 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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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봉 왕실 깃발(1815-1830)

부르봉 왕가(프랑스어: Maison capétienne de Bourbon)는 카페 왕조의 한 계열로 루이 9세의 마지막 아들 클레르몽의 백작 로베르 드 프랑스(Robert de France)로부터 시작되었다. 부르봉 왕조라고도 부른다. 부르봉(Bourbon)의 어원은 켈트어로 ‘진흙(Borvo, 혹은 Borbo)’을 뜻한다.

목차

[편집] 부르봉 왕가의 탄생과 발전

부르봉가는 루이 9세의 6번째 이자 막내아들인 로베르 드 프랑스(Robert de France)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샤로래(프랑스어: Charolais)의 영주 장 드 부르고뉴(프랑스어: Jean de Bourgogne)와 아니에스 드 부르봉(프랑스어: Agnès de Bourbon)의 외동딸 베아트리스(프랑스어: Béatrice)와 결혼을 함으로써 부르봉(프랑스어: Bourbon)의 영주가 되었다.

부르봉 영지는 1327년 부르봉가의 루이 1세(프랑스어: Louis Ier de Bourbon)를 위하여 공작령으로 승격되었다. 부르봉가의 루이 2세(프랑스어: Louis II de Bourbon) (1337-1410)는 1371년 안 도베르뉴(프랑스어: Anne d'Auvergne)와 결혼을 하였다. 이 결혼으로 영지를 확장시켰다.

광신도적인 수도사 자크 크레망(프랑스어: Jacques Clément)이 앙리3세를 암살하자 발루아 왕가에는 왕위를 이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살리카 법이라고 불리는 당시 통용되었던 계승법으로 사망한 앙리3세의 22촌인 앙리4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편집] 역사

부르봉 왕조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1789년까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물러난 1815년에서 7월 혁명이 일어난 1830년까지 지속되었다.

에스파냐에서는 1701년부터 통치하고 있는데, 1874년부터 1875년까지, 1931년부터 1975년까지는 공화정으로 인하여 다른 나라로 도피하였다. 그 뒤 후안 카를로스 1세입헌 군주제 에스파냐으로 즉위하였다.

이외에도 부르봉 왕가는 나바르, 프랑스, 스페인, 양시칠리아 왕국, 룩셈부르크, 안도라, 루카, 파르마와 같이 유럽의 여러나라를 다스렸고, 여러 분파로 나누어졌다.

[편집] 부르봉 왕가 출신의 군주

[편집] 프랑스

[편집] 에스파냐

[편집] 나바라

[편집] 이탈리아

[편집] 파르마

[편집] 루카

[편집] 나폴리

[편집] 시칠리아

[편집] 양시칠리아 왕국

[편집]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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