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레게네 카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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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레게네 카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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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몽골 대카툰
재위 1241년–1246년
전임자 보락친 카툰
후임자 오굴 카미시 카툰
이름
나이만 퇴레게네 (몽골어: ᠨᠠᠶᠢᠮᠠ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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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한자乃马真 脱列哥那 내마진 탈열가내)
시호 소자황후 (昭慈皇后)
신상정보
왕조 몽골 제국
가문 나이만부
배우자 다이르우순우구데이 칸
자녀 귀위크 칸

퇴레게네 카툰(몽골어: ᠲᠥᠷᠡᠭᠡᠨ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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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öregene Khatun, 한국 한자脫列哥那可敦 탈열가내 가돈, 1186년 ~ 1246년)는 몽골 제국의 황후였다. 우구데이 칸의 6황후였다가 1241년 그의 사후 1241년 그녀의 장남 귀위크 칸이 선출될 때까지 섭정하였다.

생애[편집]

처음에는 칭기즈 칸의 두 번째 황후가 된 크란 하툰의 아버지 우하즈 메르키트족의 족장 다이루 우슨의 비였다가 칭기즈 칸의 메르키트 토벌시에 포로가 되어 오고타이 칸의 부인이 되었다.

그녀는 제국내의 다양한 경쟁 권력의 균형을 맞추고, 5년 동안 전 몽골 제국을 다스렸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들 귀위크 칸이 즉위할 무대를 설정하였다.

1241년 오고타이 칸이 죽자 우구데이의 숙부로 칭기즈 칸의 막내동생인 테무게 옷치긴이 대칸의 유궁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이끌고 우구데이의 황후들이 거처하는 오르두(행궁)로 오자, "우리는 당신의 의붓딸이며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무장한 많은 군대를 이끌고 온 것은 무슨 까닭인가? 왜 모든 백성과 군대를 불안하게 만드는가?"[1]라는 항의하며 거절하였다. 앞서 서방 원정을 나갔던 우구데이의 아들 구유크가 도착했다는 보고를 듣고 테무게는 대칸의 자리를 포기, 퇴레게네 카툰에게 우구데이에 대한 조의를 전하고 철군하였다. 이러한 옷치긴의 거병은 앞서 우구데이가 옷치긴에 대해 시행했던 중앙집권정책에 수반한 강한 견제책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2]

퇴레게네는 섭정으로서 완전한 권력을 쥐었으며 이전의 장관들을 해고하고 그녀 자신의 인물로 대체하였는데 가장 중요한 인물은 타지크 또는 페르시아 여인으로 중동 원정에서 포로로 온 파티마였다.

몽골은 일부다처제를 시행하였는데 오고타이 칸이 선호했던 코추는 다른 아내를 통해 얻었다. 그는 코추의 아들 시레문으로 자신을 계승하게 지명하였다.

퇴레게네는 반대하고 귀위크를 선택할 것을 설득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컨닝으로 야망을 달성하였다. 그녀는 그녀가 확신할 때까지 쿠릴타이를 여는 것을 미루었다. 퇴레게네는 권력을 그녀의 아들 귀위크 칸에게 1246년에 건네고 2개월 만에 죽었다. 제국의 권력 투쟁은 증폭되어갔다. 중국식 시호소자황후(昭慈皇后)이다.

가계[편집]

퇴레게네가 등장한 작품[편집]

각주[편집]

  1. Rashid al-Din, J. A. Boyle tr., The Sucessors of Genghis Khan, Columbia University Press, 1971, 178쪽.
  2. 김호동 「구육과 그의 시대」 『근세 동아시아의 국가와 사회』 일조각, 1998, 123~124
전임
보락친 카툰
몽골 제국 황후
? ~ 1246년
후임
오굴 카미시 카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