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바카이 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Picto infobox prétendant à un trône.png
암바가이 칸
ᠠᠮᠪᠠᠭᠠᠢ
ᠬᠠᠨ
지위
카마그 몽골
재위 1146년-1156년
전임 카불 칸
후임 호툴라 칸
보르지긴 오복 타이치우트 추장
재위 1146년 - 1156년
전임 카불
후임 쿠툴라
이름
암바가이(ᠠᠮᠪᠠᠭᠠᠢ
별호 암바카이 카한(몽골어: ᠠᠮᠪᠠᠬᠠᠢ
ᠬᠠᠾᠠᠨ
Ambaqai Qahan)
신상정보
출생일 1091년?
출생지 내몽골
사망일 1156년
사망지 금나라 중도(현, 베이징)
가문 보르지긴
부친 셍군 빌게
배우자 오르바이, 소카타이
자녀 카다안 타이시
종교 텡그리교

암바가이 칸(俺巴孩, , 몽골어: ᠠᠮᠪᠠᠭᠠᠢ
ᠬᠠᠨ
Ambaγai Qan, 키릴 문자:Амбагай хан, 1091년? ~ 1156년)은 암바카이 칸(몽골어: ᠠᠮᠪᠠᠬᠠᠢ
ᠬᠠᠨ
Ambaqai Qan)이라고도 한다. 원사에는 함바카이 칸(咸補海汗) 또는 함바카이(咸补海)로 나타난다. 보르지긴 오복의 타이치우트 집단의 추장이자 몽골의 제2대 칸이다. 몽골 제국을 세운 칭기스 칸의 증조부 카불 칸의 사촌 동생이자 계승자였다. 예수게이의 재종조부가 된다. 그의 손자로는 타르구타이가 있다.

타타르족과 혼인동맹을 하고 오던 길에 타타르족의 배신으로 납치되어 금나라로 송환, 고문 후 처형당했다. 칭기즈 칸금나라 공격 이유의 하나가 되었다. 몽골비사에서는 암바가이 카간(俺巴孩合罕)으로도 부른다.

생애[편집]

암바가이는 보르지긴 오복 출신으로, 현재의 중국령인 소르각투쿠에서 태어났으며 카마크 몽골의 칸 카이두의 증손으로, 카이두의 차남 치르카 린후아의 손자이고, 셍군 빌게의 아들이다. 원조비사페르시아계 사서 집사 등에는 암바가이를 칸으로 칭하고 있다. 카불 칸은 자신의 일곱 아들 대신 사촌동생 암바카이를 후계자로 지정, 그가 카마그 몽골 울루스의 칸의 자리를 계승했다. 라시드 웃딘에 의하면 그가 보르지긴씨 집안 중 가장 연장자였기 때문에 카불 칸의 뒤를 이었다고 한다.[1] 원조비사와 집사에 의하면 그는 카간(合罕)의 칭호를 사용했다 한다.

카불 칸이 병으로 죽어갈 때, 암바가이와 몽골인들은 타타르 주술사를 초청했으나, 타타르 주술사는 죽어가는 그를 살릴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카불의 친척들은 카불 칸이 죽자마자 타타르인 주술사를 살해했다. 타타르인들은 주술사 살해에 앙심을 품게 되었다. 금나라의 통치자들은 이 죽음으로 유목민간 대립, 갈등할 기회로 보았다.

타타르 족과의 오랜 갈등 끝에 암바가이는 자신의 아들 카다안 타이시와 타타르족 족장의 딸과 약혼시키러 카불칸의 아들 토토엔 옷치킨과 함께 타타르를 방문하고 돌아오던 길에 타타르족의 배신으로 코를렌 호수와 부이르 호수 사이에서 포박, 납치되어 토토엔 옷치킨과 함께 금나라로 송환되었다. 다른 설에는 암바가이 칸의 딸을 타타르족 족장에게 시집보내던 중 타타르족의 배신으로 습격, 일행은 모두 살해당하고 암바가이 칸과 토토엔 옷치킨이 포박되어 금나라로 끌려갔다고도 한다.

1156년 암바가이는 금나라 중도로 끌려가 수레 혹은 나무로 만든 당나귀 혹은 목마에 매달려 손발에 박히는 형을 받고 죽었다 한다.[2] 일설에는 금나라에서 보낸 자객에 의해 참수된 뒤 수급은 금나라로 보내졌다 한다. 몽골비사에 의하면 암바가이 칸은 몽골 베수드 부족 사람을 통해, 아들 카다안 타이시, 쿠툴라 등에게 내가 일국의 군주가 되었으나 딸아이를 사랑하여 차마 참지 못하고 이런 일을 겪으니 후인은 마땅히 나를 거울로 삼거라. 너희들은 다섯 손가락의 손톱이 다 빠져 달아나도록, 너희들의 열 손가락이 다 닳아 없어지도록 나의 원수를 갚아다오 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를 전달하게 했다 한다. 몽골비사에는 암바가이 칸이 금나라 해릉양왕에게 네가 남의 손을 빌려 술수로 나를 붙잡아 나에게 부당한 형벌을 가했다. 내가 죽으면 나의 백부, 숙부, 형제들이 보복을 하겠다고 하자, 해릉양왕은 그 말은 너희 부족 무리한테나 고하는게 옳도다! 짐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응대했다. 몽골비사, 원사 등에는 그의 정확한 사망날짜가 전하지 않는다.

사후[편집]

그의 부인들 중 오르바이와 소카타이는 후일 테무친(후일의 칭기즈 칸)이 태어나고, 예수게이가 살해된 후까지도 생존해 있었다. 오르바이와 소카타이가 타르구타이 키릴투크의 친할머니인가 여부는 불확실하다.

암바가이의 뒤를 이어 카마크 몽골의 쿠릴타이에서는 카불 칸의 넷째 아들인 쿠툴라 칸을 대칸으로 선출, 대칸 위를 계승하고 그의 원수를 갚기 위해 13회에 걸쳐 타타르 족과 교전하였으나 실패하고 만다.[3] 그의 아들 카다안 타이시는 후일 타이치우드 가문의 족장이 되었으나, 어느 시점에 독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후일 칭기즈 칸타타르족과 교전 중, 일부 타타르족 전사들을 마차로 치어 죽이며 타타르족이 이런 방식으로 우리 조상을 죽였다고 했다.

가족 관계[편집]

암바가이 칸에게는 여러 명의 아내가 있었으나 칭기즈 칸이 태어난 뒤까지도 생존해 있던 2명의 부인의 이름만 정확히 전한다.

암바가이 칸에게는 10명의 아들이 있었다 한다.

각주[편집]

  1. Rashīd al-Dīn Ṭabīb; Thackston, W. M (1998). Rashiduddin Fazlullah's Jamiʻuʼt-tawarikh = Compendium of chronicles.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Dept. of Near Eastern Languages and Civilizations. pp. 121–123. OCLC 41120851.
  2. Kubilay Atik, DYNASTIC RELATIONS IN EAST ASIA DURING THE 10TH-14TH CENTURIES, p. 177
  3. 칭기즈 칸의 할아버지 바르다 칸은 카불 칸의 둘째 아들이었다.

관련 항목[편집]

전임
카불 칸
카마그 몽골의 칸
1127년 ~ 1149년
후임
호툴라 칸
전임
4촌 형 카불 칸
보르지긴의 씨족장
1149년 ~ 1156년
후임
5촌 조카 호툴라 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