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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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파르(한국 한자察八兒 찰팔아, 재위: 1301년 ~ 1310년)는 카이두의 장남으로 우구데이 한국의 마지막 칸이었다.

생애[편집]

바락이 죽어도 카이두는 살아있었고, 그는 차가타이 칸국의 칸을 마음대로 바꾸었다 쫓아냈다를 반복하고는 했으며, 이 와중에 죽어나는건 일 칸국의 침공의 직격탄을 받은 부하라의 주민들이었다.(1273년) 카이두는 결국 두아를 차가타이 칸국의 칸으로 세우는데(1274년) 두아는 호랑이 새끼나 다름 없었다. 처음에 두아 칸은 카이두의 명에 따라 하라는 궂은 짓은 모두 성심성의껏 수행했다.

카이두는 죽기 전에 자신의 차남인 오르스를 후계자로 지명했지만 차가타이 칸국두아는 이를 무시하고 1303년에 장남인 차파르를 옹립하였다.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어 차파르는 두아와 대립하였고, 1306년에 두아의 군대와 원나라의 지원군에게 협공을 받았다. 양국 군대의 압박을 버티지 못한 차파르는 두아에게 항복했고 두아는 원나라와 함께 우구데이 칸국의 영토를 나눠가졌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310년, 차파르는 다른 우구데이계 왕자들인 오르스, 얀기차르, 투그메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지만 진압당하고 나서 원나라로 망명했다. 차파르가 원나라로 망명하면서 우구데이 가문은 사실상 몰락하고 말았다.

두아원나라와의 싸움에서 카이두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으나, 카이두의 사후 본격적으로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카이두의 아들 차파르를 속여(한번 두와가 차파르에게 지자 평화를 맺자고 꼬신 후, 군대를 해산하자마자 공격해버렸다) 결국 차파르의 영지인 동투르키스탄 지역을 재정복하고, 차가타이 칸국의 통일을 완수한다.(1306년)

전임
아버지 카이두
제4대 우구데이 한국의 칸
1301년 ~ 1310년
후임
(왕조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