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멘 자사그트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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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멘 자사그트 칸(圖們札薩克圖汗, 1539년 ~ 1592년, 재위: 1557년 ~ 1592년)은 북원의 대칸이었다.

그는 다라이손 구덴 칸의 장남이자 후계자였으며 차하르를 직접 다스렸다. 그의 치세에 몽골은 다우르족예벤키족을 정복하였다. 그는 세법을 개혁하였고 몽골 귀족을 약간의 세에서 제외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투멘 자사그트(천 가지 법 입법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투멘 칸의 시대에 차하르 부는 요하 인근에서 활동하였다.[1] 투멘 칸은 건주여진을 정복하고, 해서여진 일부를 종속시켰다. 『명실록』에 따르면 투멘 칸은 명 가정 41년 5, 6월 경 두 차례에 걸쳐 무순, 봉황성, 해주, 금주 등의 지역에 침입해 명나라 부총병 흑춘을 죽이는 등 침략과 약탈을 행한다. 이 과정에서 건주여진의 왕고가 전위대의 역할을 수행했다. 기록에 따르면 청나라 선조의 일족들 역시 왕고의 휘하에 있었음으로, 누르하치의 조부나 부친 역시 투멘 칸의 휘하에 있었고, 청조의 몽골적 특성은 여기서 연유한 것 같다.[2]

투멘 자삭토 칸은 불교를 강조한 첫번째 차하르 대칸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1576년 카르마 라마와 만나 불교에 입문하였다. 이는 청해에서 투메드알탄 칸달라이 라마 3세의 만남보다 2년 이른 것이었다.[3][4]

투멘 자삭토 칸은 6만호를 소집하여 법전을 편찬하였다. 그는 좌익에서는 차하르의 나무다이 홍타이지와 할하의 우이젱 수부할, 그리고 우익에서는 오르도스의 호톡타이 세첸 홍타이지를 행정관으로 임명했다. 다른 기록에서는 이 목록에 아수드의 놈 다라 홀로치 노얀과 투메드의 나무다이 추루쿠 홍타이지가 이 목록에 추가되었다. 이와 같은 상은 1581년 알탄 칸이 죽은 이후 몽골 고원의 정치적 상황을 비추어주는 듯 하다.[3] 이 활동으로 인하여 투멘 칸은 자삭토(입법자)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다. [5]

차하르의 투멘 자삭토 칸은 1592년에 죽었다. 그는 11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맏아들인 보얀 세첸 칸이 그를 계승하여 1603년까지 통치했다.

전임
다라이손 구덴 칸
제38대 몽골 제국 대칸
1557년 - 1592년
후임
보얀 체첸 칸
전임
다라이손 구덴 칸
제22대 북원 황제
1557년 - 1592년
후임
보얀 체첸 칸

각주[편집]

  1. Okada, Hidehiro (1991). “Origin of the Čaqar Mongols”. 《Mongolian Studies》 14: 165. 
  2. 테무르 (2015). “만주(滿洲)가 직면한 원북남명(元北南明)”. 《한국학연구》 37: 436-37. 
  3. Okada, Hidehiro (1991). “Origin of the Čaqar Mongols”. 《Mongolian Studies》 14: 166. 
  4. 김성수 (2014). “몽골 제국 붕괴 이후 쿠빌라이계의 활동과 그 한계”. 《몽골학》 (한국몽골학회) 39: 56-57. 
  5. 김성수 (2014). “몽골 제국 붕괴 이후 쿠빌라이계의 활동과 그 한계”. 《몽골학》 (한국몽골학회) 39: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