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얀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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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얀 칸(몽골어: Даян хаан, 한국 한자達延汗 달연한; 1464년 ~ 1543년)은 북원의 대칸(재위: 1480년 ~ 1517년)이었다. 휘는 보르지긴 바트뭉흐(몽골어: Боржигин Батмөнх, 한국 한자孛兒只斤 巴圖蒙克 패아지근 파도몽극)였다.

생애[편집]

만두굴 칸은 종손인 볼후 지농과의 전쟁으로 1467년에 죽었다. 볼후 지농 역시 칸으로 선포되기 전인 1470년에 피살되었다. 그리하여 쿠빌라이 칸의 후예들 가운데 남은 사람은 볼후 지농의 아들 바트뭉흐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모든 사람에 의해 버려졌다.[1] 만두굴의 젊은 과부였던 만두하이 하툰은 바트뭉흐를 차하르 만호 소유의 에시 하툰 영묘(소르칵타니 베키의 영묘)로 데려가 아이와 결혼하면서, 그 아이를 대원 제국의 카안으로 옹립했다.[2]

만두하이칭기즈 칸의 직계자손이 거의 대부분 사라진 상황에서 칸의 자리를 이어갈 사람은 바트 멍흐뿐이라고 판단을 하고, 바트 뭉흐를 극진하게 돌보는 한편, 동몽골인들의 충성을 이끌어 내어 바트 멍흐를 정식 칸으로 추대하였다.

1470년, 몽골족의 영웅 칭기즈 칸의 가묘가 있는 성지나이만 차강게르 앞에서 성대한 취임식이 열렸는데 바로 바트 멍흐가 칸위에 올랐다. 칸위에 오른 바트 멍흐는 다얀 칸이라고 불리게 되는데, '다얀'이란 바로 '大元'을 의미한다. 그 이름 속에 어린 칸을 앞세워 칭기스칸의 가문을 다시 부활하겠다는 만두하이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었다. 칭키스 칸의 가묘 앞에서 치러진 취임식은 분열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몽골인들의 힘을 한곳으로 모아 옛 선조의 영화를 재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만두하이는 어린 다얀 칸을 키워가면서 섭정으로서 동몽골을 다스렸다. 다얀 칸이 성장하자 만두하이는 1481년, 만두하이가 마흔두 살 때, 다얀 칸이 열일곱 살 때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십오 년의 연상인 만두하이는 다얀 칸과 결혼하여 일곱 명의 아들을 낳았다(세 쌍둥이 포함). 만두하이가 낳은 이 일곱 명과 다얀 칸의 후비가 낳은 네 명의 아들 도합 열한 명의 아들들이 이후 칭기즈 칸 가계의 새로운 몽골족을 탄생시켰다.

만두하이는 이십오 년이나 연하인 남편을 키워 몽골역사에 남을 칸으로 만들었고, 아들들 역시 제대로 키워 칭기즈 칸의 가문을 부활시켰다. 이런 점에서 만두하이는 칭키스 칸의 모친 호엘룬과 비교된다.

만두하이는 다얀 칸의 아내였지만, 다얀 칸에게는 어머니의 다름이 없었다. 특히 만두하이는 어린 칸을 키우면서 다얀 칸이 몽골 제국을 부활시키기 위하여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끊임없이 주입시켰다. 만두하이는 오이라트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다음 몽골초원에서 동몽골이 완전히 주도권을 잡은 다음 장성한 다얀 칸에게 몽골의 통치권을 넘겼다.

카르친의 이브라이 타이시가 그의 지위를 대체하기 위해 보내어진 바트몽케의 아들 울루스볼트를 죽이자 그는 보복으로 서부 몽골을 공격하였지만 우리안카이가 이브라이에 가세하여 패하였다.

바트몽케는 명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하였다. 하지만, 그가 교역 개방을 위해 보낸 사절은 중국 황제에 의해 피살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명나라로 원정군을 출발시켰다.

수년후 그는 카르친과 우리안카이 반란군을 부셨다. 그리고 그 귀족들을 살해하였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를 타얀 칸 또는 대칸으로 선언하였다. 몽골문헌에 따르면 그와 만두하이의 치세는 평화로웠다.

그의 아들은 부족의 부족장들이 되었다. 알탄 칸, 링단 칸 등의 많은 몽골왕자들이 그의 후손이었다.

다얀 칸과 그의 후계자는 차하르 튀멘을 직접 이끌었다. 명나라 학자들은 그를 스러운 황제로 몽골 제국의 이전 영광을 회복하였다고 고려하였다.

알탄 칸은 그의 손자였다.

개혁[편집]

다얀 칸은 6대 부락을 아들들에게 분봉하였다. 이 6대 부락은 에센 타이시 사후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나, 다얀 칸의 분봉으로 인하여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를 6만호 체제라 한다. 다얀 칸은 6만호 지배를 실현함으로써 쿠빌라이 계의 몽골 지배를 실현했다. 일반적으로 6만호는 차하르, 할하, 우량하이, 오르도스, 융셰부, 투메드를 지칭하는데, 이 6만호는 좌·우익 3만호로 대별되었다.[3] 좌익 3만호는 칸 자신의 직접적인 통제 하에 있었고, 우익 3만호는 칸이 자기 자식들 가운데에서 뽑은 지농의 휘하에 두어졌다.[4] 이때 나타난 부족 집단의 틀이 현재까지 몽골족을 구성하는 여러 집단의 원형이 되었다.[5]

가족[편집]

각주[편집]

  1. 르네 그루쎄,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김호동·유원수·정재훈 옮김, 사계절 (1998), p. 706.
  2. Atwood, Christopher P., "Dayan Khan," Encyclopedia of Mongolia and the Mongol empire, Facts On File (2004), p. 138.
  3. 김성수, "몽골 제국 붕괴 이후 쿠빌라이계의 활동과 그 한계," 몽골학 제39호 (2014. 11), pp. 45 - 46.
  4. 르네 그루쎄,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김호동·유원수·정재훈 옮김, 사계절 (1998), p. 707.
  5. 이시하마 유미코, "티베트 불교 세계의 형성과 전개," 『중앙 유라시아의 역사』, 이평래 옮김, 소나무 (2005), p. 285.
전 임
만돌 칸
제34대 몽골 제국 대칸
1480년 ~ 1517년
후 임
바르스 볼트 저넌 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