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지긴 카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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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지긴 카말라(한국 한자孛兒只斤 甘麻剌 패아지근 감마랄, 1263년 ~ 1302년 2월 8일)는 원나라의 황족이었다. 묘호는 현종(顯宗)이다.

그는 원 태정제가 추숭하였는데, 시호는 광성인효황제(光聖仁孝皇帝)이다. 그는 세조 쿠빌라이 칸의 손자이며, 쿠빌라이 칸의 아들 친킴 태자와 코코진 사이의 장남이었다. 충선왕의 정비인 계국대장공주원 태정제의 아버지이다.

생애[편집]

1285년에는 친킴 태자가 쿠빌라이보다 먼저 죽고, 원나라에 의해 최고의 권력과 재산이 있는 세력이 있는 황태자부의 관리 권한을 코코진이 받았다.

1292년 카말라는 진왕(晉王)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동생 다루마바라테무르, 그리고 그들의 아들 손자들과의 계승 경쟁에서 패하였다. 진왕은 고비사막 북쪽의 몽골을 소유하였고, 칭기스 칸의 무덤이 오르도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1297년, 아리크 부케의 아들인 요부쿠르와 몽케의 손자 울루스 부카가 우구데이 칸국을 이탈하여 원나라로 귀환하였고, 이로 인해 카이두의 세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후 카이두는 지속적으로 원을 공격하였고, 1298년에는 성종의 사위인 쾨르기즈를 생포하여 처형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세력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데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있던 카이두1301년 아리크 부케의 차남 멜릭 테무르, 차가타이 칸국의 칸 두아와 함께 최대 규모의 원정에 나섰다. 전쟁 초기엔 카이두의 군대가 우세하여 카말라와 그의 아들 예순 테무르 군대를 압도했지만, 카이산의 군대가 전장으로 지원되면서 전황은 급속도로 변했다. 차가타이 칸국의 칸인 두아는 전투 중 부상을 당해 본국으로 퇴각했고, 카이두는 전투 중 입은 부상 때문에 사망하고 말았다.

1302년 2월 8일 카말라는 죽고, 예순 테무르가 진왕으로 계승하였다.

가족 관계[편집]

조부모와 부모[편집]

  • 조부 : 초대 황제세조(世祖) 쿠빌라이(忽必烈)
  • 조모 : 소예순성황후(昭睿順聖皇后) 옹기라트씨(弘吉剌氏)
  • 부친 : 추존황제 유종(裕宗) 친킴(眞金)
  • 모친 : 추존황후 휘인유성황후(徽仁裕聖皇后) 옹기라트씨(弘吉剌氏)

후비[편집]

  • 추존황후 선의숙성황후(宣懿淑聖皇后) 옹기라트씨(弘吉剌氏)
  • 배배해 비자(拜拜海 妃子)
  • 홀상해 비자(忽上海 妃子)

황자[편집]

  1. 양왕(梁王) 송산(松山, ? ~ 1309년)
  2. 진왕(晉王) 예순테무르(也孫鐵木兒) - 선의숙성황후 소생. 원나라 6대 황제 진종(晉宗).
  3. 상녕왕(湘寧王) 질리가아불화(迭里哥兒不花, ? ~ 1323년)

황녀[편집]

  1. 계국대장공주(薊國大長公主) 보탑실련(寶塔實憐) - 고려의 제26대 국왕 충선왕의 왕비.
  2. 수녕대장공주(壽寧大長公主)
  3. 조국공주(趙國公主) 아납적납팔랄(兒納的納八剌)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