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크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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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크부카(阿里不哥)

보르지긴 아리크부카(몽골어: ᠪᠣᠷᠵᠢᠭᠢ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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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ǰigin Ariq Böke, 키랄문자:Аригбөх, 한국 한자孛兒只斤 阿里不哥 패아지근 아리불가, 1219년 ~ 1266년)는 몽골 제국의 황족으로 톨루이소르칵타니의 말자이다. 그의 형제는 몽케, 쿠빌라이, 훌라구 등이 있었다. 몽골의 학자에 따라서는 그를 5대 대칸으로, 쿠빌라이를 6대 대칸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원나라와 쿠빌라이 정통론자들은 아리크부카를 반란자로 보는 시각도 있다.

생애[편집]

생애 초반[편집]

툴루이의 정실 소르각타니 소생 넷째 아들이자, 툴루이에게는 일곱째 아들이었다. 어머니 소르칵타니 베키는 동방에 전래된 기독교의 일파 네스토리우스 신자였고, 그는 기독교에 대해 다소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 아버지 툴루이가 죽자 오고타이는 쓰촨성 주변의 영지를 툴루이 가문의 영지로 주었다. 맏형은 몽케 칸이고, 둘째 형 홀도도는 일찍 요절했고, 셋째 형은 생모가 불분명하였으며, 동복 형제로는 쿠빌라이 칸훌라구가 있었다.

오고타이를 선출하는 쿠릴타이와 오고타이의 사후 규우크 칸을 선출하는 쿠릴타이에 그가 참여하였다. 오고타이의 아들이자 사촌 바투 칸이 죽자, 그 뒤는툴루이 가문의 몽케 칸이 쿠릴타이를 통해 선출되었다.

형 몽케 칸은 중국화된 둘째 쿠빌라이를 내심 불신하였고, 몽골의 보수적 부족장들 또핫 쿠빌라이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칸위 계승 전쟁[편집]

1259년 8월 몽골 울루스 제4대 대칸인 몽케가 남송 원정 중 쓰촨 성 에서 병사하고, 몽골 원에 있던 수도 카라코룸을 수비하던 막냇동생 아리크 부케는 왕족을 카라코룸으로 소집, 몽케파의 왕족을 모아 오르콘 강변에서 쿠릴타이를 열고, 서부의 차가타이 가문 등 여러 왕가의 지지를 얻어 대칸의 지위를 얻었다.

이에 몽케와 함께 남송 원정 중이던 둘째동생 쿠빌라이는 윤11월에 군대를 되돌려 내몽골에 들어서 동쪽 3왕가(칭기즈칸의 동생 가계)등의 지지를 얻은 다음, 이듬해 3월에 자신의 본거지였던 내몽골개평부(開平府 : 훗날의 상도)에서 쿠릴타이를 열어 대칸의 지위에 앉았다. 이로써 몽골 제국은 사상 처음으로 몽골고원 남북에 두 명의 대칸이 들어서게 된다.

몽케의 장례를 치르고, 제도(帝都) 카라코룸에서 즉위한 아리크 부케가 대칸으로서의 정통성은 확보한 셈이었으나, 군사력을 장악한 쿠빌라이 역시 아리크 부케를 배신자로 여기고 자신이야말로 정당한 대칸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프랑스루이 9세가 파견한 사절 기욤 드 뤼브룩을 접견하고, 그가 십자가를 제조하는 것을 관찰하기도 했다.

1260년 차가타이 칸국의 칸위 계승이 혼란해지자, 쿠빌라이 칸은 자신의 측근이며, 차가타이 칸의 아들 모에투칸의 손자이며, 부리의 아들인 아비슈카를 칸으로 승인했다. 그러나 아리크 부케는 아비슈카를 체포하여 죽이고, 자신을 지지하던 알루구를 대신 차가타이 칸국의 칸위에 올렸다. 아릭 부케는 알루구에게 훌라구의 세력과 베르케 칸킵차크 칸국 세력과 대적하고, 지역을 방어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알루구는 아리크 부케를 버리고 보물을 지킬 목적으로 사절을 죽였다.

오고타이 가문의 카이두는 아리크 부케에게 충성을 유지하였다. 아리크 부케는 알루구와 곧 갈등하였고, 아리크 부케는 곧 차가타이 칸국을 공격하였다. 첫 전투에서는 알루구가 승리했으나, 두번째 전투에서는 아리크 부케가 승리하고, 알루구 세력은 서부로 도망쳤다.

쿠빌라이와 아리크 부케의 양군은 여러 차례 격돌하였으나 승패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군사력과 화북의 물자를 장악한 쿠빌라이에게 전세가 유리해지기 시작했다.

서전인 1261년 시무토노르 전투에서는 쿠빌라이가 승리했으나, 아리크 부케는 북서쪽 몽골의 오이라트의 지원을 얻어 저항을 계속했다. 1261년 겨울, 아리크 부케 측은 몽골 고비 사막의 경계에서 쿠빌라이 칸과 교전하였으나 패배하고 후퇴하였다.

항복과 최후[편집]

그러나 아리크 부케 산하의 제후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고, 오고타이의 아들 카단은 쿠빌라이의 편에 섰으며, 차가타이 가문마저 아리크 부케에 대한 지원을 끊자, 1264년 8월 21일 아리크 부케는 결국 쿠빌라이에게 항복했다. 이 일련의 전란을 승리자 쿠빌라이를 정통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아리크 부케의 난이라고 불렀다.

아리크 부케가 항복하자 쿠빌라이 칸은 아리크 부케의 목숨은 살려주는 대신 금고에 처했고, 아리크부케를 지지하던 왕족, 장수들은 참살하였다. 1266년에 의문스럽게 사망했는데, 일설에는 쿠빌라이에 의한 독살로 추정된다.

가족 관계[편집]

  • 父 : 툴루이(拖雷)
  • 母 : 소르칵타니(唆魯合貼尼)
    • 兄 : 몽케(夢哥)
    • 兄 : 쿠빌라이(忽必烈)
    • 兄 : 훌라구(旭烈兀)
      • 子 : 요부쿠르(藥木忽兒)
      • 子 : 멜릭 테무르(明里帖木兒)
      • 子 : 나이라쿠부카(乃剌忽不花)
      • 子 : 라간시간(拉幹失幹)

관련 항목[편집]

전임
원 헌종 몽케
몽골 제국의 대립 대칸
1259년 8월 11일/1260년 3월 ~ 1264년 8월 22일
후임
쿠빌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