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리치 울루그테무르 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オルク・テムル・ハーン.jpg

우루그 테무르 카안(몽골어: ᠥᠷᠦᠭ
ᠲᠡᠮᠦᠷ
ᠬᠠᠭᠠᠨ
Örüg Temür qa'an, 1379년 ~ 1408년)은 북원카안이었다. 이름은 보르지긴 굴리치(몽골어: ᠪᠣᠷᠵᠢᠭᠢᠨ
ᠭᠦᠯᠢᠼᠢ
Borǰigin Guliči)이었다.

우루그 테무르 카안은 우구데이 가문 출신이었다. 페르시아계 사서에는 그가 오고타이 칸의 후손이라 하나, 계보는 미상이다. 일설에는 오이라트부족 연합 출신이라는 설이 있고, 다른 설로는 칭기즈 칸의 동생인 하사르 또는 테무게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다. 그밖에 칭기즈 칸의 11대조 도부 메르겐의 형 두바 소코르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다. 서부 몽골 예니세이 키르기스인의 수령이라는 설도 있다. 1402년 즉위하면서 대원이라는 국호를 폐지하였다.

생애[편집]

페르시아계 일부 사서에는 울루그 테무르가 우구데이 칸의 아들 카단 오굴의 아들 누비야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 설을 택하면 울루그 테무르는 오고타이 칸의 증손자뻘이 되어 190년의 연대차이가 나서 시대가 맞지 않게 된다. 우루그 테무르는 러시아 남부 지방 출신이었다 한다. 그의 가계는 불분명해서, 칭기즈 칸의 동생인 하사르 또는 테무게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다. 그밖에 칭기즈 칸의 11대조 도부 메르겐의 형 두바 소코르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 그의 출신에 대한 다른 설로는 오이라트부 출신 설, 서몽골의 예니세이 키르기스인의 지도자라는 설 등이 있다.

1402년, 그는 아리크 부케의 후손인 군 테무르 카안을 살해하고 카앙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즉위 후 국호를 다시 원(元)으로 고쳤다. 명나라 역사서 명사에 의하면 그는 다시 타타르로 국호를 고쳤다 한다. 또한 엘베크 칸의 처 울제이투 카툰을 자신의 처로 삼았다.

그의 동맹인 아스트 부의 족장 아룩타이(몽골어: ᠠᠷᠦᠭᠲᠠᠢ Aruγtai)게는 칭상의 호를 주고, 동부 몽골을 그에게 주었다. 우루그 테무르 카안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은 몽골의 서부에 해당된다. ]] 1403년 울제이 테무르 카안의 둘째 아들 엘베크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1404년 티무르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를 방문한 카스티야 왕국의 사절 루이 곤잘레스 드 쿠라뷔흐는 그를 거란의 왕이라 유럽에 소개했고, 타타르인들은 울루그테무르를 토구즈라고 불렀다는 기록을 남겼다. 명나라 영락제는 시절을 보내 굴리치와 아루크타이에게 조공을 요청했지만 굴리치는 이를 거부했다. 또한 당시 명나라와 동맹을 맺은 하밀 칸국의 군주 엥케 테무르를 독살했다.

1407년 우루그 테무르는 하미 지방의 소공국을 점령했다. 1408년, 우루그 테무르 카안은 동몽골의 통치자이자 아스트 부의 족장 아룩타이(몽골어: ᠠᠷᠦᠭᠲᠠᠢ Aruγtai)에 의해 살해되었다. 아루쿠타이는 엘베크 카안의 차남이자 군 테무르 카안의 동생으로 당시 티무르 제국에 망명 중이던 울제이 테무르 카안을 찾아, 카안으로 옹립하였다.

전임
군 테무르 카안
제23대 몽골 제국 카간
1402년 - 1408년
후임
울제이 테무르 카안
전임
군 테무르 카안
제8대 북원 황제
1402년 - 1408년
후임
울제이 테무르 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