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굴리스탄 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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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굴리스탄 칸국 또는 모굴리스탄 한국1346년차가타이 칸국이 분열된 이후 차가타이 칸국의 동부에 성립된 정권을 이르는 말이다. 1706년에 마지막 칸이 호자 가문에 의해 추방될 때까지 존속했다. 차가타이 칸국의 동부 지대에 성립했다고 하여 동차가타이 칸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모굴인들이 주축이 된 국가임으로 모굴 칸국이라 이르기도 한다.

모굴리스탄 칸국은 초원 지대와 오아시스 지대의 상이한 두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천산 산맥 북방(= 모굴리스탄)이 초원의 유목 지대였고, 천산 산맥 남부(= 타림 분지)에 오아시스 도시들이 있는 정주 지대였다.[1] 16세기 초두에 모굴리스탄 칸국은 모굴리스탄을 상실하고 타림 분지의 정주지대로 이동했다.[2] 이후 모굴리스탄 칸국은 이슬람교에 더 기우는[3] 동시에 정주화되었다.[4]

역사[편집]

투글루크 티무르 칸[편집]

1346년차가타이 칸국카잔 칸카자간에 의해 피살되면서 사실상의 종말을 고했다. 천산북방에서 유목적인 생활을 고집하던 부족들은 트란스옥시아나에서 옹립된 이름뿐인 새로운 군주에 대한 신종을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차가타이의 후예인 투글루크 티무르를 군주로 추대한다. 일반적으로 이 사건을 차가타이 칸국의 분열인 동시에 모굴리스탄 칸국의 탄생으로 본다.[5]

1358년 카자간은 수렵 도중 암살당했다. 이후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을 무정부 상태로 몰아넣었다. 반면 동부의 모굴리스탄에서는 투글루크 티무르가 이슬람을 수용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칸의 권력을 확고히하여 안정되었다. 이후 투글루크 티무르는 두 번에 걸쳐 트란스옥시아나로 진군하여 차가타이 울루스를 재통일했다.[6] 하지만 이 통일은 오래가지 못 했다. 투글루크 티무르가 사망할 때(1363년)즈음 티무르아미르 후세인에 의해 모굴리스탄 칸국은 트란스옥시아나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7]

티무르 제국[편집]

투글루크 티무르에 이어 차가타이 한국을 장악한 것은 바를라스부의 아미르, 티무르였다. 투글루크 티무르에 의해 바를라스부의 아미르가 된 티무르는 다른 여러 부족들을 제압한 뒤 1370년에 서차가타이 한국을 장악하고 티무르 왕조를 세웠다. 티무르 왕조가 설립된 이후에도 차가타이 한국의 칸은 1402년까지 명목상으로 존재하지만 사실상 차가타이 한국은 1370년에 멸망을 고했다.

15세기 초반의 모굴리스탄 칸국
1490년의 모굴리스탄 칸국

투글루크 티무르 사후, 그의 아들 일리아스 호자는 트란속시아나에 대한 지배권을 다시 확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서차가타이 한국에서 티무르 왕조가 성립, 모굴리스탄 한국은 티무르 왕조의 지배권 아래로 들어가게 됐다. 15세기 중반, 티무르 한국의 분열로 다시 자립한 모굴리스탄 한국은 에센 부카 2세와 유누스 칸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카슈가르 한국[편집]

하지만 모굴리스탄 한국은 도스트 무함마드가 유누스 칸에 대항하여 동쪽 투르판을 중심으로 위구르스탄 한국을 세우며 양분되었다. 16세기 초 위구르스탄의 만수르 칸이 모굴리스탄을 재통일하고 오이라트와의 전투에서 여러 차례 승리하며 위세를 떨쳤지만 그의 형제인 사이드 칸카슈가르를 중심으로 카슈가르 한국을 세우면서 모굴리스탄 한국은 다시 분열되었다.

카슈가르 한국에서는 16세기 말부터 칸의 권위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 대신 호자라는 이슬람 귀족 가문이 권력을 잡게 됐다. 호자 가문은 카슈가르백산당야르칸드의 흑산당으로 분열하여 권력 투쟁을 벌였다.

17세기 초, 모굴리스탄 칸국은 결국 두 개의 칸국으로 분열된다. 하나는 야르칸드를 수도로 하였고, 또 하나는 투르판을 수도로 하였다. 1638년/1639년, 투르판의 칸 압둘라가 야르칸드를 정복하여 연합된 칸국을 재건했다. 그러나 연합된 칸국은 1680년 경, 갈단보쇽투 쿤타이지가 야르칸드와 카쉬가르를 정복하고, 차가타이 가문 최후의 군주, 이스마일 칸을 생포해 준가리아로 돌아간 뒤에 사실상 붕괴했다.[8]

갈단보쇽투는 방계혈통에 속하는 압둘 라시드를 허수아비 칸으로 세웠다가 곧 일리로 연행했다. 압둘 라시드 이후에는 그의 형제들이 연이어 칸이 되지만 모두 백산당의 호자들에게 살해당했다. 그리하여 모굴리스탄에 있는 칸 가문은 소멸하고 어머니쪽에서 칸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아팍 호자의 손자 아흐마드가 칸을 칭했다.[9]

모굴리스탄 칸국의 군주들[편집]

모굴리스탄 상실 이전[편집]

  1. 투글루크 티무르 칸 (재위기간: 1347년 ~ 1363년[10])
  2. 일리야스 호자 칸 (재위기간: 1363년 ~ 1365년[11])
  3. 히드르 호자 칸 (재위기간: 1389년 ~ 1399년[11])
  4. 샤미 자한 칸 (재위기간: 1399년 ~ 1407년[11])
  5. 무함마드 칸 (재위기간: 1407년 ~ 1415년[11])
  6. 우와이스 칸 (1차 재위; 재위기간: 1417년 ~ 1421년[11])
  7. 시르 무함마드 칸 (재위기간: 1421년 ~ 1425년[11])
  8. 이센 부카 칸 (재위기간: 1433년 ~ 1462년[11])
  9. 두스트 무함마드 칸 (재위기간: 1462년 ~ 1468년/1469년[11])
  10. 유누스 칸 (재위기간: 1468년/1469년 ~ 1487년[11])
  11. 마흐무드 칸 (1487년 ~ 1508년[12])
  12. 아흐마드 칸 (1476년 ~ 1503년[12])
  13. 만수르 칸 (재위기간: 1503년 ~ 1543년[13])
  14. 사이드 칸 (재위기간:1514년 ~ 1533년[14])

모굴리스탄 상실 이후[편집]

  1. 사이드 칸 (재위기간:1514년 ~ 1533년[14])
  2. 압둘 라시드 1세 (재위기간: 1533년 ~ 1559년/1560년[15])
  3. 압둘 카림 칸 (재위기간: 1559년/1560년 ~ 1590년/1591년[15])
  4. 무함마드 칸 가지 (재위기간: 1590년 ~ 1606년)[16]
  5. 샤 슈자 앗딘 칸 (재위기간:1606년 ~ 1618년/1619년[16])
  6. 압둘 라티프 칸(재위기간: 1618년/1619년 ~ 1626년/1627년[17])
  7. 술탄 아흐마드 칸 (1차 재위; 재위기간: 1626년/1627년 ~ 1632년/1633년[17])
  8. 술탄 마흐무드 칸 (재위기간: 1632년/1633년 ~ 1635년/1636년[17])
  9. 술탄 아흐마드 칸 (2차 재위; 재위기간: 1635년/1636년 ~ 1638년/1639년[17])
  10. 압둘라 칸 (재위기간: 1638년/1639년 ~ 1667년/1668년[18])
  11. 욜바르스 칸 (재위기간: 1667년/1668년 ~ 1670년[19])
  12. 이스마일 칸 (재위기간: 1670년 ~ 1680년 경[19])
  13. 압둘 라시드 2세(재위기간: 1680년 경[20])
  14. 무함마드 에민 칸 (재위기간: 1680년 경 ~ 1692년[20])
  15. 악바슈 칸 (재위기간: ?[20])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김호동, “前期 모굴汗國의 繼承紛爭을 통해 본 遊牧的 部族政治의 特徵,” 《동양사학연구》 33(1990), p.64.
  2. 김호동, “15-16세기 中央아시아 新遊牧集團들의 動向;前期 모굴汗國의 崩壞와 관련하여,” 《러시아연구》 3(1993), p.98.
  3. 고마츠 히사오, 나카미 타츠오, 하마다 마사미, “중앙유라시아의 주변화,” 《중앙 유라시아의 역사》, 이평래 옮김(서울: 소나무, 2005), p.330.
  4. 고마츠 히사오, 나카미 타츠오, 하마다 마사미, “중앙유라시아의 주변화,” 《중앙 유라시아의 역사》, 이평래 옮김(서울: 소나무, 2005), p.333.
  5. 김호동, “前期 모굴汗國의 繼承紛爭을 통해 본 遊牧的 部族政治의 特徵,” 《동양사학연구》 33(1990), pp.63-64.
  6. 호리카와 토오루, “몽골 제국과 티무르 제국,” 《중앙유라시아의 역사》, 이평래 옮김(서울: 소나무, 2005), pp.238-39.
  7. 르네 그루세,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 김호동, 유원수, 정재훈 옮김(서울: 사계절, 1998), p. 580.
  8. Yuri Bregel, An Historical Atlas of Central Asia(Leiden: Brill, 2003), p.56; 유리 브레겔에 따르면 갈단보쇽투가 모굴리스탄 칸국을 침입한 시기에 대해서는 사료들이 일치하지 않는다. 사료들이 제시한 시기는 1678년에서 1683년 사이에 존재한다.
  9. 고마츠 히사오, 나카미 타츠오, 하마다 마사미, “중앙유라시아의 주변화,” 《중앙 유라시아의 역사》, 이평래 옮김(서울: 소나무, 2005), p.335.
  10. 르네 그루세,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 김호동, 유원수, 정재훈 옮김(서울: 사계절, 1998), p. 489.
  11. 김호동, “前期 모굴汗國의 繼承紛爭을 통해 본 遊牧的 部族政治의 特徵,” 《동양사학연구》 33(1990), p.69.
  12. 르네 그루세,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 김호동, 유원수, 정재훈 옮김(서울: 사계절, 1998), p. 688.
  13. 르네 그루세,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 김호동, 유원수, 정재훈 옮김(서울: 사계절, 1998), p. 689.
  14. 르네 그루세,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 김호동, 유원수, 정재훈 옮김(서울: 사계절, 1998), p. 690.
  15. 김호동, “17세기 동투르크어 칙령의 체제와 내용,”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서울: 솔출판사, 2007), p.214.
  16. 김호동, “17세기 동투르크어 칙령의 체제와 내용,”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서울: 솔출판사, 2007), p.216.
  17. 김호동, “17세기 동투르크어 칙령의 체제와 내용,”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서울: 솔출판사, 2007), p.217.
  18. 김호동, “17세기 동투르크어 칙령의 체제와 내용,”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서울: 솔출판사, 2007), pp.217-18.
  19. 김호동, “17세기 동투르크어 칙령의 체제와 내용,”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서울: 솔출판사, 2007), pp.218.
  20. 고마츠 히사오 외, 《중앙 유라시아의 역사》, 이평래 옮김(서울: 소나무, 2005)의 부록에 있는 ‘왕조계보도’를 참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