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돌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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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역사
Монголын түүх
Stupas de Karakorum.jpg
동돌궐과 돌궐 제2제국에 최전성기의 강역.

동돌궐(東突厥) (583년~644년) 은 583년수나라의 이간책으로 분리된 돌궐의 한 세력이다.

개요[편집]

동돌궐은 분열되기 전의 돌궐을 기원으로 두고 있다. 돌궐은 중아아시아에서부터 몽골 영토에 있던 유연을 정복하고 동쪽 만주 지역까지 세력을 넓혔다. 강력한 세력으로 위세를 사방에 떨쳤으나 수나라의 이간책으로 돌궐 일부 세력이 반란을 일으켜, 동돌궐을 건국하였고 돌궐제국은 서돌궐제국과 동돌궐제국으로 분열되었다. 이후 동돌궐제국은 당나라의 침공으로 멸망하였으나 다시 돌궐 제2제국(동돌궐)이 건국되었다. 동돌궐은 위구르 카간국에 의해 멸망하였다.

동돌궐은 튀르크 민족 국가이다. 583년 수나라의 이간책에 의해 돌궐제국의 동쪽 영토에서 동돌궐제국이 건국되었다. 630년, 동돌궐은 선비족의 당나라와 전쟁을 하기 시작하였고 강력한 국력으로 고구려를 지원하였다. 동돌궐제국에 복속되어 있던 설연타는 돌궐에게서 독립하려 했고 이에 의해 동돌궐이 멸망하게 된다. 하지만 동돌궐은 다시 세력을 모으고 돌궐족들을 통합하여 다시 돌궐 제2 카간국을 건국했다. 그러나 744년 위구르 카간국에게 멸망한다. 한편, 위구르키르기스인에게 멸망된다. 서돌궐제국의 돌궐인들은 중앙아시아에서부터 페르시아를 지나 아나톨리아에 까지 셀주크 투르크 제국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건설하고 현재 중앙아시아의 국가들과 코카서스의 국가들 및 터키 공화국으로 이어진다.

역사[편집]

동서돌궐의 싸움은 수문제의 이간책까지 겹쳐 격화됐다. 궁지에 몰린 사발략가한은 수나라에 지원을 요청했고, 587년 그의 동생 막하가한은 동부는 되찾았으나 서돌궐과 싸우다 전사, 이후 야미 카안(Yami Kağan, 계민가한) 치세 때 동돌궐은 서돌궐을 이기기 위해 수나라에 일시적으로 굴복했다.

하지만 수나라가 고구려와의 성과 없는 전쟁으로 인해 국력을 소모하고 내란으로 붕괴되자, 그 틈을 노려 수나라의 복속에서 벗어나 다시 세력을 길러 중원의 쟁패전에 개입하며 군벌들을 후원하는 등 위세를 떨쳤다. 당태종 이세민은 돌궐을 상대로 외교적 이간책을 시도했다. 힐리가한에게 불만을 품은 조카 돌리와 욱사설이 당나라로 투항해왔고, 설연타를 비롯한 철륵계 부족들도 당의 사주를 받아 돌궐에 등을 돌렸다. 게다가 수년 동안 큰 눈이 많이 내려 유목하던 가축들이 폐사하는 악재가 겹치자 이세민은 상황을 간파하고 서기 630년에 대대적으로 지금의 내몽골 지역을 기습공격해 힐리가한을 생포, 멸망시켰다.

나라를 잃은 돌궐인들 일부는 서돌궐로 가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은 내몽골에 그대로 남았고, 이세민은 634~645년 만리장성 근처 10개 주에 이주시켰다. 그러나 639년 돌궐 수령 결사솔의 반란을 계기로 다시 원래 살던 곳으로 재이주시켰고 도호부를 두어 기미지배했다.

고구려와의 관계[편집]

동돌궐은 고구려의 동맹이였다. 이때 동돌궐은 한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발해(고구려의 계승국가)와의 관계[편집]

돌궐족이 당나라에 대한 봉기를 일으키고 독립하였을 그 때 고구려 유민들이 돌궐족을 돕고 난 뒤 698년 대조영은 동모산에 국을 세우고 돌궐과 우호 관계를 지냈다.

역대 카간[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