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 카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시비 카간(한국 한자始畢可汗 시필가한: ?-619년)[1]동돌궐의 제9대 카간이다. 휘는 아사나 돌길세(阿史那咄吉世). 양제의 누이 의안공주와 결혼했다. 증조할아버지뻘 되는 5대 이슈바라 카간수 양제에게 신속한 이래 4대만에 중국에 반기를 들었다.

중국을 공격하기에 앞서 소그드인 공후들의 지지를 받아 후방을 안정시켰다. 이들 소그드인들은 615년 마읍현(오늘날의 산서성 삭주시)에서 시비 카간이 수나라의 배구와 화약을 논하는 자리에 초청되었는데, 배구가 소그드인들이 카간을 배신하려 했다는 누명을 씌어 모두 죽게 만들었다. 같은 해 양제 부부가 북방을 수행하는 것을 노려 안문군에서 황제 일행을 포위했다. 그러나 의안공주가 후방이 어지럽다는 거짓 정보를 보내자 포위를 풀고 물러갔다.[2]

수말당초의 군벌 할거기에 시비 카간은 이연을 비롯한 여러 군벌들을 동시에 지원하며 한족의 분열을 획책했다. 예컨대 이연에게는 군마 2천 필과 기병 5백 기를 지원했는데, 시비 카간에게 지원받은 이 기병대가 호뢰 전투에서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이연의 세력이 당나라를 이루고 통일을 하면서 본래 구상이 실현되지는 못했고 619년 죽었다. 동생 출로 카간이 카간위를 계승했다.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