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서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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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여진(海西女眞)은 여진족의 세 분파중의 하나로 4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명나라 말기에 개원, 길림 등지에 거주하고 있던 여진족이다. 해서여진은 명나라 측에서 부르는 이름이며, 다른 부족들은 그들을 여진어(만주어)로 후룬 굴른(扈倫, 후룬국, 홀랄온 또는 호륜으로도 표기)이라고 불렀다. 후룬은 우라(烏拉), 후이파(輝発), 하다(哈達), 예허(葉赫) 4개의 부족으로 구성된 부족이며, 만주사에서는 후룬사부라고 불렀다.

개요[편집]

명왕조의 역사가들은 여진족을 세 분파로 나누어 파악하였다: 만주 최북방의 야인 여진(野人女眞)과 현대 헤이룽장 성에 거주하던 해서 여진(海西女眞), 그리고 길림 성건주 여진(建洲女眞)이다. 이들은 유목과 농경을 병행했으며 사냥과 낚시 그리고 제한된 농업을 생업으로 삼았다.

해서여진(海西女直)은 16세기에서 17세기의 명말 청초 경에 개원, 길림에 거주하고 있던 여진의 집단이었다. 해서여진은 명나라 측에서 분류한 이름으로 후룬국 (忽剌國, 扈倫)으로 불리는 집단이었다. 후룬국은 우라(烏拉), 후이파(輝発), 하다(哈達), 예허(葉赫)의 4개 정치 체제로 구성되어있으며 만주사의 후룬 4부로 불렸다.

16세기 말에 누르하치가 건주여진을 통일하고 후금을 세우자, 해서여진의 후룬 4부는 1593년 이후 후금과 싸움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후룬 4부는 상호 불화 때문에 협력하지 못하고, 건주여진을 통일 세력으로 정리한 누르하치 앞에서 각개 격파되어, 1599년에 하다, 1607년에 ‘후이파’, 1613년에 ‘우라’가 차례로 멸망되어 후금에 흡수되었다.

홀로 남아 있던 ‘예허’는 후룬 4부의 가장 강력한 부족으로 누르하치와 격렬하게 싸웠다. 명나라의 후원을 업고 누르하치의 여진 통일 운동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되었지만, 1619년 사르후 전투에서 명과 예허의 연합군이 누르하치에게 패배하여 저항하지 못하고, 멸망당했다.

후룬 4부는 후금에 병합이후 팔기에 편성되어 청나라의 지배 민족인 만주인의 일부가 되어갔다.

해서여진의 4부족과 그 근거지[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