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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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조
宋朝

1127년1279년
Sung Dynasty 1141.png
1141년의 남송(주황색).
수도 임안
정치
공용어 중국어
정부 형태 전제 군주제
황제 조구 (1127 ~ 1162)
조신 (1162 ~ 1189)
조돈 (1189 ~ 1194)
조확 (1194 ~ 1224)
조윤 (1224 ~ 1264)
조기 (1264 ~ 1274)
조현 (1274 ~ 1276)
조시 (1276 ~ 1278)
조병 (1278 ~ 1279)
역사
 • 성립
•멸망
1127년
1279년
어림인구수
중국의 역사
중국의 역사
신화와 고대
선사 시대
황하·장강 문명기원전 4800?~기원전 3500?
신화·삼황오제기원전 4000?~기원전 2070?
헌원기원전 2698?~기원전 2598?


기원전 2070?~기원전 1600?
기원전 1600?~기원전 1046?
기원전 1046?~기원전 256
  서주 기원전 1046?~기원전 771
  동주 기원전 771~기원전 256
    춘추 시대 기원전 771~453
    전국 시대 기원전 453~221
제국의 시대
기원전 221~기원전 206

기원전 202~서기 220
  전한 기원전 202~서기 8
  8~23
  후한 25~220

삼국 시대 220~280
  220~265
  촉한 221~263
  229~280
265~420
  서진 265~316
  동진 317~420 오호 십육국 시대
304~439
남북조 시대 439~589
581~618

618~907
무주 690~705

오대십국시대
907~960

916~1125

960~1279
  북송
 960~1127
서하
1038~1227
  남송
 1127~1279

1115~1234
1271~1368

1368~1644


1616~1912

현대의 중국
중화민국 (북양 정부, 국민정부) 1912~1949
  만주국 1931~1945
중화인민공화국
1949~현재

중화민국
(타이완)
1949~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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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南宋 : 1127년-1279년)은 중국의 왕조 중 하나이다. 조광윤(趙匡胤)이 건국한 송나라 왕조가 여진족의 금나라에게 1126년 정강의 변을 겪으면서 화북을 빼앗긴 후, 종실 강왕(康王) 조구(趙構) (훗날 고종)가 남쪽으로 옮겨 양자강 이남의 땅 임안(현재의 항저우)으로 천도하여 재흥한 정권을 가리켜 남송이라고 부른다.

역사[편집]

남송 행정도

1126년 개봉부가 금병에 함락되어 북송휘종(徽宗)과 흠종(欽宗) 두 황제가 금나라에 의해 카이펑에서 북쪽으로 잡혀가는 정강의 변이 일어나 북송이 멸망한 후, 흠종의 동생 강왕 조구는 남쪽으로 도망쳐 1127년 난징에서 등극하여 고종(高宗)이 되어 송나라를 재흥했다. 처음엔 악비(岳飛), 한세충(韓世忠) 등의 활약으로 인해 금나라에게 강력하게 저항했으나, 진회(秦檜)가 재상으로 취임하면서 주전론(主戰論)을 누르고, 금나라와 화평을 맺었다.

화평 후 진회는 완전히 권력을 장악하고, 이때까지 악비 등의 군벌의 손에 장악당한 군의 지휘권을 조정으로 되돌렸다. 또 한편으로는 주전론자들을 탄압하여 악비는 살해되고, 한세충은 은거를 하였다.

효종의 치세[편집]

진회의 사후 금나라의 4대 황제 해릉왕(海陵王)이 침공을 개시했다. 금나라군은 대군이었으나, 해릉왕은 권력 확립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살해했기 때문에 금나라의 황족 중 한 사람인 완안옹(完顔雍)이 해릉왕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 금나라의 유력자들은 속속 완안옹의 곁으로 모이게 되었고, 해릉왕은 군중에서 살해되었다. 완안옹은 금나라의 세종(世宗)이 되어 송나라와 화평을 맺었다. 같은해 고종은 퇴위하여 태상황이 되고, 양자인 조신(趙昚)이 즉위하여 효종(孝宗)이 되었다.

금의 세종, 남송의 효종은 각자가 속한 왕조에서 가장 최고의 명군으로 불렸던 인물들이었는데, 우연하게도 동시대에 2명의 명군이 남쪽과 북쪽에 나타나게 되어 평화가 찾아오게 되었다.

효종은 불필요한 관리의 숫자를 줄이고, 당시 남발기미가 보이던 회자(會子;지폐)의 절제 및 농촌의 체력회복, 강남경제의 활성화 등 여러가지 개혁을 추진해 남송은 번영을 구가하게 되었다.

한탁주 시대[편집]

효종이 1189년 퇴위하여 상황이 되고, 조돈(趙惇)이 즉위하여 광종(光宗)이 되었다. 광종은 아버지와는 다르게 우둔하였기에 황후 이씨의 말밖에는 듣지않았다. 황제에 불만을 품은 종실 재상 조여우(趙汝愚)와 한탁주(韓侂胄) 등에 의해 광종은 퇴위당했다. 한탁주는 이 공적으로 권력의 자리에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한탁주의 인격을 좋아하지 않은 조여우 등은 한탁주를 멀리했다.

이것에 원한을 품은 한탁주는 조여우 등을 몰아내기 위한 운동을 시작해 1195년(경원 원년) 조여우는 재상직에서 물러났고, 경원 3년에는 조여우편에 섰던 주필대(周必大), 유정(留正), 왕난(王藺), 주자(朱子), 팽귀년(彭龜年) 등 59명이 금고(禁錮)에 처해졌다. 그 이듬해에는 주자의 성리학(性理學;당시 도학(道學)이라고 불렸다) 역시 위학이라고하여 탄압받는 지경에 이르렀다.(경원위학의 금(慶元僞學之禁))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을 경원의 당금(慶元之黨禁)이라 불렀다.

한탁주는 그 후 10년동안 권력을 유지했으나, 뒤를 보호해주던 황후와 황태후가 차례로 붕어하자, 권력이 서서히 줄어들게 되었다. 이때 금나라가 북쪽의 타타르 등의 침입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금나라는 약체화되었다고 본 한탁주는 남송의 비원인 금나라 타도를 성공시킨다면 권력을 확고부동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북벌을 감행했으나 실패했다. 실제 금나라는 곤란한 상황이었으나, 그 이상으로 남송군의 약체화가 현저하였던 것이다.

1207년 금나라는 조기 화평을 희망하고, 한탁주의 머리를 요구하자, 이것을 들은 예부시랑(문부대신) 사미원(史弥遠)에 의해 한탁주는 살해되고, 그의 머리는 소금에 절여져 금나라로 보내지는 것으로 금나라와 화의을 맺었다.

몽골의 위협[편집]

한탁주을 살해한 사미원이 이번에 권력을 장악하고 그 후 26년 동안 재상의 지위를 차지했다. 그 시기 북쪽의 몽골고원에서는 몽골 제국이 급속도로 세력을 확대하였다. 사미원이 사망한 1233년 몽골 제국이 금나라의 수도 카이펑을 함락하자, 남쪽으로 도망친 금나라 최후의 황제 애종(哀宗)을 송나라군과 협력하여 사로잡아 1234년 금나라는 멸망했다.

그 후 몽골은 일시 북쪽으로 물러나고, 그 뒤를 송나라군이 북상하여 낙양카이펑(개봉)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이것은 몽골과의 조약위반이 되었기에 격노한 몽골군과 전투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명장으로 널리 알려진 맹공(孟珙)의 앞에서 고전을 면치 못해, 전투는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이윽고 1260년 몽케 칸의 친정군이 들이닥쳤다.

멸망[편집]

그러나 몽케 칸은 이 원정 도중에 병사한다. 이때 쿠빌라이 칸이 공격한 무창에 원군으로 온 가사도(賈似道)는 이들을 퇴각시켰다. 이 전투에서 가사도와 쿠빌라이 칸 사이에서 밀약이 있었던 것은 훗날 알려지게 되었다.

몽골을 격퇴한 영웅으로써 환영받게 된 가사도는 그 인기에 힘입어 재상이 되어, 전권을 임명받았다. 가사도는 교묘한 정치수완을 발휘하고, 공전법 등 농정 개혁에 힘쓰는 한편, 인기를 얻는 것도 잊지 않아 그 후 15년에 걸쳐 정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몽골 평원에서 아리크부케를 쓰러뜨리고 권력을 장악한 쿠빌라이 칸이 다시 침공을 개시하여, 남송이 국력을 총동원하여 국토 방어의 거점으로 삼았던 양양(襄陽)을 1268년부터 1273년까지 5년간에 걸친 포위전(양양 공방전) 끝에 함락하면서 남송은 더이상의 저항할 힘이 없어졌고, 가사도는 주위의 목소리에 몽골과 싸우기 위해 출발했으나 대패했다.

1276년 몽골의 장군 바얀에 의해 수도 임안이 점령되면서 사실상 송나라는 멸망했다. 그 시기 장세걸(張世傑), 육수부(陸秀夫) 등 일부 군인과 관료는 어린 황자를 데리고 나와 황제로 옹립하고, 남쪽으로 도망쳐 철저 항전을 계속하였다. 1279년 그들은 광주만(廣州灣)의 애산(厓山)에서 군에게 격멸당해 이것으로 인해 송나라는 완전히 멸망하였다(애산 전투).

충신의 귀감으로 칭해지던 문천상(文天祥)도 2년이상 각지에서 저항전을 계속했으나, 1278년에 원나라에 붙잡혀 누차의 회유에도 불응하고 절개를 지켜 옥중에서 정기가(正氣歌)를 읊고 1282년에 처형되었다.

남송이 멸망할 때 나라에 순사한 충신은 다른 왕조에 비해 대단히 많았으나, 원나라의 통치 아래에서 송나라의 유민으로써 살아남기를 계속한 사대부도 있어 문장궤범을 편찬한 사방득, 십팔사략을 저술한 증선지, 자치통감음주(자치통감의 주석서)을 저술한 호삼성 등, 문학 사학에서 이름을 남긴 송나라의 유민도 많았다.

문화[편집]

국제교역 및 농지개량 등에 의해 고도의 문화를 쌓아 화중의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절강성 용천애산의 청자 및 복건성 건애의 [건애]의 별명으로 알려진 [천목다완]에 최고의 명품이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하고, 또 일본과의 사이에서 일송교역이 왕성해 선종도 이때 중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지는 등 일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역대 황제[편집]

남송 황제와 연호
어진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Gaozong Of Song.jpg 제1대 송 고종
(宋高宗)
수명중흥전공지덕성신
무문소인헌효황제
(受命中興全功至德聖神
武文昭仁憲孝皇帝)
조구(趙構) 건염(建炎) 1127년 ~ 1130년[1]
소흥(紹興) 1131년 ~ 1162년[2]
1127년 ~ 1162년 영사릉(永思陵)
Xiaozong.jpg 제2대 송 효종
(宋孝宗)
소통동도관덕소공철문
신무명성성효황제
(紹統同道冠德昭功哲文
神武明聖成孝皇帝)
조선(趙昚) 융흥(隆興) 1163년 ~ 1164년[3]
건도(乾道) 1165년 ~ 1173년[4]
순희(淳熙) 1174년 ~ 1189년[5]
1162년 ~ 1189년 영부릉(永阜陵)
宋光宗.jpg 제3대 송 광종
(宋光宗)
순도헌인명공무덕온문
순무성철자효황제
(循道憲仁明功茂德溫文
順武聖哲慈孝皇帝)
조돈(趙惇) 소희(紹熙) 1190년 ~ 1194년[6] 1189년 ~ 1194년 영숭릉(永崇陵)
Songlinzong.jpg 제4대 송 영종
(宋寧宗)
법천비도순덕무공인문
철무성예공효황제
(法天備道純德茂功仁文
哲武聖睿恭孝皇帝)
조확(趙擴) 경원(慶元) 1195년 ~ 1201년[7]
가태(嘉泰) 1201년 ~ 1205년[8]
개희(開禧) 1205년 ~ 1208년[9]
가정(嘉定) 1208년 ~ 1225년[10]
1194년 ~ 1224년 영무릉(永茂陵)
宋理宗.jpg 제5대 송 이종
(宋理宗)
건도비덕대공부흥열문
인무성명안효황제
(建道備德大功復興烈文
仁武聖明安孝皇帝)
조윤(趙昀) 보경(寶慶) 1225년 ~ 1227년[11]
소정(紹定) 1228년 ~ 1233년[12]
단평(端平) 1234년 ~ 1236년[13]
가희(嘉熙) 1237년 ~ 1240년[14]
순우(淳祐) 1241년 ~ 1252년[15]
보우(寶祐) 1253년 ~ 1258년[16]
개경(開慶) 1259년[17]
경정(景定) 1260년 ~ 1264년[18]
1224년 ~ 1264년 영목릉(永穆陵)
宋度宗皇帝.jpg 제6대 송 도종
(宋度宗)
단문명무경효황제
(端文明武景孝皇帝)
조기(趙禥) 함순(咸淳) 1265년 ~ 1274년[19] 1264년 ~ 1274년 영소릉(永紹陵)
Song Gongdi.jpg 제7대 효공의성황제
(孝恭懿聖皇帝)
(영국공(瀛國公))
조현(趙顯) 덕우(德祐) 1275년 ~ 1276년[20] 1274년 ~ 1276년 영국공묘(瀛國公墓)
Song Duanzong.jpg 제8대 송 단종
(宋端宗)
유문소무민효황제
(裕文昭武愍孝皇帝)
조시(趙昰) 경염(景炎) 1277년 ~ 1278년[21] 1276년 ~ 1278년 영복릉(永福陵)
Song Modi.jpg 제9대 소황제
(少皇帝)
(유주(幼主), 위왕(衛王))
조병(趙昺) 상흥(祥興) 1279년[22] 1278년 ~ 1279년 소제릉(少帝陵)

각주[편집]

  1. Bo (1977), 938~942쪽
  2. Bo (1977), 944~961쪽
  3. Bo (1977), 961~962쪽
  4. Bo (1977), 963~965쪽
  5. Bo (1977), 965~969쪽
  6. Bo (1977), 970~972쪽
  7. Bo (1977), 972~973쪽
  8. Bo (1977), 977~978쪽
  9. Bo (1977), 979~981쪽
  10. Bo (1977), 981~988쪽
  11. Bo (1977), 989~990쪽
  12. Bo (1977), 991~994쪽
  13. Bo (1977), 995~996쪽
  14. Bo (1977), 996~997쪽
  15. Bo (1977), 998~1002쪽
  16. Bo (1977), 1003~1004쪽
  17. Bo (1977), 1005쪽
  18. Bo (1977), 1006~1008쪽
  19. Bo (1977), 1008~1011쪽
  20. Bo (1977), 1012~1013쪽
  21. Bo (1977), 1013~1015쪽
  22. Bo (1977), 1015~10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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