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대일 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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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대일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의 일부
US-Soviet sailors on VJ Day.jpg
교전국

일본 제국의 기 일본 제국
만주국의 기 만주국

몽강연합자치정부의 기 몽강연합자치정부

소련의 기 소련

몽골 몽골 인민 공화국
지휘관

일본 제국 야마다 오토조
일본 제국 노기 마레스케
일본 제국 고즈키 요시오
일본 제국 히구치 기이치로
만주국 푸이

몽강연합자치정부 데므치그돈로브

소련 로디온 말리놉스키
소련 이반 유마셰프
소련 A. 바실렙스키
소련 막심 푸카예프
소련 키릴 메레츠코프

몽골 허를러깅 처이발상

소련 대일 참전(일본어: ソ連対日参戦 (ソれんたいにちさんせん) 소렌타이니치산센[*] / 러시아어: Советско-японская война 소베츠코-이폰스카야 바이나)이란 소련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일본 제국과의 소비에트 연방-일본 중립 조약을 파기하고 8월 9일 일본 제국을 침공하여 발발한 전쟁을 말한다. 소련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침공 계획[편집]

전개[편집]

소련얄타 회담을 통해 8월 초 일본 제국과 맺은 소비에트 연방-일본 중립 조약을 파기하고 일본 제국에게 선전 포고를 하여 일본 제국소련의 전쟁이 만주국에서 펼쳐졌다[1] . 그리고 이 전쟁을 통해서 사할린 섬도 탈환하였다.[2]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투하되기 전까지만 해도 소련은 대일 참전에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일본의 항복을 앞당기기 위한 연합국들의 채근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권고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2주 전의 포츠담 선언(45년 7월26일)에서도 빠졌다. 41년 일본과 체결한 중립(불가침) 조약이 여전히 유효한 상태라는 게 표면상의 이유였다.

그러나 수면 아래서는 계속해서 대일 참전의 실리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홋카이도 분할 통치를 대일 참전의 요구 조건으로 내세우는 등 전후 동북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보를 위해 최대한 몸값을 높이는 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이 원자 폭탄을 히로시마에 투하, 결정적으로 일본의 패망을 앞당기자 허겁지겁 일본에 선전 포고한 것이다. 결국 소련은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투하된 지 이틀 뒤인 1945년 8월 8일 부랴부랴 대일 선전 포고를 하고 포츠담 선언에 합류했다. 일주일 뒤 히로히토(裕仁) 일본 천황의 무조건 항복 선언이 나왔다.

만주국에서 승리한 소련은 만주국을 멸망시켰고 8월 9일에는 한반도의 웅기, 나진으로 진출하여 마침내 8월 11일에 점령하였다[3]. 이후 남진을 계속하면서 8월 13일에 청진으로 진출하였다.[4] 그리고 일본 제국이 8월 15일에 정식으로 항복함으로써 조선은 해방되었다.[5][6]

각주[편집]

  1. Battlefield II The Battle of Manchuria World War II
  2. 대한민국 6년역사가 움직인 순가늘 1부
  3. 유지시거
  4. 러시아 소장 북한 영상기록물 최초 공개 2006-05-18 16:35
  5.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분단의 기원
  6. Battlefield II The Battle of Manchuria World War 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