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대일전 참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소련 대일전 참전
(제2차 세계 대전의 일부)
US-Soviet sailors on VJ Day.jpg
날짜 1945년 8월 8일 ~ 1945년 8월 26일
장소 만주, 사할린, 한반도웅기군선봉군
결과 소련의 승리와 만주, 북한 점령
일본 제국의 패배와 항복
교전국
일본 제국 일본 제국

만주국 만주국
몽강국 몽강국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소련 소련

몽골 몽골 인민 공화국

지휘관
일본 제국 히로히토 소련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소련 대일전 참전이란 소련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일본 제국과의 소비에트 연방-일본 중립 조약을 파기하고 8월 9일 일본 제국을 침공하여 발발한 전쟁을 말한다. 소련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침공 계획[편집]

전개[편집]

소련얄타 회담을 통해 8월 초 일본 제국과 맺은 소비에트 연방-일본 중립 조약을 파기하고 일본 제국에게 선전 포고를 하여 일본 제국소련의 전쟁이 만주국에서 펼쳐졌다[1] . 그리고 이 전쟁을 통해서 사할린 섬도 탈환하였다.[2]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투하되기 전까지만 해도 소련은 대일 참전에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일본의 항복을 앞당기기 위한 연합국들의 채근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권고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2주 전의 포츠담 선언(45년 7월26일)에서도 빠졌다. 41년 일본과 체결한 중립(불가침) 조약이 여전히 유효한 상태라는 게 표면상의 이유였다.

그러나 수면 아래서는 계속해서 대일 참전의 실리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훗카이도(北海道) 분할 통치를 대일 참전의 요구 조건으로 내세우는 등 전후 동북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보를 위해 최대한 몸값을 높이는 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이 원자 폭탄을 히로시마에 투하, 결정적으로 일본의 패망을 앞당기자 허겁지겁 일본에 선전 포고한 것이다. 결국 소련은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투하된 지 이틀 뒤인 45년 오늘 부랴부랴 대일 선전 포고를 하고 포츠담 선언에 합류했다. 일주일 뒤 히로히토(裕仁) 일본 천황의 무조건 항복 선언이 나왔다. 원자 폭탄 투하 뒤 미국은 소련의 홋카이도 분할 통치론을 묵살하고 나섰다. 결국 그들이 분할한 곳은 패전국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 한반도였다.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이 일주일만 빨리 나왔어도 한반도의 분단을 피할 수 있었다는 가정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는 대목이다.[3]



만주국에서 승리한 소련은 만주국을 멸망시켰고 8월 9일에는 북한의 웅기, 나진으로 진출하여 마침내 8월 11일에 점령하였다[4]. 이후 남진을 계속하면서 8월 13일에 청진으로 진출하였다.[5] 그리고 일본 제국이 8월 15일에 정식으로 항복함으로써 조선은 해방되었다.[6] [7] 소련은 일본 제국의 항복 이후에도 8월 16일이 돼서야 청진을 점령하였으며 유일하게 조선정상진이 소련 군인으로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8] . 반면 일본 제국만주국소련에게 내주어야 했고 이어 소련의 계속된 남진을 하여 일본군 무장 해제로 조선의 북쪽에서도 후퇴해야 했다[9].

주석[편집]

  1. [http://www.youtube.com/watch?v=twU8IXlbYok Battlefield II The Battle of Manchuria World War II]
  2. 대한민국 6년역사가 움직인 순가늘 1부
  3. [출처] [역사속 오늘] 8월 8일 소련 대일 선전 포고|작성자 20년째 학부모
  4. 유지시거
  5. 러시아 소장 북한 영상기록물 최초 공개 2006-05-18 16:35
  6.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분단의 기원
  7. Battlefield II The Battle of Manchuria World War II
  8. 3편 오딧세이-기나긴 여정
  9. Battlefield II The Battle of Manchuria World War 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