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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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준비위원회
조선인민공화국
朝鮮建國準備委員會
朝鮮人民共和國

1945년 8월 16일1948년
Flag of South Korea (1945-1948).svg Coat of arms of People's Republic of Korea.svg
국기 국장
표어 자주독립국가(自主獨立國家)[1]
국가 애국가
Locator map of South Korea 1945-50.png
수도 서울 경기도
정치
공용어 한국어
정부 형태 주석제
주석 여운형 주석
역사
 • 소련군 청진시에서 전투
 • 여운형이 총독부가 됨
 • 여운형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선포
 • 경성일보, 방송국,경찰서 등
을 접수
 • 소련군 함흥시 점령 중
 • 총독부의 반격으로 활동이 중지됨
 • 소련군 평양 점령
 • 미국 인천 상륙
 • 조선인민공화국 성립
 • 미국 서울 점령과 군정
 • 모스크바 삼상회의
 • 태극기 게양
 •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 노동당 총파업으로 남로당이
반란일으켰으나 미국에 의해 진압
 •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
 • 제주 4.3사건
 •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45년 8월 15일
1945년 8월 15일
1945년 8월 16일
1945년 8월 18일

1945년 8월 18일
1945년 8월 20일
1945년 8월 24일
1945년 9월 6일
1945년 9월 6일
1945년 9월 9일
1945년 12월16일
1946년 1월 14일
1946년 1월 16일
1946년 9월

1947년 5월 21일
1948년 4월 3일
1948년 8월 15일
지리
면적 220,951km²
기타
통화 원(圓)

조선총독부가 여운형을 총독부로 임명하여 결국 여운형이 조선인들을 해방시키고 건국준비위원회를 시작시켰다. 이는 곧 조선의 부활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미국 군정의 의해 강제 소멸되었다.

조선인민공화국(朝鮮人民共和國, 약칭 "조선", "인공")은 1945년 9월 6일 전국인민대표자회의에서 여운형을 중심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선포했다. 이들을 정치적 성향별로 분류하면 민족주의자 9명, 여운형계의 중도좌파가 10명, 그리고 3분의 2 가량이 공산주의자였다. 이 단체는 남북, 미국, 소련에게 소외되어 흐지부지 되면서 1946년에 민주주의민족전선으로 집결되었다.

설립 과정[편집]

태평양 전쟁에 뒤늦게 참전한 소비에트 연방웅기군나진8월 12일까지 점령하고, 이어 8월 13일에는 청진시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매우 당황했었으며 8월 15일 9시에 여운형을 총독부로 임명했다. 여운형 총독부는 곧바로 건국동맹이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활동하던 여운형 등은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하였다. 이어 경성일보경성방송국 등이 원래 조선인들의 손에 넘어갈 듯했으며, 지방에서도 역시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을 제압했다.

한편, 한반도 북쪽에서는 청진시8월 16일소비에트 연방이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함흥과 동해를 건너 원산을 장악하고 8월 18일에는 만주국을 멸망시켰다.

하지만, 조선총독부가 최소한 경성소비에트 연방이 점령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선인들을 이용해 안전을 위했던 것이었으나 소비에트 연방이 38선 이남으로 내려오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알자 조선총독부는 곧바로 반격을 시도하여 결국 다시 조선총독부의 손아귀로 넘어간 후, 미국에게 이양시켰다.

1945년 9월 6일, 건준이 "인민대표자대회"를 열고 "조선인민공화국"을 결정·선포하였다. 중앙인민위원 55명과 후보위원 20명, 고문 12명을 선출하였으며, 군정기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남북의 전 도,군,면에 인민위원회를 설립했다.

1945년 9월 7일 주석 이승만, 부주석 여운형, 국무총리 허헌, 내무부장 김구, 외무부장 김규식, 재정부장 조만식, 군사부장 김원봉, 사법부장 김병로, 문교부장 김성수, 경제부장 하필원, 체신부장 신익희, 노동부장 이주하, 보안부장 최용달 등으로 구성되었다. [2]

조선인민공화국의 정강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정치, 경제적으로 완전한 자주적 독립 국가의 건설을 기함
  • 일본 제국주의와 봉건 잔재 세력을 일소하고 전 민족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본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에 충실하기를 기함
  • 노동자, 농민 기타 일체 대중 생활의 급진적 향상을 기함
  • 세계 민주주의 제국의 일원으로서 상호 제휴하여 세계 평화의 확보를 기함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수락 거부[편집]

제1차 인민대표자대회에서 주석으로 추대되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인이었던 이승만은 1945년 10월 18일에 귀국한 후 10월 22일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조선인민공화국의 주석으로 추대된 것은 모르는 일이며 취임하겠다고 호의를 표한 적도 없다고 밝혔으며,[3][4] 11월 7일에 서울중앙방송국을 통해 공식적으로 주석직을 거부하였다.[5][6] 뒤이어 귀국했던 김구와 김규식 또한 11월 28일에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조선인민공화국과 이야기가 오고간 것이 없었다며 관계된 것을 부인하였다.[7][8]

중앙인민위원회[편집]

의의[편집]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조선인민공화국이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은 정치적 의의는 지적할 수 있다.

  1.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출현으로 말미암아 민족적인 단결이 무엇보다 필요하였던 광복정국을 너무 일찍이 감정적으로 좌우진영으로 분열시켰다는 점이다.
  2. 조선인민공화국의 여파로 미군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정부 승인은 물론이고 단체로서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3. 조선인민공화국은 광복 직후의 정세에서 그 분위기를 좌익세력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점이다.[9]
  4. 마지막으로, 소비에트 연방의 남하로 인해 여운형을 중심으로 조선인민공화국이 그나마 설립되었다는 점이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사회주의에 입각한 자주독립을 의미한다. - 조선인민공화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 허은, 〈8·15직후 민족국가 건설운동〉,강만길 외, 《통일지향 우리 민족해방운동사》(역사비평사,2000)307~308쪽.
  3. “우리自主獨立妨害하면 어떤勢力과도싸운다”. 《자유신문》. 1945년 10월 23일. 2016년 1월 8일에 확인함. (問) 人民共和國의 主席就任懇請에 好意를 보하셧다는데? / (答) 드르니까 主席으로 推薦되엇다고도하나 全然알지못하는일이며 就任하겟다고 好意를 表한일도업다 
  4. “이승만, 민족통전,38선,신탁문제 등에 관해 기자회견”. 《자료대한민국사 제1권》. dh_001_1945_10_22_0020. 2016년 1월 8일에 확인함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제공. 
  5. “一喜一悲·非常한機會 重要段階에直面 / 人民共和國主席은受諾할수업다”. 《자유신문》. 1945년 11월 8일. 2016년 1월 8일에 확인함. 
  6. “이승만, 인공주석 수락거부 성명 발표”. 《자료대한민국사 제1권》. dh_001_1945_11_07_0080. 2016년 1월 8일에 확인함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제공. 
  7. “臨時政府正副主席, 人民共和國入閣否認, 再昨日許憲氏와 會談中意思表示”. 《중앙신문》. 1945년 11월 29일. 2016년 1월 8일에 확인함. 
  8. “김구와 김규식, 인공 입각설 부인”. 《자료대한민국사 제1권》. dh_001_1945_11_28_0040. 2016년 1월 8일에 확인함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제공. 
  9. 조선인민공화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