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간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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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간타로
鈴木 貫太郎
Kantaro Suzuki suit cropped.jpg
일본 일본의 제22대 추밀원 의장
임기 1945년 12월 15일-1946년 6월 13일
군주 쇼와 천황
전임 히라누마 기이치로
후임 시미즈 도루
일본 일본의 제42대 내각총리대신
임기 1945년 4월 7일-1945년 8월 17일
군주 쇼와 천황
전임 고이소 구니아키
후임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
일본 일본의 제70대 외무대신 겸 제3대 대동아대신
임기 1945년 4월 7일-1945년 4월 9일
총리 스즈키 간타로
전임 시게미쓰 마모루
후임 도고 시게노리
일본 일본의 제20대 추밀원 의장
임기 1944년 8월 10일-1945년 4월 7일
전임 하라 요시미치
후임 히라누마 기이치로
일본 일본의 제14대 추밀원 부의장
임기 1940년 6월 24일-1944년 8월 10일
전임 하라 요시미치
후임 시미즈 도루
일본 일본의 제8대 해군군령부장
임기 1925년 4월 15일-1929년 1월 22일
군주 다이쇼 천황
쇼와 천황
전임 야마시타 겐타로
후임 가토 히로하루
일본 일본의 제15대 연합함대 사령장관
임기 1924년 1월 27일-1924년 12월 1일
군주 다이쇼 천황
전임 다케시타 이사무
후임 오카다 케이스케
일본 일본의 제15대 구레 진수부 사령장관
임기 1922년 7월 27일-1924년 8월 27일
전임 무라카미 가쿠이치
후임 다케시타 이사무
일본 일본제3함대 사령장관
임기 1921년 12월 1일-1922년 7월 27일
전임 오구리 고자부로
후임 나카노 나오에
일본 일본제2함대 사령장관
임기 1920년 12월 1일-1921년 12월 1일
전임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 왕
후임 나카노 나오에
신상정보
출생일 1868년 1월 18일
출생지 일본 이즈미 국
사망일 1948년 4월 17일
사망지 일본 지바 현 노다 시
서훈 종1위

훈1등 욱일동화대수장 훈1등 욱일대수장 훈2등 욱일중광장 훈3등 욱일중수장 공3급 금치훈장 공5급 금치훈장 훈4등 서보장 훈6등 서보장 다이쇼 3-4년 종군기장 메이지 37-8년 종군기장

군사 경력
복무 일본 제국 일본 제국
소속 일본 해군
최종계급 대장 대장(大将)

스즈키 간타로(일본어: 鈴木 貫太郎 (すずき かんたろう), 1868년 1월 18일 ~ 1948년 4월 17일)는 일본의 해군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연합 함대 사령장관, 해군 군령 부장 등을 역임하였고, 1945년 4월부터 태평양 전쟁의 일본의 항복 직후까지 제42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다. 에도 시대에 태어난 마지막 내각총리대신이기도 하다.

퇴역 이후에는 천황의 측근인 시종장으로 근무하다가 2.26 사건때는 과격 청년 장교들의 암살 표적이 되어 총상을 입기도 했으나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종전의 주도자[편집]

1945년 4월 7일 오키나와 함락 이후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가 사임한 이후 그는 77세의 나이로 수상에 올랐다. 그는 전황이 기울었음을 느끼고 소련의 중재를 통한 종전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고, 소련이 불가침 조약을 파기하고 대일전에 참전하자, 일본에게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포츠담 선언의 수용이 불가피함을 각의를 통해 밝혔다. 그는 이를 정리하여 이미 무조건 항복을 수용하려던 쇼와 천황에게 상신했고 히로히토는 이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전쟁의 계속을 주장하는 일부 청년 장교들은 이에 반발하였다. 그리하여 포츠담 선언을 수용하여 쇼와 천황의 육성 방송 전인 8월 15일 새벽 그를 암살하려는 쿠데타 음모가 있었으나, 관저에 들어오지 않아 암살 음모를 피하였다.

항복이 공포된 이후 그는 사임했고 히가시쿠니 나루히코 친왕(東久邇宮稔彦王)이 차기 총리로 취임, 이후 1948년 자연사했다. "군인은 정치에 간여하면 안된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같이 보기[편집]

바깥 고리[편집]

전임
고이소 구니아키
제42대 내각총리대신
Emblem of the Prime Minister of Japan.svg
1945년 4월 7일 ~ 1945년 8월 17일
후임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
전임
시게미쓰 마모루
일본 외무대신
1945년
후임
도고 시게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