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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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회(일본어: (さくら) (かい) 사쿠라카이[*])는 일본의 군사국가화, 익찬회의체제로의 국가개조를 목표로 1930년 결성된 비밀결사, 군내 사조직이다.[1]

1930년 9월 참모본부의 하시모토 긴고로 중령, 육군성의 사카타 요시로 중령, 동경경비사령부의 히구치 기이치로 중령이 발기인으로서 설립했다.[2] 참모본부와 육군성의 육군대학 출신 엘리트 장교가 많이 모였는데, 카게사 사다아키, 와치 타카지, 조 이사무, 이마이 타케오, 나가이 야츠지 등 "지나통" 영위관이 20여명 참여했다.[3] 설립 취지서에서는 정당정치의 부패와 군축의 저주가 언급되었다.[4] 목적은 군부독재정권에 의한 국가개조였다.[5] 이듬해인 1931년 5월 회원이 100여명까지 증가했지만, 내부적으로는 파괴파·건설파·중간파 3파간에 끊임없이 논쟁이 벌어졌다.

하시모토와 조를 중심으로 한 급진적인 그룹은 오카와 슈메이 등과 연계하여 1931년 3월 사건, 동년 10월 사건을 계획했다. 두 계획 모두 미수로 돌아가나 군부의 독주에 기여했다.

앵회는 10월 사건 이후 해산되었지만, 그 잔당들은 통제파에 가까운 성향의 청군파(清軍派)라는 약소 파벌을 형성했다.[6]

각주[편집]

  1. 宇野俊一ほか編 『日本全史(ジャパン・クロニック)』 講談社、1991年、1050頁。ISBN 4-06-203994-X
  2. 田中梓『いわゆる三月事件について』p3、http://dl.ndl.go.jp/view/download/digidepo_3051044_po_16-11.pdf?contentNo=1&alternativeNo=
  3. 戸部良一『日本陸軍と中国』p160
  4. 『現代史資料7』p27、資料解説
  5. 田中梓『いわゆる三月事件について』p3、http://dl.ndl.go.jp/view/download/digidepo_3051044_po_16-11.pdf?contentNo=1&alternativeNo=
  6. 『昭和史 7―決定版 二・二六事件前後』 毎日新聞社 p.3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