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렐리우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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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렐리우 전투
태평양 전쟁의 일부
First wave of LVTs moves toward the invasion beaches - Peleliu.jpg
펠렐리우 섬으로 진격하는 수륙양용차의 모습
교전국
미국 미국 일본 제국 일본 제국
지휘관

미국 윌리엄 H. 루퍼츠
미국 헤르만 H. 하네켄
미국 로이 S. 가이거
미국 폴 J. 무엘러

미국 해롤드 D. 해리스

일본 제국 나카가와 우이노

일본 제국 이노우에 사다에
병력

미국 제3해병원정군

일본 제국 펠레리우 수비대

  • 제14사단
  • 제49혼성여단
  • 제45경계기병
  • 제46기지부대
피해 규모

미국 미국

  • 사망: 1,508명
  • 부상: 6,635명
  • 실종: 36명

제1해병사단

  • 사망: 1,300명
  • 부상: 5,450명
  • 실종: 36명

제81보병사단

  • 사망: 208명
  • 부상:
  • 실종:

펠렐리우 전투(Battle of Peleliu)는 1944년 9월부터 11월까지 팔라우 펠렐리우 섬에서 벌어진 미군과 일본군의 전투이다. 태평양 전쟁의 대표적인 격전으로 꼽힌다. 마리아나·팔라우 제도 전역의 하나였다.

개요[편집]

미군 사령관은 4일 안에 섬을 탈환하겠다고 예측했지만, 실제 전투는 두달 이상을 끌었다. 미군 4만7천여명과 일본군 1만3천여명이 투입됐다. 미군 피해는 사망 1천500명, 부상 6천여명이었고, 일본군 피해는 사망 1만명, 체포 202명이었다.

기타[편집]

  •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2012년 조사에서 팔라우제도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무자 중 절반 가량이 질병과 굶주림으로 현지에서 숨졌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1]

각주[편집]

  1. [1], 경향신문, 2012년 11월 6일, 일제 때 팔라우 징용 한인 절반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