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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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申海澈
기본 정보
예명 Crom
출생 1968년 5월 6일(1968-05-06)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
사망 2014년 10월 27일 (46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직업 가수, 작사가, 작곡가, 프로듀서, MC, DJ
장르 , 일렉트로니카, 로큰롤
활동 시기 1988년 ~ 2014년
배우자 윤원희
가족 슬하 1남 1녀
종교 천주교[1]
레이블 다날 엔터테인먼트
소속사 K.C.A. 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무한궤도(1988년 ~ 1989년)
넥스트
(1992년 ~ 1997년, 2002년 ~ 2014년)
관련 활동 노땐스(1996년 ~ 1997년)
MONOCROM(1999년)
비트겐슈타인(2000년 ~ 2001년)
웹사이트 http://www.cromfan.com

신해철(申海澈[2], 1968년 5월 6일 ~ 2014년 10월 27일)은 대한민국가수 및 음악 프로듀서, 라디오 DJ, TV프로그램 MC, 사회운동가, 논객이다. 1992년 결성된 록밴드 N.EX.T의 보컬로 활동했으며, 서태지, 이승환, 신승훈과 함께 1990년대를 상징하는 뮤지션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학력[편집]

생애[편집]

데뷔 이전 (1968 ~ 1988)[편집]

신해철은 1968년 5월 6일,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에서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나 보성고등학교 학생시절부터 밴드 활동을 했고 서강대 철학과에 재학 중(이후 자퇴)이던 1988년, MBC 강변가요제에 '아기천사' 멤버들과의 친분으로 대타 형식으로 출전해 본선에는 진출했으나 입상에는 실패했다.

데뷔와 무한궤도 활동 (1988 ~ 1990)[편집]

강변가요제에서의 수상 실패로 가요제의 특성에 관해 연구한 신해철은 같은 해 열린 MBC 대학가요제에서 어린시절 친구들이었던 서울대·연세대·서강대 학생들과 연합하여 밴드 무한궤도를 결성,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하며 댄스와 발라드 음악이 주류이던 당시 대중음악계에 록 음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한편 신해철은 〈그대에게〉탄생 과정에 대해, "당시 키보드로 곡을 만든다는 행위를 해보고 싶었다. 문방구에서 멜로디언을 사서, 멜로디언을 불면서 '그대에게'를 만들었다. 아버지한테 안 들키려고 밤에 이불 쓰고 멜로디언을 불면서 만들었다. 원래는 10분짜리 대곡을 만들려고 했는데 숨이 차서 4분짜리로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3]

이 후 1988년도 강변가요제에 '실험실'이라는 팀으로 참가했었던 정석원이 신해철의 제의로 무한궤도에 영입되었다. 1989년 1월에 신해철은 MBC AM(현재 표준FM)의 라디오 프로그램 〈우리는 하이틴〉의 DJ를 맡게 되었고, 6인조가 된 무한궤도는 같은 해에 첫 앨범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발표하며 잠깐의 활동을 하다가 멤버 간의 입장 차이로 인해 몇몇 멤버들이 탈퇴하게 되었고, 결국 해체되었다. 신해철은 같은 해 10월 16일 대마초 흡연으로 인해 대마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4] 그 후 10월 28일에 구속적부심에서 재판부는 초범인데다가, 대학생신분이며,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고, 친구들이 산 대마초를 두 모금만 피워 가담정도가 경미한 점을 감안해 신해철을 석방시켰다.[5] 무한궤도의 멤버 중에서는 신해철과 정석원, 조형곤, 조현찬이 남게 되었고, 신해철은 솔로로, 조형곤과 조현찬은 정석원, 장호일과 함께 그룹 015B(그룹명이 〈무(0)한(1)궤도(orbit-5b와 발음이 비슷)〉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었으나 2008년 장호일의 인터뷰에서 그것은 아니고 015b 결성 당시 ub40 등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그룹이름에 숫자와 영어 알파벳의 조합이 많아서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밝힘)를 결성해 활동 하게 된다. 정석원은 신해철의 솔로 1, 2집에 곡을 주거나 세션을 했고, 신해철은 015B의 1, 2집의 수록곡 중에서 객원보컬로 참여하는 등 당시까지는 서로의 음악작업에 교류가 있었다.

무한궤도 해체 후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발돋움 (1990 ~ 1992)[편집]

1990년 신해철은 88년도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선배 가수 조용필의 지원으로 솔로 음반을 내고 신선한 음악으로 젊은층으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데뷔 앨범의 타이틀 곡인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는 강변가요제 출전 당시 아기천사의 참가곡인 원경 작곡의 〈그리움은 기다림의 시작이야〉였다. 1989년 발매된 아기천사 1집에서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로 제목을 바꿔 실었지만, 신해철이 다시 편곡하여 데뷔앨범에 수록했다. 또 다른 수록곡인 〈안녕〉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영어랩의 삽입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1991년 발매되었던 2집 《Myself》부터 본격적으로 시도된 〈재즈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등 그 만의 음악적인 스타일은 당시 대중가요의 경향과는 차별화 된 점이 있었고, 이때부터 아이돌의 이미지를 조금씩 벗고 뮤지션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특히 이 Myself 앨범은 대한민국 최초의 미디 음반이라는 역사적 특전도 갖고 있다. 같은 해에 발매된 《변진섭/신해철》이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은 리메이크와 리믹스 등이 포함된 2명의 곡이 각각 4곡씩 수록된 앨범이었다. 그러나 후일 신해철은 인터뷰에서 이 앨범은 제작사의 상업적인 목적으로 인해 만들어진 앨범이므로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앨범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신해철은 MBC FM의 라디오 프로그램 〈밤의 디스크쇼〉의 DJ를 맡기도 했다.

새로운 밴드 N.EX.T 결성과 여러 음악작업 병행, N.EX.T 해체 (1992 ~ 1997)[편집]

두 번째 솔로 앨범 활동 이후 신해철은 이동규, 기타리스트 정기송과 함께 N.EX.T라는 록 그룹을 조직하였다. 넥스트는 1집때 TV출연 없이 대중성과 음악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한 뒤, 정규 4집까지 높은 음악성을 보여주며 많은 팬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1992년 11월에는 방위병으로 입대했지만, 1993년 1월에 또 한번의 대마초 흡연으로 인해 구속영장을 받고 몇개월간 복역한 뒤 가석방돼 출소했다.[6] 또 신해철은 같은 해에 개봉한 영화와 동명의 OST인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앨범을 작업하기도 했었다.

1994년 신해철은 이동규와 새로 영입한 멤버들과 작업한 넥스트의 두 번째 앨범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을 발표한다. 이 The Being 앨범은 철학적 언어를 최초로 가요에 접목했다는 가사와 음악에 대한 극찬을 받는다. 넥스트는 이후에도 멤버교체가 있었고, 1995년에 세 번째 앨범 《The Return of N.EX.T Part 2: World》를 발표했다. 이 앨범 또한 국내뿐 아니라 일본 내에서도 'Burrn!'이라는 유명 록 음악 잡지에 소개되며 음악평론가 마쯔다 야스히로씨로부터 '올해 나온 음반 중 최고'라는 찬사를 받으며 일본에서 정식 수입반이 아닌 해적반으로 수만 장의 앨범 판매고를 올린다. 그리고 신해철은 넥스트 활동과는 별도로 전람회 등 동료나 후배 음악인들의 앨범 프로듀싱, 객원 보컬 참여, 정글스토리 OST 제작, 윤상과 결성한 프로젝트 노땐스 활동 등을 병행했다. 노땐쓰는 프로젝트 팀으로서 팀명은 테크노는 댄스음악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이름으로, 테크노 장르의 본질, 즉 감상을 위한 테크노 음악을 선보였다. 수록곡으로는 두 사람이 절반씩 곡을 만들었다. 또 1996년 4월부터 1997년 10월까지 MBC FM에서 라디오 프로그램 'FM 음악도시'의 초대 DJ를 맡아 진행하였다.

1997년, 신해철은 넥스트의 해체 및 4집 발매 기자회견에서 국내시장과 공연시스템의 열악한 구조로 인해 밴드활동의 지속이 어려워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다'라는 발언과 함께 1997년 12월 31일부로 밴드는 해체할 것이고, 4집이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라고 밝혀 팬들을 놀라게 했다. 신해철은 결코 멤버간의 불화 등의 이유는 없으며, 휴식기를 갖는다고 밝혔다. 이 후 신해철은 영국으로 음악과 프로듀싱을 공부하기 위한 유학을 떠나고, 나머지 멤버들은 랩퍼 김진표와 함께 노바소닉을 결성해 1999년 활동을 시작한다.

유학과 솔로 활동 재개, 또 다른 밴드 비트겐슈타인 결성, 결혼 (1998 ~ 2002)[편집]

넥스트 해체 후 영국으로 음악유학을 떠난 신해철은 넥스트 4집에서 프로듀서를 맡아온 크리스 샹그리디[7](Chris Tsangarides)와 관계를 유지하며 넥스트 후반기 시절 사용하던 크롬(crom)이라는 이름으로 1998년에 신곡과 기존 발표작 중 일부를 테크노 장르로 만든 솔로앨범 《Crom's Techno Works》를 발표한다. 1999년에는 크리스 샹그리디와 모노크롬이라는 프로젝트 그룹까지 결성해 동명의 타이틀로 앨범을 발표했다.

2000년에 들어서는 키보디스트 임형빈, 미국에서 만난 무명의 재미교포 기타리스트 데빈 리와 3인조 밴드 비트겐슈타인을 조직하여 저예산 홈레코딩으로 제작한 앨범을 발표하며 넥스트 시절에 보여준 음악과는 다른 음악을 선보였다. 또 영화 세기말의 OST를 담당하기도 했으며, 스타크래프트의 게임 뮤직 앨범에는 신해철의 〈Zergs Are Coming〉이라는 곡이 수록되었다.

2001년에는 들국화의 트리뷰트 앨범에서 〈사랑한 후에〉를 리메이크 했다. 또 SBS 라디오에서 본인이 진행하는 새로운 라디오 프로그램인 고스트스테이션을 방송하게 되는데, 신해철이 녹음을 하여 서버에 올리면 SBS 제작진이 내려받아 방송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2002년에는 김수철의 트리뷰트 앨범 《Pops & Rock》에서 〈이대로가 좋을 뿐야〉를 리메이크 했고, 한일 월드컵 직전에 붉은악마 회원용으로 배포된 《꿈★은 이루어진다》앨범에서는 〈Into the Arena〉를 수록했다. 또 그 당시까지의 신해철이 발표한 모든 음악 중 본인이 선곡한 노래들을 담은 박스세트 《The Best of Shin hae-Chul - Struggling》을 발매했다. 9월에는 유학시절 만나 교제해오던 미스코리아 출신의 회사원 윤원희와 함께 일본의 한 성당에서 비공개로 결혼식을 올렸다.[8] 같은 해에는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새천년민주당의 후보였던 노무현을 지지하기 위해 진행하고 있었던 라디오 방송 고스트스테이션을 중단했다가 2002년 12월 20일 다시 복귀했고,[9] 2003년 4월 봄 개편 시기에 방송은 막을 내리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는 비트겐슈타인의 데빈과 임형빈, 독일의 밴드 톡식 스마일의 기타리스트 안회태[10], 닥터코어 911베이시스트 쇼기, 드러머 이용준과 함께 가칭 '신해철 밴드'를 결성하여 훗날 재결성되는 넥스트의 초석을 다진다.

넥스트 재결성, 솔로 앨범 발매 (2003 ~ 2009)[편집]

2003년 신해철은 여러 음악인들이 참여한 프로젝트 앨범 《Project X》에서 싸이와 함께 작업한 곡을 수록하기도 했다. 또 일본 대전액션 게임 GUILTY GEAR의 한국버전 음악을 수록한 앨범을 작업했으며(이것은 일본에서 반응이 좋아 한국버전 음원이 담긴 앨범이 일본 내에 따로 발매되었다), 10월부터는 MBC FM4U에서 ‘고스트스테이션’의 다른 이름인 ‘고스트네이션’ 방송을 시작하게 된다. 2004년에는 새로운 라인업으로 재결성한 넥스트의 다섯 번째 정규앨범이자 저예산 레코딩 방식으로 제작한 더블앨범 《The Return of N.EX.T Part 3: 개한민국》을 발표한다. 이 <개한민국> 앨범은 일본의 'Euro Rock Press'라는 록 음악 잡지에서 평론가의 리뷰를 통해 수작으로 평가받은 이력이 있다. 1997년 레이블 빅뱅뮤직을 설립한 바 있는 그는, 2005년에 SBSi와 공동출자 형식으로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매니지먼트회사 싸이렌을 설립했다. 또 같은 해에 라디오 프로그램이 개편되면서 1시간으로 방송 시간이 줄어들었고, 주파수도 MBC 표준FM으로 옮기게 된다.

2006년에는 멤버교체와 함께 예전 넥스트 멤버들을 다시 영입해 리메이크 앨범인 5.5집 음반 《Regame?》을 발표했다. 9월에는 결혼 4년만에 딸을 얻기도 했다.[11]

2007년에는 재즈음악으로만 수록된 솔로앨범 《The Songs For the One》을 발매했고, 넥스트의 6집 음반작업을 위해 MBC의 라디오 프로그램 가을 개편 시기 한달 전에 ‘고스트네이션’에서 하차한다. 또한 KBS 스포츠 타이틀음악을 만들었다. 2008년 3월에는 SBS 러브FM에서 고스트스테이션 프로그램 방송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7월에는 아들이 태어나 신해철은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또한 두 번째 베스트 앨범이자 본인의 데뷔 20주년 앨범인 《Remembrance》를 발매하며 데뷔 20주년 공연을 가졌다.[12] 10월에는 넥스트 활동을 위해 고스트스테이션에서 하차하고 넥스트의 새로운 3부작 시리즈 앨범 《666 Trilogy》의 첫 번째 파트 앨범을 발표했다.

방송 출연과 공연 (2010 ~ 2013)[편집]

2011년 2월에는 대중가수들이 오페라에 도전하는〈오페라스타〉에 출연하여 경연을 펼쳤고(2주차에서 탈락), 3월부터는 MBC 에브리원의 프로그램 〈부엉이 시즌 2〉에 출연해 가족을 공개하기도 했다. 7월에는 KBS의 오디션 프로그램 TOP 밴드에 합류해 3달여간 출연하며 S1과 번아웃하우스의 코치를 맡기도 했다. 2011년 5월부터 MBC FM4U 봄 개편으로 신설된 〈고스트스테이션〉의 DJ를 맡게 되었으며, 같은 해 11월부터 합류해 출연하던 KBS2의 프로그램 《이야기쇼 두드림》은 2012년 4월에 하차했다.[13]

2012년 2월에는 담낭염으로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게 되었다.[14] 5월에는 N.EX.T의 드러머 김단이 연락을 두절하고 잠적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15] 불화설, 경제적 곤란 등이 원인으로 제기 되었다가 나흘만에 경찰에 발견된 김단이 페이스북을 통해 '넥스트와는 이미 4월에 같이 못하겠다는 뜻을 전했고, 우울증이나 경제적 곤란은 사실이 아니며 지극히 개인적인 일 때문이었다'라고 심경을 밝혔다.[16] 이 후 넥스트 활동에 대해서는 해체수순을 밟았다는 내용과[17] 해체라 말하기 어렵다는 밴드 측근의 엇갈린 언급만 있었을뿐[18] 신해철의 정확한 공식입장은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6월에는 참여하고 있던 롤플레잉 게임 아키에이지 게임음악 작업에서 개인적인 사정으로 하차한다고 밝혔다.[19] 7월에는 파업으로 일시 중단되었던 고스트스테이션 방송을 재개했으며, 같은 시기에 시나위신대철과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앨범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20] 9월 1일에는 봉하마을에서 열린 '봉하음악회'에 참가해 신곡 〈Goodbye Mr.Trouble〉을 공개하고, 10월 12일에는 이 곡의 디지털 싱글을 발매했다. 〈Goodbye Mr.Trouble〉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모음반 《탈상: 노무현을 위한 레퀴엠》의 수록곡이 되기도 했다.[21] 그리고 10월 22일에는 MBC FM4U 가을 개편 날짜에 맞추어 11년간 존속해오던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스테이션 방송을 완전 종료했다.

2013년 5월 19일에는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기 서울광장 추모문화제에 참가했고[22], 24일과 25일에는 여수엑스포의 엑스포 가요 페스타 공연에서 신대철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23] KBS1TV 프로그램으로, 국악을 사랑하는 청소년들이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무대를 첫 목표로 삼아 국악퓨전밴드를 꿈꾸며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담은 《K소리 악동》에서 그는 피아니스트 임동창과 공동으로 진행을 맡게 되었고, 8월부터 첫 방송이 나갔다. 이보다 앞선 7월에는 MBC가 여러가지 이유로 대학가요제를 폐지한다고 발표하게 되었고,[24] 이에 1988년 대상을 받았던 무한궤도 출신 신해철은 9월 25일 대학가요제 출신들과 함께 10월 24일부터 26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되는 〈대학가요제 Forever〉공연 제작발표회에 참석했다.[25] 그 후 자신의 트위터에서 이번 공연에서 본인 공연의 내용은 “넥스트 7기 뉴 라인업+대학가요제 선후배 조인트 라이브”가 될 것이라고 밝히고, 3일간 오프닝 순서에서 공연을 하였다.

6년만에 새 앨범 발표 (2014)[편집]

2014년 4월 16일에는 넥스트 6집 《666 Part 1》앨범 이후 6년여만에 그가 컴백한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신해철의 소속사 측은 넥스트 멤버들과 만남을 갖고 있으며, 컴백시기는 2014년 상반기라고 밝혔다.[26][27] 5월에는 넥스트의 원년 멤버인 기타리스트 정기송이 신해철의 신보 작업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28][29] 신보는 여섯 번째 솔로앨범으로, 첫 번째 파트에 해당하며, 타이틀은 《Reboot Myself》로 알려졌다. 당초 발매는 6월 23일로 정해졌으나, 6월 26일로 3일 연기되었고 신해철은 이보다 앞선 6월 17일, 신보의 첫 싱글인 〈A.D.D.a〉(아따)를 공개했다. 이 곡은 원맨 아카펠라 곡으로 1000개 이상의 녹음 트랙을 제작하고 보컬을 입힌 방식으로 제작한 곡이다.[30][31][32] 6월 20일에는 공연 겸 파티를 열고 넥스트의 새 라인업 및 신곡을 공개하는 자리를 가졌다.[33][34][35] 6월 26일에는 6집 첫 번째 파트 EP 《Reboot Myself》가 발매되었다.[36][37] 그리고 28일에는 고양시에서 열리는 〈고양 락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것이 결정되었다.[38] 7월 1일에는 라디오 프로그램 《두시탈출 컬투쇼[39], 7월 4일에는 《김창렬의 올드스쿨[40]과 《배철수의 음악캠프[41]에 게스트로 출연하였고, 7월 5일에는 tvN의 TV프로그램 《SNL 코리아 (시즌 5)》에 출연하여 코믹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42][43]

사망 및 의료과실여부 논란[편집]

장협착수술 후 사망에 이르기까지 11일간의 과정

2014년 10월 17일 신해철은 갑작스런 복통을 느껴 분당의 A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사람이 굉장히 많은 데다 대기시간이 긴 탓에 송파구 S병원으로 이동, 각종 검사 후 장협착에 관한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19일 오후에 퇴원했다. 20일 새벽 미열과 함께 수술부위에 통증이 발생하여 수술을 하였던 S병원에 찾아갔다. 곧 퇴원했지만, 당일 오후 고열이 발생하여 또 다시 S병원을 방문했다. S병원에서는 복막염은 아니라는 진단을 하였고 신해철은 퇴원했다. 그러나 22일 새벽 다시 복부와 흉부에 통증을 느껴 S병원에 재입원하였는데, 당일 오후 1시 경 심정지가 발생해 병원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에 심폐소생술이 시행됐고, S병원은 신해철을 서울아산병원으로 이송했다. 아산병원에 후송될 당시 신해철은 의식불명상태였고 동공반사 및 자발호흡이 없었다. 아산병원 의료진은 당일 오후 8시부터 3시간에 걸친 복강 내 장수술 및 심막수술을 하였으나 의식은 회복되지 않았다. 당시 의료진은 “향후 수일 내에 추가적인 손상 부위 확인 및 열어놓은 복강을 폐복 또는 부분 폐복을 위하여 추가 수술을 계획하고 있다. 향후 뇌손상 정도를 파악하고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과의 협진을 받아 노력하고 있으며 회복 정도는 장기간의 경과 관찰이 필요한 상태”라고 브리핑했다.

그러나 의식불명 6일째 되던 날인 2014년 10월 27일 오후 8시 19분 갑작스러운 급성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46세. 아산병원의 발표에 의하면 사인은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1차 부검을 마친 뒤, "언론에서 최초 사인으로 알려져 있었던 허혈성 뇌괴사, 이런 표현은 복막염이나 심낭염에 의해서 병발된 것으로서 법의학적 사인으로 표현하자면 복막염 및 심낭염 그리고 이에 합병된 패혈증으로 우선 판단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발표했다. [44][45]

조문 및 각계의 애도

28일 오전 아산병원 내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됐다. 팬들을 위해 일반인 조문이 실시된 가운데 5일장 내내 1만 6000여 명의 조문객이 빈소를 찾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44] 그리고 조용필, 배철수, 한대수, 김창완, 전인권, 이문세, 태진아, 최이철, 유현상, 김수철, 인순이, 김태원, 김도균, 권인하, 봄여름가을겨울, 한상원, 이선희, 김광진, 정원영, 유영석, 박학기, 이승환, 장호일, 이승철, 신대철, 서태지, 김종서, 이주노, 양현석, 이현도, 장혜진, 강수지, 현진영, 이현우, 신성우, 김장훈, 남궁연, 윤도현, 김C, 이은미, 이적, 엄정화, 유지태, 신현준, 문성근, 권상우, 김윤아, 김제동, 싸이, 김진표, 김원준, 이수, 정동하, 김종완, 박기영, 리아, 윤종신, 유희열, 김동률, 정재형, , 타블로, 스윗소로우, 김창렬, 백지영, 안선영, 홍경민, 데프콘, 바다, 다이나믹 듀오, 김범수, 윤건, 임창정, 김수로, JK김동욱, 박선주, 김현정, 이본, 이하늘, 김미화, 김부선, 양동근, 김동완, 유재석, 윤상, 신승훈, 김혜림, 김조한, 박정현, 김현철, 양파, 이한철, 윤민수, 송은이, 박경림, 정선희, 엄태웅, 조정석 외 수 많은 동료 연예인을 비롯하여, 박원순 서울시장, 문재인 의원, 박지원 의원, 진선미 의원, 김용태 의원 등 여야 정치인, 김종덕 문체부 장관, 유기풍 서강대학교 총장, 기타 각계 유명인사들의 직접 조문 또는 SNS, 근조화환, 방송매체 등을 통한 애도가 줄을 이었다. 또한 새정치민주연합은 논평으로 애도의 뜻을 전했다. [46] [47] [48] [49]

두 번의 장례식

10월 31일 오전 8시 영결식, 발인 등 장례절차가 시작됐다. 영결식에서 추도사는 서태지가 낭독하였다. 하지만, 화장을 앞두고 장례식에 참석한 이승철, 윤종신, 남궁연, 싸이, 신대철, 윤도현 등 동료음악인들은 사망의 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며 유족에게 부검을 요청했고, 유족은 이러한 요청을 받아들여 화장을 중단했다. 2014년 11월 3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경찰의 의뢰를 받아 신해철의 시신을 부검하였다. 부검이 끝난 후 2014년 11월 5일, 장례식이 다시 치루어져 신해철의 시신은 화장되었고, 유해는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유토피아 추모관에 봉안하였다.[50]

의료과실여부 수사

신해철의 사망과 관련하여 장협착 수술을 했던 S병원의 과실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었고, 신해철의 소속사는 발인 하루 전날인 2014년 10월 30일 "유족측과 상의한 결과 S병원을 상대로 민, 형사상 책임을 묻기로 결정했다"라고 발표했다. 이어 신해철의 부인은 장협착수술을 하였던 S병원을 업무상 과실치사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현재까지 3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고인의 유족측에선, 환자가 동의한 적 없는 위축소수술을 S병원이 임의로 시행하였다고 주장하는 바 이의 사실여부이다.[51] 둘째, 서울아산병원의 응급 수술 기록에는 신해철의 소장에서 1㎝ 크기의 천공이 발견됐고, 이를 통해 음식물 찌꺼기까지 흘러나와 복부에 염증이 발생했다고 기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차 부검결과 심낭에도 의인성으로 추정되는 천공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천공들이 언제 어떻게 발생했는지가 쟁점이다.[52] 셋째, 고인이 수술 후에 여러차례 통증을 호소하였는 바 수술 이후 병원 측의 조치가 적절했는지 여부도 쟁점이다.[53] [54] [55] 11월 29일 국과수의 최종 부검 결과, 심낭과 소장에서 발견된 천공은 수술 과정에서 발생한 손상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56] 대한의사협회는 강모원장에 대해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하였고, 지금도 수사가 진행중이며 금주말께 의료사고 여부에 대해서 감정을 의뢰할 계획이다.

일화[편집]

  • 본인의 라디오 프로그램인 고스트스테이션 팬들 사이에는 마왕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그룹 넥스트에서는 종종 Crom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신해철에게 영국 체류때 영국의 정치가인 올리버 크롬웰을 본딴 별명이 붙여졌기 때문이다.
  • 천주교 영세자로서 세례명은 '아우스딩'이고, 고등학교 3학년때에는 꿈이 신부였지만[57], 현재는 성당에 다니지 않는다고 하며, 무신론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58] 즉, 천주교 냉담자인 것으로 보이며, 스스로 무교라고 밝힌 적도 있다.[59][60]
  • 같은 세대의 후배 가수 현진영이 그의 외모를 빼닮은 이유로 현진영이 자신의 데뷔 초기 시절에 주위로부터 종종 신해철로 오해를 받은 해프닝이 유명하다.
  • 신해철은 아내에 대한 각별한 사랑으로 많이 알려져있다. 그의 아내 윤원희는 일본 태생의 재일 한국인 출신으로 미국의 명문 여대인 스미스 대학교를 졸업하고 유명 경제 투자회사 골드만삭스에서 일하였다.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신해철과 윤원희가 교제중, 윤원희가 암 투병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해철은 윤원희를 돌봐야 한다며 2002년 9월 29일 일본에 있는 한 성당에서 비밀리에 결혼을 올렸다. 그의 아내 윤원희가 암을 완치한 이후, 2006년 9월 14일 결혼 4년 만에 첫 아이인 딸 신지유를, 2008년 7월 15일엔 둘째 아이인 아들 신동원을 얻었다. 고스트스테이션 방송에서 자신의 아내를 '영숙이', 딸을 '동동이', 아들을 '동생이'로 부르고 있다. 넥스트의 여섯 번째 앨범《666 Trilogy Part I》의 자켓에도 위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 신해철은 자신의 후배라고 할 수 있는 인디 뮤지션들에 대해서도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그의 라디오 방송 '고스트스테이션'은 다른 방송에 비해 인디 뮤지션들의 노래를 선곡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다. 공중파 시절 '고스트스테이션'은 주 1회 인디 차트 방송을 통해 방송 시간 내내 인디 음악을 소개하기도 했다. 인디 음악의 활성화를 위해 직접 방송국에 찾아가 심의가 되어있지 않은 인디 음악의 심의도 받아놓을 정도로 그의 인디 음악 사랑은 각별하다.[출처 필요]
  • 신해철은 아버지로부터 '음악을 하는구나 열심히 잘하는구나' 하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솔로 앨범을 냈을때 받은 상을 들고 아버지 앞에 보였는데 아버지가 '이제 할 건 다 했네 재수하자'라고 하셨다고 한다. [63]
  • 서강대학교 총장과 부총장이 서강대를 중퇴한 신해철에게 명예졸업장을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신해철은 양복을 입고 학교로 찾아 가서 정중하게 거절하고 왔다.[64]
  • 2006년 10월 30일 신해철은 넥스트의 팬 사이트 게시판에 ‘데빈과 나의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 해 보겠다’라는 제목의 장문의 글을 통해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 글에서 신해철은 당시 불거진 기타리스트 데빈의 탈퇴설과 관련해 7년 간 동고동락한 둘의 우정을 회고하며 안타까움을 표시했으며 예고없이 데빈이 무대에 오르지 않은 넥스트 공연 무대에서 일부 팬들이 보인 반발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그리고 신해철은 “차라리 깨끗한 은퇴가 낫겠단 생각이 든다”라는 말로 해당 글을 마무리지었다. [65] 이러한 글을 올린 직후 신해철은 직접 운전하는 차량을 끌고 강북강변을 질주하다 길이 휘어지는 가드레일을 정통으로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겪었다. 그리고 11월 2일 넥스트의 팬 사이트 게시판에 '어쨌든 살아나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다시 한번 본인의 심경에 관한 글을 게재했다. 그 글에서 신해철은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자살충동을 겪었음을 고백하며 그럼에도 교통사고 순간 핸들을 꺾어 죽음을 피한 이유는 음악 때문이었음을 밝혔다. 해당 글의 일부를 발췌하면 아래와 같다. [66]

이 글 바로 전의 글을 팬클럽에 올린 후 직접 운전하는 차량을 끌고 강북강변을 질주하다 길이 휘어지는 가드레일을 정통으로 들이받았다. 음주운전은 아니었지만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에서 운전을 했고, 분노를 억누르기 위해 진정제도 먹었고, 완전탈진 상태에서 졸음에 빠져든 것 같다.

사람이 죽을때가 되면 눈 앞에 파노라마처럼 살아온 인생이 지나간다는데 나도 그랬다. 그 짧은 순간 내 모든 삶의 모든 진행이 한꺼번에 보였다. 그리고 나는 차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그 목소리는 '직진을 하면 넌 죽는다. 다른 사람들이 슬퍼 할지는 몰라도 너는 영원한 고독으로부터 해방되지. 그러나 왼쪽으로 핸들을 돌리면 넌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네가 증오하고 경멸하는 자들과 계속 싸움을 계속하겠지. 그 선택은 항상 인간에게 있다'였다.

나는 항상 자살충동에 시달렸다. 어린 시절부터 내 가사의 상당히 많은 부분들은 죽음 혹은 자살에 대한 주제였다. 앞으로 쭉 뻗은 길, 직선으로 속도가 올라가며 입을 벌린 한강을 향해 굴러 떨어질 수 있을 가능성이 높은 길, 끝없는 윤회의 수레바퀴를 멈출 길. 그러나 나는 왼쪽으로 핸들을 잡아 돌렸다. 그 짧은 시간에 내 머리에 스친 것은 무엇이었을까. 얼마 전 딸을 낳은 내 아내? 내 딸? 나는 살아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렇게 당연하게 살아 남은 것은 아니다.

음악이었다. 재즈 음반을 완성하고 죽고 싶다. 11월에 시작되고 사상 최대 제작비가 투입되는 빅 밴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나의 솔로 앨범. 내가 18년 동안 단 한번도 도전하지 않은 생경한 분야. 정말 음악이란 게 얼마나 설레고 즐거운 일인지.

어쨌든 나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음악을 한다. 음악을 해서 살아남은지도 모르겠다. 다만 팬들에게 말하고 싶다. 있을때 잘 하라고. 나는 여러분의 곁에 영원히 있지 못할 것이기에

사회 정치 참여[편집]

신해철은 사회에 대한 통찰과 비판이 묻어있는 가사도 많이 썼는데, 사회문제와 정치에 실제 행동으로서 자주 참여하기도 하였다.

대통령 선거운동 참여[편집]

2002년 대선 당시에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히며 선거유세에 참여하였다. TV 찬조 연설자로 나서기도 했는데, 배우 문성근은 “대통령 선거 TV 지원연설에서 대본없이 20분간 할 말을 한 사람은 백기완과 신해철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67] 당시 TV 찬조 연설 내용의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68]

"노 후보가 가지고 있는 품성 가운데서 그의 우직함을 좋아한다. 너무나 똑똑한 사람들과 너무나 영악한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 그래서 속물공화국이 되어버린 우리나라에 가장 긴급 수혈되어야 할 그런 부분이 바로 그 우직함이라고 생각한다. 노 후보도 3당 합당이나 자기가 더 편한 길을 갈 수 있었을때 그 편한 길을 택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남았고 그것이 지금의 노 후보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노 후보가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서민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그가 없이 살았다' '초년때 고생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옳게 살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는 것"

MBC 100분 토론 출연[편집]

또한 MBC 100분 토론에 여러차례 출연했는데, 대마초 비범죄화, 간통죄 폐지, 학생 체벌 금지 등의 의견을 피력하였으며, 자신이 내세운 주장에 부합하는 사회 운동에 참여하는 등 일명 소셜테이너로서의 활동을 하였다. 2008년 400회 특집에서는 '최고의 비정치인 논객'으로 선정돼 참석하기도 했다. 이날 신해철은 "동방신기의 노래를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하고 있는데 오히려 국회를 청소년 유해단체로 지정해야 한다"는 등 거침없는 어록을 남겼다. [69]

체벌 금지 법제화 추진 운동 및 그 성과[편집]

2004년 '체벌 금지 법제화 추진 모임'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체벌금지운동을 전개하였다. 신해철은 카페에 아래와 같은 글을 남긴 바 있다.

훗날 제가 눈을 감을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음악을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체벌을 금지시키기 위해 여러 사람들과 힘을 모은 것이라고 이야기하게 될 것을 확신한다. 단순히 체벌을 받는 학생들에 대한 동정의 차원이 아니라 체벌이라는 독버섯의 밑에 우리 시대의 거대한 부조리와 사회악의 상징들이 상상보다 커다란 규모로 또아리를 틀고 있음을 파악하고 알리며 싸워나가달라

2006년 체벌 금지를 주제로 토론을 펼친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폭력은 전염되면 점점 강해지고 그 효과는 약해진다. 폭력 이외의 대안을 먼저 모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운동은 2010년 10월 경기도교육청이 '경기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하면서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 이후 광주광역시교육청(2011년 10월)와 서울특별시교육청(2012년 1월), 전라북도교육청(2013년 7월)이 차례로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했다. [70]

이라크전 파병 반대 1인 시위[편집]

2003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라크전 파병 결정을 반대하며 동료 연예인들과의 결의대회나 참여연대가 주관하는 1인 시위에 참여했다.[71][72] 신해철은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에 나서며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73]

“깡패가 칼질할때, 나는 칼을 안 쥐었다고 하더라도, 뒤에서 칼 갈아주고, 심부름해주고, 뒤처리해준다고 해서 나는 책임이 없고 도덕적으로 깨끗한가?”

“설령 힘의 논리에 의해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더라도, 지금 당장의 국익을 위해 부도덕한 전쟁을 지지하고 파병까지 한다면, 우리는 후손들에게 씻을 수 없는 도덕적 부담감을 남기는 죄악을 저지른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공교육 소멸론 주장[편집]

신해철은 앨빈 토플러의 공교육 소멸론에 공감하고 이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홈스쿨링과 사교육이 공교육의 대안이 될 것이라며 자신의 자식들도 그런 방식으로 교육시킬 것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그는 그의 딸을 대안학교에 입학시켰으며, 싸이렌 음악원이라는 사교육업체를 운영하기도 했다. 공교육 소멸론에 관해서 그는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74]

"나는 공교육이 사멸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의료민영화는 반대해도 교육은 민영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현재의 공교육은 수습될 수 없는 상태로 접어들었고. 수많은 정권들이 들어서서 입시 제도를 수도 없이 뜯어고치고, 엄청나게 많은 짓을 했는데도 그 누구도 성공한 사람이 없었다. 앞으로도 성공할 사람이 없을 거라고 본다. 물신주의 패러다임 아래서는 교육 문제는 해결 안된다. 내가 너무 감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공교육은 지금까지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했다.

(중략)

사교육을 비난하는 사람들 중 과연 몇이나 사교육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교육은 무조건 악인가. 권력이나 부의 세습을 강화하고 빈자들을 고립시키는 대표적인 악으로만 이야기될뿐이지 사교육의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공교육의 미래에 대해서는 다름 아닌 앨빈 토플러가 이야기했다. 21세기의 조직 가운데 제일 먼저 사라질 게 학교라고. 우리는 학교가 소멸하는 미래를 생각해봐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학교가 나쁜 짓을 많이 한 나라에서는 학교를 빨리빨리 없애야 한다.

홈스쿨링이 빈약한 대안으로서가 아니라, 대단히 강력한 교육수단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 경우도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사교육이 그런 진화 단계를 밟게 될 것이라고 본다. 사교육 시장이 동네 학원에서 거대 학원으로 진화하고, 온라인 툴을 갖추고, 공교육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하고. 또 그 다음엔 같은 사교육 업자들끼리 경쟁을 통해서 가격을 밑으로 내리게 되고. 미래의 사교육은 저렴한 가격으로, 온라인을 통해 가난한 민중들에게도 얼마든지 공급될 수 있는 형태로 재편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공교육이 빨리 몰락해야 한다는 게 제 사고방식이니 (나를) 과격하다고 이야기한다."

2009년 2월 9일, 10일에는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게재된 특목고 대비 입시학원의 전면광고에 출연하였다. 이에 대해 신해철의 그동안 사회정치활동이 진보 상업주의와 쇼맨십이 아니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다.[75] 이에 대해 신해철은 2월 29일부터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이러한 비판 및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76] 여기서 신해철은 이 사건을 "왜곡의 메카니즘"으로 칭하면서, 그동안 자신은 "공교육의 총체적 난국을 (…) 비판해 왔지만 (…) 사교육과는 거의 무관한 얘기였다"[77]라고 밝히는 한편, "신해철은 평소 교육에 대해 ‘전반적으로’ 진보적인 자세를 취했으니 ‘마땅히’ 사교육에 강경히 적대적인 입장을 취했어야 한다"라는 일부 언론 보도를 비판하였다.[78] 언론 보도에서 그는 "학원 광고 찍은 이유는 슬로건이 마음에 들었다"라고 밝혔다.[79] 누리꾼들은 이러한 해명에 대해 비판하는 의견과 동조하는 의견으로 나뉘었다.[80] 1년 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논란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81]

--입시 위주 교육을 비판하면서 학원 광고에 등장하고 학원을 운영하는 건 어폐가 있는데.

▲입시 위주 공교육을 비판했지, 지금껏 내 발언 중 사교육에 부정적인 시각은 없다. 학생때부터 내게 학교는 시간 낭비였다. 중고등학교때 수업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고 참고서로 공부했다. 인성적으로 감화되지 않는 선생들에게 고개 숙이는 위선도 짜증났다. 지식을 가르치는 전문가에게 '하드하게' 배우고 나머지 시간에는 내 생활을 갖고 싶었다.

--사교육 과열이 가져오는 문제점도 있지 않나.

▲사교육의 기능과 비용 문제를 구분 못한 것이다. 사교육이 악인 것은 가정경제를 압박하고 학생들에게 과도한 경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사교육 문제를 지적하려면 비용 문제를 짚어야 한다. 학원이 영세업에서 벗어나 전국 체인화된 대기업이 되면 박리다매가 가능하다. 입시 학원 광고를 한 것도 그 학원이 대형 체인이었기 때문이다. 앨빈 토플러가 21세기 소멸할 첫 번째로 꼽은 게 학교였듯이 난 공교육이 없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학교는 대중을 통제하고 정권에 맞는 인간형을 만들려는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

영어교육관련 정책 비판[편집]

2008년 1월 30일 본인이 진행하는 인터넷방송에서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가 추진하는 영어 공교육 정책에 대해 “그런 식으로 할 거면 스스로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든지, 영국의 영연방에 들어가 스스로 식민지가 되든지 …… 이게 무슨 엿같은 소리냐?”라고 강도높은 비판을 했다.[82][83]

한편 신해철은 자신의 딸을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서울에서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하기까지도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하였다. [84]

최근에 우리 가족이 용인으로 이사했는데,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 유치원을 찾다보니 서울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냥 아이와 놀아만 주는 유치원이 없더라고요. 이사 가서 유치원을 옮겨준 후 딸에게 “새 유치원 어때?”하니까 “응, 아무 것도 안 해”하더라고요. 그때 아내와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그래, 됐다’ 싶었어요.

사이버 모욕죄에 대한 입장[편집]

2008년 12월 100분 토론 400회 특집에서 신해철은,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처참한 언어들의 폭력 현상들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파고들어가서 우리 국민들의 품성이 거칠어지고 어린 시절부터의 품성과 커뮤니케이션 교육에 문제가 있다라는 점에서 출발해야지, 그것을 처벌하고 법을 만든다고 해서 크게 개선되어질 것 같지 않다"라고 하며 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8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로켓 발사 축하 관련 논란[편집]

2009년 4월 8일, 신해철이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이 합당한 주권과 적법한 국제절차에 따라 로켓을 발사하였음을 민족의 일원으로서 축하한다"라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되었다.[86] 신해철 공식홈과 미니홈피에는 신해철을 옹호하는 내용의 글들과 신해철의 글이 친북행위라며 과격한 언행으로 그를 비난하는 글들이 올라와 이 사건은 화제가 되었다.[87] 이에 보수 우익단체들은 신해철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였으며 2010년 1월 검찰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로켓 발사 축하 메시지 논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였으나 2010년 1월 29일 무혐의 처리하였다.[88] 한편 신해철은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이 논란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한 바 있다. [89]

안보 이슈는 대국민 겁주기용으로 사용된다. 로켓 발사 상황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적법하다고 생각한 국가도 많다. 정보가 차단되니 대중은 바보가 된다. 내 의도는 '북한이 인민군복을 입은 늑대'라는 반공 포스터 세대에서 벗어난 사람들, 북한을 동포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표시였을뿐이다. 보수단체도 애국한다고 뛰고 있으니 나와 방법이 다를뿐 무시하지 않는다. 이런 글이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을 노무현 대통령때 살았다. 집과 차는 한단계 내려 못 살듯이 자유도 내려 못 산다.

불합리한 한국 음악산업 지적[편집]

2014년 4월, 록 그룹 시나위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신대철이 언론과 SNS를 통해 왜곡된 음원유통 구조와 불합리한 한국 음악산업 전반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설립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7월에 '바른음원 협동조합'이 출범하게 되었다. 신해철은 이 행사에서 축사를 맡게 되었는데, "MP3가 생겨나고 이동통신업체가 음원 서비스를 맡는 등 창작 환경이 많이 바뀌어왔는데 그때마다 착취당하는 것은 항상 음악가들이었다"라고 강조했다.[90][91][92]

음반 목록[편집]

정규음반[편집]

싱글[편집]

리메이크 음반[편집]

라이브 음반[편집]

컴필레이션 음반[편집]

OST[편집]

출연 작품[편집]

라디오[편집]

시기 방송사 프로그램명 출연 형태
1989년 MBC AM 《우리는 하이틴》 진행자
1991년 MBC FM 《밤의 디스크쇼》 진행자
1991년 3월 30일 MBC AM 별이 빛나는 밤에 〈JAM 1991〉(별이 빛나는 밤에 JAM콘서트) 출연
1991년 9월 30일 MBC FM 《FM은 내 친구》 〈가을, 만남 그리고 MBC FM〉(개편특집 공개방송) 출연
1992년 2월 23일 KBS 제2FM 《임백천의 뮤직쇼》 일요공개방송 - 〈신해철의 미니콘서트〉출연
1996년 4월 2일 ~ 1997년 10월 1일 MBC FM FM 음악도시 진행자
2001년 4월 1일 ~ 2003년 4월 7일 SBS 파워FM 고스트 스테이션 진행자
2003년 10월 20일 ~ 2005년 4월 24일 MBC FM4U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 진행자
2005년 4월 25일 ~ 2007년 9월 17일 MBC 표준FM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 진행자
2007년 2월 25일, 3월 4일 SBS 러브FM 김C의 멋진 아침 게스트
2008년 3월 31일 ~ 10월 27일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 진행자
2011년 5월 9일 ~ 2012년 10월 22일 MBC FM4U 신해철의 Ghost Station 진행자
2011년 7월 8일 배철수의 음악캠프 게스트
2014년 7월 1일 SBS 파워FM 두시 탈출 컬투 쇼 특별초대석 코너〈신해철과 함께〉게스트
2014년 7월 4일 MBC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 게스트
2014년 7월 9일 CBS 표준FM 라디오 3.0 남궁연입니다 게스트
2014년 8월 11일 ~ 19일 MBC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 임시 진행자
2014년 8월 22일 FM 데이트 게스트
2014년 9월 11일, 18일 창비라디오(팟캐스트) 진중권의 문화다방 신해철 1부(11일), 2부(18일) 출연

영화[편집]

년도 제목 출연
1993년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카메오 출연
1996년 정글스토리 카메오 출연
2005년 거짓말 폭탄 주연
2006년 아치와 씨팍 '보자기 킹' 역 목소리
애니 프란체스카 '앙드레 대교주' 역 목소리

TV[편집]

시기 방송사 프로그램명 출연 형태
1988년 12월 24일 MBC MBC 대학가요제 무한궤도 출전
1990년 10월 6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특집 〈청산에 살으리라〉 게스트
1990년 10월 27일 특집 〈노래는 우리인생〉 게스트
1991년 2월 14일 91 폭소천하장사대회 초대 가수
1991년 7월 28일 KBS2 여름방학특집 《가위바위보》 게스트
1991년 8월 1일 MBC 여기 젊음이 게스트
1991년 12월 21일 KBS2 토요대행진 - 특집〈91컴퓨터영상축제〉 〈컴퓨터 2000의 소리〉코너 게스트
1992년 1월 1일 MBC 여기 젊음이 신년특집 게스트
1994년 12월 2일 94 마약퇴치콘서트 - 한번쯤도 안됩니다 출연(넥스트)
1995년 5월 13일 SBS 청소년을 위한 드림콘서트
1996년 10월 19일 MBC MBC 대학가요제
1996년 12월 4일 SBS 이홍렬쇼 〈칵테일 토크〉코너 출연(노땐스)
1996년 12월 14일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산울림과 넥스트〉 출연
1996년 ~ 1998년 Mnet 사이버 뮤직 스페이스 진행자
1997년 3월 25일 KBS2 TV데이트 출연(넥스트)
1997년 10월 25일 MBC MBC 대학가요제
1997년 11월 14일 정미홍이 만난 사람 출연
1997년 11월 26일 《아름다운 TV - 얼굴》 〈스타 모놀로그〉코너 출연
1998년 SBS 이승연의 세이 세이 세이 〈밀착토크 클로즈업〉코너 출연
1999년 4월 7일 김혜수 플러스유 〈롱테이크〉코너 출연
1999년 4월 27일 MBC 박상원의 《아름다운 TV - 얼굴》 〈스타 모놀로그〉코너 출연
1999년 12월 6일 SBS 이홍렬쇼 〈참참참〉코너 출연(두부김치 버거 -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버거야' 제조)
1999년 12월 31일 특집 《비전 2000, 쇼 2000》 출연
2001년 2월 14일 들국화 헌정 콘서트 출연
2003년 10월 4일 MBC MBC 대학가요제 출연(넥스트)
2003년 11월 ~ 2004년 SBS MTV 고스트TV 진행자
2004년 11월 7일 KBS2 스타 골든벨
2006년 채널블루 신해철의 대국민 고충처리반 진행자
2006년 9월 19일 KBS2 상상 플러스 게스트
2007년 MBC 무릎팍도사 게스트
2007년 KBS2 해피선데이 - 불후의 명곡 출연
2007년 ~ 2008년 YTN스타 신해철의 100초 토론 진행자
2008년 ~ 2009년 tvN 이색뉴스쇼 SMASH 김태훈, 김진표와 공동 진행
2008년 4월 19일 ~ 11월 코미디TV 신해철의 데미지 진행자
2008년 7월 30일 ~ 9월 30일 E채널 안티 VS 스타 진행자
2008년 ~ 2009년 MBC 에브리원 신해철의 스페셜 에디션 진행자
2009년 1월 10일 KBS2 스타 골든벨 출연(넥스트)
2009년 2월 2일 MBC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게스트
2009년 2월 10일 KBS2 1대 100 게스트
2010년 12월 10일 Mnet 비틀즈 코드 시즌 1 게스트
2011년 MBC 에브리원 부엉이 시즌 2 진행자
2011년 3월 26일 ~ 4월 2일 tvN 2011 오페라 스타 경연자 출연
2011년 6월 4일 ~ 9월 17일 KBS2 TOP밴드 시즌 1 출연(코치)
2011년 7월 5일 Mnet 윤도현의 MUST 출연(넥스트)
2011년 10월 18일 KBS2 김승우의 승승장구 게스트
2011년 11월 29일 SBSE! 시간여행 메모리 안선영과 공동 진행
2011년 11월 ~ 12월 KBS2 생방송 세계는 지금 〈신해철의 지구 뉴스〉 코너 진행
2011년 11월 12일 ~ 2012년 4월 28일 이야기쇼 두드림 진행자
2011년 12월 21일 SBS 좋은 아침 <닭살 최강 신해철 윤원희 부부> 게스트
2012년 2월 스타부부쇼 자기야 게스트
2013년 8월 25일 ~ 11월 3일 KBS1 K소리 악동 임동창과 공동 진행
2013년 12월 20일, 27일 MBC 우리집 막둥이 신해철 가족이 고정 패널로 출연
2014년 7월 2일 JTBC 비정상회담 게스트
2014년 7월 5일 tvN SNL 코리아 호스트
2014년 9월 3일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노유민, 윤민수와 공동 게스트
2014년 11월 2일 JTBC 속사정 쌀롱 MC[93]


광고[편집]

  • 랜드로바 (1989년)
  • 타이거 (1991년)
  • 롯데삼강 꽃게랑 (1992년)
  • 롯데리아 텐더그릴치킨버거 (2007년)
  • 빙그레 투게더 (2007년)
  • 입시학원 하이스트 전속모델 (2009년)

수상[편집]

  • 1988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
  • 1990년 MBC 10대 가수상
  • 1990년 KBS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 1990년 제1회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 1990년 골든디스크 본상
  • 1991년 라인CC주최 백조상
  • 1991년 KBS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 1995년 제9회 한국 노랫말 대상 환경노랫말상
  • 2006년 MBC연기대상 라디오DJ부문 특별상

저서[편집]

기타[편집]

  • KBS 스포츠 타이틀 로고송 제작
  • N.EX.T 5.5집 수록곡인 〈인형의 기사〉 뮤직비디오 감독
  • 게임 '길티기어 이그젝스 샤프리로드' 테스타먼트 목소리 출연
  • EBS다큐프라임》 - 〈행복의 조건, 복지국가를 가다 - 1부. 노동〉편 나레이션[94]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단, 본인은 종교를 믿지 않음. 그 외의 내용은 자세한 일화를 참조 바람.
  2. 넥스트 4집 부클릿에 기재되어 있음
  3. 신해철, "'그대에게'는 멜로디언으로 만든 노래"
  4. 경향신문. "대마초 가수 등 또 4명구속", 《경향신문》, 1989년 10월 16일 작성.
  5. 동아일보. "대마초피운 가수 구속적부심 석방", 《동아일보》, 1989년 10월 28일 작성.
  6. 한겨레. "방위복무중 대마초흡연 가수 신해철씨 또 구속", 《한겨레》, 1993년 1월 30일 작성.
  7. 크리스 샹그리디 상세정보
  8. 연합뉴스. "가수 신해철씨, 일본서 결혼", 《연합뉴스》, 2002년 9월 29일 작성.
  9. 한국일보. "대선 끝났으니 다시 연예인으로", 《한국일보》, 2002년 12월 20일 작성.
  10. 뉴스팀. "가수 이덕진과 록 밴드 제라를 만나다", 《세계일보》, 2013년 6월 5일 작성.
  11. 스타뉴스. "신해철, 결혼 4년만에 아빠됐다", 《스타뉴스》, 2006년 9월 14일 작성.
  12. 스타뉴스. "신해철, 데뷔 20주년 기념공연·득남‥'겹경사'", 《스타뉴스》, 2008년 7월 16일 작성.
  13. 김성희. "'두드림' 송승환·신해철 "6개월간 좋은시간" 하차소감", 《스타뉴스》, 2012년 4월 29일 작성.
  14. 노컷뉴스. "신해철, 5시간에 걸쳐 담낭염 수술 받아", 《노컷뉴스》, 2012년 2월 11일 작성.
  15. TV리포트. "넥스트 드러머 김단, 연락 끊고 돌연 잠적", 《TV리포트》, 2012년 5월 3일 작성.
  16. 한민경. "‘실종 해프닝’ 김단 심경고백 “우울증 아냐, 개인적인 사정”", 《동아닷컴》, 2012년 5월 9일 작성.
  17. 김고금평. "신해철의 ‘넥스트’ 해체 수순 밟는다", 《문화일보》, 2012년 5월 7일 작성.
  18. 이현우. "넥스트 해체? “이미 녹음 끝낸 앨범 있다”", 《매일경제》, 2012년 5월 7일 작성.
  19. 스타뉴스. "'아키에이지' 게임음악서 신해철 하차", 《한경닷컴》, 2012년 6월 25일 작성.
  20. 박영웅. "신해철·신대철, 프로젝트 그룹 결성..록★ 뭉쳤다", 《매일경제》, 2012년 7월 3일 작성.
  21. 김용호. "신해철, 3년 만에 신곡 'Goodbye Mr.Trouble'", 《스포츠월드》, 2012년 10월 12일 작성.
  22. 김성휘, 박광범. "신해철·이승환도 참석 "노무현, 돌직구 원조"", 《머니투데이》, 2013년 5월 19일 작성.
  23. 연합뉴스. "여수엑스포, 신해철,신대철 공연", 《연합뉴스》, 2012년 5월 26일 작성.
  24. 헤럴드생생뉴스. "대학가요제 폐지, 3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코리아헤럴드》, 2013년 7월 2일 작성.
  25. 이지현. "신해철 대학가요제 폐지, 좌시하지 않겠다", 《스타뉴스》, 2013년 9월 25일 작성.
  26. 박정선. "신해철 측 “넥스트로 상반기 앨범 발매, 구성원 추후 발표”", 《MBN》, 2014년 4월 16일 작성.
  27. 오세훈. "신해철 측 "올해 안에 재미있는 자작곡으로 컴백"", 《스포츠서울》, 2014년 4월 16일 작성.
  28. 이은정. "신해철, 6년 만에 컴백..6월 정규 앨범 발표", 《연합뉴스》, 2014년 5월 14일 작성.
  29. 김지연. "신해철, 6월 컴백 위해 비지땀 "타이틀곡만 나오면.."", 《enews24》, 2014년 5월 15일 작성.
  30. 권석정. "신해철 신곡 ‘아따’는 원맨 아카펠라", 《아시아10》, 2014년 6월 17일 작성.
  31. 김예나. "신해철 ‘A.D.D.a’, 철없는 마왕의 정체불명 실험", 《TV리포트》, 2014년 6월 17일 작성.
  32. 강수진. "신해철, ‘이 노래를 혼자 만든 게 맞아?’ 파격과 실험의 결과물", 《스포츠경향》, 2014년 6월 17일 작성.
  33. 김예나. "신해철, 정규 6집 6월 23일 발매확정…19금 파티 개최", 《TV리포트》, 2014년 5월 30일 작성.
  34. 최현정. "신해철, 팬들 위한 화끈한 19금 파티 개최 ‘컴백 신고식’", 《파이낸셜뉴스》, 2014년 5월 30일 작성.
  35. 권석정. "‘돌아온 마왕’ 신해철에게 궁금한 것 “그냥 안부 전합니다 잘 살고 있어요”", 《텐아시아》, 2014년 6월 23일 작성.
  36. 한인구. "신해철 정규 6집, 노련해진 '마왕'의 실험들", 《엑스포츠뉴스》, 2014년 6월 26일 작성.
  37. 박다영. "‘마왕’ 신해철, 7년만의 귀환…오늘(26일) 정오 신곡 발매", 《MBN스타》, 2014년 6월 26일 작성.
  38. 이윤미. "신해철, 고양 락&페스티벌 2014 헤드라이너로 “한국 밴드가 주인이 되는”", 《헤럴드경제》, 2014년 6월 28일 작성.
  39. 조연경. "마왕의 귀환, 신해철 '컬투쇼'로 6년만에 컴백", 《뉴스엔》, 2014년 7월 1일 작성.
  40. 홍의석. ""마왕이 떴다"..'올드스쿨', 신해철 카리스마 인증샷", 《TV리포트》, 2014년 7월 4일 작성.
  41. 김승현. "배철수 "신해철, 음악인으로 돌아와 고맙다"", 《엑스포츠뉴스》, 2014년 7월 5일 작성.
  42. 여창용. "‘마왕’ 신해철, ‘SNL코리아’ 좀비 보스로 변신", 《파이낸셜뉴스》, 2014년 7월 5일 작성.
  43. 홍의석. ""이용진과 한 컷"…신해철, 'SNL' 대기실 인증샷", 《TV리포트》, 2014년 7월 4일 작성.
  44. 영원히 잠든 신해철…애통했던 15일 기록
  45. 국과수 "故 신해철 천공, 의인성 손상 가능성"
  46. 故신해철 지인들 눈물 속에 발인식 마치고 추모공원으로…조문객 16,000명 다녀가
  47. ‘마왕’ 신해철 사망에 정치계도 애도물결 “영원히 기억할것”
  48. 신해철 사망 원인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 “가족 지켜보는 가운데..” | 뉴스엔, 2014년 10월 27일
  49. 신해철 패혈증, 상태 악화의 원인이? | 라이브엔, 2014년 10월 27일
  50. 故신해철, 한 줌의 재로..아내·모친 끝내 오열
  51. 고 신해철, 문제의 위 수술 장면 입수…사진 확인해보니
  52. "故 신해철, 심낭 천공도 장협착 수술 뒤 생겨"
  53. 신해철 화장절차 중단…"부검해 사인 밝힌다"
  54. 경찰, 고 신해철 장협착 수술 병원 압수수색
  55. 故 신해철씨 3일 오전 부검…경찰 부검뒤 관계자 소환
  56. 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newsview?newsid=20141130000108405
  57. '비정상회담' 신해철 "어릴 적 꿈은 신부" 고백
  58. 이수현. "신해철 "'마리아마리아' 출연해도 무신론자 변함없다"", 《머니투데이》, 2008년 11월 6일 작성.
  59. “마리아 마리아,마치 주님 만나는것 같아요”… 소냐·김보강 등 제작진 기자회견
  60. 업그레이드된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종교색보다는 작품성으로"
  61. 백나리. "서태지, 신해철과 흡연 논쟁 "고2때 첫 흡연? 너무 늦다"", 《스포츠서울》, 2008년 12월 8일 작성.
  62. 신해철 독립운동가 할아버지 사진 공개 2009-04-27 동아일보
  63. 신해철, "'그대에게'는 멜로디언으로 만든 노래"
  64. <<스타 타임라인>> 신해철, 6년 공백 그후…리부팅 중
  65. "신해철 “차라리 깨끗한 은퇴가 낫겠단 생각 든다”", 《헤럴드POP》, 2006년 11월 2일 작성.
  66. 스타뉴스. "신해철 "자살충동..그러나 난 살아남았다"", 《스타뉴스》, 2006년 11월 2일 작성.
  67. 대한민국은 왜 신해철에 열광했을까
  68. 문재인, 노무현ㆍ신해철이 그리웠나
  69. '마왕' 신해철, 그는 언제부터 독설가가 됐나
  7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8&aid=0003358020 故 신해철 과거 체벌금지 운동 "눈 감을 때 음악보다..." ]
  71. 아이뉴스24. "신해철 등 대중가수, 25일 반전-파병반대 결의대회", 《아이뉴스24》, 2003년 3월 25일 작성.
  72. 연합뉴스. "방은진. 신해철씨, 이라크전 파병반대시위", 《연합뉴스》, 2003년 3월 21일 작성.
  73. "칼 안쥐었다고 공범 아닌가?" - 가수 신해철, 청와대 앞서 반전ㆍ파병반대 1인시위
  74. "의료민영화 반대해도 교육민영화는 찬성 나쁜 짓 많이 한 공교육은 사멸돼야 한다"
  75. 김도영. "신해철의 ‘이율배반’", 《PD저널》, 2009년 2월 9일 작성.
  76. 신해철 홈페이지 내에 최근의 광고 논란에 대한 글을 게재한 게시판
  77. 신해철 광고 사건 1편 글
  78. 신해철 광고 사건 2편 글
  79. 양승준. "신해철 "학원 광고 찍은 이유? 슬로건이 마음에 들어서" 해명", 《이데일리 SPN》, 2009년 3월 1일 작성. 2009년 3월 1일 확인.
  80. 양승준. "네티즌, 신해철 해명에 '이해한다' vs '억지스러워' 대립각", 《이데일리 SPN》, 2009년 3월 1일 작성. 2009년 3월 1일 확인.
  81. 신해철 "공교육 비판했을 뿐..난 사교육업자"
  82. 김지연. "신해철 "영어 공교육? 차라리 美 51번째 주가 돼라"", 《머니투데이》, 2008년 2월 4일 작성.
  83. 최세나. "신해철 "차라리 美의 51번째 주가 되라", 논란 뜨거워", 《스포츠조선》, 2008년 2월 5일 작성.
  84. 가수 신해철, 음악원장 된 마왕…'스파르타 교육' 정체는
  85. JTBC 뉴스, "가수이자 논객…고 신해철, 팬들 마음 속 영생할 것"
  86. SBS 뉴스, 신해철 "북한 로켓 발사 성공 경축" 발언 논란
  87. "신해철 북한 로켓발사 축하 논란", 《스포츠조선》.[깨진 링크]
  88. 김남일. "북한 로켓발사 축하 글 가수 신해철 무혐의 처분", 《한겨레신문》, 2010년 1월 29일 작성. 2010년 1월 30일 확인.
  89. 신해철 "공교육 비판했을 뿐..난 사교육업자"
  90. 한준호. "신해철·가리온 참석 속에 ‘바른음원 협동조합’, 정식 출범", 《스포츠월드》, 2014년 7월 14일 작성.
  91. 박세연. "축사하는 가수 신해철", 《뉴스1》, 2014년 7월 16일 작성.
  92. 송초롱. "바른음원 협동조합, 16일 정식 출범…신해철·MC 메타 등 참석", 《MBN스타》, 2014년 7월 14일 작성.
  93. (단, 1회만 출연했으며 해당 방송분은 10월 9일에 했다. 이 방송분을 끝으로 그의 생전 마지막 방송이 되었다.)
  94. 이태수. "신해철.나문희.홍은희가 안내하는 복지국가", 《연합뉴스》, 2013년 1월 14일 작성.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