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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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

보아
기본 정보
본명 권보아
출생 1986년 11월 5일(1986-11-5) (22)
대한민국의 국기 대한민국 경기도 구리시
국적 대한민국의 국기 대한민국
활동 시기 2000년 ~ 현재
소속사 SM 엔터테인먼트
에이벡스
(동시 소속)
웹사이트 공식 홈페이지
대표곡
LISTEN TO MY HEART 2002년
NO.1 2002년
VALENTI 2002년
My Name 2004년
DO THE MOTION 2005년
최근 발매한 음반
永遠 2009.2.18 싱글
BoA 2009.3.18 앨범
BoA BESTⅡ 2009.3.18 베스트

보아(BoA, 1986년 11월 5일 ~ ,세례명 키아라)는 대한민국SM엔터테인먼트일본AVEX에 소속되어 한국일본에서 동시에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여성 가수이다. 본명은 권보아(權보아,‘權寶兒’는 중화권에서 표기를 위해 만들어진 표현임)이며, 경기도 구리시 출생이다.

목차

[편집] 인물

  • 가족으로 부모님과 두 오빠가 있고, 보아는 형제들 중 막내이다. 이 중 큰 오빠 권순훤은 피아노 연주가로 활동하고 있고, 작은 오빠 권순욱은 뮤직 비디오 감독으로 서인영·팝핀현준 등의 뮤직 비디오를 촬영하기도 했다.
  •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키아라이다.
  • 모국어인 한국어 외에도 일본어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다.[1]
  • 중학교를 중퇴했지만, 2002년 대한민국의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하여 대학교 입학 자격을 획득했다. 하지만 학업과 음반 활동을 병행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유로 대학 진학을 포기한 상태이다.[2]
  • 연기 활동에 관해서는 MBC》의 여주인공 '채경' 역을 제안받았다는 이야기, 대만 영화 《덩크》에 캐스팅되었다는 이야기,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초챙' 역으로 출연한다는 이야기 등 여러 뜬소문이 많았으나[3] 확실한 계획은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으며, 2006년에 애니메이션 영화 《헷지》로 목소리 연기에 도전을 한 적은 있다.

[편집] 약력

[편집] 데뷔 전

보아는 1986년 11월 5일대한민국 경기도 구리시에서 태어났다. 남양주시 양정초등학교 5학년 재학 중이던 1997년, SM엔터테인먼트의 사장 이수만에게 발탁되어 3년 여의 트레이닝 기간을 거쳤다. 이때부터 대한민국으로 국한된 활동이 아니라 일본에서 활동하기 위해 NHK 아나운서의 집에 머물며 정확한 일본어 발음을 익혔고, 삼육중학교에 다니던 중에 영어회화를 위해서 한국켄트외국인학교로 전학했다.[4]

SM엔터테인먼트는 보아의 데뷔 프로젝트를 '신비 프로젝트'라 이름붙이고 보아의 데뷔를 진행해 나갔다.[5] 이는 30억 정도를 들인 프로젝트였으며, SM엔터테인먼트에서 H.O.T. 등의 가수들로 벌어들인 돈을 거의 모두 동원한 중대한 프로젝트였다고 사장 이수만은 후에 회상했다.[6] 보아의 데뷔가 다가오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름이 '바비', '신비'라는 소문이 돌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7] 그리고 2000년 8월 25일, 데뷔 앨범 《ID; Peace B》와 '만 13세의 춤추는 소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보아는 가수로 데뷔했다.

[편집] 데뷔 ~ 2001년

첫 앨범 《ID; Peace B》에는 데뷔 곡 〈ID; Peace B〉와 〈SARA〉·〈비밀일기〉 등, 소녀적인 감성을 살린 밝은 댄스곡과 발라드 곡으로 채워져 있다. 보아의 공중파 데뷔 무대는 2000년 8월 27일 방송된 SBS 《생방송 인기가요》였고, 이 날 보아는 데뷔곡 〈ID; Peace B〉로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데뷔 초부터 보아는 어려움을 겪었다. 보아는 데뷔 때부터 안티 팬들의 공격을 받은 대표적인 경우인데, 아주 어린 나이에 데뷔한 탓에 근거없는 루머가 퍼지면서 안티 팬들이 늘어 갔고, 이들에게서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또, 데뷔 당시에는 대중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고, 결국 '30억 프로젝트'라는 준비 과정과 비교하면 첫 앨범 활동은 그에 걸맞는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접어야 했다.

2001년 3월 7일, 보아는 해외 진출을 선언하고 일본 도쿄에서 일본·홍콩·대만의 취재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쇼케이스를 가졌다. 보아의 일본 데뷔는 SM엔터테인먼트와 일본에이벡스(avex)의 합작으로 이루어졌는데, SM과 에이벡스는 SM Japan을 설립하여 보아의 개인 일정을 관리하고 에이벡스는 음반 발매와 홍보를 전담하기로 했다.[8] 같은 날 대한민국에서는 보아의 해외 진출 도전을 기념하기 위해 《Don't start now - Jumping into the world》라는 스페셜 앨범이 발매되었다.

2001년 5월 30일, 보아는 일본 데뷔 싱글 〈ID; Peace B〉를 발매하고 일본에서 정식 데뷔했다. 첫 싱글은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에서 20위를 기록했다.[9] 이어 7월 25일 2번째 싱글 〈Amazing Kiss〉를 발매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강행군으로 피로가 쌓여서인지 이때 보아는 쓰러지게 된다. 그로부터 5개월이라는 긴 공백기를 가진다. 이후 3번재 싱글의 프로모션 중 NHK에서 방송되는 디지털 드림 라이브(12월 1일)에 출연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디지털 드림 라이브'는 2000년에서 2004년까지 방송된 NHK의 연말 특집 음악 방송인데, 일본 대중들이 많이 시청하는 대형 음악 프로그램이였다. 여기서 보아는 뛰어난 댄스와 라이브 실력으로 일본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12월 5일 3번째 싱글 〈気持ちはつたわる〉를 발매했다. 이 싱글은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에서 첫 등장 15위를 기록(18020장), 10주 동안 주간 차트 등장의 롱런으로 약 8만장정도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어 12월 19일에는 코다 쿠미와 함께 9·11 테러 추모 싱글인 〈the meaning of peace〉를 발매하며 계속해서 인지도를 높여 갔다.

[편집] 2002년

2002년은 보아에게 있어서 '최고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성과를 기록한 해이다.

1월 17일, 보아는 4번째 싱글 〈LISTEN TO MY HEART〉를 발매했다. 휴대 전화 광고 음악으로 사용되었던 이 곡은 보아의 싱글들 중 처음으로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 10위 이내로 진입한 싱글이었고, 발매 이후 3주까지 오히려 주간 판매량이 상승하며 히트를 기록했다. 이 곡의 히트는 3월 13일 발매된 첫 정규 앨범 《LISTEN TO MY HEART》의 판매량의 견인차 역할을 했고, 이 앨범에서 보아는 오리콘 주간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했다.[10] 이 사실은 일본 내에서도 이슈가 되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MBC의 오후 9시 정규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에서 보도할 정도로 큰 이슈가 되었다.[11]

4월 12일에는 모국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정규 2집 앨범 《NO.1》을 발매했다. 대한민국에서는 보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져 있던 상황이었고, 이와 동시에 타이틀 곡 〈NO.1〉은 2002년 월드컵과 맞물려 큰 인기를 얻었다. 한국음악산업협회의 음반 판매량 집계에 따르면 《NO.1》은 2002년 한 해 동안 54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했고, 이 기록은 2002년 발매된 전체 음반들 중 4위를 차지하는 기록이다.[12] 보아는 이 앨범에서 후속곡 〈My Sweetie〉와 발라드 곡 〈늘..〉 등으로 활동하다가 8월에 2집 활동을 마감했다.

8월 28일에는 일본에서 6번째 싱글 〈VALENTI〉를 발매했다. 〈VALENTI〉는 라틴리듬의 경쾌한 댄스곡으로, 보아의 일본 싱글들 중 2009년 7월 현재까지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싱글이다. 음반 순위 면에서도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 2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기록했다. 이어 3주 뒤에는 7번째 싱글 〈奇蹟/NO.1〉을 발매했다. 특히 싱글 〈奇蹟/NO.1〉을 발매한 주에는 〈VALENTI〉와 〈奇蹟/NO.1〉이 모두 주간 차트 5위권 내에 진입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13] 12월 11일에는 발라드 싱글 〈JEWEL SONG/BESIDE YOU-僕を呼ぶ声-〉를 발매하고 활동했다.

한편 9월 26일에는 그간의 일본 활동곡들을 모아 한국어로 번안하여 수록한 스페셜 앨범 《Miracle》이 대한민국에서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서 보아는 〈VALENTI〉와 〈기적〉으로 활동했고, 3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히트했다.[12][14][15] 이러한 정규 2집 활동과 스페셜 앨범에서의 활약 덕분에 2002년 연말 보아는 서울가요대상과 SBS 가요대전에서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대상을 차지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매년 12월 31일 그 해 인기 가수들이 출연하여 노래하는 NHK홍백가합전》에 출연하게 되었고, 이 무대에서 보아는 〈VALENTI〉를 노래했다. 이때 출연한 뒤 보아는 2007년까지 6년 연속으로 홍백가합전 무대에 올랐다.[16]

[편집] 2003년

2003년 1월 29일, 보아는 일본에서 2번째 정규 앨범 《VALENTI》을 발매했다. 이 앨범은 발매 일주일 만에 6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오리콘 주간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했다.[17] 최종적으로는 120만장을 돌파하며 보아의 첫 밀리언 셀러로 기록되었고, 2003년 오리콘 연간 앨범 차트에서 5위를 마크했다.[18]VALENTI》 발매 이후에는 오사카 시·나고야·도쿄 등지를 돌면서 첫 콘서트 투어 'BoA 1st LIVE TOUR 2003 VALENTI'를 개최하였다. 3월 27일부터 4월 6일까지 4개의 공연이 일정에 잡혀 있었지만 이후 2회의 추가 공연이 결정되어 총 6회의 공연을 펼쳤다. 특히, 도쿄 공연때는 모리 요시로일본 총리가 관람한 기사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19]5월 14일에는 9번째 싱글 〈Shine We Are!/Earthsong〉을 발매하였다. 발매 당일 일간 차트 1위를 기록했지만, 주간 차트에서는 모리야마 나오타로의 〈さくら(独唱)〉에 밀려 2위를 기록했다.

2003년은 한인들이 미국으로 이민한 지 100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에는 한인들을 위한 음악제가 여럿 개최되었다. 보아도 4월 2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 음악제'와 9월 29일 뉴욕에서 열린 '미주 이민 100주년 기념 한인 대축제'에 출연하였다. 5월에는 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미국 공영방송 PBS에서 제작한 대한민국 특집 프로그램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로서 출연하여 진행자와 영어로 인터뷰하는 장면이 방송되기도 했다. [20]

5월 30일에 보아는 대한민국에서 3번째 정규 앨범 《Atlantis Princess》를 발매하고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타이틀 곡은 〈아틀란티스 소녀〉로, 전설의 대륙 아틀란티스를 묘사한 동화 같은 가사를 담고 있는 밝은 댄스곡이다. 보아는 이 곡으로 6월 1일부터 TV 활동을 시작했고, 후속곡 〈Milky way〉와 발라드 곡 〈나무〉로 활동을 계속하며 3집 활동은 9월까지 이어졌다.

3집 발매에 앞선 2003년 2월 보아는 서울특별시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이에 맞춰 보아는 서울을 홍보하는 노래 〈서울의 빛〉을 녹음했는데,[21] 2003년 5월 25일 제1회 하이 서울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며 대중들에게 공개했다. 〈서울의 빛〉은 이 시기에 발매된 3집에도 수록되었고, 서울특별시 홈페이지에서도 들을 수 있다.[22]

10월 22일에는 싱글 〈DOUBLE〉이 발매되었다.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 동시 발매되어 대한민국에서는 첫 싱글, 일본에서는 통산 10번째 정규 싱글이었다. 이러한 싱글 동시 발매는 이어 발매된 〈Rock With You〉도 똑같이 이루어졌다. 12월 3일에는 대한민국에서 《Miracle》과 같은 방식의 스페셜 앨범 《SHINE WE ARE》가 발매되었다.

[편집] 2004년

2004년 1월 15일, 일본에서 3번째 정규 앨범 《LOVE & HONESTY》가 발매되었다. 오리콘 주간 차트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보아의 통산 3번째 1위였다. 앨범 발매 후 일본에서의 2번째 콘서트 투어도 진행되었는데, 'BoA LIVE TOUR 2004 LOVE&HONESTY'는 한 달여의 기간 동안 총 9회의 공연을 선보인 콘서트 투어였다. 3월 19일에는 보아가 참여한 m-flo의 싱글 〈the Love Bug〉가 발매되었다. 이 때의 인연으로 이후 m-flo의 VERBAL이 보아의 콘서트 무대를 찾았을 때나, 2004년 연말 m-flo가 내한하여 MKMF에 참가했을 때 함께 〈the Love Bug〉를 부르기도 했다.

2월 14일에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MTV 아시아 어워즈'에 한국과 일본의 공동 대표로 참가하여 '한국 최고 인기 가수상'과 특별상인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수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이 때 축하무대에서 보아는 록 밴드와 함께 〈Rock With You〉를 한국어일본어로 동시에 불렀다.[23]

6월 11일에는 대한민국 4번째 정규 앨범 《My name》을 발매하고 타이틀 곡 〈My Name〉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때의 음악 스타일은 이전의 보아와는 아주 다른 파격적인 변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전까지 〈NO.1〉·〈아틀란티스 소녀〉 등의 귀여운 10대 소녀로써의 이미지를 버리고 성숙한 여성으로써의 이미지로 변신했다. 타이틀 곡 〈My Name〉은 어반 댄스 스타일의 곡으로, 골반 댄스 등 노래의 안무도 화제를 낳았다. 보아는 이 앨범의 수록곡 〈Spark〉와 〈My Prayer〉로 9월까지 활동했다.

9월 1일에는 일본에서 13번째 싱글 〈QUINCY/コノヨノシルシ〉를 발매했다. 이어 3개월 뒤인 12월 1일에는 14번째 싱글 〈メリクリ〉를 발매했다. 이 싱글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잘 맞는 발라드 곡으로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던 보아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판매량도 싱글 〈Shine We Are!/Earthsong〉 이후 넘지 못했던 10만장 선을 넘었고,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롱 히트했다.

[편집] 2005년

2005년 2월 2일, 보아는 일본에서 첫 번째 베스트 앨범 《BEST OF SOUL》을 발매했다. 《BEST OF SOUL》은 2001년ID; Peace B〉로 일본에서 데뷔한 이후, 〈メリクリ〉까지 총 14장의 싱글을 발매하는 동안 발표했던 싱글곡들을 모은 앨범으로, 첫 주 48만장으로 주간 차트 1위를 기록했고 최종적으로는 110만장 가까이 팔렸다. 베스트 앨범을 발매하고 2개월 뒤 일본에서의 3번째 라이브 투어 콘서트 'BoA ARENA TOUR 2005 BEST OF SOUL'를 열었다. 투어 기간 직전에 발매된 15번째 싱글 〈DO THE MOTION〉은 보아의 싱글들 중 최초로 오리콘 주간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인으로서도 최초의 기록이다.

6월 24일부터는 대한민국에서 5번째 정규 앨범 《Girls On Top》을 발매하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타이틀 곡 〈Girls On Top〉은 남성 우월주의에 빠진 남성들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를 담은 강렬한 댄스곡으로, 이 곡에서는 곡 후반에서 남자 댄서의 등에 올라타 노래를 부르는 안무가 화제가 되었다. 이 곡으로 보아는 MBC 《음악캠프》에서 1위를 수상했고, SBS 《생방송 인기가요》에서는 7월 17일부터 7월 31일까지 3주 연속으로 1위에 해당하는 '뮤티즌 송'을 수상했다.[24] 이어 후속곡 〈MOTO〉로 활동했다.

대한민국에서의 5집 활동이 마감되어 갈 때쯤, 8월 31일에 16번째 싱글 〈make a secret〉이 발매되었다. 〈DO THE MOTION〉의 노선을 이어 나가듯 절제되고 세련된 분위기의 곡이다. 11월 23일에는 빠른 댄스곡을 앞세운 17번째 싱글 〈抱きしめる〉를 발매했다.

[편집] 2006년

2월 15일에는 일본에서 4번째 정규 앨범 《OUTGROW》를 발매했다. 《OUTGROW》는 이전까지의 일본 정규 앨범과는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변화를 시도한 앨범이었다. 싱글 〈DO THE MOTION〉과 〈make a secret〉에서 보여 준 성숙미와 〈OUTGROW~Ready Butterfly~〉와 같은 댄스곡에서의 스타일은 기존의 보아의 강렬한 느낌의 댄스곡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 앨범도 오리콘 주간 차트 1위를 차지했고, 정규 앨범 4연속 1위를 이어 나갔다.

2006년에는 대한민국에서는 이렇다 할 활동이 없었고, 주로 일본 활동에 주력했다. 4월 5일에는 19번째 싱글 〈七色の明日~brand new beat~/Your Color〉를 발매했다. 타이틀 곡인 〈七色の明日~brand new beat~〉는 《OUTGROW》에서의 변화를 뒤집고 과거의 10대 소녀와 같은 느낌을 주는 밝은 댄스곡이다. 이어 8월 9일에는 20번째 싱글 〈KEY OF HEART/DOTCH〉를 발매했다. 〈KEY OF HEART〉도 〈七色の明日~brand new beat~〉의 연장선 상에 서 있는 밝은 댄스곡이다. 21번째 싱글 〈Winter Love〉는 11월 1일에 발매되었다. 처음으로 '실연'을 주제로 한 애절한 발라드 곡이다.

여름에는 일본에서 여러 행사에 참가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ap bank 페스티벌'과 '메이지 신궁 불꽃놀이 축제'였다. 'ap bank 페스티벌'은 미스터 칠드런의 보컬 사쿠라이 가즈토시고바야시 다케시, 사카모토 류이치 등이 모여 만든 환경 단체인 ap bank에서 주최하는 축제로, 대형 가수들이 초대되며 2005년부터 시작되었다. 이 무대에서 보아는 사쿠라이 가즈토시와 함께 앨범 《OUTGROW》의 수록곡 〈cosmic eyes〉를 불렀다. '메이지 신궁 불꽃놀이 축제'는 매년 도쿄 메이지 신궁에서 개최되는 불꽃놀이로, 보아는 불꽃놀이 축하무대에 올라 6곡을 공연했다. 이 때 오른쪽 발목 부상을 입은 채 댄스곡 공연을 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25]

가을부터는 라이브 투어 'BoA THE LIVE 2006 -裏ボア…聴かせ系-'를 개최했는데, 이 콘서트는 한 곡도 춤추지 않고 오직 노래만으로 공연한 콘서트이다. 댄스곡도 새롭게 편곡하여 공연하였고, 이전까지와 비교하면 아주 작은 규모의 공연장에서 공연했다.

한편 2006년에는 성우로써 목소리 연기에 도전했다. 보아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 《헷지》에서 '헤더' 역을 맡아 한국어일본어로 목소리 연기했는데, 《헷지》가 제59회 칸 영화제에서 비경쟁 부문에 출품되어 목소리 연기를 맡은 보아 역시 칸 영화제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았다.[26]

[편집] 2007년

1월 17일에 일본에서 5번째 정규 앨범 《MADE IN TWENTY (20)》가 발매되었다. 이어 3월부터는 일본 내 통산 5번째 콘서트 투어인 'BoA ARENA TOUR 2007 MADE IN TWENTY (20)'를 개최하였다. 4월 25일에는 화장품 광고 음악으로 쓰인 싱글 〈Sweet Impact〉를, 9월 26일에는 도시바 휴대전화의 광고 음악으로 사용된 발라드 싱글 〈LOVE LETTER〉를 발매했다. 12월 12일에는 일본의 록 밴드 DOPING PANDA의 Yutaka Furukawa와 함께한 격렬한 댄스곡 〈LOSE YOUR MIND〉를 싱글로 내놓았다.

10월 말에는 보아가 삼성전자휴대 전화 브랜드 애니콜의 광고 모델이 되었고, 애니콜을 홍보하기 위해 구성된 애니밴드라는 밴드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애니밴드는 보아, 동방신기의 시아준수, 에픽 하이타블로,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은 11월 말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다.

[편집] 2008년

보아는 2월 27일에 일본에서 6번째 정규 앨범 《THE FACE》를 발매했다. 《THE FACE》는 11만장 대의 판매량으로 오리콘 주간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했고, 보아는 데뷔 앨범부터 정규 앨범 6연속 1위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하마사키 아유미에 이은 역대 단독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27] 이어 콘서트 투어 'BoA LIVE TOUR 2008 ~THE FACE~'를 개최했다.

6월 4일에는 일본에서 26번째 싱글 〈Vivid〉를 발매했다. 처음으로 시도되는 보아의 컨셉 맥시 싱글로, 수록된 3곡이 모두 드라마 주제곡·광고 음악·프로그램 엔딩곡으로 전파를 탔다.

대한민국에서는 맥주 '하이트'의 광고 모델로 발탁되어 처음으로 주류 광고의 모델을 맡았다. 8월 15일에는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펼치는 콘서트 "SM 타운 라이브 '08"에 출연해 9개월 만에 모국의 무대에 올랐다.[28]

보아는 9월 10일, 기자회견 "베스트 오브 아시아, 브링 온 아메리카!"를 열고 공식적으로 미국 음악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전날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팔에 깁스를 한 채로 기자회견을 가진 보아는 미국 진출 과정을 소개하고 미국 데뷔곡 〈Eat You Up〉의 티져 영상을 공개했다. 기자회견에서 보아는 2005년 대한민국에서 정규 앨범 〈Girls On Top〉을 발매한 이후, 지속적으로 미국 진출에 대한 기획과 준비를 해 왔고, 2001년 일본 진출 시와 마찬가지로 SM USA를 설립하여 미국에서의 활동을 관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29]

보아의 미국 데뷔 싱글 〈Eat You Up〉은 스웨덴 출신의 프로듀싱 그룹 블러드샤이 & 아방(en:Bloodshy & Avant)이 프로듀싱한 리버스비트 댄스곡이다. 블러드샤이 & 아방은 브리트니 스피어스·마돈나·제니퍼 로페즈 등과 작업한 바 있다.[30] 보아는 〈Eat You Up〉의 뮤직 비디오와 음원을 10월 7일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29]

[편집] 발매 음반

이 부분의 본문은 보아의 음반입니다.

보아는 대한민국일본 양국에서 동시에 활동하기 때문에, 활동 기간에 비해 발매한 음반의 수는 많은 편이다. 대한민국에는 디지털 싱글을 포함하여 싱글 5장, 스페셜 앨범과 디지털 앨범을 포함하여 앨범 9장을 발매하였으며, 일본에서는 싱글 26장, 앨범은 베스트 앨범과 기타 앨범들을 포함하여 11장을 발매하였다.

[편집] 대표곡

(※한국과 일본 구분 없이 발매 순으로 정렬되었다.)

  • LISTEN TO MY HEART〉 (작사 : 와타나베 나쓰미, 작곡 : 하라 가즈히로)
2002년 1월 17일 일본에서 4번째 싱글로 발표한 곡이다. 원래는 싱글로 내지 않고 그해 3월 13일 발매 예정이었던 첫 앨범의 타이틀 곡으로만 쓰일 예정이었으나 일본의 휴대전화 광고 음악에 쓰이면서 싱글로 발매되었다. 보아의 주특기인 파워풀한 댄스를 살린 이 곡은 오리콘 주간 차트 최고 순위 5위를 기록하고 9주 동안 20만 장 가까이 판매하며 보아라는 이름을 일본에 알렸다.
  • NO.1〉 (작사 : 김영아, 작곡 : Ziggy)
2002년 4월 12일 한국에서 발표한 2집 《NO.1/늘..》의 타이틀 곡이다. 일본에서 오리콘 1위를 차지한 뒤, 한국에서는 보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이 곡을 발표하자 국민적인 사랑을 받게 되었다. 마침 2002년 월드컵 열기와 맞물리며 이 곡이 수록된 앨범은 60만장에 육박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 VALENTI〉 (작사 : 강진화, 작곡 : 하라 가즈히로)
2002년 8월 28일 일본에서 6번째 싱글로 발표한 곡이다. 발매 당일 일본의 인기 가수 히라이 겐(平井堅)에게 밀려 1위를 차지하지는 못했으나, 발매 이후 4주연속으로 오리콘 주간 차트 5위권을 유지하며 20만장을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라틴리듬의 경쾌한 댄스가 특징인 이 곡은 2003년 연간 일본 가라오케 차트 7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 My Name〉 (작사 : Kenzie, 작곡 : Kenzie)
2004년 6월 11일 한국에서 발표한 4집 《My name》의 타이틀 곡이다. 〈No.1〉과 〈아틀란티스 소녀〉 등 줄곧 소녀다운 곡들을 발표해 소녀의 이미지가 강했으나, 어반 댄스(Urban Dance) 스타일의 이 곡을 발표하면서 그러한 이미지들을 깨 버렸다. 특히 곡 중반의 안무인 일명 골반 댄스를 유행시키며 2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 DO THE MOTION〉 (작사 : 와타나베 나쓰미, 작곡 : 구즈야 요코)
2005년 3월 30일 일본에서 15번째 싱글로 발표한 곡이다. 그해 2월에 발매한 첫 베스트 앨범 《BEST OF SOUL》이 밀리언을 기록하면서 이 곡도 함께 히트했는데, 보아의 매력을 물씬 느끼게 해 주는 부드러운 보컬과 멜로디가 잘 융합된 곡이다. 보아 최초로 오리콘 싱글 차트에서 주간 1위를 차지했다.

[편집] 콘서트

이 부분의 본문은 보아의 콘서트입니다.

보아일본에서는 2003년 이후 매년 콘서트 투어를 개최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데뷔 6년 반 만인 2007년 2월에 첫 번째 단독 공연을 개최했다. 자세한 내용은 보아의 콘서트 문서를 참조할 것.

[편집] 음악 외의 활동

[편집] 광고 출연

[편집] 한국·일본 광고 출연

연도 한국 광고 출연 일본 광고 출연
2000
  • 스낵류 "초코틴틴"
  • 화장품 "Gienic"
  • 인터넷 "신비로 샤크"
2001
  • 제과류 "LOTTE 'AIR-LE' Chocolate"
  • 음료류 "KIRIN '오후의 홍차 (午後の紅茶)'"
2002
  • 의류 "D-day"
  • 쇼핑몰 "Hello APM"
  • 음료 "브레인트로피아닷컴"
  • 제과류 "LOTTE 'Macadamia' Chocolate"
2003
  • 의류 "D-day"
  • 화장품 "MISSHA"
  • 이동통신 "SKT ting"
  • 교복 "Elite"
  • "용평리조트"
  • 자동차 "HONDA Fair"
  • 음료류 "CALPIS"
  • 신발류 "SKECHERS"
  • 휴대전화 "TOSHIBA Au KDDI"
2004
  • 자동차 "GM DAEWOO"
  • 교복 "Elite"
  • 의류 "D-day"
  • 화장품 "MISSHA"
  • 휴대전화 "Pantech & Curitel"
  • 화장품 "KOSE 'FASIO'"
  • 휴대전화 "TOSHIBA Au KDDI"
  • 시계 "WIRED"
  • 신발류 "SKECHERS"
  • 제과류 "LOTTE 'Arte' Chocolate"
2005
  • 화장품 "Maybelline NewYork"
  • 교복 "Elite"
  • 휴대전화 "Pantech & Curitel"
  • 시계 WIRED
  • 화장품 "KOSE 'FASIO'"
  • 음료류 "LIPTON 'Leaf in'"
  • 신발류 "SKECHERS"
2006
  • 화장품 "MISSHA"
  • 유제품 "서울우유"
  • 의류 "W.(더블유닷)"
  • 카드 "KB CARD"
  • 카메라 "OLYMPUS"
  • 스포츠 "NIKE"
  • 스포츠 "NIKE"
  • 시계 "WIRED"
  • 화장품 "KOSE 'FASIO'"
2007
  • 카메라 "OLYMPUS"
  • 카드 "KB CARD"
  • 음료 "옥수수수염차"
  • 휴대전화 "애니콜" - "Anyband"
  • 화장품 "KOSE 'FASIO'"
  • 휴대전화 "TOSHIBA Au KDDI"
2008
  • 맥주 "하이트"
  • 샴푸 "mod's hair"
  • 휴대전화 "TOSHIBA Au KDDI"
  • 음향가전 "audio-technica"

[편집] 그 외 국가 광고 출연

  • 2003년 아시아 "SKECHERS"
  • 2006년 홍콩*대만 "Levis"
  • 2006년 중국 "MISSHA"

[편집] 라디오

[편집] 영화

  • 헷지》 (Over The Hedge, 2006) - '헤더' 역 / 한국판, 일본판 더빙 목소리 출연


[편집]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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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데뷔 과정과 역량

그녀가 가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주목받은 부분은 바로 철저한 준비 과정이다. 그녀는 데뷔하기 3년 전부터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에서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데뷔를 준비했고, 소속사 또한 그녀를 국내용에서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그녀를 통한 해외진출을 애초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다.[31] 한국에서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친 그녀는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 전에 바로 일본에 진출하여 일본의 거대 연예 매니지먼트사인 AVEX의 지원을 받았다.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기 전에 일본시장에 진출한 사례가 없는 상황에서 그녀는 이미 계획된 수순을 밟으면서 성장해 나갔던 것이다.

또한 그녀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부분은 '나이 어린 여자 댄스 가수가 춤과 라이브에 모두 능숙하다'라는 것이었다. 이 점은 일본에서도 상당히 주목받는 보아의 특징 중 하나였는데, 보아 데뷔 당시 한국의 가요팬들은 공중파에서 댄스가수들의 이른바 '립싱크'에 상당한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SM엔터테인먼트의 총수 이수만의 '립싱크도 하나의 장르'라는 발언때문에[32] 그 당시 댄스가수의 총본산이나 다름없었던 SM엔터테인먼트는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일본 데뷔 시절부터 검증된 춤 실력과 상당 수준의 가창력을 보여주면서 주목을 끌었다.[33] 2003년부터 진행된 일본 전국 투어는 물론, 각종 방송이나 NHK의 홍백가합전등 많은 사람들이 보는 무대에서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이는 인기 급상승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또한 이러한 보아의 활약은 대한민국 팬들에게도 일종의 대리 만족과 대한민국 가수에 대한 안도감을 주었는데, '립싱크'가 만연했던 대한민국 댄스 가요계에 오랜만에 춤과 노래가 되는 보아라는 가수의 등장은 대한민국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편집] 가요계에 미친 영향

그녀의 일본에서의 대성공은 한 때 대한민국 언론에 경쟁적으로 보도 됐을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미 이전에 조용필, 계은숙 등이 일본에 진출하여 인기를 얻은 사례가 있고, 같은 소속사 선배 가수인 S.E.S.가 일본 진출을 시도한 바가 있으나, 보아만큼 전 일본적으로 인기를 얻은 대한민국 출신 가수는 그 전례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녀의 일본에서의 인기는 많은 화제를 몰고 왔다. 일본 문화가 대한민국에 개방되었을 때 상당수의 문화 평론가들은 일본 음악의 한국 잠식을 염려했지만 보아의 성공으로 대한민국 대중 음악도 외국에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많은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었다.[34][35]

2005년중국시장에 진출한 그녀는 중국에도 좋은 반응을 일으켜 그녀의 활동이 '한류'열풍의 중흥기를 이끌어 냈다는 평가도 있다. 강타, 동방신기와 나란히 중국에 진출한 그녀는 2006년, 중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10대 남녀가수에 강타와 함께 선정되는 등[36], 중국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한편, 그녀의 일본진출 성공은 후배 가수들의 외국 음악시장 진출에도 물꼬를 텄다. 그녀의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보아의 성공에 자신감을 갖고 동방신기의 해외진출을 적극 추진했다. 그 결과 동방신기일본에서 그들의 16번째 싱글 〈Purple Line〉이 일본 제외 아시아 남자 가수 중 최초로 일본 오리콘 주간 차트 1위에 등극하고,[37] 그 이후 2009년 7월 현재 두 장의 오리콘 주간 차트 1위 싱글을 더 냄으로서 일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동방신기는 이후 2008년 5월 일본 '아레나 투어 콘서트' 기자 간담회에서 "보아의 일본진출 성공이 동방신기 일본 성공의 밑거름"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그녀의 성공이 단순히 그녀 혼자만의 성공이 아님을 증명해냈다.[38] 그녀의 또 다른 소속사 후배 가수인 슈퍼주니어중국에서 좋은 반응을 일으키는 등 그녀가 닦아 놓은 길은 한국 가수의 외국 진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편집] 비판

그러나 이러한 많은 인기 요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도 비판적인 시각이 있었는데, '그녀를 과연 대한민국 가수로 봐야 하는가?'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비판하는 이들은 그녀는 데뷔 시절부터 철저히 외국 시장 공략을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고, 한국에서 미처 인기를 얻기도 전에 일본에서 앨범을 낸 점, 전성기 시절에 대한민국에서의 활약은 상당히 미미했던 점을 든다. 실제로 보아의 콘서트 현황을 보면 일본에서는 2003년부터 매년 전국 투어를 개최하나, 대한민국에서는 2007년 첫 콘서트를 개최한 것을 제외하고는 콘서트 무대를 마련하지 않아, 그녀와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대한민국팬을 너무 경시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39]

한 때 '연기 겸업'을 생각했던, 이른바 '외도'도 비판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2005년 중국시장에 진출했을때 소속사에서는 바로 음반 발매를 하지 않고 연기나 기타 활동을 통한 진입을 시도한 바가 있었는데, 이는 '보아의 상품성을 스스로 떨어뜨린다'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40]

[편집] 수상 경력

연도 수상
2000
  • 11월 24일 "2000 M.net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여자 신인상
  • 12월 13일 "2000 KMTV 가요대전" 올해의 여자 신인상
2002
  • 8월 1일 "SBSi 2002 상반기 네티즌 인기대상" 여자솔로부문
  • 9월 24일 "제3회 대한민국 영상대전" 가수부문 포토제닉상
  • 11월 29일 "2002 M.net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 / 댄스부문 최고 뮤직비디오상
2003
2004
한국 최고 인기가수상 / 아시아의 영향력 있는 가수상
  • 2월 28일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 본상 / 비디오 DVD 부문
  • 12월 4일 "M.net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최우수 작품상
  • 12월 29일 "SBS 가요대전" 본상 / 최고인기상
  • 12월 31일 "일본 레코드 대상" 금상
  • 12월 31일 "MBC 10대가수 가요제" 본상
2005
  • 3월 10일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 본상
  • 11월 27일 "M.net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여자솔로부문 최우수 뮤직비디오상
  • 12월 29일 "SBS 가요대전" 본상
2006
2007
  • 10월 6일 제14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해외인기상
  • 10월 18일 "2007 문화예술 발전 유공자 시상식" 젊은예술가상

[편집] 바깥 고리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 미디어 자료가 있습니다.

[편집] 주석

  1. 임이랑 기자. “보아, 美 기자 질문에 영어로 유창 답변…일어로도”, 《마이데일리》, 2008년 9월 10일 작성.
  2. 박은경 기자. “‘중졸’성공스타, 가방끈 짧다고? 그래도 떴잖아!”, 《스포츠칸》, 2007년 8월 19일 작성.
  3. 김상호 기자. “이스타를 주목하라 (4) 보아-연기자 활동 기대”, 《스포츠서울》, 2007년 1월 4일 작성.
  4. 홍동희 기자. “‘경제가치 2000억’ 보아, 데뷔부터 성공까지”, 《세계일보》, 2007년 1월 29일 작성.
  5. 백승찬 기자. “5년전 MX프런트 등장 무명의 보아”, 《경향신문》, 2005년 5월 2일 작성.
  6. 서병기 기자. “이수만, 보아에게 ‘안티(Anti)’가 없어진 이유는?”, 《헤럴드경제》, 2005년 10월 20일 작성.
  7. 강승훈 기자. “보아, "5년사랑 고마워요"; 데뷔5년, 팬들에게 러브레터”, 《마이데일리》, 2005년 8월 23일 작성.
  8. 허엽 기자. “보아 "내 무대는 아시아"”, 《동아일보》, 2001년 3월 12일 작성.
  9. 2001년 6월 둘째 주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
  10. 2002년 3월 넷째 주 오리콘 주간 앨범 차트
  11. 양효경 기자. “10대 댄스가수 보아 앨범 일본 판매 첫날 1위”, 《MBC》, 2002년 3월 13일 작성.
  12. 한국음악산업협회 판매량 집계 2002년 총결산
  13. 2002년 9월 넷째 주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
  14. 한국음악산업협회 판매량 집계 2003년 상반기 총결산
  15. 2002년 총결산 판매량 265,360장과 2003년 상반기 판매량 49,309장을 합하면 314,669장이 된다.
  16. 예진수 기자보아, 日 NHK 홍백가합전 6년 연속 출연 문화일보, 2007년 12월 5일
  17. 2003년 2월 둘째 주 오리콘 주간 앨범 차트
  18. 2003년 오리콘 연간 차트(J-POP MUSIC PROGRAM FAN SITE)
  19. 보아 열풍…열도는 열병중 한국일보, 2003년 4월 14일
  20. 홍제성 기자. “보아, 미국 공영방송 특집프로 출연(종합)”, 《연합뉴스》, 2003년 5월 2일 작성.
  21. 가수 보아 서울 홍보노래 불러”, 《매일경제》, 2003년 5월 19일 작성.
  22. Hi Seoul 노래 "서울의 빛" 듣기 (서울특별시청)
  23. 김원겸 기자. “보아 "아시아 대표가수 될래요"”, 《헤럴드경제》, 2004년 2월 16일 작성.
  24. SBS 뮤직 보아 라이브비디오
  25. 김원겸 기자. “보아, 발목부상에도 日 불꽃놀이 무대 올라”, 《스타뉴스》, 2006년 8월 17일 작성.
  26. 길혜성 기자. “‘스무살’ 보아, ‘칸’서 성숙미 뽐내다”, 《헤럴드경제》, 2006년 5월 23일 작성.
  27. (일본어)오리콘 랭킹 토픽 (2008년 3월 4일자)
  28. 고재완 기자. “보아 9개월만에 국내무대.. "원래 비를 몰고 다닌다"”, 《아시아경제》, 2008년 8월 15일 작성.
  29. 문주영 기자. “보아 미국 진출 “아시아 넘어 세계 넘버원으로””, 《경향신문》, 2008년 9월 10일 작성.
  30. 임이랑 기자. “보아, 美 진출 함께하는 초호화 스태프 누구?”, 《마이데일리》, 2008년 9월 10일 작성.
  31. 관련 한겨레21 기사....일단 한국에서 유명해진 다음 일본에 진출하는 공식을 깼다. 한국에서 신인가수의 티를 채 벗기 전에 일본에 진출한 것이다. 물론 수년에 걸쳐 일본어를 배우는 등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쳤다. 데뷔 이후에도 한국 가수라는 사실을 굳이 내세우지 않았다. 그저 일본에서 보기 드문 ‘힙합 소녀’로 포장했다.....
  32. 관련기사...이에 대해 MC 강호동이 "그런 이수만의 '립싱크도 장르다'라는 말에 정면으로 반박한 적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고 "맞다. 그 말은 아닌 것 같다"고 소신을 당당히 밝혔다...
  33. 17세소녀에 흠뻑빠진 日 "보아를 봐요"....기교에 의존하는 일본 여가수와 달리 댄스와 리듬&블루스(R&B), 발라드를 넘나드는 파워풀한 가창력과 탁월한 춤 실력까지 겸비한 BoA는 일본 가요시장을 평정할 요건을 두루 갖췄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
  34. 기사 말미 참조....문화평론가 김지룡씨는 “지금까지는 우리것을 세계 속에 내 놓기를 부끄러워 했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보아의 성공은 우리 문화가 세계 수준에 올랐으며 문화 컨텐츠 수출에 대한 희망을 얻게 된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35. 일본 보아 팬의 반응 “춤·노래 다잘하는 ‘보아’ 에 빠졌어요”
  36. OSEN 김지연 기자. 보아-강타, 中 '가장 인기있는 10대 남녀가수' 관련 기사
  37. 동방신기, 오리콘 위클리 싱글 차트 1위 쾌거
  38. 이미영 기자. 동방신기 "먼저 일본 진출한 보아 선배에게 고맙다" 조이뉴스 24, 2008년 5월 5일
  39. 관련 기사 아울러 보아와 동방신기도 당초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참석하지 않았다....보아는 리허설 한 번 없이 무대에 오르는 것이 어려웠고...당초 MKMF에 참여할 것이라 알려졌던 보아와 동방신기의 불참은 많은 팬들의 원성을 샀다. 특히 동방신기의 많은 팬들이 지방에서 서울까지 버스를 전세해 올라왔지만 행사 직전 이들의 불참이 알려져 팬들은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40. 보아, 연기 겸업에 대한 우려의 시선들 마이데일리, 2005년 6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