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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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우
Cho Kwan-Woo.jpg
기본 정보
본명 조광호
출생 1965년 8월 3일(1965-08-03) (48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직업 가수
활동 시기 1994년 ~
가족 아버지 조통달, 할머니 박초월
아들 조휘, 조현
소속사 AJA엔터테인먼트
대표곡
꽃밭에서〉(리메이크)
겨울이야기
영원
사랑했으므로

조관우(1965년 8월 3일 ~ )는 대한민국가수이다.

학력[편집]

생애[편집]

1965년 판소리 명창이었던 조통달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관우의 가문은 대대로 국악을 해 온 집안으로서 아버지 조통달 이외에 조관우의 이모할머니이자 최초의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 중 한 명인 박초월 또한 그 가계의 유명한 국악인이다.[1]음악가로서 그가 고수하는 원칙들도 그의 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역시 어릴 때부터 (唱), 사물놀이 등에 두각을 보였고 국악예술고등학교에서 가야금을 전공했다. 하지만 아버지인 조통달은 자신의 아들이 국악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조관우가 국악기에 손을 대면 매우 화를 냈다고 한다.[2]이 시기 비지스, Earth, Wind & Fire 등 가성을 사용하는 가수들의 음악을 즐겨 듣다가 변성기를 계기로 본인도 가성을 개발하게 됐다.

1994년 1집 앨범《My First Story》가 130만 장의 판매 기록을 올리며 가요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당시로서는 남성이 내는 고음의 가성이 매우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데뷔하자마자 명성과 비난을 동시에 얻었다. 특히 1집 타이틀곡〈늪〉은 유부녀를 짝사랑하는 내용의 가사로 일부 종교계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앨범 재킷에 얼굴을 가린 사진을 싣고 방송 출연을 자제했기 때문에 '얼굴 없는 가수'로 불리기도 했다.

이듬해인 1995년 발매한 리메이크 앨범 2집《Memory》는 300만 장이 팔리며 조관우의 가장 성공한 음반으로 남았다. 이 앨범으로 인해 조관우는 리메이크의 대명사로 여겨지게 됐다. 이 앨범은 대중음악평론가들에 의해 90년대를 대표하는 50대 명반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여기에 수록된〈꽃밭에서〉는 정훈희의 곡을 리메이크한 것으로〈늪〉과 함께 조관우의 대표곡으로 꼽힌다.

하지만 1, 2집이 연속으로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작자와의 불리한 계약으로 인해 조관우 본인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으며 이런 상황은 1996년 3집《My 3rd Story About》을 발매하고 소속사를 옮긴 후에야 개선될 수 있었다. 타이틀 곡 〈영원〉을 앞세운 3집은 13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조관우는 이 때부터 전국 투어 콘서트 연속 매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조관우는 4집《Waiting》부터 깊은 슬럼프를 겪게 됐다. 독특한 음악 색채와 대중에 노출되길 꺼리는 활동 방식으로 인해 각종 악성 루머에 시달렸고 결별한 전 소속사와의 갈등도 깊어졌다. 안 좋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조관우의 4집은 스테디 셀러로 자리잡아 100만장을 돌파했지만[3]5집은 타이틀 곡 '실락원'의 가사가 자살을 미화한다며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아 판매고에 악영향을 미쳤다.

슬럼프를 벗어나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 만들었다는 6집《연》은 비교적 호평을 받았고 심마니에서 네티즌 음반펀드 형식으로 투자자를 공모해 화제가 됐다. 이 앨범의 타이틀곡〈사랑했으므로〉에서는 조관우 고음의 극치를 맛볼 수 있다.

2002년 두 번째 리메이크 앨범 7집《My Memories II》을 내놓은 조관우는 이 때부터 팝페라라는 새로운 장르로 지평을 넓히며 클래식 음악가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2003년에는 부인 장연우와 이혼하는 아픔도 겪었다. SBS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조관우의 음반 작업에 적극 참여하여 왔던 그녀는 이혼 후에도 조관우의 2005년 EP 앨범《가을의 기적》에서 작사와 코러스 디렉팅에 참여하는 등 조관우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2006년 가요계에 데뷔했다.[4]

조관우는 2010년 3월 14일 오후 5시 서울 여의도 63빌딩 웨딩홀에서 재즈댄서 출신 손 모씨와 3년 간의 연애 끝에 재혼했다. 조관우는 당시 나이로 15세, 12세의 아들 둘을 둔 상태였고, 재혼할 때의 부인이 이미 임신 5개월차인 것을 고백했다. 이 결혼식은 주례에 인순이, 축가에 김범수가 참여했다.

조관우는 8집《Impression》과 EP 앨범《가을의 기적》,《소나기》등으로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별다른 홍보 없이도 일본에 팬클럽이 생긴 것을 계기로 2007년과 2009년 성황리에 일본에서의 팬미팅과 단독 공연을 마쳤다.[5]

인맥[편집]

조관우는 댄서 팝핀현준과 10년 이상의 친분을 유지하며 다양한 공연에서 호흡을 맞춰왔다. 두 사람은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 이주노의 소개로 처음 알게 되었으며[6] 조관우는 지난 2005년 발매된 이주노의 디지털 싱글 <My Story>에서 피처링을 하기도 했다.[7]조관우는 배우 이병헌, 밴드 부활김태원 등과도 친한 사이며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과도 각별한 친분이 있었다.[8]

노무현 대통령 추모[편집]

조관우는 노무현 대통령 장례 당시 일산 빈소에서 서럽게 울었다는 것이 알려졌다.[9]노무현 대통령의 비서관이었던 양정철은 조관우가 노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봉하마을까지 방문해서 4시간씩 대기하며 서럽게 울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으며, 조관우는 노무현 대통령의 1주기와 2주기 여러 추모식에서 노래를 불렀다.[10]

수상[편집]

음반[편집]

정규 음반[편집]

EP[편집]

  • 2005년 EP앨범《가을의 기적》
  • 2008년 EP앨범《소나기》

싱글[편집]

  • 2008년 디지털싱글《날 버려요》

베스트 및 라이브 음반[편집]

  • 1997년 콘서트 라이브 앨범 Part 1, Part 2
  • 2000년 베스트 라이브 앨범《파리넬리》
  • 2006년 베스트 앨범

OST[편집]

  • 2001년 영화《클럽 버터플라이》〈노을, 푸른 나비〉
  • 2001년 영화《베사메무쵸》〈비원〉
  • 2001년 KBS 드라마《명성황후》〈나 가거든〉,〈슬픈 얘기〉
  • 2001년 MBC 드라마《그 여자네 집》〈진정 난 몰랐네〉
  • 2003년 KBS 드라마《노란손수건》〈미로〉
  • 2003년 MBC 드라마《다모》〈마지막 안식처〉
  • 2004년 KBS 드라마《두 번째 프러포즈》〈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
  • 2005년 SBS 드라마《마이걸》〈상어를 사랑한 인어〉
  • 2007년 SBS 드라마《마녀유희》〈Day by day〉
  • 2007년 SBS 드라마《왕과 나》〈천년애〉
  • 2008년 영화《숙명》〈반쪽사랑〉
  • 2008년 tvN 드라마《쩐의 전쟁 The Original》〈불나비〉
  • 2008년 KBS 드라마《아내와 여자》〈가슴은 알죠〉
  • 2009년 KBS 드라마《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이별의 정원〉
  • 2009년 SBS 드라마《두 아내》〈미안해요〉
  • 2010년 SBS 드라마《제중원》〈가려진 아픔〉

출연작[편집]

주석[편집]

  1. 본래 박초월은 조통달의 이모인데 조통달이 태어난 뒤 얼마 되지 않아 그를 양자로 입적하였다. 때문에 본래 조관우에게는 이모할머니가 되지만 조관우는 박초월을 그냥 할머니로 지칭하며 조통달 또한 박초월을 어머니로 지칭한다.
  2. “어려운 일을 겪은 후 세상사는 법을 배웠어요”, 여성동아
  3. "나란히 새 앨범 낸 '영원한 오빠' 김건모-조관우 5연속 '플래티넘' 기록 세울까?", 동아일보
  4. 조관우와 이혼 후 서른여섯 살 늦깎이로 가수 데뷔한 장연우, 여성동아
  5. 가수 조관우, 일본열도 사로잡다, 브레이크 뉴스
  6. 조관우·팝핀현준, 발라드-팝핀 접목 ‘新예술’, 나우뉴스
  7. 디지털 싱글·자서전 ‘My Story’ 낸 이주노, 한겨레
  8. 조관우와 앙드레 김의 인연, SBS
  9. 민일성, "조관우 노래에 왜 노무현 생각나나 했더니...", NEWSFACE
  10. 김도형, "노 대통령 빈소에서 구슬프게 울던 조관우", 한겨레신문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