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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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정보 | |
|---|---|
| 예명 | 리나 박(Lena Park) |
| 출생 | 1976년 3월 23일 (35세) |
| 국적 | |
| 장르 | 팝, 알앤비, 락, 재즈, K-pop, J-pop, 가스펠 |
| 직업 | 가수,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
| 악기 | 보컬, 피아노 |
| 활동 시기 | 1998년 ~ 현재 |
| 소속사 | 티 엔터테인먼트 |
박정현(朴正炫) 또는 리나 박(Lena Park, 1976년 3월 23일 ~ )은 미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작곡가 겸 가수이다. 'R&B의 요정'이라는 별명을 갖고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타고난 가창력으로 이미 14살때 <다우니 웨이 아우터 브로드웨이 탤런트 콘테스트>에서 보컬부문 대상을 수상하면서 교포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3] 노래실력이 한국에까지 소문이 나 대학교 2학년때 한국 활동 제안을 받고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 1년만 갔다와볼 생각으로 비행기를 탔으나 예상보다 오랫동안 머물며 활동했다. 1998년 1집 《Piece》로 데뷔하여 <나의 하루>, 임재범과의 듀엣곡 <사랑보다 깊은 상처> 등 뛰어난 가창력으로 인기를 끌었다. 1994년, UCLA에 입학하였으며, 2001년에는 컬럼비아 대학교에 편입학하였다.[3] 2002년 한·일 월드컵 공식 가수로 활동하였으며 4집 《Op. 4》에 수록된 곡 <꿈에>로 큰 인기를 얻으며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평범한 대학생으로 활동하다가 9년만인 2010년 컬럼비아 대학교를 졸업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아이비리그 수재클럽인 파이 베타 카파(Phi Beta Kappa)에 가입했다.[3] 졸업식에서 학생 대표로 국가를 열창하기도 했다.[4]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활동하던 중, 2011년 3월부터 MBC 《우리들의 일범》 <나는 가수다>에 참여하여 김범수와 함께 최장 생존가수로 1위를 4번 하며 명예졸업하면서 가수생활 14년만에 처음으로 CF 광고를 찍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가수들 중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로 손꼽히며, 노래 부를때 화려한 손동작이 특징이다.
목차 |
[편집] 생애
[편집] 어린 시절
박정현이 태어나기 전 부모는 결혼을 하고나서 미국에서 성공을 꿈꾸고 LA로 이민을 갔다.[5] 그리고 미국 캘리포이나주 근교 LA에서 박정현을 낳았다. 아버지는 현재 목사이지만 어렸을때는 목사가 아니었다. 이민 초기에 사업을 하다가 적응하기도 어렵고 일거리도 줄어 사업을 포기하고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었다. 어머니는 간호사로 아침부터 병원으로 출근했기 때문에 박정현을 돌보지 못해 보수적으로 교육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친구 집에 가지 못하게 했으며 친구의 생일파티도 하지 못해 바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남자친구도 사귀어보지 못했다.[6] 아버지는 박정현의 친구들 사이에서 무서운 사람으로 유명했다. 박정현은 1남 2녀중 첫째로 아버지는 "네가 잘해야 동생들도 따라한다"며 더욱 엄하게 가르쳤다. 아버지는 박정현의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을 때 남자 목소리만 들리면 바로 끊어버려 박정현이 따지기도 했으며 사춘기때 반항심이 커지기도 했다.[7]
현재 LA 한인타운은 한인교포들이 많아 한국어로도 똑같이 생활이 가능하지만 박정현이 어렸을적엔 한인타운이 자리잡기 전이었고 박정현이 사는 동네는 한인타운과 거리가 멀어 한국인이 거의 없었다. 초등학교 들어갔을 때 박정현과 동생을 포함해 전교에 동양인이 단 3명뿐이었다. 학생들은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 물어왔고 박정현은 둘다 아니라고 말하면 학생들은 더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한국이 어디있는거냐고 물어와 많은 관심에 대해 박정현이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정현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이후로 대한민국이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했다.[8]
동양인이 거의 없는 지역에 살았던 박정현은 어머니가 "차별받지 않으려면 미국인보다 영어를 더 잘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어렸을적엔 부모와 한국말로 대화했지만 아침부터 새벽까지 일하는 부모는 박정현과 대화할 시간이 거의 없었고 학교에서 한국인 친구가 없었다. 거기에 경상도 출신인 부모는 박정현에게 잘못 가르쳐줄까봐 우려스러운 마음에 한국말을 가르치지 않았다.[9]
어렸을때부터 자신이 노래를 잘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박정현이 살던 다우니(Downey)에서 1000여명의 관객들이 몰리는 지역경연대회가 열려 중학교 1학년 때 나가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노래로 보컬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당시 이 노래가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을때였다.[3] 그리고 한달에 두 번가량 아버지의 교회에서 노래를 시켰다. 겉으로는 싫어하는 척 하면서도 속으로 좋아하며 기다리기도 했다.[10]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며 초중고등학교 한 번을 제외하고 모든과목 학점 A를 맞았다.[3] 공부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잘하려는 마음에 열심히 했다. 박정현은 부모님의 말을 잘듣고 지냈으며 별다른 일탈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때 공부하러 도서관에 매일 갔는데 도서관과 5분 거리에 백화점이 있어 쇼핑몰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구경하다가 어머니가 올 시간에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는 척 했던것을 가장 큰 일탈이라고 말했다.[11]
[편집] 대학 생활
박정현은 부모의 보수적인 교육때문에 답답해서 집에 나가고 싶어했다. 미국은 법적으로 16세면 독립할 수 있다. 그래서 자유로워보였던 대학교를 가고싶어했다. 멀리 있고 좋은 동부의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파티에도 가보고 마음대로 외박도 해보는 꿈을 꾸기도 했다.[12]
성적이 좋았던 박정현은 하버드 대학교를 가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할때 즈음 집안 가정형편이 안좋아졌고 하버드는 학비가 비싼데다 거주하는 캘리포니아주를 떠나면 생활비가 두배가 되었다. 거주하는 지역의 학교를 가면 학비를 절반으로 깎아주는 '거주민 학비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 학생은 학자금 대출에도 유리하다. 그래서 하버드 진학을 포기하고 캘리포니아주에서 UC버클리 다음으로 좋은 학교인 UCLA 영화과로 진학했다.[13] 박정현은 연극영화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전미에서 영극영화가가 가장 좋은 UCLA[출처 필요]로 진학을 결정한 것이었다. UCLA가 헐리우드 바로 옆에 있어 영화계 주요 인사들이 강의를 하기 때문이다.[14] 열심히 공부해온 박정현이 연극영화과로 진학한다는 것에 부모는 반대했다. 부모는 박정현이 UCLA에 지원하는 것은 알았지만 연극영화과에 가는것은 몰랐다. 아버지는 박정현이 목회를 잘할 것 같다는 생각에 신학과에 가길 바랬고 어머니는 변호사가 되길 바랐다. 박정현은 부모를 설득하기 위해 부엌에서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해 대본을 외워서 조목조목 이유를 나열하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인 변호사는 많지만 예술인은 적다"며 여러가지 이유를 들며 1시간 반동안 설득했다. 그리고 교회에 피아노 칠 사람이 없다는 이야길 듣고 박정현이 교회에서 매주 피아노를 쳐주기로 약속했다. 그러한 노력 끝에 기숙사에서 생활하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내며 꿈꿔오던 독립에도 성공했다.[15] UCLA는 미국에서 한인 학생들이 가장 많았으나 박정현과 동생은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했다. 한인 학생들의 동아리에 가입하여 한국 문화를 배우고 자선활동을 하면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다. 한국 드라마도 비디오방에서 빌려봤다. 대표적으로 《모래시계》를 보면서 몰입하기도 했다.[16] 그러나 아직도 말을 못한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고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교환학생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17] 이미 캘리포니아에서 노래 실력이 알려졌던 박정현은 한국에서 가수 제의를 받은적이 있었다.
[편집] 대한민국에서 활동
가수가 되기 위해 1996년경 UCLA 졸업을 하지 않고 바로 한국으로 왔다. 당시에는 인사말 외에는 전혀 한국말을 하지 못했다. 건조한 LA에서 살아온 박정현은 습했던 여름 날씨를 처음 겪으면서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다. 여행을 잘 다니는것도 아니어서 캘리포니아주에서만 생활했기 때문에 더욱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의사소통이 안되어 질문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힘들고 외로웠다.[18]
박정현은 한국에 오기 전에 짝사랑했던 한국 학생과의 아픈 연애를 하기도 했다. 기타도 잘치고 음악도 잘하는 남학생을 좋아했다. 남학생은 박정현이 한국에 가기 한달전에 마음을 알아주고 교제를 시작했다. 잘 되려던 순간 박정현이 한국으로 오고 말았고 우울했다. 국제전화도 비싸던 시대라 1~2주에 한번정도밖에 통화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편지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남자친구는 그림을 잘그려 재미있는 만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그렇게 8개월동안 매일매일 편지를 주고받았다. 미국에 있을당시 남자친구와 다른 여자 친구까지 셋이서 같이 가장 친하게 지냈는데 박정현이 미국에 가고나니 두 친구가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남자친구는 처음에는 아니라고 부인하다가 나중에는 연락을 피했다. 박정현의 남자친구와 사귄 여자친구는 박정현에게 미안함을 느낀 나머지 사실을 고백했고 박정현은 아직도 그 여자친구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19]
첫 앨범을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부도나면서 실패했다. 우여곡절 끝에 1998년 1집 《Piece》의 <나의 하루>로 데뷔했다. 프로듀서는 윤종신이다. 당시 윤종신은 TV출연을 거의 하지 않는 작곡가겸 가수였다. 윤종신이 박정현의 1집에 수록된 <오랜만에>라는 곡의 가사를 쓰면서 만나게됐다. 박정현은 가사의 단어를 하나하나 공부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나서 가사가 좋다는걸 깨닫고 감동을 받기도 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윤종신을 만나려 하자 윤종신은 아파트 주차장에서 만나자고 했다. 어두워서 차 안에서 문을 열고 조명으로 가사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박정현은 윤종신을 재미있고 편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1집 첫 녹음할때 윤종신과 함께 한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윤종신은 박정현에게 발음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가르쳐줬고 박정현이 수없이 틀려도 인내심을 갖고 대해줬다. 박정현은 윤종신에게 친절하고 배울점이 많은 선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20] 이후 '나의 하루', 'P.S I love you', '사랑보다 깊은 상처' 등이 인기를 끌었다. 임재범은 당시 박정현과 같은 소속사로써 "첫인상은 키도 크고 멋있었다"라면서도 "머리가 길고 수염이 덥수룩해 처음엔 무섭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정현은 이전에도 임재범 2집을 선물받고 끊임없이 들은적이 있다. 박정현은 팬이었지만 앞에서 팬이라는 말도 못했다.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녹음할 때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임재범이 1980년대 후반 영국에서 음악활동을 한적이 있었기 때문에 영어를 잘했고 임재범은 박정현에게 어려우면 영어로 말하라며 독려했고 영어로 디렉팅을 해주기도 했다.[21]
2002년 4집 <꿈에>로 인기를 굳히고, 2002년 월드컵 공식 가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전까지 박정현은 자신의 서투른 한국어 실력을 숨기고 싶어했다. 열심히 외운 가사 외에는 한국말을 전혀 못했고 한국어를 못하는 박정현이 노래를 어떻게 이해하냐며 거부감을 보이는 시청자들도 있어 컴플렉스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 공식 가수로 지정되면서 '드디어 날 받아주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큰 감동을 받기도 했다.[22] 계속 가수활동을 하며 내놓은 4집은 박정현의 앨범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으며 명반100에 포함되기도 했다.[23]
[편집] 컬럼비아 대학교 생활
박정현은 그동안 UCLA를 졸업하지 못했다는 것에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 처음에 한국에 와서 가수생활 할때는 1~2년 정도만 하다가 미국으로 돌아가 복학하려고 했지만 어느새 6년이 지나가버린 것이었다. 휴학한지 너무 오래되어 입학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음악을 계속 하면서 학교도 다닐 수 있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뉴욕주에는 큰 대학교로 뉴욕대학교와 컬럼비아 대학교 두 개가 있었는데 어렸을때부터 멋지다고 생각한 아이비리그에 포함된 컬럼비아 대학교를 선택했고 오디션을 본 결과 합격했다. 컬럼비아 대학교는 박정현이 UCLA에서 받은 좋은 성적을 일부 인정해 3학년 편입까지 허락했다. 연극영화과를 다녔던 박정현은 또 다른 꿈인 문학과 책을 생각해 영문학을 선택한 것이었다. 박정현은 문학에 대한 욕심이 많아 대한민국의 가요를 영어로 번역·재해석해 부르기도 했다. [24] 박정현은 시를 좋아해 직접 시를 써보기도 했다.
박정현이 컬럼비아 대학교에 대해 '공부 잘하는 학생이 많은 학교이며, 졸업하기가 입학하는것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했다. 컬럼비아 대학교는 음악때문에 9년동안 2번 휴학을 했다. 입학후 잠깐동안 다니다가 휴학 후 2년간 음악활동을 하고, 다시 학교를 다니다가 6년동안 휴학했다. 그리고 2009년도 가을에 복학해 2010년에 졸업했다.[25] 학교를 다니면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파이베타카파'에 가입하기도 했다. '파이베타카파'는 1776년 설립된 미국 수재들의 모임으로 미국내 대학교에서 성적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우수한 학생들만 가입하는 모임이며 빌 클린턴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도 이곳 출신이다 박정현은 '파이베타카파'에 대해 "가장 영광이었다"며 매우 좋아했다고 말했다.[3] 학교를 9년이나 다니다보니 학장과 친해질 정도였다. 박정현은 학장에게 오히려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음악활동과 학업을 고민할 때 학장은 "걱정하지 말고 음악하라"며 조언하기도 했다.[26] 그리고 졸업식에서 학생 대표로 미국 국가를 제창했다. 컬럼비아 대학교 학장은 박정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리나 박(박정현)이 우리 학교 졸업생이라는게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그녀는 한국에서 최고로 인기 있는 아티스트로 8개의 정식 앨범을 발표하고 일본에서 3개의 앨범과 6개의 싱글 앨범을 냈고 그 밖에 중국,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서도 활동했습니다. 리나는 영문학, 비교문학에서 마그나 쿰 라우데(상위 10%)의 성적으로 졸업하며 파이베타카파와 아너소사이어티(우등상 클럽)에 가입하게 됐습니다.[27]
[편집] 《나는 가수다》 출연
《나가수》에 출연한 사람들은 박정현이 말하는것이 가장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데뷔 후 듀엣무대를 가져봤던 김건모는 박정현과 10년만에 만나 말이 트였다고 동조해주었다.[28] 박정현은 《나가수》 관객들이 더 많이 흥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정현은 《나가수》에서 김태현과 열애설이 나기도 했다. 박정현은 "싫은건 아닌데 그냥 동생"이라고 말했다.[29]
박정현은 《나가수》 출연 제의가 들어왔을때 예능프로그램을 한적도 없었고 1등과 탈락자가 갈려 많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정현은 열심히 연습하고 편곡해서 내놓은 곡이 기껏해야 12시 이후의 심야 프로그램에서나 나오는 것에 한계를 느낀데다 그마저도 '3분으로 편집하라', '녹음된 반주로 해라' 등의 주문이 이어진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던 중 황금시간대에 음악프로그램에서 라이브로 무대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에 '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껴 선택했다고 말했다. 박정현은 《나가수》에 대해 "89%는 힘들고 11%는 즐겁다"고 말했다.[30] 하지만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TV 프로그램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것에 기뻐했다. 박정현은 음악을 하는것이 꿈이었는데 음악을 하고 있으니 즐겁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정현은 음악적으로 좋아하는 선후배들과 무대를 하는 것에 대해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경쟁하면서도 동료의식을 느낄 수 있어 신기했다고 말했다.[31]
[편집] 철학
노래에 대해 기교가 중요하냐 감동이 중요하냐에 대한 논란은 음악인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분분한 이야기지만 자신은 정답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건 그런 화제가 생겼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회사에 가서도 음식점에 가서도 음악 토론을 하고 있다는 것에 기쁘다고 말하며 정답이 뭔지 모르겠지만 정답을 알고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32]
박정현은 가요 프로그램이 가장 자신있고,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해 인터뷰 프로그램이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18] 박정현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싶지만 노래를 포기하고싶진 않다고 말했다.
[편집] 수상 경력
- 2011 MBC 방송연예대상 가수부문 인기상
- 2011 MBC 방송연예대상 쇼버라이어티부문 특별상
- 2011 제12회 대한민국 국회대상 올해의 대중음악부문
- 2011 제3회 더 우먼 오브 타임 어워드 올해의 여성상
- 2011 제3회 멜론 뮤직 어워드 TOP 10
- 2011 제4회 스타일 아이콘 어워즈 본상
- 2002년 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 비디오부문 PAVV 인기상
- 2002년 제13회 서울가요대상 R&B부분 특별상
- 2002년 Mnet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R&B부문 최우수상
- 1994년 1월 IMTA Conference 가창상 수상
- 1994년 6월 LA 클래식 재즈 페스티벌 최우수 보컬리스트상
- 1993년 GBC(Gospel Singer Contest) 대상
- 1989년 2월 다우니 웨이 아우터 브로드 웨이 탤런트 콘테스트 대상
[편집] 음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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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주석
- ↑ 연예인 국적 ‘이중 잣대’ 병역회피 목적 국적포기 비난 동아일보 김범석 기자2005-06-13
- ↑ 유학파-해외파 출신 연예인, 누구?스포츠서울 김상호기자 2007-06-05
- ↑ 가 나 다 라 마 바 나가수' 요정 박정현, 알고보니 최강 엄친딸 스포츠경향 2011년 8월
- ↑ 디바 박정현, “요정이란 호칭 부담스러워요” 내일신문 2011년 8월
- ↑ 박정현, 한국말 서툰 이유? "동네에 동양인 3명뿐" 매일경제 2011년 8월
- ↑ 박정현 "엄한 아버지 답답해 가출하고 싶었다" 서울신문 2011년 8월
- ↑ '무릎팍도사' 박정현 “학창시절 성적 올A” TV리포트 2011년 8월
- ↑ 박정현, 전교생에 동양인 3명이던 과거사 공개 내일신문 2011년 8월
- ↑ 박정현, 한국말 서툰 이유? "동네에 동양인 3명뿐" 매일경제 2011년 8월
- ↑ 박정현 “노래 잘하는거 중학교 때 깨달아” 브로드웨이 대상 수상 밝혀 뉴스엔 2011년 8월
- ↑ 무릎팍 도사' 박정현 "요정 수식어 부담스럽다" 스타뉴스 2011년 8월
- ↑ 나가수'박정현은 역시 우등생! 학창시절 공부도 잘해 스포츠서울 2011년 8월
- ↑ 박정현 “오바마와 동문…학비 때문에 하버드 입학 포기 스포츠동아 2011년 8월
- ↑ 박정현 "학창시절 올A, 하버드 가려했지만…" 매일경제 2011년 8월
- ↑ 박정현, "아버지는 엄격한 분, 독립하고 싶었다" TV데일리 2011년 8월
- ↑ 박정현, 내가 한국어를 못하는 이유는? OSEN 2011년 8월
- ↑ 박정현 “한국어 실력, 교포 중에 내가 제일 못해” 한국경제 2011년 8월
- ↑ 가 나 2011년 8월
- ↑ 무릎팍' 박정현 "첫사랑, 기다려준다더니…" 슬픈고백 스포츠서울 2011년 8월
- ↑ 박정현 "윤종신과 아파트 주차장에서 첫 만남 스타뉴스 2011년 8월
- ↑ 박정현 "윤종신과 아파트 주차장에서 첫 만남 스타뉴스 2011년 8월
- ↑ 박정현 "월드컵 공식가수, 생각할 때마다 감동" 스타뉴스 2011년 8월
- ↑ 명가수, 명음반의 위대한 부활 동아일보 2011년 8월
- ↑ 네이버 뮤직
- ↑ 박정현 수재클럽 가입…클린턴과 같은 회원, 세상은 불공평해 조선일보 2011년 8월
- ↑ 박정현 "수재 클럽 파이베타카파 가입 영광" 스타뉴스 2011년 8월
- ↑ 엄친딸` 박정현, 이런 수재였다니… 아이비리그 출신 `깜짝 매일경제 2011년 8월
- ↑ 박정현, 한국말 못했던 그녀가 '성대모사'까지 OSEN 2011년 8월
- ↑ ‘무릎팍도사’ 박정현, 김태현과 열애설? “친한 동생일 뿐” 일축 내일신문 2011년 8월
- ↑ 박정현, "'나가수' 출연 이유? 기회의 한계 느꼈다" 마이데일리 2011년 8월
- ↑ 박정현, "'나가수' 출연 이유? 기회의 한계 느꼈다" 마이데일리 2011년 8월
- ↑ 박정현, 서바이벌 포맷 '나가수'…무서워도 출연 결심한 계기는? 한국경제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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