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찾기
조수미 (曺秀美)
Sumi Jo concert 009.jpg
기본 정보
본명 조수경 (曺秀敬)
출생 1962년 11월 22일(1962-11-22) (50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직업 성악가, 가수
종교 로마 가톨릭
장르 클래식, 오페라
활동 시기 1986년 ~
소속사 SMI엔터테인먼트
웹사이트 http://www.josumi.com/

조수미(曺秀美, 본명: 조수경(曺秀敬), 영문 이름: Sumi Jo, 1962년 11월 22일 ~ )는 대한민국소프라노 성악가이다. 초등학교때 성악을 시작하여 선화예중·선화예고를 거쳐 학과 개설 사상 최고 실기 점수로 서울대학교 성악과에 수석으로 입학했다.[1] 1983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 입학해 5년제 학교를 2년만에 초고속으로 졸업했다. 1985년 나폴리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1986년 트리에스테의 베르디 극장에서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첫 주연 데뷔했다. 1988년 베르디 오페라 《가면무도회》에서 오스카 역으로 플라시도 도밍고 등과 함께 녹음에 함께 참여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쌓을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였으며 이 오디션에서 명 지휘자 카라얀은 조수미에 대해 "신이 내린 목소리"라며 극찬했다.[2] 또한 주빈 메타로부터 "100년에 한두 사람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의 주인공이다"라는 극찬을 받았다. 세계 5대 오페라극장을 섭렵하면서 게오르그 솔티, 주빈 메타, 알프레드 크라우스, 로린 마젤 등의 명 지휘자와 함께 마술피리 등 여러 오페라에 출연했다. 1993년 게오르그 솔티와 녹음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그림자 없는 여인》은 그래미상 클래식 오페라 부문 최고 음반에 선정됐다. 1993년 이탈리아 최고 소프라노에게만 준다는 황금 기러기상을 수상했고, 2008년에는 이탈리아인이 아닌 사람으로써는 처음으로 국제 푸치니상을 수상했다. 2011년 현재 25년차 성악가로 1년에 300일 이상 세계 각지에 공연을 다니고 있다.

목차

생애 [편집]

어린 시절 [편집]

조수미는 어렸을적 글을 배우기 전에 피아노부터 쳤을 정도로 음악 신동이었다. 부모는 조수미에게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켰다. 부모는 조수미가 똑똑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할머니는 조수미를 보며 "저렇게 아이가 영악하면 단명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부모는 "어떻게 하면 오래 살 수 있는지" 물었더니 "뭐든지 두드리라. 두드리면 나쁜 기운이 빠져나갈 것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피아노를 두드리면 되겠다고 생각한 부모는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어렵게 돈을 마련하여 고가였던 피아노를 구입했다. 4살부터 어머니와 함께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조수미는 이유도 모르고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쉬지도 않고 하루에 8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했다.[3] 긴 연습이 지겨웠던 조수미는 어머니가 밖에 나가는 소리를 듣고 문을 열려고 하면 밖에서 문이 잠겨있을 정도였다. 놀고싶었지만 놀지 못해 불만이 쌓인 8살의 조수미는 두 명의 남동생에게 "집을 나가겠다"고 말하고 가출했다가 돈도 없고 갈데도 없어 6시간만에 돌아왔다.[4] 어머니는 조수미에게 "너는 나처럼 한 사람의 아내로 사는 것보단 만인에게 사랑받는 성악가가 되어라"고 가르쳤다. 어머니의 어렸을적 꿈이 성악가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조수미가 뱃속에 있을때부터 24시간 마리아 칼라스 음악을 틀어놓았을 정도였다.[5]

학창 시절 [편집]

조수미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비지스를 즐겨 듣는 등 이나 알앤비를 좋아했다.[6] 그러던중 서울대학교 음대 입학시험에서 역사상 최고의 점수를 받고 입학했다.[7] 그러나 곧 나이트클럽 등을 다니면서 남자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성적이 급격히 떨어졌다.[8] 고등학교때까지는 열심히 공부했으나 대학에 들어가자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 다른길로 빠진 것이었다. 당시 조수미에겐 사랑이 중요한 문제였다. k군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대학시절에 처음 만났는데 처음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조수미는 먼저 다가가 사귀어보고 싶다고 하자 여자친구가 있다는 답변이 들어왔고 조수미는 이에 굴하지 않고 구애를 해 사귀는데 성공했다. 조수미는 학업을 전부 제쳐두고 남자친구를 만나는데 온 시간을 쏟았고 어머니는 이런 조수미를 크게 걱정했다. 결국 학교에서 낙제점수를 받고 쫓겨났다. 부모는 조수미를 불러놓고 "여기서 끝내기엔 아깝지 않느냐"며 앞으로 뭘 하고 싶냐고 묻자 조수미는 "k군과 결혼하고 싶다"고 대답했다.[9] 이에 충격받은 부모는 일방적으로 조수미의 유학을 결정해버렸다. 떠밀려서 갔으나 유학간 이후로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연결된 전화에서 k군은 "이제 연락하지 말라"며 이별을 통보했다. 유럽에 있을 이유가 사라졌다고 생각한 조수미는 바로 귀국하려고 했으나, 어머니가 "노래는 어떻게 할거냐"며 극구 말렸다. 조수미는 독하게 마음먹고 앞으로 연애를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5년동안 한국에 들어오지 않고 공부에 전념했다.[10] 조수미는 가족들과 헤어져 이런 곳에서 공부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아직도 k군을 잊지 않고 있으며 그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 k군을 만난적은 없으나, 자신의 공연때 와서 보다가 간 것은 본적이 있다고 말했다.

유학 생활 [편집]

유학생활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유학을 결정하고 비행기표를 사야되는데 돈이 없어서 비행기표를 사지 못해 유학이 취소될 위기였으나 유학 3일 전 갑자기 돈이 들어올 일이 생기면서 가까스로 비행기표를 구해 어머니가 준 단돈 300달러를 들고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을 가서도 밥을 먹지 못해 초대받은 곳에서 음식을 먹다가 싸갖고 가서 다음날 아침을 해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날 빈혈이 와서 길바닥에 쓰러져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빈혈 증세가 심각하다"며 노래보다 건강을 챙기는게 중요하다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11]

조수미는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 학교(Accademia di Santa Cecilia) 입학 시험을 보러가 노래를 부르려는데 피아니스트가 오지 않았다. 교수가 반주를 할 수 있는 학생을 찾았고 조수미가 손을 들었다. 교수들은 조수미가 잘 칠 수 있을지 의심하였으나 전부 한국에서 배웠던 곡임을 확인한 조수미는 어렵지 않게 60명 학생의 노래를 전부 연주했다. 마지막에 조수미의 차례에서 반주에 노래까지 부르자 교수들은 실력에 감탄하며 최고점수에 추가점수까지 주면서 역대 최고점수를 받았다.[12]

유학생활을 할때까지 조수미는 평생 성악가로 살아갈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재능이 있다는건 알고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3시간씩 연습해서 발표를 했지만 조수미는 레슨 직전에 5분만 봐도 악보가 외워질 정도였고 그렇게 해도 교수들의 칭찬은 끊이지 않았다. 어느 날 평소대로 5분간 악보를 보고 레슨을 들어갔는데 교수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악보를 찢더니 "내가 끝까지 모를줄 알았느냐, 5분전에 악보를 보고 들어온것 다 안다"며 크게 화를냈다. 이어 "너 자신이 떳떳하지 못한 데 그런 모습으로 어떻게 관중을 만날 수 있나"고 꾸짖었다. 조수미는 눈물을 흘리며 "이게 아니구나"라며 반성했다고 한다. 이전까지는 부모의 강요에 의해 음악을 했으나 서서히 가슴으로 음악을 느끼게 되면서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됐다.[12] 그리하여 보렐리·발렌티니·베르곤치 교수에게 사사하여 2년만에 조기 졸업을 하게됐다.[13]

음악 활동 [편집]

2002년 유네스코에서 세계의 평화음악인으로 지정되어 세계 평화 및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오페라 무대에는 1986년 Italy Trieste에서 Gilda로 데뷔했으며 그 후, La Scala Opera House(이탈리아), Metropolitan Opera House(뉴욕, 미국), Covent Garden Opera House(런던, 영국), Vienna National Opera House(비엔나, 오스트리아), 바스티유(프랑스), 잘츠부르크 Summer Music Festival(잘츠부르크, 오스트리아) 등 세계적인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했다. 또한 뉴욕의 모차르트 페스티벌·카네기홀·메트로폴리탄 오페라·시카고 리릭 오페라·LA 오페라·디트로이트 오페라·미시간 오페라(미국), 퀘백·토론토(캐나다), 로마·베네치아·볼로냐·피렌체(이탈리아), 엑상 플로방스(프랑스), 바르셀로나·세비야·빌바오(스페인), 베를린 오페라(독일), 런던(영국), 부에노스아이레스(아르헨티나) 등 세계 유수의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 중이다.[12]

조수미의 아버지는 한명밖에 없는 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 집안이 힘들었던 시절 당뇨병으로 고생하면서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파리에서 중요한 독창회가 있던 날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짐을 싸서 바로 귀국하려 했으나 어머니가 "많은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는게 너의 본분이고 노래를 해서 그 음악회를 아버지께 바치는게 너의 본분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어렵게 파리 공연을 마치고 나니 눈물이 흘러내렸고 "고국에서 아버지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며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라는 노래를 바친다며 마지막 곡을 불렀다.[14]

조수미가 유학생활을 하던 1983년엔 동양인 유학생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조수미를 보며 "어떻게 하는지 보자"는 눈빛으로 생소하게 보았다. 오페라 배역에서도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이 있었다. 금발머리의 유럽형 외모가 필요한데 조수미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캐스팅이 제외된 경우가 있었다. 1986년 공연을 하면서 느낀것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공항에서 여권을 제시하면 한국을 몰라 이것을 설명하느라 비행기가 제때 못뜨는 경우가 있을 정도였다. 이에 조수미는 "한국이 빨리 커야되겠다. 한국에 좋은 일이 있도록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12] 그래서 조수미는 한국에서 국제적인 행사가 있으면 다른 스케줄을 뒤로하고 우선적으로 오길 원했으며, 이를 이해하지 못한 외국인 매니저와 싸우는 일도 잦았다. 조수미는 "자기 나라의 색깔을 풍기는 사람이 진정한 예술가라 생각한다"고 말했다.[12]

평가 [편집]

조수미는 칼라스서더랜드의 뒤를 잇는 이 시대 최고의 벨칸토 소프라노로 평가받는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1912년에 작곡한 <낙소소의 아리아드네> '체르비네타의 노래'는 최고음으로 20분이 넘도록 쉬지 않고 불러야 하는 고난도 곡이어서 슈트라우스는 이 곡을 부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악보의 일부를 수정했었다. 그러나 1994년 조수미는 세계 최초로 수정되지 않은 원본으로 부르는 기록을 남겼다.[15] 또한 조수미는 동양인 최초로 국제 콩쿠르 6개를 석권했고,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에서 주연으로 공연한 동양인 최초의 프리마돈나로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있다. 1993년에는 동양인 최초로 이탈리아 황금 기러기상을 수상했다. 2008년에는 이탈리아인이 야닌 세계 최초의 국제 푸치니상을 수상했다.[12]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그녀의 목소리는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라고 말했다. 카라얀은 또한 "한국에서 배웠다니 놀랍다. 한국에도 그렇게 뛰어난 선생들이 있단 말인가? 한국은 대단한 나라이다"라고 감탄했다.[16] 뉴욕 메트로 폴리탄 극장 오페라 뉴스는 "그녀의 노래는 이미 비평을 넘어섰다"고 극찬했다. 프랑스 르 몽드지는 "요정도 그녀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고 평가했다.[17]

기타 [편집]

조수미는 아이들은 아이들 답게 많이 놀고 독서하고 자연과 함께 지내는 아름답고 순수하게 자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렸을적 놀지 못했던 조수미는 아직도 곰인형같은 장난감을 좋아한다. 어렸을때 성격이 형성되는데 자연스럽고 깨끗하게 커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이란 것은 아름다운 혼이나 생각이 음악을 통해 나타나 사람들의 귀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12]

조수미는 목젖이 없다. 조수미가 목이 아프면 찾아가는 의사가 있는데 이 의사가 어느날 "조수미가 노래를 잘하는 이유를 알겠다. 목젖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18] 조수미는 평소에 외모에 별로 신경쓰지 않으며 화장기 없이 편하게 다닌다. 그래서 옆집사람이 조수미인줄도 모르고 연습하는 소리를 듣고 음반소리가 크다고 항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19] 조수미는 수많은 공연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떨린다고 말한다. 조수미는 이러한 긴장을 풀기 위해 빨래를 한다고 말했다. 빨래를 하면서 노래에 대한 생각을 한다.[20] 조수미는 음악인으로써, 한국인으로써 많은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으며 그런 기회가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한 "예술가로써 깨끗한 사람이 되고싶다"고 말했다. 조수미는 "선하지 않고 지저분한 사람의 노래는 아무리 잘해도 감동이 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세상을 순수하게 살고싶고 그런 마음이 노래에 나타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수미는 한국의 노래를 앙코르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조수미는 "예술가는 결국 영감의 원천을 준 고국의 폼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라고 생각한다. 성악가로 성공한 조수미는 그러나 "다시 태어난다면 그냥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오순도순 여자로서 완벽한 행복을 맛보고 싶다"라고 말했다.[21]

조수미는 숫자 개념이 없는게 고민이라고 말한다. 한때는 호텔에서 묵는데 커피 두잔을 시킨것이 호텔측의 착오로 2,222잔을 시킨것으로 계산이 되어 고액의 이용료를 지불할뻔했으나 매니저가 알아차리고 항의한적도 있었다.[22]

조수미의 본명은 조수경이다. 영어 표기와 외국인의 보편적인 발음상 "경"은 발음이 조금 어려웠기 때문에 이름을 조수경에서 조수미로 바꾸게 되었다.[23]

학력 [편집]

약력 [편집]

  • 2011년 5월: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홍보대사
  • 2010년 7월: 2018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홍보대사
  • 2010년: 대한적십자사 친선대사
  • 2007년 8월: 여수엑스포 홍보대사
  • 2006년 12월: 평창동계올림픽 명예홍보대사
  • 2002년: 세계박람회유치위원회 홍보대사
  • 2002년: 외교통상부 문화홍보대사
  • 1998년: 방정환재단 발기이사

수상 내역 [편집]

  • 2008년: 국제푸치니상
  • 2006년: 자랑스런 한국인 문화예술부문 대상
  • 2006년: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 2005년: 제7회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관악대상
  • 2002년: UNESCO 세계의 평화음악인
  • 2002년: 제18회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올해의 여성상
  • 1997년: 프랑스문화계 비평가선정 성악부문 음반상
  • 1997년: 제5회 KBS 해외동포상
  • 1996년: 제1회 한중청년학술상
  • 1996년: 영국 클래식CD 선정 96베스트셀러 음반상
  • 1995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 1995년: 동아일보사 여성동아대상

음반 [편집]

  • 1994년 - 《Virtuoso Arias-Verdi, Rossini...》
  • 1994년 - 《Virtuoso Arias(From Seoul With Love)》
  • 1994년 - 《새야 새야》
  • 1994년 - 《SUMI JO - Virtuoso Arias》
  • 1994년 - 《Carnaval》
  • 1995년 - 《아리 아리랑》
  • 1996년 - 《Dear Amadeus》
  • 1997년 - 《비발디 사계 (조수미와 함께 하는 음악여행)》
  • 1997년 - 《조수미가 들려주는 음악여행 - 피터와 늑대》
  • 1997년 - 《Bel Canto (The Best Of Bel Canto Arias)》
  • 1998년 - 《Jewel Song - French Arias》
  • 1998년 - 《Caro Mio Ben - My Favorite Italian Songs》
  • 2000년 - 《Only Love》
  • 2000년 - 《카네기 홀 라이브》
  • 2000년 - 《런던 필하모닉 & 조수미 내한 공연 (VCD)》
  • 2000년 - 《Opera Love》
  • 2001년 - 《카네기 홀 라이브(Live Carnegie Hall)》
  • 2001년 - 《Prayers》
  • 2002년 - 《New Year`s Concert 2003 -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위한 신년 음악회》
  • 2002년 - 《My Story》
  • 2002년 - 《향수 - 조수미 그녀의 첫 번째 순수 한국 가곡집》
  • 2003년 - 《My Story 2》
  • 2004년 - 《Peter And The Wolf (조수미가 들려주는 음악동화 )》
  • 2004년 - 《Be Happy - Falling in Love with Movie》
  • 2004년 - 《Be Happy 2005 - Falling in Love with Movie》
  • 2005년 - 《화이트콘서트 (White Concert) - 조수미의 아주 특별한 겨울콘서트》
  • 2006년 - 《Journey To Baroque (바로크로의 여행)》
  • 2007년 - 《조수미 101》
  • 2008년 - 《Missing You》
  • 2009년 - 《Cristams Round The World》
  • 2010년 - 《Love Never Dies》
  • 2010년 - 《Ich Liebe Dich》
  • 2011년 - 《Libera》
  • 2012년 - 《La Luce》
  • 2013년 - 《Norma(Decca)-Adalgisa 역》

저서 [편집]

각주 [편집]

  1. 조수미 홈페이지 - Sumi Jo - Biography
  2. 소프라노 조수미 "여자로 살고 싶어요" 매일경제 2007년
  3. 무릎팍' 소프라노 조수미, "잔인하다. 슬픔 이기고 노래한다는 건…" 마이데일리 2008년 12월
  4. 조수미 '무릎팍도사'서 '베사메무쵸' 열창 '눈길' 아시아경제 2008년 12월
  5. 조수미 "다시 태어난다면 평범하게 살고 싶다" 한국경제 2009년 5월
  6. 네이버 뮤직 2008년 4월
  7. 조수미 고백, "내 생애 가장 행복한 때는 첫사랑 시절" 브레이크뉴스 2008년 12월
  8. 조수미, 서울음대시절 첫사랑과의 연애로 '낙제점수' 맥스뉴스 2008년 12월
  9. 조수미 '무릎팍도사'서 '베사메무쵸' 열창 '눈길' 아시아경제 2008년 12월
  10. 무릎팍' 소프라노 조수미, "잔인하다. 슬픔 이기고 노래한다는 건…" 마이데일리 2008년 12월
  11. 무릎팍' 소프라노 조수미, "잔인하다. 슬픔 이기고 노래한다는 건…" 마이데일리 2008년 12월
  12.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2008년 12월 10일
  13. 조수미의 아름다운 도전 조수미 저서 2008년 12월
  14. 무릎팍' 소프라노 조수미, "잔인하다. 슬픔 이기고 노래한다는 건…" 마이데일리 2008년 12월
  15. 독일 가곡은 제 음악 인생의 소중한 젖줄이죠" 한국경제 2008년 12월
  16. 신이 내린 목소리 ‘조수미’& ‘AAM’ 이 온다. ‘폭풍이 몰아치고’, 가슴이 뛴다 세계일보 2008년 12월
  17. 소프라노 조수미,의정부예술의전당서 '봄의 왈츠'공연 뉴시스 2007년 4월
  18. 조수미, "아이는 아이답게 순수하게 자라야 한다고 생각 osen 2008년 12월
  19. 무릎팍도사’조수미,″화장 지우면 동네 아줌마(?)″ 시앤비뉴스 2008년 12월
  20. 조수미 “고무장갑 빨래판 여행 필수품!” tv리포트 2008년 12월
  21. 조수미 "다시 태어난다면 평범하게 살고 싶다" 한국경제 2009년 5월
  22. '조수미무릎팍', 숫자개념 때문에 커피 2,222잔 계산서 아트뉴스 2008년 12월
  23. 축구? 완전 미치죠 토티에 푹 빠졌어요 동아일보 2010년 4월

바깥 고리 [편집]

위키인용집
위키인용집에 이 문서와 관련된 문서가 있습니다.
심층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