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칼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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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칼라스(이탈리아어: Maria Callas, 그리스어: Μαρία Καλογεροπούλου 마리아 칼로게로폴로[*], 1923년 12월 2일 - 1977년 9월 16일)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유명한 오페라 가수 가운데 하나이다. 본명은 안나 마리아 카이킬리아 소피아 칼로게로폴로(그리스어: Άννα Μαρία Καικιλία Σοφία Καλογεροπούλου)이며 부모는 그리스계 미국인이었다.

생애 및 활동[편집]

그리스에서 이민한 양친 아래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13세 때 모국으로 돌아와 아테네 음악원에서 유명한 히다르고와 마르키안디에게 배워, 1938년 아테네에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산투차 역으로 데뷔하였다. 그 뒤 1947년에 베로나의 아레나에서 《조콘다》를 불러 이탈리아에서 인정받게 되었다. 1951년부터 밀라노라 스칼라 극장을 중심으로 활약하여 《노르마》, 《안나 보레나》, 《메데아》 등 발굴되지 않았던 명작에 출연하였으며, 1957년 이후로는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에서 활약하였다.

한때 이탈리아 부호 메네기니와 결혼하였으나 오나시스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칼라스는 메네기니와 이혼한 후 오나시스와 결혼하고자 하였으나 오나시스는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하였고 칼라스는 얼마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말년에는 파리에서 은둔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 현대적인 창법과 스케일이 큰 연기 및 가창표현은 감히 뒤를 따를 사람조차 없을 정도이다.

평가[편집]

전후 최고의 소프라노 가수로 테발디와 함께 프리마돈나로 불리며, 그녀만큼 저널리즘의 주목을 받은 가수도 드물다. 그녀의 폭넓은 성역(聲域)과 뛰어난 기교, 그리고 훌륭한 무대에서의 연기는 명가수 릴리 레만 이후의 명소프라노로 높이 평가됨과 동시에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중후한 이졸데 역에서 경묘한 루치아까지 충분한 역량을 발휘하였다. 더구나 그 뛰어난 극적 표현과 완벽한 가창은 비할 바가 없다고 평가된다. 레코딩한 음반은 수없이 많으며 그 어느 것이나 모두 명연기로 평가받는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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