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파불교
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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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파불교(部派佛敎, 영어: early Buddhist schools)는 고타마 붓다가 반열반에 든 후 제자들 사이에 견해의 차이가 생겨 불멸 후 100년 경에 보수적인 상좌부(上座部)와 진보적인 대중부(大衆部)로 분열되고, 이어서 이 두 부파(部派: 종파)로부터 여러 갈래의 분열이 일어나 불교가 여러 부파로 나뉘면서 전개되었던 시대의 불교이다.[1][2]
부파불교는 시기적으로는 원시불교(原始佛敎, pre-sectarian Buddhism) 이후의 시기를 뜻하는데, 대승불교가 서력 기원 전후에 발생한 후에도 부파불교의 부파들 중에는 대승불교의 종파들과 함께 시대적으로 나란히 활동했던 부파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세친(316~396)은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에서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로 전향하였다. 그가 설일체유부의 논사였을 때 저술하였던 《아비달마구사론》은 설일체유부의 교학의 강요서인데, 그는 부파불교의 경량부의 학설 등을 이용하여 비판적으로 설일체유부의 교학을 집대성하였다. 즉, 이 때까지도 부파불교의 부파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으며, 또한 세친의 시대보다 200여년 후의 인물인 현장(玄奘: 602~664)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따르면 그가 인도로 유학을 갔을 때도 여전히 정량부(正量部, 산스크리트어: Saṃmitīya) 등의 부파불교의 부파들이 상당한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었다.[3]
고타마 붓다가 반열반에 든 후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인격에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의 노력에 의지하라는 자등명(自燈明: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과 남겨진 가르침(법)에 의지하라는 법등명(法燈明: 법을 등불로 삼으라)의 유훈에 따라 고타마 붓다가 남긴 교법을 결집하여 경장과 율장을 편찬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제자들은 그 교법(특히, 사성제)을 깊이 연구 해석하여 여러 경전들에 나오는 불교의 이론과 실천 양면을 망라하여 이들을 체계화한 방대한 논서(Abhidharma-sastra, 아비달마샤스트라)들을 작성하였는데, 이러한 이유로 부파불교를 한편으로는 아비달마불교(阿毘達磨佛敎)라고도 한다.[4]
서력 기원 전후에 새로운 대승불교(大乘佛敎)가 일어나게 되자 대승불교도들은 그때까지의 부파불교를 소승불교(小乘佛敎)라고 폄하하여 칭하였다.[2]
불교 전통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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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불교 전통의 성립과 발전 (기원전 450년경부터 기원후 1300년경까지) | |||||||||||||||||||
450 BCE | 250 BCE | 100 CE | 500 CE | 700 CE | 800 CE | 1200 C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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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파불교 | 대승불교 | 밀교·금강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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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좌부 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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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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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종 · 정토종 · 일련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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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 BCE | 250 BCE | 100 CE | 500 CE | 700 CE | 800 CE | 1200 C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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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편집]제1회 결집
[편집]고타마 붓다가 반열반에 든 후 다음 해에 마하가섭의 주재로 왕사성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제1회 결집이 열렸다. 아난(阿難)이 경(經)을 독송하고 우바리(優婆離)가 율(律)을 송출(誦出)하여, 원시불교의 기본 경전과 계율이 확립되었다. 아난이 독송한 경은 후대에 《아함경(阿含經)》이라고 불리게 되었다.[5]
대중부의 전승에 따르면, 제1회의 칠엽굴(七葉窟)에서의 결집에 참여하지 못한 여러 승려들은 부루나(富樓那)의 주재로 굴외결집(窟外結集)이라는 것을 열어 이의를 제기하였는데, 이와 같이 불교 교단의 밑바닥에서는 신구의 두 경향이 대립하였다.[6] 굴외결집에 의해 형성된 경전을 잡경(雜藏)이라 하였으며, 이 가운데는 대승 불교 경전의 전신(前身)이 된 《방광경(方廣經)》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제2회 결집과 근본 분열
[편집]고타마 붓다의 입멸 후 약 100년이 지나게 되자 계율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주장하는 비구들이 있어 논쟁이 일어났다.[7] 스리랑카의 편년체 역사서이자 남방불교의 자료인 《도사(島史 · Dipavamsa)》와 《대사(大史 · Mahavamsa》에 따르면, 동부 비구 승단에 속한 와지족의 비구가 계율에 대한 새로운 열 가지 안("십사 · 十事")을 승인해 줄 것과 이에 따라 계율을 수정할 것을 주장하였다.[8]
이에 인도 서부 마유라(摩偷羅)국의 비구였던 야사(耶舍)는 인도 동부와 서부의 700명의 장로(長老: 상좌 · 上座라고도 함)를 초청하여 바이샬리(Vaisali · 비사리 · 毗舍離)에서 제2회 결집을 열어 주로 율장(律藏)을 편집하고 교단의 통제에 힘을 기울였다.[9]
제2회 결집은 칠백결집 또는 비사리 결집이라고도 한다. 제2회 결집에서 동부 비구 승단이 주장하는, 계율에 대한 열 가지 새로운 견해("십사 · 十事")가 잘못된 것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것을 십사비법(十事非法)이라 부른다. 제2회 결집 당시에는 분열이 발생하지 않았으나, 남방불교에 대한 자료인《도사(島史 · Dipavamsa)》 등에 따르면, 그 후에 제2회 결집의 결정에 불복한 진보적인 동부 승단의 비구들이 1만명의 다수인을 모아 독자적인 결집을 열어 계율을 수정하였다. 이를 대결집(大結集)이라 부르는데 이들은 보수적인 상좌부(上座部)로부터 이탈하여 대중부(大衆部)를 형성하였다.[9]
이와 같이 불교 교단은 계율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 보수적인 상좌부(上座部, 산스크리트어: स्थविरवाद Sthaviravāda 스타비라바다, 팔리어: Theravāda 테라바다)와 진보적인 대중부(大衆部, 산스크리트어: महासांघिक Mahāsāṃghika 마하상기카)의 둘로 분열되었다. 이를 근본 분열(根本分裂) 또는 근본이부 분열(根本二部分裂)이라 하며 상좌부와 대중부를 근본이부(根本二部)라 한다.[6] 근본 분열을 계기로 인도 불교는 부파불교의 시대로 들어가게 되었다.[8]
한편, 근본 분열의 발생 계기에 대해서, 북방불교의 자료에서는 위에 기술된 남방불교의 내용과는 달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현대의 학자들은 남방불교의 자료가 사실인 것으로 보고 있다.[8]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을 포함한 북방불교의 자료들에 따르면, 불멸(佛滅) 후 100년경 아소카왕의 치세 때, 마하데바(Mahadeva · 대천 · 大天)라는 진보파 비구가 교의에 관한 다섯 가지의 새로운 안을 주장하며 그것을 승인해 줄 것을 교단에 요구하였는데, 이 다섯 가지 안을 대천오사(大天五事)라 한다. 대천오사에 찬성하는 진보파의 대중부(大衆部)와 이에 반대하는 보수파의 상좌부(上座部)로 양분되었다.[7][8]
부파의 성립과 지말 분열
[편집]근본이부의 분열이 가져온 분열의 기운은 교리상의 견해, 지도자간의 대립, 지리적 조건 등으로 인하여 더욱 심화되어 붓다의 입멸 후 약 200년 뒤에는 대중부 계통으로부터, 그리고 그 뒤에 이어서 상좌부 계통으로부터 교단의 파생적인 분열이 촉진되었다.[10] 이에 따라 서력 기원을 전후하는 시기에는 총 18-20개 정도의 부파가 형성되었다.[11]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 등의 북방불교의 자료에 따르면, 근본분열 후 약 200년 동안에 걸쳐 상좌부와 대중부 모두에서 부파적 분열이 거듭되어 총 18부로 나뉘었는데 이것을 지말분열(枝末分裂)이라 한다.[6] 근본분열에 의한 근본이부와 지말분열에 의한 18부를 합하여 총 20부의 부파를 소승20부(小乘二十部)라 한다.[6] 그 후 기원 전후에 새로운 대승불교(大乘佛敎)가 일어나게 되자 대승불교도들은 그때까지의 부파불교를 소승불교(小乘佛敎)라고 폄하하여 칭하였다.[2]
부파불교의 부파들
[편집]부파불교 시대의 여러 갈래로 분열하는 모습과 파의 이름 그리고 분파의 수에 관하여는 여러 설이 있다.[10] 대표적인 것으로는 남방불교의 설과 북방불교의 설이 있다. 스리랑카의 편년체 역사서인 《도사(島史, 팔리어: Dīpavamsa)》와 《대사(大史, 팔리어: Mahāvaṃsa)》에 기록된 남방불교의 설에 따르면 총 18부파로 분열되었다. 이에 비해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 등의 북방불교의 설에 따르면 총 20부파로 분열되었으며, 이 계통에서는 소승20부(小乘二十部)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남방불교와 북방불교의 설을 비교해보면 부파의 수도 다를 뿐만 아니라 어느 부파가 모체가 되어 분열되었는가에 대해서도 그 내용이 다르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 학자들은 두 설을 종합하고 다른 자료들을 보충하여 이들 두 전통적인 견해와는 다른 견해를 제출하기도 한다.
부파 발생의 주된 원인은 계율의 해석에 관한 학설 상의 차이에 있었지만, 학설보다는 지도적 장로(長老)를 중심으로 한 체제가 달랐거나 지리적으로 너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부파를 형성하는 일도 생겼다. 북방불교의 설에 따르면 대표적 부파로는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 설산부(雪山部) · 독자부(犢子部) · 화지부(化地部) · 음광부(飮光部) · 경량부(經量部) 등이 존재하였다.[11]
남방불교의 설
[편집]스리랑카의 편년체 역사서인 《도사》와 《대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총 18부파로 분열되었다.[12][13]
상좌부 계통
[편집]- 상좌부(上座部, Sthaviravāda) → 분별설부(分別說部, Vibhajjavāda) → 상좌부불교(上座部佛教, Theravāda, 테라바다)
- 화지부(化地部, Mahīśāsaka) - 제1차 분열
- 법장부(法藏部, Dharmaguptaka) - 제3차 분열
-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Sarvāstivāda) - 제3차 분열
- 음광부(飲光部, Kāśyapīya) - 제4차 분열
- 설전부(說轉部, Sankrantika) - 제5차 분열
- 설경부(說經部, Sautrāntika) - 제6차 분열
- 설전부(說轉部, Sankrantika) - 제5차 분열
- 음광부(飲光部, Kāśyapīya) - 제4차 분열
- 독자부(犢子部, Vatsīputrīya) - 제1차 분열
- 법상부(法上部, Dharmottarīya) - 제2차 분열
- 현주부(賢冑部, Bhadrayānīya) - 제2차 분열
- 밀림산부(密林山部, Sannāgarika) - 제2차 분열
- 정량부(正量部, Saṃmitīya) - 제2차 분열
- 화지부(化地部, Mahīśāsaka) - 제1차 분열
대중부 계통
[편집]기타 계통
[편집]위의 18부 외에 《도사》에서는 기원 즉 모체가 되는 부파가 불분명한 다음의 6개 부파를 언급하고 있다.
- 설산부(雪山部, Haimavata)
- 왕산부(王山部, Rajagiriya)
- 의성부(義成部, Siddhatthaka)
- 동산부(東山部, Pubbaseliya)
- 서산부(西山部, Aparaśaila)
- 서왕산부(西王山部, Apararajagirika)
북방불교의 설
[편집]부파의 분열에 대한 북방불교의 설의 주요 원천자료는 세우의 《이부종륜론》과 이것의 이역본들이다. 북방불교의 설에 따르면 총 20부파로 분열되었으며 이들을 소승20부(小乘二十部)라 한다.[14][15][16][17]
일반적으로 소승20부로서는 상좌부 계통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 설산부(雪山部) · 독자부(犢子部) · 법상부(法上部) · 현주부(贅胄部) · 정량부(正量部) · 밀림산부(密林山部) · 화지부(化地部) · 법장부(法藏部) · 음광부(飮光部) · 경량부(輕量部)의 11부와 대중부 계통의 대중부(大衆部) · 일설부(一說部) · 설출세부(說出世部) · 계윤부(鷄胤部) · 다문부(多聞部) · 설가부(說假部) · 제다산부(制多山部) · 북산주부(北山住部)의 9부의 합계 20부를 든다. 이들의 성립 시기는 대략 서력기원 전후였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10]
소승20부의 분화도는 다음과 같다. 상좌부는 불멸 후 200년에서 400년 초에 걸쳐 본말(本末) 11부가 되었다. 대중부는 불멸 후 200년 말에는 본말(本末) 합쳐서 9부(九部)가 되었다.[8]
상좌부 계통
[편집]- 설산부(雪山部, Haimavata) - 제1차 분열: 불멸 후 300년 초(정통상좌부)
- 설일체유부(說一體有部, Sarvāstivāda) - 제1차 분열: 불멸 후 300년 초
- 독자부(犢子部, Vatsīputrīya) - 제2차 분열: 불멸 후 300년 중반?
- 법상부(法上部, Dharmottara) - 제3차 분열: 불멸 후 300년 중후반?
- 현주부(賢冑部, Bhadrayānīya) - 제3차 분열: 불멸 후 300년 중후반?
- 정량부(正量部, Sammitīya) - 제3차 분열: 불멸 후 300년 중후반?
- 밀림산부(密林山部, Channagirika) - 제3차 분열: 불멸 후 300년 중후반?
- 화지부(化地部, Mahisasaka) - 제4차 분열: 불멸 후 300년 후반?
- 법장부(法藏部, Dharmaguptaka) - 제5차 분열: 불멸 후 300년 후반?
- 음광부(飮光部, Kāśyapīya) - 제6차 분열: 불멸 후 300년 말
- 경량부(經量部, Sautrāntika) - 제7차 분열: 불멸 후 400년 초
- 독자부(犢子部, Vatsīputrīya) - 제2차 분열: 불멸 후 300년 중반?
대중부 계통
[편집]제1차 분열: 불멸 후 200년 초 | 일설부 · 설출세부 · 계윤부 | ||||||||||||||||||||||||||
제2차 분열: 불멸 후 200년 중 | 다문부 | ||||||||||||||||||||||||||
대중부 근본분열: 불멸 후 100년 | |||||||||||||||||||||||||||
제3차 분열: 불멸 후 200년 중 | 설가부 | ||||||||||||||||||||||||||
제4차 분열: 불멸 후 200년 말 | 제다산부 · 서산주부 · 북산주부 | ||||||||||||||||||||||||||
- 대중부(大衆部, Mahāsāṃghika) - 근본분열: 불멸 후 100년
- 일설부(一說部, Ekavyāvahārika) - 제1차 분열: 불멸 후 200년 초
- 설출세부(說出世部, Lokottaravāda) - 제1차 분열: 불멸 후 200년 초
- 계윤부(鷄胤部, Gokulika) - 제1차 분열: 불멸 후 200년 초
- 다문부(多聞部, Bahuśrutīya) - 제2차 분열: 불멸 후 200년 중
- 설가부(說假部, Prajñaptivāda) - 제3차 분열: 불멸 후 200년 중
- 제다산부(制多山部, Caitika) - 제4차 분열: 불멸 후 200년 말
- 서산주부(西山住部, Aparaśaila) - 제4차 분열: 불멸 후 200년 말
- 북산주부(北山住部, Uttaraśaila) - 제4차 분열: 불멸 후 200년 말
부파불교의 성격
[편집]부파불교 시대 동안, 각 부파는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을 정리 · 분류하고, 각기 독자적인 "경(經)"과 "율(律)"을 전하였다. 또한 이와 동시에 경과 율을 해석 · 연구하여 조직 체계화하는 학문을 발달시켰는데 이것을 아비달마(阿毘達磨: 對法 · 대법)라 하여 논(論)이라 불렀다. 이를 통해 부파불교는 불교 교의의 확립이라는 점에서 큰 공적을 남기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교의의 번잡화(煩雜化)와 불교의 학문화(學問化)는 불교가 종교로서의 생명을 잃게 하고 신앙을 고갈시켰으며, 새로운 불교개혁운동인 대승불교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2]
각주
[편집]- ↑ "원시불교"[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010년 12월 20일에 확인.
"원시불교: 原始佛敎 불교는 불타(佛陀:Buddha)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하면서 그것이 계승·전파되어 가는 과정에 있어서 시대와 더불어 발전하여 온 것이다. 인도에서 발생하여 아시아의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퍼져나간 불교를 모두 똑같은 한가지의 것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각기 다른 특색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불타가 도(道)를 깨닫고 전도를 시작한 때로부터 그의 입적(入寂) 후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정리하여 성립된 불교를 일반적으로 원시불교라 한다. 그 기간은 불타의 제자들 사이에 분파가 생겨날 때까지의 약 2,300년간을 말하는데 북방불교와 남방불교의 자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원시불교의 특색은 불타의 가르침이 직접화법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 점에 있으나 실은 제자들에 의하여 구전(口傳)된 것이 불타의 입적 후 정리된 것으로 그 확실성의 한계점을 긋기는 어려운 것이다. 불타 및 그의 직제자(直弟子) 시대의 불교를 근본불교(根本佛敎)라 하고 그 후의 것을 협의의 원시불교라 하는 설도 있다." - ↑ 가 나 다 라 "소승불교"[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010년 12월 21일에 확인.
"소승불교: 小乘佛敎 석존(釋尊)이 멸한 뒤 100년경, 불교 교단은 계율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 보수적인 상좌부(上座部)와 진보적인 대중부(大衆部)의 둘로 분열되고(근본분열), 그 후 약 200년 동안에 걸쳐 분열을 거듭하여 18부로 나뉘어(枝末分裂) 근본2부(根本二部)를 포함해서 20부가 되었다 한다. 이것이 부파(部派)불교라는 것인데, 그 후 기원 전후에 새로운 대승불교가 일어나게 되자 지금까지의 부파불교를 소승불교(小乘佛敎)라고 폄칭(貶稱)하게 되었다. 이 부파시대의 불교는 각 부파마다 석존의 가르침을 정리·분류하고, 각기 독자적인 '경(經)'과 '율(律)'을 전함과 동시에 이들을 해석·연구하여 조직 체계화하는 학문이 발달하였다. 이것을 아비달마(阿毘達磨:對法)라 하여 논(論)이라 불렀다. 소승불교는 이처럼 교의의 확립이라는 점에서 큰 공적을 남겼는데, 교의의 번잡화(煩雜化)는 불교의 종교로서의 생명을 잃게 하고 신앙을 고갈시켰으며, 새로운 불교개혁운동(대승불교)을 초래하는 결과가 되었다. " - ↑ The distinguished Buddhologist Étienne Lamotte, using the writings of the Chinese traveler Xuanzang, asserted that the Saṃmitīya were in all likelihood the most populous non-Mahāyāna sect in India, comprising double the number of the next largest sect (Lamotte, Etienne. 《History of Indian Buddhism》. 1988. pg 539-544), although scholar L. S. Cousins revised his estimate down to a quarter of all non-Mahāyāna monks, still the largest overall ("Person and the Self." Buddhism: Critical Concepts in Religious Studies, Vol. 2, pgs 84-101). The Saṃmitīya sect seems to have been particularly strong in the Sindh, where one scholar estimates 350 Buddhist monasteries were Saṃmitīya of a total of 450 (《Religion and Society in Arab Sind》 by Maclean, Derryl. Brill: Leiden 1989. pg 154). This area was rapidly Islamized in the wake of the Arab conquest (《Religion and Society in Arab Sind》 by Maclean, Derryl. Brill: Leiden 1989). The end of the Saṃmitīya sect appears to coincide with the overall decline of Buddhism in India.
- ↑ 권오민 (2000). "아비달마불교의 새로운 인식을 위한 시론", 《한국불교학》 제27집. p. 129.
- ↑ "제1결집"[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010년 12월 21일에 확인.
"제1결집: 第一結集 불타의 설법은 주로 구화(口話)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불타가 입적하게 되자 그의 가르침의 내용이 올바르게 후대에 전해질 것인가가 의심스러워졌다. 이에 불타의 교법(敎法)을 옳게 파악해 놓지 않으면 사이비 설법이 세상에 나돌아 결국에는 정법정률(正法正律)이 없어지게 될 것임을 두려워한 마하가섭은 불타의 입멸 이듬해의 우계(雨季)에 왕사성 밖의 칠엽굴(七葉窟)에 500명의 비구를 모아놓고 불타의 가르침에 대한 결집(結集)을 거행하였다. 결집이라 함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각자가 이해하고 파악한 불타의 가르침으로서 다시 교단이 확인하는 일이다. 이것은 불타가 남긴 가르침의 산일(散逸)을 막고 교단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었다. 이때의 결집을 오백결집(五白結集)이라 하며, 다문제일(多聞第一)의 아난(阿難)이 경(經)을 독송하고 계율을 보지(保持)함에 으뜸인 우바리(優婆離)가 율(律)을 송출(誦出)하였다. 경이라 함은 교리와 사문에 관한 설법이며, 율은 행위와 교단에 관한 규정이다. 그러나 이 결집으로 경과 율이 완성된 것은 아니고 제3회 후에도 몇회의 결집이 있었다. " - ↑ 가 나 다 라 "근본2부의 분열과 부파불교의 성립"[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010년 12월 21일에 확인.
- ↑ 가 나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 T49n2031_p0015a17(00) - T49n2031_p0015a25(00). 2008년 11월 2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12월 21일에 확인함.
如是傳聞。佛薄伽梵般涅槃後。百有餘年去聖時淹。如日久沒。摩竭陀國俱蘇摩城王號無憂。統攝贍部。感一白蓋。化洽人神。是時佛法大眾初破。謂因四眾共議大天五事不同。分為兩部。一大眾部。二上座部。四眾者何。一龍象眾。二邊鄙眾。三多聞眾。四大德眾。其五事者。如彼頌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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餘所誘無知 猶豫他令入
道因聲故起 是名真佛教 - ↑ 가 나 다 라 마 "인도불교의 부파와 학파 - 소승20부"[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010년 12월 21일에 확인.
“小乘二十部 북방불교의 자료들에 의하면 불멸(佛滅) 후 100년 아쇼카왕 치세 때, 마하데바(Mahadeva:大天)라고 하는 진보파 비구가 교의에 관한 5개조의 신설(新說)을 제창하고 그 승인을 교단에 구했을 때에, 또한 남방불교의 자료인 실론의 <도사(島史)>나 <대왕통사(大王統史)>에서는 와지족의 비구가, 계율에 대한 십사(十事)의 신설(十事非法)을 주창했기 때문에(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후자가 승인되고 있다) 불교교단이 신설에 찬성하는 진보파의 대중부(大衆部)와 이에 반대하는 보수파의 상좌부(上座部)로 양분되었다. 이것이 근본분열(根本分裂)이며, 이를 계기로 부파불교의 시대로 들어간다. 근본2부(根本二部) 중, 우선 대중부(大衆部)에서 200년 만에 일설부(一說部)·설출세부(說出世部)·계윤부(鷄胤部)의 3부가 갈라져 나왔고, 이어 다문부(多聞部)·설가부(說假部)가 갈라졌다. 제200년 말에는 제다산부(制多山部)·서산주부(西山住部)·북산주부(北山住部)가 나뉘면서 대중부는 불멸 후 200년 말에는 본말(本末) 합쳐서 9부(九部)가 되었다. 한편, 상좌부(上座部) 측은 근본분열 후 쫓기어 히말라야 지방으로 옮겨갔는데 불멸 후 300년 초에 2개로 분열하여 설일체유부(說一體有部)와 설산부(雪山部)가 되고, 더 나아가 설일체유부에서 독자부(犢子部)가 나뉘고, 독자부에서 법상부(法上部)·현주부(贅胄部)·정량부(正量部)·밀림산부(密林山部)의 4부가 갈라졌다. 설일체유부에서 화지부(化地部)가 분리되고 화지부(化地部)에서 법장부(法藏部)가 나뉘었다. 제300년 말에는 설일체유부에서 음광부(飮光部)가 나뉘고, 제400년 초에는 같은 설일체유부에서 경량부(經量部)가 나와, 상좌부는 불멸 후 200년에서 400년 초에 걸쳐 본말(本末) 11부가 되었다. 이리하여 대중부계의 9부와 상좌부계의 11부를 합하여 모두 20부의 부파가 불멸 후 200년에서 400년에 걸친 200년간에 성립된 셈으로, 이것을 소승 20부라 부른다.” - ↑ 가 나 "제2결집"[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010년 12월 21일에 확인.
"제2결집: 第二結集 제1결집에 있어서도 이미 신구(新舊) 사상의 대립이 엿보이게 되었는데 불타의 입멸 후 약 100년이 지나게 되자 계율에 대한 새로운 설을 제창하는 자가 있어서 여러가지로 의문점이 발생하여 분규를 일으키게 되었다. 이에 베샬리(Vaisali:吠舍離)에서 야사(耶舍)가 중심이 되어 700명의 상좌부장로(上座部長老)를 모아 주로 율장(律藏)을 편집하고 교단의 통제에 힘썼다. 이를 칠백결집이라고도 한다. 그 후에 일설(南傳島史 등)에 따르면 이에 불복한 진보적인 비구들이 1만명의 다수인을 모아 독자적인 결집을 열었다고 한다. 이를 대결집(大結集)이라 부르는데 이들은 보수적인 상좌로부터 이탈하여 대중부(大衆部)를 형성하게 되었다. " - ↑ 가 나 다 "부파불교의 전개 - 소승20부"[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010년 12월 16일에 확인.
"소승20부: 小乘二十部 근본2부의 분열이 가져온 분열의 기운은 교리상의 견해, 지도자간의 대립, 지리적 조건 등으로 인하여 더욱 심화되어 불타 입멸 후 약 200년 뒤에는 대중부 계통으로부터, 그리고 그 뒤에 이어서 상좌부 계통으로부터 교단의 파생적인 분열이 촉진되었다. 이 여러 갈래로 분열하는 모습과 파의 이름 그리고 분파의 수에 관하여는 여러 설이 있다. 일반적으로 소승20부로서는 대중부 계통으로서 대중부(大衆部)·일설부(一說部)·설출세부(說出世部)·계윤부(鷄胤部)·다문부(多聞部)·설가부(說假部)·제다산부(制多山部)·북산주부 (北山住部)의 9부와 상좌부 계통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설산부(雪山部)·독자부(犢子部)·법상부(法上部)·현주부(贅胄部)·정량부(正量部)·밀림산부(密林山部)·화지부 (化地部)·법장부(法藏部)·음광부(飮光部)·경량부(輕量部)의 11부, 합계 20부를 들 수 있다. 이들의 성립 시기는 대략 서력 기원 전후였을 것으로 보인다. " - ↑ 가 나 "부파불교 시대"[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010년 12월 21일에 확인.
"부파불교 시대: 部派佛敎時代 불교의 급속한 팽창과 유통(流通)은 일면 교단 자체의 질서면에서 많은 문제를 제기하였고, 그것은 드디어 교파분열을 초래하였다. 불멸 후 100년경 계율(戒律) 해석을 놓고 전통적 보수파와 진보적 자유파가 대립되어 두 개의 부파(部派)를 낳았다. 전자를 상좌부(上座部:Theravada)라 하였고 후자를 대중부(大衆部:Mahasamghika)라 한다. 부파 발생의 원인은 불타의 교설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교단질서 확립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 유래되었다. 불멸 후 100년경 베샬리(Vai ali:毘舍離)에서 비구계(比丘戒)로 10사(事)를 두고 합법(合法)을 주장하는 측과 비법(非法)이라고 반대하는 측이 대립되어 분열된 것이다. 비법을 주장하는 측이 700명의 비구를 모아 집회를 열었으니 이것을 '제2회 결집'이라 한다. 크게 둘로 갈라진 부파는 계속 분열되어 서력기원을 전후하는 시기에는 각각 18∼20개 정도의 부파를 형성하였다. 부파 발생의 발단은 계율 해석의 학설상 차이에 있었지만, 학설보다는 지도적 장로(長老)를 중심으로 한 체제가 달랐거나 지리적으로 너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부파를 형성하는 일도 생겼다. 대표적 부파로는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설산부(雪山部)·독자부(犢子部)·화지부(化地部)·음광부(飮光部)·경량부(經量部) 등이 존재했다. 이 시기를 부파불교 시대라고 지칭하는데 이와 같은 불교의 부파적 전개는 외적(外的) 확대와는 달리 불타 당시와 같은 순수성 내지 발랄성을 잃고 율(律)·경(經)에 대한 훈고학적인 주석학(注釋學)에 빠졌다. 곧 아비달마(阿毘達磨) 불교의 발달을 보게 되었으니 불교는 승원(僧院) 중심, 출가(出家) 중심의 학문불교(學問佛敎)로 변화하고, 따라서 대중성을 잃었다. 또 일부에서는 저급한 미신적 신앙에 친화감을 갖게 되어 불교는 본래의 탄력을 잃고 말았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불교 본래의 모습으로 복귀하려는 운동이 일어났고 그러한 운동은 진보적 입장을 대표하던 대중부 및 재가(在家)불교도가 주동이 되었다. 이것을 대승불교(大乘佛敎)운동이라고 한다." - ↑ 《大史》第五章第三次結集: 初始,以摩訶迦葉為首的大長老們進行的正確結集,被稱為上座部結集。在最初的一百年中,只有上座部一派,以後才逐漸產生了其他的學派。被參加第二次結集的長老們譴責的惡比丘,共有一萬人。他們建立了名為大眾部的學派,以後又產生出牛家部(雞胤部)和一說部。從牛家部產生出說假部和多聞部,它們當中又產生出制多山部,加上大眾部,共六部。又從上座部產生出化地部比丘和犢子部比丘兩派。又從犢子部比丘當中產生出法上部、賢冑部比丘,以及六城部(密林山部)和正量部。又從化地部比丘中產生出說一切有部比丘和法藏部比丘兩派。從說一切有部產生出迦葉遺部,後又生出說轉部比丘,再生出經量部。加上上座部,共有十二部。算上前述六部,共滿十八部。在第二個百年中,復產生了十七部,而後又產生了另外的學派。如雪山部、王山部,以及義成部、東山部比丘和西山部、金剛部(西王山部)。這六部是在贍部洲分出來的,法喜部(無畏山派)和海部(祗陀林派)是在楞伽島分出來的。
- ↑ Geiger/Bode의 《대사(大史, Mahavamsa)》 영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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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V
THE THIRD COUNCIL
THAT redaction of the true dhamma, which was arranged at the beginning by the great theras 大長老 대장로 Mahäkassapa 摩訶迦葉 마하가섭 and others, is called that of the theras 上座部 상좌부. One and united was the school of the theras 上座部 상좌부 in the first hundred years. But afterwards arose other schools of doctrine. The heretical bhikkhus, subdued by the theras 長老 장로 who had held the Second Council, in all ten thousand, founded the school which bears the name Mahasamghika 大眾部 대중부.
From this arose the Gokulika 牛家部 우가부 雞胤部 계윤부 and Ekavyoharika 一說部 일설부 (schools). From the Gokulika 牛家部 우가부 雞胤部 계윤부 arose the Parniatti 說假部 설가부 sect and the Bahulika 多聞部 다문부, from these the Cetiya 制多山部 제다산부 sect. (Thus) there are six, with the Mahasamghika 大眾部 대중부, and yet two more (groups) parted from the followers of the Thera-doctrine 上座部 상좌부: the Mahimsasaka 化地部 화지부 and the Vajjiputtaka 犢子部 독자부 bhikkhus. And there parted from them likewise the Dhammuttariya 法上部 법상부 and the Bhadrayänika 賢冑部 현주부 bhikkhus, the Chandagarika 六城部 육성부 密林山部 밀림산부 , the Sammiti 正量部 정량부 and the Vajjiputtiya 犢子部 독자부 bhikkhus. From the Mahimsasaka 化地部 화지부 bhikkhus two (groups) parted, the bhikkhus who held by the Sabbattha-school 出說一切有部 설일체유부 and the Dhammaguttika 法藏部 법장부 bhikkhus. From the Sabbattha 出說一切有部 설일체유부 sect arose the Kassapiya 迦葉遺部 가섭유부, from these arose the Samkantika 說轉部 설전부 bhikkhus, from these last the Sutta 經量部 경량부 sect. These are twelve together with (those of) the Thera-doctrine 上座部 상좌부; thereto are added the six schools named and these together are eighteen.
Thus in the second century arose seventeen schools, and other schools arose afterwards. The Hemavata 雪山部 설산부 and the Rajagiriya 王山部 왕산부 and likewise the Siddhatthaka 義成部 의성부, the first Seliya 東山部 동산부 bhikkhus, the other Seliya 西山部 서산부, and the Vajiriya 金剛部 금강부 西王山部 서왕산부: these six separated (from the rest) in Jambudipa 섬부주 贍部洲, the Dhammaruci 法喜部 법희부 無畏山派 무외산파 and the Sagaliya 海部 해부 祗陀林派 지다림파 separated (from the rest) in the island of Lanka 楞伽島 능가도.
Here ends the Story of the Acariya-schools 部派 부파 軌範師 궤범사 阿闍梨 아도리. - ↑ 세우 조, 현장 한역. 《이부종륜론》. p. T49n2031_p0015a17 - T49n2031_p0015b25. 소승20부(小乘二十部)
"如是傳聞。佛薄伽梵般涅槃後。百有餘年去聖時淹。如日久沒。摩竭陀國俱蘇摩城王號無憂。統攝贍部。感一白蓋。化洽人神。是時佛法大眾初破。謂因四眾共議大天五事不同。分為兩部。一大眾部。二上座部。四眾者何。一龍象眾。二邊鄙眾。三多聞眾。四大德眾。其五事者。如彼頌言。
餘所誘無知 猶豫他令入
道因聲故起 是名真佛教
後即於此第二百年。大眾部中流出三部。一一說部。二說出世部。三雞胤部。次後於此第二百年。大眾部中復出一部。名多聞部。次後於此第二百年。大眾部中更出一部。名說假部。第二百年滿時。有一出家外道。捨邪歸正。亦名大天。大眾部中出家受具。多聞精進。居制多山。與彼部僧重詳五事。因茲乖諍分為三部。一制多山部。二西山住部。三北山住部。如是大眾部四破或五破。本末別說合成九部。一大眾部。二一說部。三說出世部。四雞胤部。五多聞部。六說假部。七制多山部。八西山住部。九北山住部。其上座部經爾所時一味和合。三百年初有少乖諍。分為兩部。一說一切有部。亦名說因部。二即本上座部。轉名雪山部。後即於此第三百年。從說一切有部流出一部。名犢子部。次後於此第三百年。從犢子部流出四部。一法上部。二賢胄部。三正量部。四密林山部。次後於此第三百年。從說一切有部。復出一部。名化地部。次後於此第三百年。從化地部流出一部。名法藏部。自稱我襲採菽氏師。至三百年末。從說一切有部。復出一部。名飲光部。亦名善歲部。至第四百年初。從說一切有部。復出一部。名經量部。亦名說轉部。自稱我以慶喜為師。如是上座部七破或八破。本末別說成十一部。一說一切有部。二雪山部。三犢子部。四法上部。五賢胄部。六正量部。七密林山部。八化地部。九法藏部。十飲光部。十一經量部。如是諸部。本宗末宗同義異義。" - ↑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이부종륜론》. pp. 2-4 / 14[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소승20부(小乘二十部)
"이와 같이 전해 들었다.
부처님 박가범(薄伽梵)께서 반열반하신 뒤로 백여 년이 지나니 성인께서 가신지도 오래되어 마치 해가 오래전에 진 것과 같았다. 마갈타국(摩竭陀國) 구소마성(俱蘇摩城)의 왕인 무(無憂)라는 이는 남섬부주를 도맡아 다스리고 하나의 흰 일산을 받으며 사람과 신들을 교화하고 다스렸다.
그때에 불법의 대중(大衆)이 처음 쪼개어졌다. 이를테면 네 대중[四衆]이 함께 대천의 다섯 가지 일[大天五事]1)을 논의하다가 뜻이 같지 않아 두 부로 나뉘어졌으니, 첫째는 대중부(大衆部)요 둘째는 상좌부(上座部)이다.
네 대중이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용상중(龍象衆)이요, 둘째는 변비중(邊鄙衆)이며, 셋째는 다문중(多聞衆)이요, 넷째는 대덕중(大德衆)이다.
그 다섯 가지 일이란 아래 게송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 다른 유혹을 받음[餘所誘]과 앎이 없음[無知]과
망설임[猶豫]과 다른 이로 하여 깨쳐 듦[他令入]과
도가 소리로 인하여 일어남[道因聲故起]이니
이것을 참된 부처님의 가르침이라 한다.
그2) 뒤에 곧 이 제2백 년경에 대중부 가운데서 세 부(部)가 흘러 나왔으니, 첫째는 일설부(一說部)요, 둘째는 설출세부(說出世部)이며, 셋째는 계윤부(雞胤部)이다.
그 다음 2백 년경에 대중부 가운데서 다시 한 부가 나왔으니 이 다문부(多聞部)이다.
그 다음 2백 년경에 대중부 가운데서 다시 한 부가 나왔으니 이 설가부(說假部)이다.
제2백 년이 다 찼을 때에 어느 한 출가 외도가 사도[邪]를 버리고 정법[正]으로 돌아온 이가 있었으니 이름은 대천(大天)이었다.
대중부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견문이 많았으며 정진(精進)하면서 제다산(制多山)에 살고 있었는데 그 부(部)의 승가와 함께 거듭 다섯 가지의 일을 상고(詳考)하다가 이로 인하여 서로 틀려 다투면서 세 부로 나뉘어졌으니, 첫째는 제다산부(制多山部)요, 둘째는 서산주부(西山住部)이며, 셋째는 북산주부(北山住部)이다.
이와 같이 대중부에서는 넷으로 쪼개지고 혹은 다섯으로 쪼개졌으니, 근본과 줄기를 따로따로 설명한 것까지 합하면 아홉 부가 된다.
첫째는 대중부요, 둘째는 일설부이며, 셋째는 설출세부요, 넷째는 계윤부이며, 다섯째는 다문부요, 여섯째는 설가부이며, 일곱째는 제다산부요, 여덟째는 서산주부이며, 아홉째는 북산주부이다.
그 상좌부(上座部)가 그러할 때에 한 맛[一味]으로 화합하여 지내다가 3백 년초에 조금 틀려서 다툼이 있자 두 부로 나뉘어졌다. 첫째는 설일체유부(設一切有部:說因部라고도 한다)요, 둘째는 곧 본래의 상좌부이니 이름을 바꾸어 설산부(雪山部)라고 한다.
그 뒤 3백 년경에 설일체유부로부터 한 부가 흘러 나왔으니 이름이 독자부(犢子部)이다.
그 다음 3백 년경에 독자부로부터 네 부가 흘러 나왔다. 첫째는 법상부(法上部)요, 둘째는 현주부(賢冑部)이며, 셋째는 정량부(正量部)요, 넷째는 밀림산부(密林山部)이다.
그 다음 3백 년경에 설일체유부로부터 다시 한 부가 흘러 나왔으니 이름이 화지부(化地部)이다.
그 다음 3백 년경에 화지부로부터 한 부가 흘러 나왔으니 이름이 법장부(法藏部)이며 자칭(自稱) “우리는 채숙씨(採菽氏)를 스승으로 해서 물려 받았다”고 하였다.
3백 년 말에 이르러서 설일체유부로부터 다시 한 부가 나왔으니 이름이 음광부(飮光部)이며 또한 선세부(善歲部)라고도 하였다.
4백 년 초에 이르러서 설일체유부로부터 다시 한 부가 나왔으니 이름이 경량부(經量部) 또는 설전부(說轉部)라고도 이름하였으며 자칭 “우리는 경희(慶喜)로써 스승을 삼는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상좌부에서는 일곱으로 쪼개지고 혹은 여덟로 쪼개져서 근본[本]과 줄기[末]를 따로따로 설명하였으니 11부(部)가 된다.
첫째는 설일체유부요, 둘째는 설산부이며, 셋째는 독자부요, 넷째는 법상부이며, 다섯째는 현주부요, 여섯째는 정량부이며, 일곱째는 밀림산부요, 여덟째는 화지부이며, 아홉째는 법장부요, 열째는 음광부이며, 열한째는 경량부이다.
이와 같이 모든 부(部)는 본종(本宗)과 말종(末宗)에서 뜻을 같이하기도 하고 뜻을 달리하기도 한다.
1) 대천(大天)은 마하제바(摩訶提婆)라 음역(音譯)하며 대중부(大衆部)의 시조(始祖)이다. 자세한 것은 『부집이론』 주1) 참조.
2) 『부집이론』 주2) 참조." - ↑ 천우 조, 진제 한역. 《부집이론》. p. T49n2033_p0020a17 - T49n2033_p0020b24. 소승20부(小乘二十部)
"如是所聞。佛世尊滅後。滿一百年。譬如朗日隱頞悉多山。過百年後更十六年。有一大國名波吒梨弗多羅。王名阿輸柯。王閻浮提。有大白蓋覆一天下。如是時中大眾破散。破散大眾凡有四種。一大國眾。二外邊眾。三多聞眾四大德眾。此四大眾。共說外道所立五種因緣。五因緣者。如彼偈說。
餘人染污衣 無明疑他度
聖道言所顯 是諸佛正教
思擇此五處。分成兩部。一大眾部。二上座弟子部。至第二百年中。從大眾部。又出三部。一一說部。二出世說部。三灰山住部。於此第二百年中。從大眾部又出一部。名得多聞部。於此第二百年中。從大眾部又出一部。名分別說部。此第二百年滿。有一外道。名曰大天。於大眾部中出家。獨處山間。宣說大眾部。五種執異。自分成兩部。一支提山部。二北山部。如是大眾部四破五破。合成七部。一大眾部。二一說部。三出世說部。四灰山住部。五得多聞部。六分別說部。七支提山部。北山部。上座弟子部。住世若千年。至第三百年中。有小因緣分成兩部。一說一切有部。亦名說因部。二雪山住部。亦名上座弟子部。於此第三百年中。從說一切有部。又出一部。名可住子弟子部。於此第三百年中。從可住子弟子部。又出四部。一法上部。二賢乘部。三正量弟子部。四密林住部。於此第三百年中。從說一切有部。又出一部。名正地部。於此第三百年中。從正地部。又出一部。名法護部。此部自說勿伽羅是我大師。於此第三百年中。從說一切有部。又出一部。名善歲部。亦名飲光弟子部。至第四百年中。從說一切有部。又出一部。名說度部。亦名說經部。如是上座弟子部。合分成十一部。一說一切有部。二雪山住部。三可住子弟子部。四法上部。五賢乘部。六正量弟子部。七密林住部。八正地部。九法護部。十善歲部。十一說度部此諸部是執義本。執義有異。" - ↑ 천우 지음, 진제 한역, 송성수 번역. 《부집이론》. pp. 2-5 / 16[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소승20부(小乘二十部)
"이와 같이 들었다.
부처님ㆍ세존께서 열반[滅]하신 지 꼭 일백 년이 되었을 때이니, 마치 밝은 해가 알실다산(頞悉多山)에 숨어버린 지 백 년이 지나고 다시 십육 년이 되었을 때였다.
파타리불다라(波吒梨弗多羅)라는 큰 나라에 아수가(阿輸柯)라는 왕이 있었는데 그는 염부제(閻浮提)의 왕이 되어서 크고 흰 일산으로 온 천하를 덮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대중은 쪼개지고 흩어졌으니, 쪼개지고 흩어진 대중에는 무릇 네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대국중(大國衆)이요, 둘째는 외변중(外邊衆)이며, 셋째는 다문중(多聞衆)이요, 넷째는 대덕중(大德衆)이었다.
이 네 가지 대중은 다 같이 외도가 세운 다섯 가지 인연[五種因緣]1)을 설명했던 것이다. 다섯 가지 인연은 저 게송에서 말한 것과 같다.
다른 사람으로 인해 옷을 더럽힘과
무명(無明)과 의심과 다른 이의 제도[他度]와
성도(聖道)는 말로써 드러내는 것이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이다.
이 다섯 가지 처소[五處]를 사택(思擇)하면서 두 부(部)로 나뉘어졌다.
첫째2)는 대중부(大衆部)요, 둘째는 상좌제자부(上座弟子部)이다.
제2백 년의 중간에 이르러서 대중부로부터 또 세 부가 나왔으니, 첫째는 일설부(一說部)요, 둘째는 출세설부(出世說部)이며, 셋째는 회산주부(灰山住部)이다.
이 제2백 년 중간에 대중부로부터 또 한 부가 나왔으니 이름은 득다문부(得多聞部)이다.
이 제2백 년 중간에 대중부로부터 또 한 부가 나왔으니 이름은 분별설부(分別說部)이다.
이 제2백 년이 다 차서 한 외도가 있었으니 이름은 대천(大天)이었다. 대중부 가운데 출가하여 혼자 산간에 있으며 대중부를 널리 펴 연설하다가 다섯 가지에 대해 다른 것을 주장[緝異]하면서 스스로 두 부를 이루었으니, 첫째는 지제산부(支提山部)요, 둘째는 북산부(北山部)이다.
이와 같이 대중부는 넷으로 쪼개지고 다섯으로 쪼개지면서 합하여 7부를 이루었으니, 첫째는 대중부요, 둘째는 일설부이며, 셋째는 출세설부요, 넷째는 회산주부이며, 다섯째는 득다문부요, 여섯째는 불별설부이며, 일곱째는 지제산부와 북산부이다.
상좌제자부(上座弟子部)는 세간에 얼마 동안 머물다가 제3백년 중에 이르러서 사소한 인연으로 두 부로 나뉘어졌으니, 첫째는 설일체유부(設一切有部)로서 설인부(說因部)라고도 하며, 둘째는 설산주부(雪山住部)로서 상좌제자부(上座弟子部)라고도 한다.
이 제3백 년 중간에 설일체유부로부터 또 한 부가 나왔으니, 이름이 가주자제자부(可住子弟子部)이다.
이 제3백 년 중간에 가주가제자부로부터 또 네 부가 나왔으니, 첫째는 법상부(法上部)요, 둘째는 현승부(賢乘部)이며, 셋째는 정량제자부(正量弟子部)요, 넷째는 밀림주부(密林住部)이다.
이 제3백 년 중간에 설일체유부로부터 또 한 부가 나왔으니, 이름이 정지부(正地部)이다.
이 제3백 년 중간에 정지부로부터 또 한 부가 나왔으니, 이름이 법호부(法護部)이다.
이 제3백 년 중간에 설일체유부로부터 또 한 부가 나왔으니, 이름이 선세부(善歲部)이며 또한 이름을 음광제자부(飮光弟子部)라고도 한다.
제4백 년 중간에 이르러서 설일체유부로부터 또 한 부가 나왔으니 이름이 설도부(說度部)이며 또한 이름을 설경부(說經部)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상좌제자부는 합하여 11부로 나뉘어졌으니, 첫째는 설일체유부요, 둘째는 설산주부이며, 셋째는 가주자제자부요, 넷째는 법상부이며, 다섯째는 현승부요, 여섯째는 정량제자부이며, 일곱째는 밀림주부요, 여덟째는 정지부이며, 아홉째는 법호부요, 열째는 선세부이며, 열한째는 설도부이다.
이 모든 부[諦部]는 주장하는 뜻의 근본이 되는 것이 있고 주장하는 뜻에 차이가 있는 것이 있다.
1) 불멸(佛滅) 후 백여 년경 학승(學僧)인 대천(大天)이 오개조(五個條)의 신설(新說)을 주창하여 전통적인 불교를 반대할 적에 이를 시인하는 한 파인 대중부(大衆部) 와 부인하는 한 파인 상좌부(上座部)가 생겼다. 이때에 내세운 오개조의 새로운 주장을 여기서 오종인연(五種因緣)이라고 한다.
첫째, 여인염오의(餘人染汚衣:餘所誘):아라한에게는 번뇌로 누실(漏失)하는 일은 없으나 천마(天魔)가 와서 유혹하고 요란하면 부정(不淨)이 흘러 나와 옷을 더럽힌다는 것. 둘째, 무명(無明:無知):아라한은 염오(染汚)의 무지(無知)는 없으나 불염오(不染汚)의 무지는 아직 존재한다는 것, 셋째, 의(疑:猶豫):아라한은 수면성(隨眠性)의 의심은 없으나 처비처(處非處)의 의심에 대해서는 망설이면서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 넷째, 타도(他度:他舍入):경에서는 아라한이 성혜안(聖慧眼)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해탈(解脫)을 스스로 증(證)하여 안다고 하였으나 그래도 남의 가르침을 따라 비로소 아는 이도 있다는 것. 다섯째, 성도언소현(聖道言所顯:道因聲故起):사제(四諦) 등의 성도(聖道)를 일으키게 함에는 지극한 마음으로 소리를 내어 불러야 하는 것.
2) 석존 입멸 백여 년 후에 마갈타국 구소마 성주(城主) 무우왕 때에 대천(大天)의 오개조의 새로운 말[五事妄言]에 동조한 파가 대중부요, 부정한 파가 상좌부이니 도표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참고 문헌
[편집]- 세우보살조, 현장역.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 대정신수대장경, T49 No.2031. 2010년 12월 21일에 확인.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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